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4일(주일) 1부예배 오전 7시 30분 2부예배 오전 11시
주현절 둘째주일
성경본문 : 마태복음 7장 9~11절
제 목 : 하늘 아버지의 마음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오늘 대림절 셋째 주일, 정성과 사랑으로 예배드리시는 모든 성도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시온찬양대 위에, 연로하시거나 병상에 있으신 분들과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저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더욱 진보하게 하고 향상되게 합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나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를 항상 물어야 합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서도 묻고 묵상을 통해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봄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요즘 총선을 석 달도 못남겨 두고 있지만 모든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여당인 경우는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려 하거나 대통령의 맘에 들어 공천을 받으려 할 것이고 야당인 경우에는 당대표에게 점수를 따서 어찌하든지 공천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는데 가장 첫 번째 발걸음은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마음과 당대표의 마음을 우선 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부단히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하늘 아버지께서 좋아하실까? 내가 이따위로 행동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로부터 눈을 돌려 버리시겠지! 이렇게 행동하면 안돼! 그래 저렇게 살아야지! 부단히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센스티브하게 예민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 시간 성경 마태복음에 비추어 우리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를 인간사의 유비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에서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을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성경은 만군의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렇게도 하나님을 부르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를 때 우리 하나님은 가장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신학에서는 아날로기아 엔티스(analogia entis)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존재의 유비>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그런 것입니다. 제가 두 아이의 아버지지 않습니까? 제 자식을 대하면서 아버지로서 이러저러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하늘 아버지의 마음도 자식들을 향한 내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비슷하겠구나 하면서 유추를 해보는 것입니다. 딸과 아들이 명절이 되었는데 이차저차한 이유를 들어 부모를 찾아오지 않고 다른데를 먼저 간다면 물론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섭섭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 아버지의 집에 나아와 예배드려야 하는데 아버지의 집에 이차저차한 이유로 오지 않는다면 우리 하늘 아버지는 아주 충분히 섭섭하실 것이다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 바로 존재의 유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지 아니하시고 감춰버린다면 우리는 그 신비하신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만큼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을 아버지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 같으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의 아들이나 딸일 수도 있고 동시에 누구의 아버지이기도 하기에 그런 경험으로서 우리는 아들과 딸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 역시 아버지이시기에 아버지란 아날로기아를 통해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됩니다.
■ 제겐 아들과 딸 두 자식이 있는데 이제는 다 커서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중 아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아내는 12 시간 이상을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 아픔을 참기 위해 아내는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고통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엄청난 고통이 삼각파도와 같이 몰려와 옆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도 참으로 큰 고통이었습니다. 고통이 극에 달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쯤 저는 서원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내를 지켜주시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아이는 무럭무럭 잘 커갔습니다. 아직 한 살이 못되었을 때 저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 놈이 언제 커서 “아빠 백원만!!” 할까? 했는데 언젠가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쯤 그런 말을 제게 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빠가 제가 꼬맹이였을 때 언제 제가 커서 아빠 백원만 주세요! 할까 하셨다는데 제가 벌써 이렇게 컸잖아요!” 했습니다. 제가 수원에서 살 때 아직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습니다. 문구점에 데리고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아이의 손에는 별모양의 스틱카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것 어디서 났니? 아빠가 돈을 준 것도 아닌데! 아저씨가 그냥 준 것도 아닐텐데! 얘기해 봐!” 그러자 아이는 “아빠 사탄이가 사탄이가!!” 했습니다. 아이는 주일학교에서 사탄에 대해서 배웠고 자기가 훔친 것이 아니라 사탄이 꼬드겨서 가져왔다고 말할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뭐! 사탄이가 훔치게 했다고? 임마! 네가 훔친거잖야! 하면서 아이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문방구에 가서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게 하고 돌려드리고 왔습니다. 아이는 어떤 형태로든지 교회와 성경의 영향 가운데 컸습니다.
