2024년 2월 25일(주일) 1부예배 오전 7시 30분, 2부 11시,
사순절 둘째주일
성경본문 : 이사야 53장 1~7절
제 목 : 십자가! 나 항상 생각할 때에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주현절 여섯째 주일로 지키는 작천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시온찬양대 위에, 연로하시거나 병상에 있으신 분들과 유튜브로 예배 드리는 모든 분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이란 사는 숫자로 넷을 말하고 旬이란 열흘 순(旬)으로 사순은 40일을 말합니다. 이는 부활주일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가 40일이어서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이 사순절에는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되새기면서 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면서 보내는 기간을 말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간으로서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빛 아래 나의 실존을 비추어보면서 묵상하는 주간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사순절 기간에는 주 예수님 달려 죽으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 바로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그 뚝뚝 흘리신 보혈의 피를 맞으면서 “주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나? 왜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시면류관 쓰시고 양손 양발에 큰 녹슨 쇠못에 박히시고 피흘리셨나? 우리 예수님이 그토록 큰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나”를 깊게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이사야 52장과 53장에는 “고난 받는 종의 노래”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일을 무원칙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의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면 인간은 피할 수 없고 이는 피로써 속죄를 해야 합니다. 피는 생명으로 피로써 속죄함은 바로 죽어야 함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을 일일이 물으신다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일일이 죄를 물어 다 죽이신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였는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책벌을 하지 아니하신다면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 아니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따라 죄에 대한 엄벌을 하시자니 하나님의 사랑이 울고 하나님께서 사랑을 따르자니 하나님의 정의가 울게 됩니다. 하나님께 이것은 참으로 딜렘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전에 구약시대에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벌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종을 대신 벌하시고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성경 이사야 53장 5절은 아주 정확하게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여기서 “그가 찔림은” 할 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가 상함을” 할 때의 “그”도 “여호와의 종”입니다. “그가 징계받고 채찍을 맞음으로” 할 때 “그”도 역시 “여호와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에게 매를 때리시고 자신의 종을 찌르시고 자신의 종에게 채찍으로 치심으로 그가 징계를 받고 그가 징벌을 받게 하시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은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정의를 이루시고 사랑을 이루신 방법입니다.
■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은 반의 반장을 임명하셨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반에 문제가 생기고 떠드는 이가 있을 때 “반장 이리 나와!” 하여 회초리로 반장의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저 역시 떠드는 사람들 중에 빠지는 학생이 아니었는데 제가 막 떠들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은 그것을 보더니 저는 일어서게 하고 “반장 너 이리 나와!” 해서 반장을 때렸습니다. 사실상 반장이 떠는데 아니었는데 반장은 반의 대표로서 반원들이 떠드는 것을 대신해서 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 때 반장은 고난받는 종과 같이 된거죠~! 반장이 매를 맞고 들어와 풀이 죽어 앉아 있는데 무척 미안하였습니다. 반장이 제가 맞았다고 나한테 분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반장을 보자 무척 미안했습니다. 떠드는 것은 내가 떠들었는데 매는 반장이 맞았구나! 그래서 떠드는 것을 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반 반원들은 반장이 담임에게 수도 없이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떠드는 것을 삼가게 되었습니다.
