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주일) 1부예배 오전 7시 30분 / 2부예배 – 오전 11시
주일낮예배/ 성령강림후 다섯째주일 / 한국기독교장로회 광주남노회 작천교회
성경본문 : 잠언 17장 1절
제 목 : 화목의 가치, 불화의 가치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모든 분들 위에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시온찬양대와 예배를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수고하시는 분들 위에 유튜브 영상으로 예배드리시는 사랑하는 작천 믿음의 가족들 위에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얼마전 교회 갈릴리 쉼터에 어떤 성도 부부가 낡아진 의자를 새 의자로 교체해 놓았습니다. 언젠가 무심코 저는 갈릴리 쉼터에 의자를 교체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직접 듣거나 전해 듣고 익명으로 헌물한 것입니다. 헌물해 주신 성도님 부부에게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갈릴리 쉼터에 앉아 서로 차를 나누면서 서로 대화와 친교를 나누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욱 풍성해 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1950년 6월 25일 주일날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군대 즉 북한군대가 남한 대한민국을 침략하여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공식적으로 휴전된 전쟁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거의 5백만명이 넘는 인명을 피로 물들였던 그리고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겨난 참담한 비극이 시작된 날을 기려 제정된 6.25민족화해주일이고 6.25전쟁이 일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쟁이 계속된 기간은 약 3년 1개월 2일이었고 이 전쟁은 종전선언이 된 것이 아니라 휴전협정만 맺었기 때문에 언제든이 속전에 계속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진 채로 남과 북은 서로에게 철천지 원수가 되어 갈등과 대립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 북의 정권은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 세습정권이 계속되고 있고 현재 남의 정권은 보수정권이 집권하여 남과 북은 언제든지 열전을 벌일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북의 지도자는 핵무기를 거의 50여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언제든지 여차하면 남한을 핵무기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 야만적인 공언을 하고 있고 남의 대통령은 여차하면 선제공격을 하여 북을 제압하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그런 언어의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남과 북이 서로 하나될 통일이 될 가능성을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자본과 돈으로 가치평가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조주, 조물주보다도 더 높이 있는 사람이 건물주라고 합니다. 매월 앉아만 있어도 월세가 수천만원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런 사람을 높이 올려 평가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조건 모든 가치가 돈의 가치로 평가됩니다. 지난 번 강진군기독교연합회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는데 울릉도에서 7명의 회원들이 모듬회를 2접시 시켜서 먹었습니다. 해삼 두 개 정도를 썰어 넣고 멍게 한 개를 썰어 담은 것이 6만원이었던 것입니다. 강진마량 수산수징에 가면 5천원도 안되는 것이 그렇게 비쌌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는 울릉도와 제주도는 물가가 너무 비싸므로 차라리 그 돈 있으면 해외로 가는 것이 훨씬 싸다는 것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와 울릉도로 가는 여행객이 확실하게 적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놓아야만 더 많은 손님들이 찾게 되고 더 많은 이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아둔한 인생이 모르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있었던 황금달걀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떠 오릅니다. 어떤 부부에게 매일 황금달걀을 낳는 거위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매일 매일 그 달걀을 팔아 큰 돈을 벌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부부는 황금달걀을 한꺼번에 많이 얻고자 황금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러자 아직 익지 않은 황금달걀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참으로 미련한 짓을 한 것입니다. 그대로 두었으면 매일 매일 황금 달걀 한 개씩을 낳아 그것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을 터인데 우선 서너 개 황금 달걀을 얻고자 거위 배를 라서 거위는 죽고 더 이상 황금달걀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어장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때 돈을 조금 더 벌어 볼 욕심으로 치어들까지 싹 잡아서 파니까 더 이상 어장에는 고기떼들이 들어서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는 지혜가 있어야 자본을 더 늘일 수 있습니다.
