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7일(주일) 1부예배 : 오전 7시 30분 / 2부예배 : 오전 11시
작천교회 사순절 다섯째주일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4장 8절
제 목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십자가 속죄의 은총과 사랑의 은혜가 오늘 사순절 다섯 째 주일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시온찬양대원들과 지휘와 반주로 수고하시는 분들 위에 예배를 위해 차량을 운행해 주시는 분들 위에와 방송위원으로 안내위원으로 헌금위원으로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교사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위에 지금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지만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유튜브영상으로 예배드리시는 모든 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은 베드로전서 4장 8절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시고 가장 가까이 따르던 제자였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였으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셔서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일 처음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정확하게 스승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마침내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뜻을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는 한참 뒤에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리셔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심을 믿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속죄이고 화평이고 구원이기 전에 우리 죄인들을 향한 엄청나게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임을 느끼고 깨닫고 알았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엄청나게 뜨거워 그 사랑이 인류의 모든 죄를 덮어주시고도 남음이 있음을 알았고 그 사랑이 너무도 뜨겁기에 그 사랑으로 우리의 피와 같은 붉은 죄악을 덮어주시는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언제 믿게 되었느냐 하면 물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서도 알았고 예수님과 함께 숙식을 하면서도 알았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었을 때 알았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도 예수님이 나에게 단 한 번도 야단치시지 아니하고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양을 치라! 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 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허물과 죄를 다 용서해 주심을 깨닫게 되었고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오늘 베드로전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무엇보다도 서로 열심히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였을 때 이는 사도 바울의 생각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였기에 그 체험으로 말씀한 것이며 그것보다도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통하여서도 알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배후에는 엄청나게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희생하시면서 까지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나타났고 그 십자가의 사랑은 죄인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보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깨우침으로서 십자가의 진리를 깨우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죄를 덮어준다는 이 수직적인 진리를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인 차원에 까지 적용시킨 것이고 확장시킨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으로 형제나 이웃을 혹은 원수를 사랑할 때 내가 지은 죄도 용서받고 내가 범한 허물도 덮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저 연인들끼리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지은 죄악도 하나님께서 덮어주시고 가리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시 수직적인 차원으로 다시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하여 주심도 있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셨을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때 바리새인들이 이를 비난하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그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사랑하겠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많이 탕감받은 자니이다” 대답하자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다시금 시몬에게 그 여자를 돌아보시면서 물으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도 아니하였지만 저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47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한 여인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때 죄사함의 권세가 있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모든 죄를 다 탕감하여 주셨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죄는 그 죄를 고백해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예수님이시라도 그렇지! 그 여자가 자신의 죄를 입술로 시인하거나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그 죄를 사하여 주시면 되는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내 생각에 예수님을 끼어 맞추려는 오만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틀리고 예수님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므로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진리이고 저렇게 말씀하시면 저렇게 말씀하신 것이 진리입니다. 제가 신학교 때 박봉랑 박사님께서 의인론을 가르치셨습니다. 의인론이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으로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는다 함은 바로 구원을 받는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강의를 듣는 동안에 질문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 하시면서 그들을 임금의 오른편에 서게 하고 구원받는 자리에 앉게 하셨는데 그들은 의인론의 범위 즉 하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박봉랑 박사님께서는 좋은 질문을 했다고 하시면서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시는 것도 맞고 예수님의 말씀도 맞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랑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의롭게 여기셔서 임금 오른편에 앉게 하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깨우침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인론의 카테고리 안에 하나님의 무한히 자유로우신 행위를 집어 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리이시고 예수님이 진리이시니까 그분이 이렇게 말씀해도 진리인 것이고 저렇게 말씀해도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론과 마태복음 25장 사이에 상호충돌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는 하등의 충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편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속죄하시는 방편은 하나님의 자유에 속한 일이요 예수님의 권능에 속한 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꼭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천국에 살게 하시는 사람들은 우리가 의인론에서 생각하듯 무슨 딱 한 가지 방편만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영적인 공간으로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만 골라서 살게 하십니다. 넌 됐어! 너는 괜찮아! 너는 내 마음에 팍 들었어! 넌 날 참 기쁘게 하는구나!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일루와! 나와 함께 살자! 하고 구원의 은총으로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꼭 하나님께서 믿음만 가지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아니기에 거의 모두다 겨자씨 보다 훨씬 적은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런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시겠습니까? 