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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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8일 주현절 넷째주일 / 시편 90편 1~12절 /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 작천교회
2025-12-28 14:32:08
배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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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8일(주일) 1부예배 오전 7시 30분 / 2부예배 오전 11시  
주현절 넷째주일

성경본문 : 시편 90편 1~12절   
제    목 :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오늘 대림절 셋째 주일, 여신도주일에 정성과 사랑으로 예배드리시는 모든 성도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시온찬양대 위에, 연로하시거나 병상에 있으신 분들과 유튜브로 예배드리시는 분들 위에, 특별히 올해로 백수를 맞이하시는 조영순 권사님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90편 10절 말씀에 주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여기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우리의 연수란 다윗 시대와 그 직전에 살았던 이들의 평균수명, 한계수명을 말하는 듯합니다. 다윗이 달았던 때가 약 3천년 전이었는데 이스라엘의 평균수명이 7-80세였다고 하면 무척 장수하였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의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40을 넘지 못했다고 하고 조선시대에 최고로 영양을 섭취하고 최고의 의료혜택을 받았던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였습니다. 영조가 가장 오래 살았는데 83세를 살았습니다. 1940년대에서 1950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계수명은 39.5세였습니다. 그때는 일제하를 거치면서 초근목피 시절이었기 때문에 영양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고 일제의 징병 등으로 일찍 죽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024년 1월 기준 우리나라 남자의 기대수명은 86.3세, 여성의 기대수명은 90.7세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1970년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현재는 세계 모든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세계 2위가 일본으로 남자 81.5세, 여자 84.3세이고 2위가 스위스로 남자 81.8세, 여자 85.1세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최고 장수하는 국가인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약간의 차이가 나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나고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조금 나지만 거의 모든 인간의 연수는 그냥 보통으로 살면 칠십을 살고 잘 살면 팔십 살고 더 잘 살면 구십까지도 사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수명은 창세기 무두셀라에서 보듯이 길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명이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6장에서 보면 인간의 죄악상이 극심해져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한탄하기 시작한 때와 궤를 같이 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수명이 짧아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이 동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떠남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한국방송공사 KBS가 인간의 수명을 다루는 다큐멘타리를 제작하였습니다. 【生老病死의 秘密】이라는 주제로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과학적인 근거를 내세우면서 인간의 한계수명이 120세이고 인간의 평균수명은 70세에서 80세에 불과하다고 보도하였는데 이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정확히 맞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인류의 최장수자는 1997년에 122세로 소천한 잔 칼망이라는 할머니입니다. 87세때 펜싱 수업을 받았고 100세 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이 노인의 장수는 아직 의학계에서도 미스테리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가장 장수하고 계신 분은 조영순 명예권사님이십니다. 생년월일이 1926년 1월 3일이시니까 만으로 98세이시고 우리나이로는 99세이시니까 올해가 백수이신 것입니다. 지금도 심방을 가면 우리 조영순 명예권사님 거실로 나오셔서 저를 맞이해 주십니다. 말씀하시는 것이나 생각하시는 것이 너무도 뚜렷하고 명료하십니다. 우리 김형기집사님과 탁미례집사님이 지극정성으로 잘 돌보고 있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영순 명예권사님을 사랑하셔서 장수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100세에 이르도록 살게 해 주신 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박수를 칠 때 군자리까지 들리도록 크게 한 번 쳐 드립시다.     

