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6일(주일) 오전 7시 30분(1부) 오전 11시(2부) 주일낮예배 작천교회
창조절 열째주일
성경본문 : 누가복음 13장 1절 ~ 9절
제 목 :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창조절 열 번 째 주일에 하늘 아버지의 집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자 나아온 하나님의 자녀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1부 여신도 쏠리데오 / 2부 시온찬양대) 위에 지금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할로윈 파티에 참여하려는 이들 중에서 156명이 밀려드는 인파에 의해 압사당하여 희생당하였고 195명이 부상당하게 된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나누어드린 아가페 플러스 제71호에는 작천교회가 속한 교단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님이 발표한 애도성명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함께 나누어 드린 여호와닛시 중보기도문 80번째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공동기도문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셔서 이 기도문으로 희생자들과 부상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을 중보하면서 기도해 주시고 월요일 여호와닛시 중보기도단과도 함께 중보하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태원 참사를 생각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뜻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뉴스와 방송을 지켜보면서 제 속에서 침묵 가운데 떠오르는 소리는 바로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이었습니다. 본문 4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실로암은 무엇이고 실로암의 망대가 무엇입니까? 실로암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연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여러분이시라면 실로암은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자로 태어난 자를 고치실 때 눈에다 진흙을 발라주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는데 실로암은 바로 그 연못의 이름이었습니다. 이 연못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예루살렘 시민들이 쓰는 상수원이었습니다. 왜 예루살렘 성안에 연못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이를 알려면 예수님 이전 시대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왕이 유다왕국을 공격해 오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저들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고립시킬 것을 염려하여 성 밖에 있는 기혼 샘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드리는 터널공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성밖의 수원이 외부의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은폐시키고 예루살렘 성안에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터널을 만들어 성안에 생겨진 그 연못을 실로암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밖에서 성안으로 터널을 뚫어 물줄기를 들어오게 하였는데 실로암 연못에서는 언제나 물이 철철 넘치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보통 외부의 적이 공격해 오면 식량과 배수를 막기 때문에 항복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밖에서 포위공격을 해오더라도 버틸 수 있게 방비해 놓은 것입니다. 실로암에 이르는 비밀 터널은 지하로 약 500미터의 길이인데 이 터널을 히스기야 터널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실로암의 망대가 무엇입니까? 망대란 성읍의 요새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세워진 탑이나 대를 말합니다. 실로암 망대는 실로암 연못에 이르는 터널이 파괴되지 않도록 아마도 히스기야 왕때 공사를 해놓은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그런데 문헌에 의하면 예수님 시대의 유대총독이 로마가 파송한 빌라도였는데 그가 낡아진 망대와 수로공사를 하다가 참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이 망대가 갑자기 붕괴하여 망대 아래에 있었던 열여덟 명이 비명에 죽게 된 것입니다. 왜 그 거대한 망대가 무너져 내려앉았을까요? 예수님 당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성을 쳐들어와서 망대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거대한 망대를 건설해 놓았는데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수없이 있어왔고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스코틀란드에 있었을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입니다만 영국친구들이 데일리 메일이라는 자기 나라 신문을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신문의 사진에는 한강다리 중 하나인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린 처참한 모습의 사진이 대문짝하게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네 나라가 다리공사하면서 부실공사한 것 아니냐고 하였을 때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성수대교 공사할 때 입찰비리가 있었고 세멘트를 적정량을 부어 넣어야 하고 철근을 그만큼 부어 넣어야 하는데 성수대교 입찰을 한 업자가 그것을 하청을 주고 그 하청업자가 또 다른 업자에게 하청을 주고 하여 마지막 공사를 맡게 된 하청업자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철근을 규정량보다도 훨씬 덜 넣고 세멘트도 그러하고 설계도면도 대충 적당히 영세업자에게 맡기고 한 결과 철저한 부실공사가 되어 결국 그런 대형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수대교 사고 이전에 그와 비슷한 사고로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도 같은 부실공사로 참사가 일어났고 불과 20초 만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성수대교도 같은 내용이었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 다음 해 생긴 강남 최고급 백화점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이 사망한 대참사가 생긴 것도 부실공사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결국 본질로 들어가고 핵심으로 들어가면 인간들이 자신의 배를 더 불리려고 빼돌렸기 때문에 그런 건축붕괴와 인명대 참사가 난 것입니다. 이는 본질로 들어가자면 인간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아십니까? 【어떤 트럭 운전기사가 밀가루를 잔뜩 싣고 앞에서 달리고 다른 트럭 운전기사는 세멘트를 싣고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두 차는 생김생김이 서로 비슷하였습니다. 휴게소에서 서로 내려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고 달렸습니다. 서로 차를 바꾸어 타고 갔습니다. 앞에 가는 차 기사가 생각했습니다. 어! 이상하네 내가 몬 차하고 똑같은 차가 내 뒤에 따라오네! 뒤에 가는 차 기사가 생각하였습니다. 어 이상하다! 내가 모는 차와 똑같은 차가 앞에 가네! 나중에서야 차가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세멘트를 실고 달려가는 운전기사는 밀가루를 싣고 가고 밀가루를 싣고 올라가던 운전기사는 세멘트를 싣고 갔습니다. 세멘트를 싣고 가야할 운전기사는 밀가루를 싣고 가면서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뭐 내가 세울 집인가!” 하면서 아파트건설현장으로 갔습니다. 밀가루를 싣고 가야 할 운전기사는 세멘트를 싣고 가면서 “뭐 내가 먹을 과자인가” 하면서 과자공장으로 갔습니다. 