■ 옛날 “로크리안스”라는 나라에 “자로카크”란 왕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처럼 도덕이 지극히 문란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누구든지 도둑질하는 자는 그 두 눈을 뽑아버리겠다는 엄한 법령을 반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법을 어긴 첫 번째 어긴 자가 잡혀왔는데 왕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술렁거리면서 왕이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국왕께서 정말로 법대로 하실까? 만일 왕이 법대로 안한다면 이 법은 무효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야! 왕부터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그 법을 지키려 하겠어!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어떻게 사랑하는 아들의 두 눈을 뽑을 수 있겠어!” 드디어 왕자에게 법을 집행하는 날이 왔습니다. 죄인이 된 불쌍한 왕자는 재판장으로 변한 아버지 앞에 끌려 왔습니다. “죄인의 형을 집행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용서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설마 아들에게 그렇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서슬 퍼런 왕의 명령에 집행관의 칼이 번뜩이자 비명과 함께 왕자의 한쪽 눈은 뽑혔습니다. 피는 땅을 적셨습니다. 다시 하나 남은 눈을 향하여 칼날이 움직이려 할 때 왕의 목소리가 형장을 울렸습니다. “잠깐 멈추어라! 왕자에게는 그것으로 족하다. 나머지 한쪽 눈은 이것으로 하라” 사람들이 말릴 틈이 없이 왕은 자신의 피 묻은 한쪽 눈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왕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고통을 반분하고 또한 왕으로서 나라의 법도 지켜 나라를 도덕적 파멸에서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벌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달리 대응하셨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신 것입니까?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세상의 죄악을 보실 때 노아와 그 가족들만 남겨놓고 싹 쓸어 버리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자가 소나 양을 죽여서 바치면 그 피를 받으시고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들이 부자이면 죄를 용서받기 쉽고 또 죄를 저질렀지만 가난한 사람은 죄를 지으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는 자신의 종으로 하여금 대신 고난당하게 하시고 대신 매 맞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은 전혀 다른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간의 죄를 처리하셨습니다. 물론 이사야 시대와 비슷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사야 시대와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사야 시대의 고난 받는 종은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입니까? 아닙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사야에서 고난받는 종은 하나님의 종의 하나였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근본 본체이셨고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악을 다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그것으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 창세기와 같이 죄악을 범한 인간을 싹 쓸어 죽여 버리지 아니하시고 저들을 긍휼히 여겨서 자신이 인간이 되어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짐을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 상상의 허를 찌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하늘에나 계시고 하늘에서 온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세계에 오셔서 인간과 똑같이 되시고 그것까지는 좋은데 그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고통 당하시고 죽으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은 살인을 저지르거나 로마제국에 반역을 한 죄수에게 가장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하는 형벌의 틀이었습니다. 그런 형벌의 틀에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 매달리셔서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赦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였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허망한 소리로 여겼고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야말로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의 허를 찌르시고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으로 오시어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성으로는 상식과 판단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십자가는 참으로 불가해한 하나님의 신비요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인간의 상상의 허를 찌르는 방식이신 것입니다.
■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신 이 하나님의 얼마나 좋으시고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잘못했을 때 바로 도무지 되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형벌을 내리신다면 그 하나님을 무서워는 하겠지만 사랑할 맘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주 안에다가 과학적인 법칙을 두어 도무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그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가게 내버려 두고 도무지 인간의 일은 법칙에 맡겨 놓았으니 내 알 바가 아니다 라든지, 인간이야 어찌되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높으신 하늘에서 천도복숭아나 드시고 계시거나 에헴하고 기침만 하고 계신다면 그 하나님을 경원하기는 하겠지만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깝게 느껴지기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오시어 인간과 똑같이 말씀하시고 잠도 주무시고 먹을 것도 나눠서 같이 드시고 걱정도 해 주시고 축복도 해 주시고 좋은 말도 해 주십니다.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는데 따르는 제자들은 그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하시고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참으로 연약하게 죽어 가십니다. 그 피로 우리가 속죄를 받고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삼라만상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얼마나 사랑스러우시고 얼마나 가까이 가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짊어지신 십자가의 그 깊고 뜨거운 은혜를 체험한 이들이 늘 울어도 그 눈물로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치옵니다 하면서 순교를 기쁨으로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 목민관들이 예수 믿는 이들을 사교의 무리들이라고 수백명 수천명을 붙잡아서 다 죽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무지렁이 백성들이 뭘 몰라서 그렇겠다 하고 다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야! 너 딱 한마디만 해라 예수 안믿겠다!고만 해라 그러면 풀어주마! 그 딱 한마디만 하고 가면 그 다음에 가서 또 예수 믿어도 상관치 않겠다”고 회유했습니다. 그러면 거기 잡힌 이들이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다들 돌려보내줄 심산이었고 다들 그렇게 하고 다 예수를 부인하고 풀려날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그 무지렁이들이, 민중들이 백이면 구십구명이 “예수님께서 내 죄를 다 씻어 구원해 주셨는데 내가 어찌 내 주 예수님을 부인하고 가룟 유다와 같은 짓을 한단 말이요! 나는 그리 못합니다” 하고 절두산에서 목이 잘려 죽은 이만해도 수 만명이었습니다. 저들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내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결코 부인하거나 놓지 않겠다고 하고 피로써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켜 내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되 가장 사랑받으시는 방법으로 가장 연약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 이사야 53장에서 우리가 집중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악과 직결됩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우리의 죄악을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우리 안과 밖에 있는 죄악들을 한번 살펴 봅시다.