■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치가 있고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돈과 자본으로는 훨씬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금번 울릉도와 독도에서 강진기독교연합회 회원 모두가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만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갔는데 독도땅에는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접안구역에 너울성 파도가 쳤던 까닭에 안전을 위해 내리지 못하여 아쉬움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배는 독도를 중심으로 삥 돌아서 독도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하여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망발을 하고 도발하는 것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할 때 그 섬을 중심으로 해서 자국의 해양의 영토가 늘어나기 때문인 것이고 독도를 중심으로 하여 해저에 깔려있는 미래의 에너지 자원인 천연가스 메탄-하이드레이트가 엄청나게 독도 주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석유자원이 고갈될 경우 미래에 사용한다면 앞으로 500년 동안 에너지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독도가 단지 동해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섬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가져다 줄 엄청난 자원의 보고가 그 섬 주변에 집중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일본은 이 가치를 알고서 그것을 자기네 땅이라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속 덤비고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더더욱 독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강화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독도에 들어갈 때 저 역시 멀미가 왔습니다만 잘 견뎌냈고 모든 강진기독교연합 회원들이 한 사람도 상함과 해함이 없이 강진공설운동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출발하였을 때도 기도하였고 도착하였을 때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번 독도에 다녀왔을 때 제가 회장으로서 책임을 맡아 다녀왔지만 만일 독도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있어 모두가 죽었거나 여러 목사님들이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무사하게 돌아온 가치를 한번 따져 보았더니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따질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매일 매일 지켜 주시는 은총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가치로 평가한다면 얼마나 되겠으며 어제와 같이 오늘 여상하게 일어나 내가 호흡하고 있고 살고 있는 가치를 자본과 돈으로 헤아려 본다면 그 얼마나 하겠습니까? 지지난 주에는 우리 교회 김이삭 집사님의 두 아이, 샤론이와 요한이가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주에는 우리 교회 정수진 집사님 아이 라온이가 입원하였습니다. 샤론이와 요한이는 다시금 회복되어 퇴원하였습니다만 라온이는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라온이가 어서 빨리 회복되도록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걸으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다면 그런 해맑은 웃음의 가치를 무슨 돈이나 자본의 가치와 따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에는 군에 보낸 아이, 해병대 채상병 죽음과 그 왜곡에 관한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관련자들 열세명을 놓고 청문회를 하였습니다만 그때 채상병의 부모님도 그 자리에 임석하였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채상병으로 인해 분노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하여 법률과 진실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모님에게 있어서 아들 채상병의 생명을 세상 그 어떤 것들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청문회에서 나타난 윤석열 대통령과 임성근 사단장과 전 국방장관 이종섭은 너무도 비겁하고 너무도 치졸하고 너무도 악하였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이들이 도무지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피해나간다면 반드시 이들을 앞으로 재판정에 세우고 대통령은 탄핵시켜 권좌에서 내려오게 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 본문도 가만히 살펴보면 가치의 문제입니다. 잠언 17장 1절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는 두 가지의 가치를 놓고 저울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자! 두 가정이 있습니다. 한 가정은 가난하여 집안에 먹을 것이 마른 떡 한 조각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정이 서로 위해주고 마른 떡 한 조각이지만 서로 나누어 먹고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가정의 무게와 다른 한 가정은 제육이 가득하다는 것은 성경 다른 번역에서는 육선이 가득하다고 하였는데 육선(肉膳)이란 고기 육(肉)에다가 반찬 선(膳)이니까 상에 산해진미가 놓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산해진미를 상에 올려놓을 만큼 부자이지만 가족들이 서로 싸우고 불화하는 집구석인 것입니다. 마른 떡 한조각을 가지고 화목한 곳은 집안이고 산해진미를 차려놓지만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집은 집안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집구석이라고 합니다. 성경 잠언은 마른 떡 한 조각만 가지고도 화목한 집안이 제육과 육선이 가득하고도 서로 불화한 집구석보다도 훨씬 낫다는 평가를 내립니다.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집을 비교하였을 때 가정행복의 척도로만 보자면 돈이 아무리 많고 부귀영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가정보다도 비록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지만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고 화목하게 사는 가정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평가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가정이 불화하다는 것은 그 가족의 구성원들이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는 것인데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면 밤에 제대로 잠이 들 수 있겠습니까? 