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주일) 오전 11시-1.2부합동예배
주일낮예배 / 부활절 여섯 째주일 / 교회교육주일, 어린이주일-청소년주일
한국기독교장로회 광주남노회 작천교회
성경본문 : 마가복음 10장 13~16절, 마태복음 18장 1~5절,
제 목 :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부활절 여섯째주일과 어린주일, 청소년주일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자 성전에 나아온 모든 성도들 위에, 요양원과 요양병원, 양로원, 자녀들의 집에서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작천의 믿음의 가족들 위에, 이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강유래권사님과 모든 병상에 계시는 모든 분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이고 청소년주일입니다. 막돼 먹은 아들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어느 아이의 아빠가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면서 어허! 시원하네! 하였습니다. 아들은 정말 시원한 냉수탕인줄 알고 풍덩 들어갔는데 너무 뜨거우니까 하는 말! <믿을 놈! 참 하나 없네!> 했습니다. 아버지가 야단을 치고 만두집에 들어가서 만두 다섯 개를 시켜 아빠가 3개를 먹었습니다. 아들이 2개를 먹었습니다. 아빠가 말하였습니다. <어때 배 부르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 놈 하는 말! <2개 먹은 놈이 배 부르면 3개 먹은 놈은 배 터져 죽겠다> 막말 하는 아들이 괘씸해서 마구 때리니까 아들 하는 말! <죽여라 죽여! 니 자식 죽지 내 자식 죽냐?> 어린이 셋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4살 짜리가 물었습니다. <형!형! 저 사람들 뭐하는거야?> 5살짜리가 형이 대답하였습니다. <저건 사랑하는 사람들이 키스하는거야!> 6살짜리 큰 형이 말하였습니다. <근데 어째 좀 서툴다!!>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을 지켜본 아이들이 서로 말합니다. 6살짜리가 말합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그러자 7살짜리가 말합니다. <생각하면 뭐해 다 지난 일인걸!!> 8살짜리가 말합니다. 나는 <요즘 학교 갔다 오면 저것들 보는 재미에 산다니까!!> 오늘날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폭력성과 성인성의 문화에 물들어 점점 어린이성을 상실하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 마가복음 10장 13절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마가복음 10장 13절은 “사람들이”란 말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 요단강 건너편에서 말씀하실 때 어린 자식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만져주심을 바란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만져주심을 바랐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져주시면 아이에게 축복이 되고 예수님께서 만져주시면 예수님이 능력의 손으로 아이 머리를 만져주면 아이가 지혜롭고 총명하게 될 것 같아 아이의 몸을 만져주면 아이가 건강하게 될 것 같아서 예수님이 만져주시면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물론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부모들이 모두가 다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데리고 나왔느냐? 예수님이 만져주심의 가치를 알았던 지혜로운 부모들이 아이들을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그 부모들은 참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이 엄청난 영적인 가치가 있음을 알았던 지혜로운 부모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세상가치는 잘 알지만 영적인 가치 특별히 예수님으로부터 안수받고 축복받는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 마가복음 10장 1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제자들이 꾸짖으신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꾸짖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용납하라는 말씀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자유롭게 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어린아이들과 예수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무척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무슨 말씀일까요? 성인들과 같이 복잡하게 자신들의 이득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이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부단히 이해타산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이들이 아닌 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게 받아드리는 이들이 아이들과 같이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하늘 아버지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 마가복음 10장 1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15절의 말씀을 통해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이 천국에 들어간다 하셨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얼마나 큽니까? 온 세상의 동산과 부동산 모든 재산을 다 가졌다고 해도 천국에 들어가는 하늘시민권과는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가지는 소유권이란 우리 목숨이 살아있을 때 대략 7-80년동안 가지다가 유효기간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비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어린아이와 같게 되면 들어간다 하셨으니 도대체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이 무척 ksl 엄청나게 중요할 것입니다. 어린아이성은 무엇일까요? 인간 속에는 대략 세 가지 인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인성(Adulthood)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부모성(Parenthood)입니다. 마지막 하나가 어린아이성(Childhood)입니다. 성인성이란 누구에게 물어보려 하지 않고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성인성은 누군가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독립하여 모든 것을 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없이도 우리 인간은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성인성의 일종입니다. 부모성이 무엇입니까? 부모성은 누군가를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고 돌보려는 인성입니다. 어린아이성은 그러면 무엇이냐? 어린아이성은 무엇엔가 의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대책없이 그저 의존하는 것이 아이성입니다. 엄마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아빠가 안아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이성입니다.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아야 하고 엄마가 없고 아빠가 없으면 울어버리는 것이 아이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뺑뺑이를 돌게 하셨습니다. 40년 동안 무엇을 훈련시켰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어린아이성”을 훈련시키고 가르친 것입니다. 광야에는 없는 게 너무도 많습니다. 물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무슨 도로가 있고 도로표지판이 있어 가야할 이정표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동서남북이 툭 터져 있어 성을 쌓아 외적을 막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 떨어뜨린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생활을 하면서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의존하기를 바랐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모든 것을 요청하듯이 하늘 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삶의 모든 경우에 자신에게 칭얼거리고 자신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가 되어 물을 달라고 하면 반석 위에 샘을 터뜨려 마실 물을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가 되어 먹을 것을 달라고 칭얼거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되시어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아이가 되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어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길잡이가 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아이가 되어 요청할 때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상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셨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에서 스스로 적응하고 살 수 있는 독립성을 키워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의존성을 더욱 키워준 것이고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이성을 키운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성을 키워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천국은 영적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함은 천국에 걸 맞는 인성은 하늘 아버지께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하는 자가 들어간다 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함도 같은 것입니다. 믿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너도 성인! 나도 성인!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어! 하나님 없이도 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은 no! “성인사절”인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하늘 아버지가 계신 곳 아닙니까? 그런데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성인과 같이 나 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은 그곳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의지하는 믿음인지 50%는 하늘에다가 의지하고 나머지 50%는 내 정보와 지식과 경험에 의지하는 것인지 우리의 믿음의 순수성이 천국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좌우하는 것입니다.