■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곧잘 그렸는데 강단과 마이크를 그려놓고 설교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고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고 써 놓아서 그것을 보았을 때 무척 흡족하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이제 서원기도를 한 대로 신학교에 가야 할텐데 아이는 신학교를 전혀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아이가 한동대를 가기를 원했는데 그 학교가 기독교학교잖아요? 토익성적이 그 학교 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는데 그 아이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려보았더니 한동대라고 그런 이름도 없는 학교를 가게 하지 말고 한신대를 가라고 해라! 해서 저는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해 놓은 것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해서 전전긍긍하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서를 쓸 때쯤 아이에게 ”애비는 네 엄마가 너를 낳을 때 서원기도를 한 바가 있다. 그런데 서원기도는 그것이 자기에게 해로울 지라도 지켜야 한다. 난 네가 신학교를 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할거냐?” 하자 “아빠 저에게 일주일간 시간을 주시면 알려드릴께요!“ 해서 했는데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이는 ”아빠! 아빠의 말을 순종한다고 생각하면 무척 맘이 편해지고 아빠의 말씀을 안 듣는다고 생각하면 맘이 무척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맘이 편한 쪽으로 결정했어요! 아빠!“ 아이의 결정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정하시는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이렇게 생각했을 때는 불편함을 주시고 저렇게 생각했을 때는 편함을 주셨구나! 한편으로는 그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아이가 ”아빠 말씀에 따를께요!“ 했을 때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그 아이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그런 얘기 하나를 읽은 것이 생각납니다. 어떤 아버지가 다락방에 글을 썼는데 내용이 그랬습니다. 【아이가 자전거를 사려 하였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점에 갔는데 자전거는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수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있었다. 아이는 무척 비싼 자전거를 골랐고 나는 그 아이의 수준에 적당한 자전거를 골라 주려 하였다. 아이와 나는 씨름을 계속하였다. 아이는 자기가 사고 싶은 자전거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나는 아이를 설득하여 합리적인 가격대의 자전거를 고르도록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였다. 둘 다 그 씨름에 지쳤을 때쯤 아이는 내게로 와서 아빠! 제가 맘을 바꿨었요! 아빠가 원하는 것으로 그 자전거를 살께요! 했습니다. 그때 나는 무척 기뻤다. 나는 세상에 있는 자전거란 자전거는 다 사 주고 싶었다! 그때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 보면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자녀로서 내 주장이나 생각과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했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 내 마음만큼 기뻐하시지 않으실까?】 다락방의 글을 읽으면서 가만히 나와 아들의 관계를 하늘 아버지와 나의 관계로 대비해 보면서 내가 아들로서 어떻게 하였을 때 아버지의 맘에 기쁨이 차오를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제가 살면서 아들과 딸과의 관계에서 아들이 나에게 이렇게 하고 딸이 나에게 저렇게 행동하였을 때 즐겁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였는데 저는 그때마다 제가 하늘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아들과 딸이 나를 섭섭하게 하였을 때 혹은 기쁘게 하였을 때 내가 만일 하늘 아버지에게 내 아들과 같이 행동하고 딸과 같이 말하여 섭섭하게 한다면 혹은 기쁘게 한다면 하늘 아버지도 분명히 그렇게 섭섭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실 것이고 즐겁다고 느끼실 것이다고 존재의 유비를 해보았습니다. 자식들이 저와 함께 살거나 서로 떨어져 살았을 때 자식들이 저에게 어떻게 하는지 예민한 촉각을 세워서 느끼게 됩니다. 자식들과 함께 살았을 때는 자식들이 밖에 나가거나 집에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아빠를 찾아와 얼굴을 보이면서 “아빠 저 왔어요!” 하는지 아니면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서 왔다는 말도 안하는지! 아빠 저 왔어요! 할 때는 무척 기쁘지만 말도 안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면 이런 호로자식이 있나 하고 무척 화가 납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있는 기쁨과 노함을 느끼면서 내가 하늘 아버지 앞에서 하늘 아버지! 이름도 한번도 부르지 않고 한마디도 대화를 하지 않고 그렇게 무심코 산다면 그런 나를 보고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런 호로자식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다고 존재의 유비를 해 봅니다. 자식이 조금 커서 언젠가 아들이 자기가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화장품 로숀과 스킨을 사가지고 왔을 때 그 향수를 맡으면서 제 안에 있는 저울추에다가 제 행복의 무게를 조용히 재어 봤습니다. “저 새끼가 땀흘려 시간당 돈을 벌어서 지도 사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즈그 애비를 생각해서 상당히 비싼 화장품을 사가지고 왔구나!” 하면서 기분이 상당히 쏠쏠했습니다. 언젠가는 향수를 사가지고 와서는 아빠 향수는 이렇게 찍어 바르는 거예요! 하면서 손목에 살짝 뿌려서 양 손목을 찍고 다음에 머리에 손목을 톡톡 치는 방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향수 하나로 참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감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아들이 하나하나 한 것을 하늘 아버지의 심정에 대입해서 생각해 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땀흘려 노력하여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바쳤을 때 신철이가 내게 향수와 화장품을 선물했을 때 내 기분이 쏠쏠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도 기분이 그렇게 쏠쏠 하실까? 