□ 혹 나에게는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죄는 없습니까?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선악과를 따먹은 죄는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던 죄는 없었습니까? 성경에 하지 말라 하셨는데 기어코 하였던 죄악들은 없습니까? 하나님께 바쳐야 할 주님의 날에 내가 세상에서 해야할 일에 집중하였던 죄악들은 없었습니까? 혹 나는 욕망의 선악과를 따먹지는 않았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있는데 남편 외에 아내 외에 훔쳐서 먹지는 않았습니까? 욕망에 이끌려 정도에 벗어나지는 않았습니까?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들을 내 것처럼 삼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만일 그랬었다면 그것들은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였던 죄악들이니 금번 사순절 기간에 그것들을 침묵 가운데 회개하시면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 혹 나에게 가인이 저질렀던 죄악은 없습니까? 형제와 자매를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라도 형제와 자매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였던 죄악은 없었습니까? 주 예수님께서는 산상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우리는 카인과 같이 직접 동생을 쳐 죽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고 모해하고 욕하는 것도 지옥에 들어갈 만큼 큰 죄라 하였습니다. 이 시간 조용히 나 자신을 살펴봅시다. 나에게는 카인이 지은 죄와 같은 것들은 없는지! 꼭 카인과 같은 죄는 아니다 하다라도 남을 미워하고 분노하고 이웃의 맘을 상하게 하고 서로 불화하고 욕하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상처입히는 일은 없었는지 조용히 나 자신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나 내 가슴 속에 분노와 미움 역시 큰 죄입니다. 그것들이 밖으로 터져 나올 때는 살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 역시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리게 하는 죄악들입니다. 내 안에 그런 요소들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였던 죄악들이니 금번 사순절 기간에 침묵 가운데 회개하시면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 사람들은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높이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왜 쌓아 올렸는가 하면 인간이 죄악을 범하였을 때 하나님이 물로 홍수로 심판한다 하더라도 심판이 미치지 못하도록 높이 높이 쌓아 올린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기술과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경험으로 뭉쳐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보려는 것이 바로 교만의 죄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음으로 심판을 당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인간이 죄악을 저질러 하나님이 심판하려 하더라도 그 심판을 막아보려는 것이 바로 교만의 죄악입니다. 난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하는 것도 교만이고 난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나 하나님의 도우심 없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나는 충분히 이 세상의 거친 파도를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손길 없이도 나는 충분히 세상이 주는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고 내가 기진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합하면 하나님과 하등 상관없이도 나는 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내 안에 그런 요소들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였던 죄악들이니 금번 사순절 기간에 침묵 가운데 회개하시면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생활하였을 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자 자신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온 황금을 모아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다가 큰 징벌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바로 죄악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시대에는 금으로 만들고 나무로 만든 것들을 우상으로 섬겼지만 오늘날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 무엇이라도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 보다도 더 가치있게 떠 받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내가 자식을 하나님보다도 더 중히 여긴다면 자식이 우상이요 내가 돈과 물질을 하나님 보다도 더 가치잇게 여긴다면 그 우상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사상을 하나님 보다도 더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들이 내가 섬기는 우상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시기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하나님 보다도 더 높이 생각하고 더 가치있게 여긴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고 시기하십니다. 