■ 마가복음 10장 16절을 보겠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갔을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덥석 품에 안고 안수하여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에게 동시에 세 가지를 해 주신 거지요! 안아주셨죠! 안수해 주셨죠! 축복해주셨죠! 한마디로 어린 자식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그 부모는 한마디로 화투패로 말하자면 삼팔광땡을 잡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 자식들을 안아주시고 내 자식을 안수해 주시고 내 자식을 축복해 주신다고 하면 그 이상 뭘 더 바랄 게 있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안수를 받고 축복을 받은 아이는 후에 자라서 나중에 교회나 사회에서 큰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 오늘 어린이주일에 우리가 들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성도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손들을 만져주심을 바라고 예수님께서 안아주시고 예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가치를 알고 자녀손들을 예수님께 데려 나오고 예수님의 안수와 축복을 받게 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단강 건너편에 자녀손들이 있는데 자녀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강 건너편에 자녀손들을 가진 많은 부모들 중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내 자녀손들을 안아주시고 예수님이 내 자녀손들을 안수해주시고 예수님이 내 자녀손들을 축복해주시기를 바란 이들은 무척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적 소수“ (Creative Minority)였습니다. 이들은 구세주 예수님이 안수해주시고 예수님이 안아주시고 예수님이 축복해주시는 그 소중한 값어치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깨인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자식에게 예수님의 안수와 축복을 받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으랴!! 이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자식에게 해 주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친 부모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치를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은 소수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적은 무리들 중에 하나였는데 예수님이 안아주시고 예수님이 안수하시고 예수님이 축복해 주시는 가치가 얼마나 따질 수 없고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무한대한 가치인지를 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 부랴부랴 자식들 세수시키고 옷 갈아 입혀 예수님 계신 곳으로 데리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이 눈을 부라리며 꾸짖거나 말거나 주변 사람들이 눈을 찡그리거나 말거나 자식들을 예수님께 데려가 예수님 품에 안겨 드리고 예수님의 안수를 받게 하고 축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해주었다는 기쁨에 넘쳤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평가할 때 꼭 에서를 닮습니다. 눈에 보이는 팥죽과 떡만을 가치로 여깁니다만 그러나 야곱은 장자권 속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가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에서에게 양도받았습니다. 에서는 눈에 보이는 가치를 우선하였지만 야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가치를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자녀손들에게 어떻게 잘해 주고 있습니까? 복합영양이 담긴 좋은 음식을 자녀에게 먹이는 일을 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만이 아니라 아이에게 피아노학원 논술학원 바둑학원 컴퓨터학원 미술학원 속셈학원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세대인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손들을 위하여 마가복음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부모들처럼 예수님께 자녀들을 데리고 와 예수님께 안기게 하고 예수님께 안수받게 하고 예수님께 축복을 받게 하는 지혜로운 부모와 조부모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한 장로님은 손주손녀들이 카톡영상을 통하여 성경을 한 구절을 외우면 용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손주손녀들은 할머니로부터 용돈을 받기 위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할머니 생각으로는 자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저들 영혼 속에 각인되니 기쁨이 쏠쏠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손들이 하나님의 집 성전을 중심으로 에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중심으로 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시고 소원만 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고 기도로만 그치지 마시고 자녀손들을 성전으로 이끌어 예배에 참예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특별히 아이로 하여금 교역자들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게 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인생이 되도록 요단강 건너편의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들은 어린아이와 같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실 때 참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무슨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데 예전에는 김희애라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만 보았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내 남자의 여자라는 드라마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김희애가 자기 친구인 배종옥의 남편과 불륜에 빠져 결국 빼앗아 현재 같이 동거하고 있습니다. 김희애는 친구의 남편을 빼앗으면서도 아주 당당합니다. 어찌 그런 캐릭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김희애가 나오는 또 다른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의 내용은 내 남자의 여자와는 꺼꾸러였습니다. 배종옥이 김희애의 남편을 유혹하여 같이 살고 김희애는 가슴 아프게 그것을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지 남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드라마였습니다. 