그런 믿음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어 구원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인생들이 사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그 인간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일정한 틀에 넣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의인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자신의 죄를 다 고하고 예수님을 믿는다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어떤 신학이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더 많이 용서함을 받는다 하셨으면 그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아무리 여인이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죄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내고 발에 입맞추고 머리에 값비싼 감람유를 부은 것을 보시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신 예수님께서 많이 용서했다 다 용서했다 하시면 그 여자는 많이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이고 다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오기 전에 이미 그 여인의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에게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붇고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아낼 때 예수님은 그 사랑을 받으시고 그 여인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시고 그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로 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의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예수님을 대접해 드리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면 우리 예수님은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 실존을 파악하시고 우리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다 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그저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그저 울고만 있어도 우리 예수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이미 나아가는 순간 우리의 모든 것을 단 한 순간에 알고 계시기에 우리의 허물과 잘못은 다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순간은 예수님은 우리 죄악을 소멸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아! 라고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십니다. 제가 순복음 금식기도원에 갔을 때 일입니다.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서 가기 전에 기도하기 위해 갔습니다. 거기에는 인생의 온갖 환난과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한 이들,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들, 가정불화로 고통받은 이들이 거기에 다 몰려왔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시간시간 제단에 올려 보내는 헌금봉투를 강사 목사님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제 옆에 있는 한 사람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아시지요! 아시지요! 아시지요! 주님! 아시지요! 아시지요! 아시지요! 주님! 그 복음성가만 부르면서 눈물을 철철 흘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자기가 지었던 죄를 차마 입으로 다 토해 놓지 못하고 주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와 같이 붉은 죄악의 행위들을 다 알고 계시리라 믿기 때문에 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것이구나!는 짐작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런 확신이 왔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주 예수님께 아뢰는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겠구나! 그렇습니다. 주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주 예수님 앞에서 아시지요! 하면서 다 털어 놓을 때 그는 이미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을 때 그 무거운 짐은 세상의 무거운 짐이기도 하지만 죄 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예수님께 예수님 이것은 이렇고 저런 무거운 짐이구요 저것은 저렇고 저런 무거운 짐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예수님은 다 아시고 그 짐을 다 맡아주시고 다 내려놓게 해 주십니다.
■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였을 때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일까를 다시 한번 확실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에로스로서의 사랑이 아니고 에피투미아로서 자기애로서 사랑도 아니고 필리아로서 우정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으로 사랑할 때 예수님 사랑으로 형제와 자매를 열심히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보시고 우리 주님은 우리의 허다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이미 말씀을 통하여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면서 내가 예수님 내게 주신 사랑으로 예수님 말씀하신 그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살면 내가 지은 허물과 잘못도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용서받으려면 속죄제를 올려야 했습니다. 속죄제를 드리려면 양이나 소를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들은 이 속죄제를 악용하였습니다. 짓고 싶은 죄를 맘껏 짓고 그까짓꺼 소나 양을 드리면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부자들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지어도 우리 집에는 소나 양이 많은 것으로 큰 죄를 지으면 또 소나 한 마리 바치고 적은 죄를 지으면 또 양이나 한 마리 바치면 되지 하고 안심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사도들은 죄를 토해내어야 이실직고해야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작천교회는 예배 시간에 죄사함을 받는 방법으로 침묵과 함께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게 하고 용서의 선언을 합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말한 뜨겁게 열심히 사랑할 때 허물과 죄를 용서받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좀더 깊이 묵상해 보십시다. 구약성경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0장 12절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는 방법들 중에 하나는 내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랑하며 사는 일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과 어려운 이웃들을 예수님 사랑으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 옛날이나 지금에도 그런 제도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음서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중국의 송나라와 당나라에 있었던 제도인데 고려시대에 들여왔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특권신분층인 공신과 양반 등의 신분을 우대하고 유지하기 위해 후손을 관리로 뽑았던 제도입니다. 특별히 개국공신이나 나라에 큰 공이 있던 자의 자식들은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고 관직에 등용하였습니다. 음서제도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나라에 애국하여 무슨 공이 있거나 큰 훈장을 받으면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을 때 그 사형을 면제하여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훈장하고 바꾸는 거지요! 제 아버지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보국훈장 삼일장입니다. 나라에서 주는 훈장은 대통령이 주는 훈장보다도 훨씬 격이 높은 훈장입니다. 언젠가 아버지는 보국훈장을 만지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훈장이 있으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더라도 사형은 면한다고 하더라!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나라에다가 무엇인가 공헌했으니 그 훈장을 받은 개인이 잘못 했더라도 어느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보국훈장을 받고 추후에 국가유공자도 되셔서 아버지의 직계 자녀들은 모두가 국가보훈병원에서 의료보험으로 나온 액수에 60%를 추가로 감면받게 됩니다. 언제인가 광주보훈병원에 갔더니 진료와 치료비가 무척 적게 나왔습니다. 그것 역시 아버지가 나라에다가 공적을 쌓으니 그 자식들까지 의료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사랑을 많이 하는 자가 더 많은 죄를 용서받는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두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고로 여기신 이 두 계명을 즐거이 지킨 이들은 주님께서 가슴에 깊이 새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되 최고가 되는 계명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새계명을 지킨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저들이 지은 허물과 잘못도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죄지은 이들을 큰 맘 먹고 용서해 주었다면 그 사람의 죄도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무엇입니까? 누군가 나에게 죄를 지은 것을 용서하여 주었다면 하나님께 내 죄를 사하여 주시라고 간청할 수 있다는 뜻이고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죄를 눈꼽만큼도 용서해 주지 않으면서 내가 하늘 아버지 앞에 지은 하해와 같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감히 기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여 그들의 허물을 덮어 줄 때 하나님께서 허물도 가리어 주시는 것입니다.