제가 기장총회 간사와 부장으로 8년 일하면서 섬기는 교회가 따로 없었으니 그저 의무적으로 교회 가서 예배드렸지만 목사인데도 기도하는 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근무지가 있던 종로5가에서 술을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와서 자려하는데 옆에 오디오가 있어서 무심코 단추를 눌렀는데 거기에서 한 노래가 들려왔는데 가사가 이러하였습니다.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Am Abend und am Morgen 사랑해선 안 될게 너무 많아 /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같아 / 그중에서 가장 슬픈 건 /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 이 노래는 이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한 부분의 가사가 제 영혼을 때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건 /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 이 노래 가사가 자려고 누운 나를 벌떡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꼭 하늘 아버지가 저를 향해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는 이놈아! 주의 종이라고 하는 목사이면서 내 이름도 부르지도 않고 도대체 네 놈의 정체는 뭐냐! 꾸중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꾸중하면서 애절하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 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거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얼마 되지 않아 저는 기장총회 부장직을 내던지고 사임하여 목회를 하기 위하여 준비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 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거 큰 일 났구나! 위기의식을 느낀 것입니다.
■ 제가 서울 한빛교회에서 부목사를 했습니다. 언젠가 김옥희 권사님이란 분이 자신의 아들이 아들을 낳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저도 역시 담임목사님과 함께 따라 갔습니다. 김옥희 권사님의 어머니는 이순이 권사님이시고 아들은 송창동 집사님인데 한빛교회에서 4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 송창동 집사네 집으로 심방가는 도중에 김 권사님은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우리 창동이가요 난지 얼마 안되었는데요 저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게 아니겠어요! 저는 창동이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너를 키우고 보살피고 그러지만 오늘 이 에미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것 그 하나로만도 너는 내게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다했다고요!” 저는 김옥희 권사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김옥희 권사님의 맘속에 하늘 아버지의 맘이 들어있구나! 아마도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김옥희 권사님의 맘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쁜 짓 하나만으로로 하나님의 가슴 속에 다할 수 없는 뿌듯함을 안겨드릴 수 있는 것을요!
■ 저는 교단총무로 일하였을 때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나 위로하고 제98회 총회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위로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가족들과 총회총대들은 그 예배 안에서 서로 울었고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고 감싸 주었습니다. 주 성령님 주시는 한없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세월호 이후에 자식을 보는 제 맘이 달라졌습니다. 그래 말썽을 부린다 하더라도 좋다! 뭐 특별하게 잘난 것이 없어도 좋다! 공부 같은 거 못해도 좋다! 그냥 살아만 있어다오! 그냥 여상하게 엄마! 아빠! 라고만 불러만 주어도 좋다! 그런 맘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자식들을 대하면서 애비로서 뭔가를 느끼면서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느껴 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 아비들이 느끼는 그 심정과 하늘 아버지의 그 심정이 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아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하늘 아버지의 맘을 잘 아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장 9절에서 11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신다함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늘 아버지는 구하지 않는 자에게 주시지 않는 아버지이십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챙겨주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하늘 아버지의 맘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같으셔서 우리 자녀들에게 무조건 잘해주시고 싶으신 것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제가 수원 한신아파트에 살았을 때 저는 서울 종로 5가에 총회사무처가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아내로부터 매일 만원을 용돈으로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전철비 왕복을 하고 식사를 하고 나면 4-5천원이 남았습니다. 퇴근을 하여 다시 수원에 오면 반드시 인계동에 있는 장난감 백화점에 들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줄 장난감을 골라 그걸 아이에게 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어졌습니다. 언젠가 이사가려 하는데 아이에게 사준 장난감만 세 가마니가 나왔습니다. 당시 아이에게 장난감을 줄 때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어느 날부터는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꽤 비싼 돈을 주고 대한항공 항공기 모형을 사가지고 가서는 보여주고 뒤로 감추어 놓고 두 손을 모아 주세요! 