이 시간 내 안에 내 안에 그런 요소들이 티끝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였던 죄악들이니 금번 사순절 기간에 침묵 가운데 회개하시면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 금번 사순절 기간 동안에 우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나의 죄악들을 그것들이 내 안에 있건 내 생활습관에 있건 내가 행하고 있는 일에 있건 모조리 다 찾아내어 하나씩 주 예수님께 아뢰어 고하고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것들이 내 안에 내 생활 속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다짐하는 시간 시간으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악들은 다시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다시금 고통당하게 하시고 피흘리게 하는 것들은 없는가 내 모습을 살피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달려 죽으신 십자가 나 항상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그 죄악들이 내 속에 사는 것이 좋다고 나를 꼭 잡고 죽으면 죽었지 내 안에서 살겠다고 결사적으로 기생하면서 나가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나 주의 신이 움직이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였으니 성령님께 간구하여 내 속에 있는 죄악의 습성을 불로 불로 남김없이 태워 재도 남지 않게 해달가고 간구하십시다. 이 시간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었던 모든 죄를 이 시간 침묵 가운데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침묵 가운데 모든 것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토해 내면서 기도하십시다. 오직 예수님께만 간구하면서 지은 죄를 회개합시다. 내가 지은 죄를 다 회개하게 될 때 내 영혼은 깨끗케 되어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뵈올 것이요!” 그렇습니다. 이제 사순절 기간에 내 속에 있는 죄악들 예수님을 으스러 뜨리고 예수님의 육체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하고 못박혀 피흘리게 하는 모든 죄악들을 다 토해내고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던지 성령의 생수로 씻어주시던지 속죄의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십시다. 이 시간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조용히 침묵 가운데 지금까지 열거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악들을 내가 범하지 않았는지 또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들을 주 하나님 앞에 침묵으로 아뢰면서 기도하십시다.
기도) (주여! 주여! 주여!)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저희의 허물과 죄악을 뒤집어 쓰고 돌아가셨습니다. 주께서 저희 죄악을 담당하심으로 저희가 맞아야할 채찍을 대신 맞으셨고 저희가 못 박혀야 할 것인데 주님이 대신 못박히셨습니다. 저희는 다 양과 같아야 그릇 행하여 제 갈 길로 갔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희의 죄악을 대신 담당케 하셨습니다.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다시금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고 피흘려 죽게 하는 죄악을 범하는 자리에 서거나 앉지 않도록 저희 삶의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저희의 죄악을 주님 앞에 다 내어 놓고 회개 합니다. 저희 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온갖 냄새나는 것들로 넘쳐 있습니다. 저희 가운데는 아담과 같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는 욕심도 있사옵니다. 저희는 실제로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상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많사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저희 속에 있는 아담과 이브성을 제거하여 주옵시고 저희로 언제나 주 하나님을 섬기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그 자리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허물과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어 정케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카인을 살인마라고 욕을 하지만 저희 안에 카인이 지녔던 시기와 분노와 미움이 있사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질시하고 손가락질 하는 못된 버릇이 저희 안에 있사옵니다. 이 시간 저희 안에 있는 카인성을 주님 앞에 아뢰오니 지금까지 범한 모든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씻어 주시고 정케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안에는 라멕과 같이 보복하고 나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면 그 사람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려는 악한 마음이 담겨져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실제로 나에게 잘못한 이에게 나도 앙갚음으로 돌려주는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행한 죄악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씻어 용서하여 주옵시고 다시는 죄를 짓는 자리에 서거나 앉지 않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 안에는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사오니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속죄하여 주옵시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죄를 범치 않고 싶으나 때로는 저희도 어쩌지 못하고 유혹의 구습에 쫓아 살 때가 많습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나 주의 신이 움직이면 능치 못할 일이 없사오니 주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사 저희 안에 있는 모든 죄악을 성령의 생수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성령의 불로 태워 없애 주시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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