■ 오늘 성경 시편은 계속하여 말씀합니다. 10절입니다.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이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고작 칠-팔십년을 살면서 그 수명을 자랑하는 것은 그 옆 사람이 듣기에는 “수고와 슬픔 뿐이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탄생한 역사가 지구과학자에 따르면 40억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이 최대한 잡아서 80년이라고 할 때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이란 기실 5천만 분의 일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90편 3절에 보십시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인생이란 티끌과 같이 돌아가라고 하시면 그 즉시 돌아가는 것이고 천년을 산대도 그것은 주님의 목전에서는 어제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인생을 자랑한다면 얼마나 자랑하겠습니까? 불교에서는 인생을 찰나라고 합니다. 찰나란 불교의 시간개념에 의하면 1찰나란 75분의 1초로서 0.013초입니다. 불교는 인생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1 찰나를 사는 것이니 인생무상 제행무상이라고 하면서 그 찰나의 인생을 살면서 바르게 살라고 설법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희랍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이란 유명한 책을 쓴 니코스 카잔차스키라는 작가는 인생이란 “움(womb)”과 “툼(tomb)” 사이의 잠시의 반짝거림이라 하였습니다. “움(womb)”이란 여자의 자궁을 말하고 “툼(tomb)”이란 무덤을 말하는데 인간의 생명이란 잠깐 반짝이다 빛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하였습니다. 성냥불을 키면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몇 초 안갑니다. 그것을 인생이라고 본 것입니다. 얼마나 짧고 허무합니까? 그래서 성경 전도서는 인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장 2절)   

■ 또 오늘 본문에서 뭐라 하였습니까?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가 그러니까 한 칠팔십년 사니까 그 년수는 천천히 지나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뭐가 신속히 날아갑니까? 화살이 날아갑니다. 보통 양궁 선수가 화살을 쏘면 시위를 떠나 목표물을 맞추기까지 1~2초도 안되어 과녁에 도달합니다. 시편은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찬송가도 “세월이 살 같이 빠르게 지난다”고 하였습니다. 신년목회세미나에서 목회자들이 만나면 서로 나이 얘기를 건넵니다. 한 목회자가 “난 요즘 한 해 한 해가 몸이 예전같지 않다” 그러면 한 친구가 받아서 “넌 그러냐 나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받습니다. “넌 좋겠다 난 오전 오후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하는데 단연코 1등인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좋겠다! 난 분분초초가 다르다!” 가수 임주리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인생이 하는 사랑을 마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과 같이 속절없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칠량면 영동리 부락에서 구슬치기를 했습니다. 구슬치기를 하면서 형은 구슬을 많이 땄습니다. 형이 하는 방법을 지켜 보았더니 구슬을 굴려 놓고 들어갈 것 같으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구슬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습(習)!”이라고 하였습니다. 옆에 있는 형 친구들이 형한테 왜 한번만 하지 또 하느냐고 하면 형이 그럽니다. 내가 “습(習)!”이라고 했잖냐? 습이란 연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 친구들이 또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니 구슬을 굴리기 전에 습!해야지 왜 구슬을 굴려놓고 안들어갈 것 같으면 습하냐”고 따졌는데 형이 눈을 크게 뜨면 형 친구들은 형에게 힘으로 밀리니까 그 담에는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연습으로 한 번 살아보고 그 다음에는 진짜로 살아보고 하면 좋은데 이 땅에서 인생은 딱 한번 만이고 연습으로서 인생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나딘 스테어라는 시인이 노년에 시 하나를 썼습니다. 제목이 “인생을 다시 산다면”입니다.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 이번 인생 보다 더욱 우둔해지리라 / 가능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 산에도 더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 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 데이지 꽃도 많이 꺽으리라” 한 노 시인이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한 번 더 인생이 주어진다면 좀 더 새롭게 살겠다는 꿈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딘 스테어의 소원과는 달리 인생은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딱 한 번입니다. 이 땅에서 두 번 인생이 주어져서 한번은 그저 일만하고 다른 한번은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할 수 없습니다.   