하면 주겠다고 했더니 주세요!는 하지 않고 등 뒤로 가서 항공기를 잡아채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준다 두 손을 모아서 공손히 주세요 해야 준다! 했더니 아내는 “뭐 그렇게 치사하게 주냐? 그냥 주지!” 했습니다. 저는 아니었습니다. 아이에게 공손히 요청하는 것을 가르치고는 그 담에 줄 요량이었습니다. 이미 줄려고 사가지고 왔으니 주되 아이에게 주세요!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고 주세요!하는 모습 속에서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이는 항공기를 가지려는 욕심이 있어서 결국 제가 제시했던 두 손을 가지런히 하여 주세요! 했고 저는 그 항공기를 아이의 손에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두 가지로 기뻤습니다. 아이가 공손히 주세요! 하는 것을 배워서 기뻤고 아이에게 이미 마련해 있는 것을 주어서 기뻤습니다. 근데 그냥 주었을 때보다도 그런 방식으로 주니까 제 기쁨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자녀된 사람들로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달라고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주시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의 예법을 가르치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미리 준비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주시다가도 우유를 먹다가도 딱딱한 것을 먹게 되듯이 어느 시점이 되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갖 선한 것을 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의 초기 단계에는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바라보게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손 안에 있는 선물에만 주목해서는 안됩니다. 그 선물이 담겨 있는 손을 쭉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주시려 하는 하나님의 가슴에 도달하고 그 가슴 속에 있는 자녀를 향한 그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날 위해 주시는 그 마음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주목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자녀들이 조금만 마음을 써주어도 엄청 감격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자녀가 자전거 사달라고 할 때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할 때 세상의 모든 자전거를 다 사주고 싶은 맘이 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저 한번 방긋하고 웃었을 뿐인데 평생 해야할 효도를 다 했다고 여기시는 분이 우리 하늘 어버이이십니다. 우리가 떡을 달라할 때 그 떡을 먹으면서 엉칠까봐 식혜를 함께 주시면서 천천히 먹거라고 일러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생선을 주시면서 노릇노릇 구워서 비린내가 날까봐 레몬을 살짝 뿌려서 자식에게 주시는 분이 우리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오색가지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기도를 가르쳐 주시어 자녀된 도리를 알려주시고 더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 우리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심정이 있을 텐데 그것을 느낄 때마다 여러분 자녀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조용히 대비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일 처음에 한 악어가 강에서 물살을 헤치고 나갑니다. 그런데 그 악어가 헤엄쳐 가는 쪽으로 한 사슴이 물살을 헤치고 나아갑니다. 저 사슴이 미쳤나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악어는 그 사슴의 목을 물고 죽입니다. 영상을 찍은 사람이 보니까 그 악어가 제일 처음 물살을 헤치고 가는 방향은 물속에 있는 아주 어린 사슴을 향해 갔는데 중간에 어미 사슴이 끼어들자 어린 사슴을 잡아먹지 아니하고 어미 사슴을 잡아 먹은 것입니다. 어미가 잡혀 먹은 까닭에 어린 사슴은 무사히 강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 사슴이 어미 사슴인지 애비 사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어린 사슴이 자식인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그 사슴은 악어야 우리 새끼 잡아먹지 말고 그 대신에 날 잡아먹어라! 하고 전심전력으로 새끼 뒤로 악어 앞으로 간 것입니다. 그걸 보면서 세상에 짐승이 자기 새끼를 살리려고 자신의 생명을 대신 주었구나! 전 그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우리 죄인들을 살리려고 본체가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면서 주신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믿는 하늘 아버지는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우리를 좋게 해 주시는 분만이 아닌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모든 것을 다 주신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우리 죄인들에게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사슴이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자신이 악어의 먹이가 되듯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아픔을 감수하신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하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그 마음을 아시면서 믿음생활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참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어버이이신 주님의 그 마음을 그려보면서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면서 그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언제나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지언정 슬프게 해 드리거나 고독하게 해 드리거나 노하게 해드리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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