아파트건설현장에서는 밀가루로 아파트를 지었고 과자공장에서는 세멘트로 빵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밀가루로 만들어진 아파트가 와지끈 무너질 때 어느 어린이의 이빨이 우두둑 분질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났습니다.】 이 사회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 예루살렘 성안의 실로암의 망대가 왜 무너졌습니까? 이는 성수대교가 왜 무너졌냐고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졌냐고 묻는 것과 같으며 그것에 대한 대답은 같습니다.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과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내려 죽은 사건에 대해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4절을 다시금 보겠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이는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실로암에서 죽은 열 여덟 사람들은 지은 죄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통렬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저들 열 여덟 명이 죽은 것은 자기들이 죄를 지어 죽은 것이고 우리들 대다수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망대에 깔려 죽지 않은 것이라는 그런 사고방식을 부인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희생자들인 열여덞명을 정죄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뭔가 하나님께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일으켜 생명을 데려간 것이다! 그러면서 죽은 그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상대적으로 죽지 않은 자기들은 죄 없음을 확인하려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서운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의 죄악이 만들어 놓은 사슬 구조로 인해 희생당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고 희생양으로 만들려 하는 이들에게 너희에게 죄악이 없는 줄 아느냐 하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 304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던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습니다. 배가 침몰한 이후 구조자는 단 1명도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박근혜 정부는 책임소재를 세월호 선주와 그와 관련되어 있는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저들에게 모든 책임들을 뒤집어 씌우고 구속기소하였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하다가 아직도 당시의 소재와 시간을 밝히지 못한 일곱 시간으로 인해 결국 국민들의 엄청난 미움을 받고 탄핵을 당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논리는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너희들이 죄인이고 우리는 너희 죄인들을 엄중하게 다스리겠다 였는데 당시 국민들의 시각은 당신이 가장 큰 죄인이다 죄가 없다고 코스프레하는 당신이 가장 큰 죄인이다 하면서 촛불집회를 하였고 결국 촛불의 힘은 그가 탄핵을 받아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 도도처처에 스며있는 비리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 비리들은 그 어느 곳 하나에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 세월호 집회와 촛불집회에 참예하였던 모든 이들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 우리가 만든 이 사회의 죄악들이 어린 학생들을 죽였다고 참회의 고백하였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과 사회의 구조악을 동시에 들여다 보시면서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망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해야 할 사람들은 죄인인 우리 자신이고 나 자신입니다. 회개해야 할 주체는 우리의 사회의 구조악이요 그 구조악을 만든 것은 우리 인간들 자신입니다. 우리가 그 재앙을 일으키게 하는 죄악들에 연대책임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너희라고 하였을 때 우리는 너희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들으면 나에게 레마의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라고 하였을 때 다른 누구보다도 바로 “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나 역시 하나님께서 정한 시점에 나는 망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저는 대천에서 실시하는 신년목회실습을 갔습니다. 잠시 해변길을 걷는 어느 순간에 가슴이 답답해 오고 뜨끔해 왔습니다. 무엇이 그러했는지 모릅니다만 숨호흡을 길게 내쉬자 바로 그 통증은 없어졌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하! 이런 증상이 있다가 그대로 심장이 멎어 갈 수도 있겠구나! 나는 하나님 앞으로 갔을 때 과연 이렇게 살고 이렇게 목회하다가 가면 하나님께 된통 야단만 맞을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 지은 허물과 죄를 제대로 회개하지 못한 것도 많은데!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판단하심에 의해 오늘이라도 내 인생 종이 쳐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종말론적으로 오늘이 하나님께서 날 데려가시는 날이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곧 서게 될 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 우리는 무슨 잘못이 있을 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슨 재앙이나 참사가 일어났을 때 책임소재부터 먼저 따지고 먼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분명한 타겟을 정합니다. 여야의 정치권은 사건만 일어나면 우리 당의 잘못은 전혀 없고 당신네 당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몰고 갑니다. 여야가 서로 공격할 때 쓰는 단어가 내로남불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입니다. 그렇게 하여 국민의 힘과 더불어 민주당이 서로 무조건 공격하고 상대방에게 100% 잘못으로 몰고 가려고 합니다. 지금 여당과 야당은 서로가 상대방 당에게 100% 잘못이 있고 내 당의 잘못은 1%도 없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이렇게만 가면 협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의 발전과 소망의 미래가 없습니다. 제가 스코틀랜드에 있을 때 영국의 정치를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국에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있는데 국회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국정을 논의하는데 먼저 야당인 노동당의 의원이 발언을 하는데 보수집권당의 총리를 한참 칭찬합니다. 그러다가 보수당은 사람은 좋지만 당의 정책은 우리 당이 훨씬 우수하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결코 남의 당을 비난하여 끌어내리려 하거나 일방적인 훈계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총리가 답변하는데 역시 한창 그 야당의원을 또 칭찬하면서 자기네 당의 경쟁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비교설명하면서 이끌어 갑니다. 그렇게 하니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보다 품격있게 정치의 장이 전개됩니다. 일방적으로 모든 책임을 상대당에게 전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일 한다면 국민들이 그런 당에게 투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대당을 칭찬하면서도 그 위에다 자신의 당의 정책을 더 높이 올려놓는 방식으로 합니다.