 
■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 같은 인생, 아침에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 베인 것과 같은 풀과 같은 인생, 화살과 같이 신속하게 날아가는 인생, 티끌과 같이 돌아가라 하시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기껏 살아보았자 팔십도 안 되는 인생 그것도 잠든 것과 병든 것과 걱정과 근심하는 제외하면 단 사십도 못사는 인생, 바로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는 우리 인생의 날을 계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 한번 우리 인생을 한번 계수해 봅시다. 우리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세분하여 봄의 아침, 봄의 정오, 그리고 봄의 저녁 그리고 그렇게 하여 겨울의 아침 겨울의 정오 그리고 겨울의 저녁이라고 단계적으로 나누어 놓고 인생을 팔십을 산다고 하여 여기에 한번 대입하여 봅시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6살 때까지는 봄의 아침(春朝)입니다. 7살부터 12살까지 초등학교 다 다닐 때까지는 봄의 정오이고 13살부터 20살까지는 즉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봄의 저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1살부터 즉 대학을 다니거나 직장을 갖는 때 27살까지는 여름의 아침이며 보통 결혼하는 28살부터 34살까지는 여름의 정오이고 34살부터 40세까지는 여름의 저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1세부터 47세까지는 인생의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은 가을의 아침입니다. 48 세부터 54세까지는 가을의 한낮입니다. 55세부터 환갑을 당도한 61세까지는 가을의 저녁입니다. 62세부터 68세 까지는 겨울의 아침이 시작되고 69세부터 74세 까지는 겨울의 정오이며 75세부터 80세까지는 겨울의 저녁(冬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평택교회에 설교하러 갔을 때 거기 92세가 넘은 원로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교회에서 식사를 차렸는데 그 목사님 앞에서 콜라가 한 병 놓여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은 콜라를 먹으면 빨리 죽는다 하는디 난 어려서부터 콜라에 밥 말아 먹고 살아왔어도 한번도 위염이나 위궤양도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지론을 말씀하셨는데 칠십을 인생의 꽃봉오리가 맺혀지는 때요, 팔십을 인생의 꽃이 활짝 피는 때며 인생 구십은 꽃은 졌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열매가 맺혀지는 때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다. 저 역시 인생을 본격적으로 살게 되는 때가 아직 오직 않은 것만 같은데 벌서 올해 9월이면 자원은퇴가 가능한 65세입니다. 분류법에 따르면 겨울의 아침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주 하나님을 위해 제대로 뭐 해 놓은 것이 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이 벌써 65년입니다. 

■ 우리는 인생의 날을 좀저 지혜롭게 생각하고 인생의 날을 보다 지혜롭게 계수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예한 여러분들도 대부분이 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하였을 때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의 연령층이 70대가 넘은 분들이 3분의 2가 넘으니까. 인생의 겨울의 아침이거나 정오이거나 저녁인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들은 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저와 여러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이 신속히 날아가는 인생을 계수하면서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의 시간과 세월을 주신 창조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절에 보면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너는 인생의 겨울의 저녁이 이르기 전 너를 만드신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날들이 다해 가면 그런 때가 옵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고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좋은 음악을 들어도 소음과 같이 들리고 즐거운 곳에 여행을 하여도 어떤 재미도 없이 다 귀찮고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싫은 때가 옵니다. 또한 내 삶은 내가 모르는 어는 순간 내가 원치 않은 알츠하이머의 상태 치매의 상태로 가게 됩니다. 그때는 내가 아무리 하나님께 잘해 드리고 싶고 내 영혼을 위해 뭔가를 잘 준비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때가 옵니다. 이 세상 이별한 후에 내가 아무리 하나님께 잘해 드리려 해도 때는 늦으리! 내가 알츠하이머로 갈 때는 내 의지로는 하나님께 잘해 드릴 수 있는 여지는 없어지게 됩니다. 이런 때는 창조주를 위해서 일을 하고 창조주를 위해 영광을 돌리려고 해도 이제는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젊을 때 내 의지가 분명한 때 창조주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내 인생을 이 땅에 존재케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깊게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존재케 하신 뜻이 있습니다. 나를 나로 존재케 하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뜻을 깨달아 우리 인생의 남은 때를 주를 위해 써야 하겠습니다. 