김희애와 배종옥의 역할이 정반대로 나온 것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김희애가 남편있는 여자를 빼앗는 사악한 여자인데 비해 그 이전의 다른 드라마에서는 배종옥이가 김희애의 남편을 빼앗아 사는데 김희애가 천사와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두 드라마에서 김희애와 배종옥은 각기 정반대의 역할을 합니다만 연기를 잘해서 그런지 그 얼굴에 그 연기가 맞다고 느껴졌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하면 한 사람 속에 참으로 정반대의 캐릭터가 공존할 수 있겠구나! 한 사람에게서 천사같은 인격이 있고 한 사람에게서 동시에 악마같은 인격이 동시에 있을 수 있구나를 실감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한 아내가 말할 수 없이 현모양처일 수도 있고 동시에 동일한 그 사람이 남의 남편을 꼬셔서 내 남자로 만드는 순악질여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한 사람 속에 신사임당과 같은 이가 있고 뺑덕어미와 같은 이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어머니 속에 뺑덕어미성이 있고 신사임당성이 동시에 공존합니다. 우리 속에는 단순히 한 인격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말할 수 없는 남에게 모든 것을 주고도 기뻐하는 성자와 같은 인격이 있고 동시에 분노로 하여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상해를 입히고 살인을 자행할 수 있는 인격도 한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순한 양과 같은 모습이 우리 안에 있고 참으로 악한 이리와 같은 모습이 동시에 우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다양한 인격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무의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 속에 또 다른 법이 있다고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고 장탄식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 속에 성자와 같은 모습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법을 육체의 법을 좋아하는 모습이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인격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모습들 중에 자꾸 나타나려고 하는 악한 모습을 없애고 지우고 축소시키고 우리 속에 있는 선한 모습, 착한 모습을 더 나타나게 하고 그 모습을 향상시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가 하늘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느냐는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어린아이성(유아성)을 이것을 Childhood의 C자를 뽑아서 C의 요소라 합니다만 우리 안에 있는 C의 요소를 끄집어 내서 이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성이 발전되고 발달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도 성인! 나도 성인! 성인과 성인으로 대하면 신앙생활의 진보는 없습니다. 성인이란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하고 내 지식과 내 정보와 내 경험과 내 판단을 위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성인성을 들어내면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무기력한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없이는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처럼 할 때 우리의 신앙은 자라나고 우리의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이 됩니다. 믿음은 의지하는 것이고 의존하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며 사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반은 챙겨놓고 반은 의지하는 그런 신앙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온전히 100%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할 때 그런 사람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천국이라고 하기 보다는 천당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 계신 집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계시고 모든 자녀들이 거기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의존하며 사는 자녀된 자들이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향상되고 나아지려면 무조건 어린아이 같아야 합니다. 주의 종 앞에서도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설령 내가 많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세상에서 힘이 있다 하더라도 알면 얼마나 알고 힘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얼마큼한 양이 되겠습니까? 세상을 살 때는 성인과 같이 때로는 부모와 같이 야단도 치고 그래야 하지만 하늘 아버지 앞에서는 무조건 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러지 않습니까? 선민 이스라엘 왕이 되었어도 자기가 왕이랍시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종 선지자 앞에서 자기의 교만을 드러내 놓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께 묻고 선지자에게 묻고 대답을 받는 대로 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어린아이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의존성입니다. 하나님께 절대 의지하고 매사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물어보고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어린아이성입니다. 찬송가 565장 1절에 나옵니다.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근심 없고 정말 즐거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하나님 앞에서 철부지 아이가 되어야 하고 우리 속에 있는 아이성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와 같은 아이를 부르시고 나를 쓰시고 나를 안아주시고 나를 안수하여 주시고 나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자녀손들을 위하여는 부단히 예수님께로 데려 가시어 안수와 축복을 받게 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시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어린아이가 되어 천국에 합당하고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좋은 부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자녀손들을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게하여 성전 뜰 안에서 번성하는 백향목으로 자라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온 자녀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안수받고 축복받게 하면서 키우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어린아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오직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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