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주일) 오전 11시 1.2부합동예배,
주일낮예배 / 부활주일 / 한국기독교장로회 광주남노회 작천교회
성경본문 : 로마서 8장 31~39절
제 목 : 넉넉히 이기느니라!!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의 은총이 오늘 이 자리에 참예한 모든 성도들 위에, 지금 요양원과 요양병원과 병원에서 자녀들 집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예배드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인생들에게 가장 세고, 가장 두렵고,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바로 죽음입니다. 인간에게 닥치는 것들 중 무서운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련과 환난입니다. 하지만 시련이 아무리 강하고 환난이 아무리 무섭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음 앞에서는 鳥足之血, 새발의 피입니다. 시련은 극복될 수 있고 환난은 빠져나올 수 있지만 죽음은 결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염려가 우리 내면의 인생을 갉아 먹고 불안이 우리 인생을 해치고 걱정과 근심이 우리 인생을 시들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만 그것들이 아무리 크고 위협적이다고 해도 죽음보다 더 세다거나 사망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심각한 병이 있고 상처가 있고 여러 가지 고통이 있다하더라도 모두 다 죽음에 비하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 전 존재,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단숨에 앗아갑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다가오게 되면 모든 것을 빼앗아서 빈털터리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 존재조자도 흔적이 없게 합니다. 존재가 철저한 無가 됩니다. 죽으면 육신은 우선 남습니다만 그것은 자기가 그것을 인식할 수 없고 느낄 수도 없기에 이미 죽으면 그것은 자기 육신이 아닌 것입니다. 육신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 썩고 시간이 약간 지나면 자연으로 결국 환원되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죽음보다 더 강한 세력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화려하고 권세가 있어 그 손에 세상의 흥망성쇠가 놓여있고 그에게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지푸라기가 아궁이 안에서 불살라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해 아래서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어떤 명장, 어떤 재벌, 어떤 제왕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23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겨우 면도하는 법이나 배울 나이인 스물 살 어간에 왕위에 올라 당시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 그리스도, 인도, 남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를 다 정벌하고 참으로 거대하고 엄청난 제국, 동양과 서양의 거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제국을 통치하고 다스렸던 대왕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그에 의해 인류 문명의 한 축인 헬레니즘이 탄생했습니다. 그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세 번이나 페르시아군(軍)과 싸워 대승한 후 다시 동쪽으로 원정,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의 인더스강(江)을 정복한 다음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정복을 위하여 준비하던 중에 알렉산더 대제에게 죽음이 다가왔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인 이 거인을 쓰러뜨린 것은 무슨 엄청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몸속에 있었던 겨우 현미경에나 보일듯 말듯한 쬐끄만 바이러스들 때문에 열병으로 쓰러졌습니다. 그의 나이 33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을 때와 같은 나이로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손을 관 밖에 내어 놓도록 하여라!” 말하였습니다. 아무리 인생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하더라도 천하를 한 손에 쥐었다 하더라도 죽을 때는 결국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가게 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 천하의 알렉산더 대제도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싸우려고 하지도 않고 죽음이 오자 유언함으로 패배와 항복의 깃발을 바로 꽂은 것입니다. 해 아래 사는 인생들 중에 죽음 이상 가는 강력한 세력은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무엇은 없습니까? 인간은 그동안의 역사 속에서 죽음을 극복해보고자 무진 애를 썼습니다. 불로초를 구해보려고 사면팔방으로 보냈습니다. 설산에서 온갖 고통을 무릎쓰고 요가단식선도수행을 수십년간 하기도 하였습니다. 영생장생불사에 대한 염원으로 피라밋을 세워 그 안에 자신의 주검을 안치하기도 하였습니다. 각종 종교를 만들어 다시 환생한다는 윤회전생의 이론을 만들어 믿기도 하였습니다. 냉동인간을 만들어 초과학기술이 발전할 때를 기약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인간 DNA 복제를 하여 복제인간을 시도하여 영생해 보려고도 하였습니다. 벼라별짓들을 다 시도해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또렸해지고 명료해지는 것은 인간은 결국 죽게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됨을 알뿐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죽기만 하고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고 더 이상은 없는 것입니까? 인생이 죽음으로만 끝난다면 인생은 허무를 노래하고 인생의 비참을 노래만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총 지식을 동원하고 역사상의 모든 정보를 다 합쳐보면 결론은 존재는 무로 돌아갈 뿐이고 결국 허무밖에 남는 것이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분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마태복음 28장 5절에서 6절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성경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문서들은 하나같이 일치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절에서 8절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셨다고 증언합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성경이 부활을 증언할 때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 케이오승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과 55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여기서 뭘 말하려고 하는 것이냐 하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너무도 기뻐하여 “사망권세야! 넌 이제 죽어부렀다! 넌 예수님의 부활에 의해 삼켜진 바 되었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모든 사람들은 다 사망에 의해 삼키운 바 되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인생을 삼킨 그 사망권세를 삼켜버린 것입니다. 성경의 증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예수님이 승리하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예수님만 부활하시고 그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은총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22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바로 그래서 은혜로우신 예수님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 이번에 이겨서 상탔다! 하고 그리고 상금도 탔다! 하고 그것으로 끝내버렸다면 그럴 것입니다. 콧바람을 흥하고 날리면서 “지가 상타고 자기가 상금탄 것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하고 뒤돌아설 것입니다. 상금 탄 것을 나눌 수 있어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만 부활하시고 그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부활의 은총을 나려 주셔서 누구든지 부활하여 낙원과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 성경의 증언은 또 여기서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은총은 또 여기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을 이별하면 천국에서 신령한 몸을 받아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은총은 저 하늘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도 그 영향을 미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57절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의 은총을 주시는데 이 세상에서도 그 부활의 권능으로 승리하는 은총을 주신다 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은총이 임할 때 그 은총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죄와 악과 싸워 이길 수 있게 됩니다. 