부흥사들은 하나님의 법칙에도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물질을 바치면 경제의 축복이 오고, 몸을 바치면 건강의 축복으로 오고 시간을 바치면 영원의 축복으로 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주를 위해 시간을 바치면 이는 영원을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수백억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간 다음에도 수백억년 수천억년이 흐를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생 한 칠 팔십년을 살면서 여러분의 시간을 시간과 영원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투자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에 쏟아 붓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을 영원으로 잇대어 지도록 하시는 일이니 이 세상에 그만큼 거대한 투자승수를 누리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인생을 영원 속에 가져다 놓는 일은 여러분의 그 짧은 인생 7-80 년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 어떤 시간관리 전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이 전문가가 경영학과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학생들이 잊지 못할) 어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했습니다. 학생들 앞에 선 이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자, 퀴즈를 하나 해 봅시다." 그는 테이블 밑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꺼내 가지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먹만한 돌을 꺼내 항아리 속에 하나씩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항아리에 돌이 가득 차자 그가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예" 그러자 그는 "정말?" 하고 되묻더니, 다시 테이블 밑에서 조그만 자갈을 한웅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항아리에 집어넣고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항아리를 흔들었습니다. 주먹만한 돌 사이에 조그만 자갈이 가득 차자,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눈이 동그래진 학생들은 "글쎄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좋습니다" 하더니, 다시 테이블 밑에서 모래주머니를 꺼냈습니다. 모래를 항아리에 넣어, 주먹만한 돌과 자갈사이의 빈틈을 가득 채운 후에 다시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아니요." 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하면서 물을 한 주전자 꺼내서 항아리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전체 학급에 물었습니다. "이 실험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한 학생이 즉각 손을 들더니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매우 바빠서 스케줄이 가득 찼더라도, 정말 노력하면, 새로운 일을 그 사이에 추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시간관리 전문가는 즉시 부인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것이 요점이 아닙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만약 당신이 항아리에 큰 돌을 먼저 넣지 않는다면, 영원히 큰 돌을 넣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서, 내 직업에서, 큰 돌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분의 큰 돌이 무엇이 되었든, 항아리에 가장 먼저 넣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전문가의 멘트는 여기서 끝납니다. 여러분이 지금 만일 1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365 일 곱하기 10년이므로 앞으로 3650일 정도 살 수 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87,600시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남은 시간 87,600시간이라는 보자기 위에 여러분은 가장 큰 것, 가장 비중있는 그 무엇을 담으시겠습니까? 열심히 돈을 벌어 한번 그 시간의 보자기를 채워보시겠습니까? 열심히 명예를 추구하여 오늘 수 있는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시간의 보자기를 채우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고 컴퓨터 게임도 하고 경마도 하고 축구도 보고 여행도 가고 생을 즐기는 일로 여러분의 시간의 보자기를 채우시겠습니까? 아니면 훔친 사과가 더 맛이 있으니까 이 세상의 정욕을 채우고 안목의 정욕도 채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육체의 소욕을 만족시키는 일을 하는 일로 바빠 여러분의 시간의 보자기를 채우시겠습니까? 그런 것들로 인생을 채우기에는 너무도 인생은 짧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는 내 인생의 봄과 여름동안 내 인생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서 많은 날들을 보내왔지만 이제 인생의 가을의 문턱에 서고 겨울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 이제 인생의 남은 때를 좀 더 의미있고 좀 더 가치있고 좀 더 영원한 그 무엇을 위해 좀 큰 것을 여러분의 인생의 항아리에 넣지 않으시겠습니까? 인생의 겨울의 저녁이 이르면 내 인생의 남은 때를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저는 이 땅에서의 제 생명 이후, 이 세상에서의 제 생명 이후, 이곳에서의 제 존재의 이후를 생각합니다. ”제가 죽은 다음에 다시금 이 땅에 돌아와서 제가 하였던 잘못들을 수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제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하나님 심판대 앞에 줄을 서고 있는 동안에 이 땅에서 살았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갈 터인데 그때가서 너무도 후회되는 일들이 많이 생각날 것이다. 하이쿠!~ 내가 저기 저곳 지구라는 땅 작천에서 살 때 좀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좀더 헌신하고 좀더 사랑하고 좀더 봉헌하고 좀더 희생하고 좀더 헌신하고 좀더 본을 보이고 살 껄!하는 후회막급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는 늦었다! 