자식들과의 관계가 나쁘고 부모형제, 부부간의 관계가 나쁘면 다시 말하자면 불화하면서 살게 될 때 어디 편히 잘 수 있겠으며 어디 좋은 곳에 간다고 해도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제일 처음 한문을 읽게 될 줄 아는 것이 한문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를 반대로 하면 가불화만사불성(家不和萬事不成)입니다. 가정이 불화하면 만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한 가정 안에서 화목의 가치를 강조한 격언입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빈한하더라도 화목하게 사는 것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지만 가족들 간에 불화하고 사는 것보다도 훨씬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복이란 객관적 물질적 가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서 좌우되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조건이 돈도 많고 명예도 많고 영화를 누린다 하여도 내 마음이 그것들을 행복하게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옛날 서로 사이좋게 사는 두 집이 있었습니다. 김씨네와 이씨네입니다. 두 집에는 서로 아들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어느 날 김씨네 아이와 이씨네 아이가 서로 싸워 이씨네 아이가 코피 터져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이씨네는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고 아이를 데리고 김씨네에 갔습니다. 당신 아들이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씨네는 아이들이 싸울 수 있지 뭘 그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씨는 마침 그 집에 있는 지게를 받치고 있던 작대기를 들어 사정없이 김씨를 후려갈겼습니다. 김씨는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김씨 아내는 얼른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이씨는 곧바로 경찰서에 잡혀갔습니다. 그러자 이씨 아내는 남편이 경찰에 구속되자 김씨 아내가 너무도 괘씸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석유를 그 집 지붕에 뿌리고 성냥을 그어댔습니다. 부상당한 김씨와 김씨네 아이는 불에 타 죽고 김씨 아내는 화상을 입고 구출되었습니다. 이번에 이씨 아내는 곧바로 구속되어 남편과 아내가 함께 구속되었습니다. 김씨 아내가 생각해 보니 자신의 남편도 죽고 아이도 죽었는데 이씨네들은 구속되었지만 사지가 멀쩡한 것이 너무도 억울하였습니다. 그래 이씨와 이씨 아내가 구속되어 있는 틈을 타서 이씨네 집 문을 바깥으로 잠그고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그 화재로 이씨네 아이는 죽었고 김씨 아내는 구속되었습니다. 서로 재판을 받을 날을 기다리면서 감옥 안에서 그 짧은 순식간에 일어난 지금까지 우애하고 살았는데 애들이 싸운 것 하나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기 시작했는데 때는 늦어있었습니다. 법정에서 검사의 심문을 받으면서 서로 눈물만 흘렸습니다. 내 아이가 남의 아이를 다치게 하였을 때 그저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아이의 아빠와 엄마도 막걸리 한 잔을 서로 나누면서 “애들이 다 싸우면서 크지요!” 했으면 그냥 모든 것이 끝났을 것인데 찾아가서 막대기로 때린 것이 시초가 되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순식간에 양쪽 집 전체를 살라 버린 것입니다. 싸움하면 나라도 손해고 민족도 손해고 가정도 손해고 서로 간에 엄청난 손해만 있지 유익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불목의 가치가 뭐가 있겠습니까? 양자 모두가 손해요 멸망입니다.
■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화목의 가치입니다. 서로 사이좋게 살고 서로 위해 주며 살고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 즉 화목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도도처처에서 화목의 가치를 높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의 가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육선과 제육이 가득한 것보다도 낫다고 평가되지만 하나님께서도 화목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시편 133편 1절에서 3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형제가 서로 사이좋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야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사는 그것을 아름답게 보시고 너무도 좋으셔서 보배로운 기름을 부어주시고 헐몬의 이슬을 내려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형제들이란 이스라엘 열두 지파들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열두 지파들이 서로 패를 지어서 싸웠습니까?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야곱의 부인들이 네 명이었는데 이들이 낳은 자식들이 자기 어머니가 같은 자식들이 서로 편을 먹고 싸우기를 지긋지긋하게 서로 싸웠습니다. 시편 133편에서는 이들 열두 지파의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서로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너무도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고 이들에게 복을 내리시되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복인 영생의 복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화목의 가치를 여러 차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지요! 마태복음 5장 9절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이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딸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그렇게 번역해도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일컬음을 받는다 함은 무엇이야 함은 하나님 나라에서 천국에서 살게 해 주신다 함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셔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해 주시되 그저 살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드려 주셔서 하나님의 소유를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높은 지위를 허락해 주신다 함입니다. 시편 133편 형제가 화목하게 살았을 때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과 예수님의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는 말씀은 다른 표현이지만 같은 내용인 것입니다. 