단지 죄에서만 승리가 아닙니다. 부활의 은총이 우리 생활 속으로 올 때에는 우리는 범사에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로마서 8장 34 절에서 35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은총을 주시면 우리는 그 힘으로 이 세상 안에서도 갖가지 환난과 곤고와 박해와 기근과 위협과 칼을 이겨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신다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죽음을 이기셨듯이 이 세상에 있는 죽음 아래에 있는 기타등등의 것들도 다 이길 수 있게 해 주신다 그 말입니다. 기타등등의 것들이 무엇입니까? 한숨, 염려, 걱정, 불안, 질병, 고통, 근심 등등 모든 것을 다 부활신앙으로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부활신앙과 부활지식은 다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부활신앙을 가진 것이 아니라 부활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신앙과 부활지식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부활지식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부활지식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부활지식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쓰여져 있는 성경구절이 고린도전서 15장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지식으로만 끝나면 그것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아는데서 배우고 확신하는데로 굳게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지식과 부활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신앙 넘버원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신앙 넘버 투는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고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나에게도 부활의 은총을 주셔서 나도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부활신앙 넘버 쓰리는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둠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절망을 이기고 걱정근심불안염려를 이기게 해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부활신앙은 예수님께서 이미 죽음을 케이오패 시켰다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이 부활의 은총으로 이 세상의 죽음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 KBS 개콘에 장동민이라는 개그맨이 있었는데 그가 “그까이것”이라는 말을 유행시켰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녁식사시간에 "이 찌게 굉장히 맛있어요!. 어떻게 만든거죠"라고 묻습니다. 그 유행어를 빌자면 "그까이꺼 대충 김치쪼가리 대충 썰어넣고 물을 적당히 부어넣고 소금간 해서 휘휘젓다가 내놓면 되지 머 그까이것!“ 그런 식입니다. ”그까이것“이란 그까짓것이라는 말의 사투리로서 아무 것도 아니다! 별거 아니다! 뭐 어렵지 않다! 별 문제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부활신앙이란 한마디로 바로 이 “그까이것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시달리고 이 세상의 것들에 의해 대책없이 패배당하고 조그마한 걱정과 근심 때문에 쓰러지곤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걱정과 근심 때문에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미움 때문에 병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형편없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부활신앙, <그까이것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하신 전능하신 능력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까이것 뭐, 부활하신 주님이 날 사랑해 주시는데 그까이것 뭐!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신앙, 그까이것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믿게 됩니다. 세상사에 속한 모든 것들 그까짓것들을 능히 승리하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심장문제로 광주기독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협심증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갑자기 협심증이 급성심근경색으로 가서 어느 날 갑자기 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침묵 속에서 떠오르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까짓껏 뭘 걱정해! 가긴 어딜 가! 널 이 땅에 보낸 이가 일 다 시켜 먹고 가게 하겠지! 그리고 곧바로 간다고 해도 그까이것 뭘 걱정이여! 가긴 어디로 가겠어?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며 주와 함께 생명 시냇가에서 안식하며 살겠제!!“ 그런 생각이 스며오면 마음에 안정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작천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이 “그까이것 부활신앙”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날 그토록 사랑해 주시는데 그까이것 내가 이런 정도 어려움을 못 이길까?“,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피와 같이 붉은 죄를 다 용서받았는데 내 형제의 이 손톱만한 이까이것 잘못 하나 용서 못할까?“, ”예수님 날 사랑하셔서 부활승리의 은총을 주셨는데 이까이것 스트레스 하나에 내가 시들하고 쓰러질까? “나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그렇게 좋게 잘해주셨는데 내가 이까이것 한숨과 걱정과 염려 불안 하나를 못이길까?”, “하나님이 날 뜨겁게 사랑해 주시는데 이까이것 조그마한 질병에 들었다고 눈물을 흘릴까 아냐 날 승리하게 해 주실꺼야!” “예수님이 나에게 죽음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은총을 주셨는데 내가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까이것 시련과 좌절 정도에 내가 한숨 쉬고 절망할 수 있을까? 이런 언덕길 하나 가볍게 못오를까?”, “하나님 날 사랑하셔서 나를 독수리 같이 올라가게 해 주실꺼야!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날 위해 더 좋은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을꺼야!”, “예수님은 날 위해 십자가 지셨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는데 내가 이까이것 나쁜 습관 하나 못이길까?”, “하나님이 나에게 이미 영생복락을 마련해 주셨는데 내가 설령 오늘 죽는다 하여도 뭘 두려워할까? 이까이것” 부활신앙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패한 이 세상의 죄와 악의 세력을 우습게 보고 깔보고 주의 능력으로 일어서고 능히 이기는 신앙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부활지식 부활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일이 없으리라는 믿음으로 이까짓것 죄악과 죄악으로 말미암은 유혹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 날 사랑하시고 날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이까짓껏 한숨과 고통을 떨쳐 버리고 이까짓것 염려와 걱정을 극복하고 이까짓것 시련과 환난을 다 케이오 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금번 4월 10일 다가오는 국회의원선거에서 정의 평화 생명 세력이 반드시 불의와 비리와 반생명 세력을 꺾고 승리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작천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부활신앙으로 죽음의 권세를 무덤권세를 흑암권세를 다 이기시고 승리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은총, 승리의 은총, 구원과 영생의 은총을 내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부활승리의 은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어둠을 승리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저희로 이 세상에 살면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한숨과 근심과 걱정과 염려와 불안과 질병과 모든 삶의 문제들을 승리하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부활신앙으로 찬송을 부르고 개가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힘차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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