■ 삶의 그런 정책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해 아래 살면서 죄를 안 지을 수 없겠지만 최대한 죄를 덜 지으려고 힘써 노력을 하고 최대한 예수님의 사랑으로 더 뜨겁게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내 인생을 하나님의 사랑의 원주 안에 있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살면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과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살면 그것은 결코 어디로 없어지거나 공중분해 되거나 아침에 이슬과 같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가슴에 새겨지고 예수님의 심장에 남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도 남고 예수님 사랑도 남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형제와 자매를 사랑한 것도 남고 이웃과 형제가 내게 잘못한 것을 그 사랑으로 용서해 주는 것도 다 하나도 빠지지 아니하고 남게 됩니다. 내가 이 땅에서 가지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만 비록 이 땅이 유한하고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하여도 내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 것은 언제까지나 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함께 있을 것인데 그 중은 제일은 사랑이니라! 언제까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저 남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그 사랑이 점점 쌓이게 됩니다. 그저 쌓이게만 됩니까?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가슴 속에 깊게 깊게 새겨지게 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 것은 그 어떤 작은 사랑이었고 한번 사랑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가슴 속에 올올히 새겨져서 그것은 나중에 우리가 주님 앞으로 갔을 때 주님이 그것을 끄집어내셔서 그것으로 땅에서 지은 허물과 잘못을 다 탕감해 주시기도 하고 우리가 지은 치명적인 죄를 용서해 주시기도 하시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큰 칭찬을 하시기도 하시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은총의 하나님! 저희가 이 땅에 살 때 열심히 뜨겁게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십시다. 아울러 기도하실 때 예수님! 저희를 뜨겁게 사랑하여 주셔서 저희로 그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사랑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달라고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용서하며 덮어주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희로 하여금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흘리신 그 뜨거운 사랑으로 저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피흘리심 죽음이 아니었으면 저희의 죄악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저희를 뜨겁게 사랑하셨기에 저희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희의 평생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시고 저희로 예수님과 같이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이 시간 말씀에 따라서 기도합니다. 저희는 말씀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로 세상의 애정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열심히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시고 그로 인해 저희가 지은 머리털과 같은 많은 죄도 사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희의 가슴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뜨겁게 덥혀 주옵시고 저희의 영혼이 주님을 향해 불덩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랑이 되게 하시고 저희의 행동과 행위가 예수님의 사랑을 더하는 움직임이 되게 해 주시고 저희의 가슴이 십자가 사랑으로 적셔지게 해 주옵시며 저희의 피가 사랑으로 온 몸으로 돌게 해 주시고 저희의 피와 살이 예수님이 그러하시듯 아낌없이 나눠주게 해 주옵시며 저희의 생각이 항상 예수님의 인애와 자비로 가득 차게 해주옵시며 저희가 사는 삶의 목적이 주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되게 하시며 저희의 믿음과 소망이 사랑의 품 안에 있게 해 주옵시며 저희의 생명도 사랑이 되게 하시며 저희의 존재도 사랑이 되게 하시며 저희의 인생도 사랑의 인생이 되게 하시며 저희의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교회도 사랑의 모임이 되게 해 주시고 저희의 만남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임이 서로 사랑하는 모임이 되게 해 주옵시며 사랑 아니고는 저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저희가 사랑 안에서 자유하고 사랑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며 예수님 사랑 안에 저희가 있고 사랑의 예수님이 저희 안에 있게 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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