이를 반대로 하자면 “불화하게 하는 자는 복이 없나니 저들이 마귀새끼라 불리움을 받을 것이요!” 여기서는 “복이 없나니” 보다도 “저주를 받나니 저들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요!”가 되겠습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를 깨뜨리고 있는 한 사람은 바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푸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푸틴은 그야말로 이 세상 이별하게 되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화목의 가치를 무척 강조한 말씀이 있습니다. 같은 산상수훈에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과 23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 우리는 무척 중요한 것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자신에게 예배 드리는 것 이상으로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인간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시는데
인간이 서로 화평하게 살고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예배를 받으시는 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과 화목하게 살고 화평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최고로 여기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천국에서 살게 하실 만큼 너무너무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뭐냐하면 형과 동생이 싸웠는데 형이 동생과 토요일날 싸우고 그 다음날 예배 드리려 가려 하는데 예수님의 산상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린 것입니다. 장로인 형은 그래 내가 예수님 말씀에 따라야지! 하고 동생 집으로 찾아가서 어이! 동생!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네! 미안하이! 나하고 같이 가서 만난 것을 먹세! 다음부터는 내가 형이라도 말을 가려세 함세! 나를 용서해 주겠나~! 하여 먼저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동생도 아이쿠! 형님! 저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둘이 나가서 화해하였고 형은 그 다음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소천하신 조귀순 권사님이 이 말씀에 따라 사셨습니다. 조귀순 권사님에게 예전에 나왔다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께서 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상기하시면서 저와 함께 그 분을 딸기 한 상자를 들고 찾아가서 제가 나쁜 년이요 제가 잘못했으니 마음을 푸시고 이제부터 한 하나님을 같이 섬기십시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신 것입니다. 저는 확신하기를 우리 조귀순 권사님은 지금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살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화목의 가치의 절정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까?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화목을 이루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화목을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죽게 하기까지 이루실 만큼 더 이상 그럴 수 없이 소중하고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나라 대한민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습니다. 매파는 싸우자는 파도 비둘기파는 화평케 하자는 파입니다. 우리 정치사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에서 보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여차하면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하니 그분도 화목을 추구하는 매파이지 비둘기파는 아닙니다. 북한은 이에 맞서 핵무기로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 역시 매파인 것이 분명합니다. 남과 북 양 당국을 집권하는 이가 비둘기파는 없고 매파들만 많이 있습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한국교회는 이 땅에 평화와 화목을 추구하는 비둘기파가 되고 비둘기파가 이 땅 한반도에 많아지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매파가 되어서 저희의 발이 죄악에 깊이 빠졌던 잘못을 회개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목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이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집권하여 나라를 평화로 핸들링해 나가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안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남한의 교회가 북한과 화목하는 일을 추구하고 진정한 평화를 위해 쉬임없이 기도하고 썩어지는 밀알과 같이 헌신하며 일할 때에야 하나님께서 남한의 교회들이 드리는 예배도 받아 주신다고 믿고 먼저 가서 화목하게 하는 일을 더더욱 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작천교회 성도들도 내가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와 직장에서 그리고 살고 있는 마을과 동네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가시면서 이루셨던 평화를 기억하면서 삶의 모든 자리에서 화목한 생활, 서로 사이좋게 사는 삶을 추구하고 예수님의 평안을 세상에 심는 생활, 화목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골목을 쓸었습니다! /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 꽃 한송이 심었습니다 / 지구 한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한구절입니다. 작천교회 성도들의 삶이 화목의 씨앗을 심어 지구 한 모퉁이에 작은 천국이 꽃피어나기를 바랍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귀한 가르침을 주시오니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가 세상에 살면서 불화를 만들고 싸움을 일으켜 지옥의 불에 들어갈 마귀새끼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삶의 자리마다 가는 곳곳마다 화평의 씨앗을 심어 작은 천국을 만들어 나가게 하옵소서! 저희로 이 땅에서 화목하게 살아서 영생을 누리고 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진정 이 땅에서 사이좋게 살고 화목하면서 사는 가치를 깨우쳐 알게 하옵소서! 십자가로 평화를 이루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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