저기 저 땅에서 후회하고 저기 저 땅에서 회개하고 저기 저 땅에서 고쳤어야 할 일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는 생각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2절을 다시금 들어봅시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 시간 조용히 눈을 감고 여러분에게 있어서 인생의 남은 때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계수해 보시고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통계청에서 내놓은 추산대로 내가 남자라면 내가 넉넉잡고 87세를 산다고 하면 내가 몇 년 남았는가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자라면 넉넉잡고 내가 91세를 산다고 하고 이제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가 남았는지 계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남아 있는 햇수가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설 날 하나님의 지엄하신 심판의 날에 내가 대답할 말을 준비할 수 있는 날입니다. 이제는 노년을 값있게 살 날을 준비하기 보다는 영원을 위해 준비해야 할 때가 바로 다가왔습니다. 제 아버지와 어머니는 올해로 아버지는 94세이시고 어머니는 87세이신데 예전에도 그러하셨지만 요즘은 특별히 가만히 살펴보면 노후를 준비하기 보다는 영원을 준비하는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값이 나가는 모든 서화와 골동품들을 모두 다 목사를 길러내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헌증하셨습니다. 언젠가 짐을 쌀 때 하나 달라고 했더니 매정하게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학교에 다 바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현금들도 대부분 신학교에 헌증하셨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주택연금 형태로 그 대학원에 장학금으로 바치시고 계십니다. 분명히 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제 언제 갈는지 모르니, 아니 바로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혹 치매나 알츠하이머로 가서 그때는 하나님 앞에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 없을 터이니 이 세상 이별하기 전에, 치매로 가기 전에 그 일을 해놓자고 저에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시는데 내일도 그 일 때문에 아버지 집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들은 물론 아버지가 나온 학교에 대한 사랑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가서 할 말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 아울러 영원을 준비하는 지혜롭게 행하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제 머리를 깍으러 읍내 석화미용실에 갔습니다. 거기는 두 자매가 일하는데 언니인 그분이 방금 텔레비전에서 본 얘기를 했습니다. 조근식이라는 사람이 라오스에 가서 학교를 20개를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원래 그분이 라오스에 놀러 갔는데 한 어린아이가 무릎이 다쳐서 마침 자기가 가지고 간 상비약이 있어서 발라주어 고쳐 주었는데 그것이 끈이 되어서 그곳 어려운 사정을 보고 듣고 돕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은 어려서 학교를 다닐 때 소아마비여서 주변의 형들과 동생들이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것에 대하여 은혜를 갚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라오스에 와서 학교를 세워서 학교다닐 때 받았던 은혜를 학교를 세움으로써 갚아가고 있다 하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그 사람 집은 참으로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조근식이라는 분은 통장에 돈을 쌓아두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치과의사로서 돈이 생기기 하면 돈을 싸들고 가서 라오스의 민중들과 학생들을 섬기는 즐거움을 지니고 있다 하였습니다. 머리를 깍으면서 그 얘기를 들으면서 조근식이라는 사람 삶이 참으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조만간에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조근식 씨와 같이 어렵게 사는 나라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저기 저 땅에서 했던 일들을 잔잔하게 주님 앞에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 얼마 안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여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 인생을 만드시고 생명과 시간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이 땅에서 일생을 허락하여 주셨으니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쫓아 가치있게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저희 인생 창조자를 기억하면서 살게 하시고 일 분 일초라도 경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값지게 사용하며 주신 날들을 주 하나님을 위하여도 값지게 사용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그저 노후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준비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서게 될 지엄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서 물어볼 때 저희 인생이 주님 앞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왔던 삶을 잔잔하게 말할 수 있도록 이 땅의 삶을 잘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날들과 시간들이 예수 그리스도 은총 아래 있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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