■ 우리의 죄악들 중에 하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면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어찌하여 내가 따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따먹었느냐 준열히 물었을 때 아담이 만일 “하나님!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이브가 저에게 건내 주었을지라도 제가 이브에게 야단을 치면서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어야 하는데 제가 받아 먹었으니 저에게 전적으로 100퍼센트 잘못이 있습니다. 죄를 물으시려거든 저에게 물어주시고 이브에게는 죄를 돌리지 말아 주세요!” 그랬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냐! 네가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는구나! 하면서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해서는 안된다!” 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기까지는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책임을 이브에게 돌렸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 말 속에 무슨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아담은 이브에게도 반쯤은 책임을 돌렸지만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도 은근슬쩍 책임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질책을 하자 이브도 책임을 뱀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함을 받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보다도 책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였을 때입니다.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 명이 죽었을 때 당시 유대사회는 모든 책임을 죽은 희생자들이 자기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 죽게 되었다는 그런 관념을 야단치시고 너희가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된다 하셨습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가 바꾸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무슨 잘못이나 사건이 있게 되면 어려운 일이 있게 되면 맨 먼저 누구에겐가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냉혈하고 비정한 문화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호랑 말코 같은 놈!,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있나! / 아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3년 동안 하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제자로 삼아주신 예수님을 은돈 30냥에 팔아먹어! 그럴 수 있는것이야? / 하고 가룟 유다를 비난하고 삿대질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가룟유다 기사를 기록하신 뜻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를 보면서 나 자신을 거울로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제가 가룟 유다를 비난하였지만 제가 가룟 유다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저도 돈과 물질을 하나님보다도 훨씬 중시할 때가 많았으니 제가 가룟 유다보다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어떤 때는 가룟 유다보다도 더 못한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해야 죄인에게 임한 예수님의 은혜가 나에게도 임하게 됩니다. 성경 창세기를 읽다가 카인을 보고 ”아니! 이런 후레자식같으니라고! 아니 죽일 사람이 없어서 친동생을 죽여! 이런 자식은 지옥 중에서도 상지옥으로 가야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가인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저 역시 가인이 가졌던 미움과 증오를 한번이 아니라 머리털보다도 더 많이 가졌습니다. 형제가 미워서 죽이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인이었고 제 속에 가인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성경을 읽고 받아드려야 죄인에게 임한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남을 탓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살피고 나의 허물은 무엇인가 나의 잘못은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야 하고 그런 잘못과 허물이 있다면 나부터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누구누구의 잘못이라고 바늘로 상대방을 콕콕 찔러가면서 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이지 결코 그리스도인이 할 짓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무슨 잘못이 있었을 때 네 탓으로 돌리고 무슨 좋은 일이 있었을 때 내덕으로 돌리는 것은 마귀문화지 그리스도문화가 아닙니다. 무조건 잘된 것은 주님의 덕으로 돌리고 잘못된 것은 무조건 내탓으로 돌릴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내탓주덕입니다. 잘못되면 무조건 내가 허물진 탓이요 잘되면 주님께서 내게 은혜 내려주시는 주님의 덕으로 돌리는 사람이 하늘의 문화를 창달하는 사람입니다.
■ 이번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특별히 먼저 저를 포함한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가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복음화율이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나라입니다. 전 국민의 거의 30퍼센트가 하늘 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을 믿는 나라입니다. 국민들의 30퍼센트가 매주 주일이 되면 성당이나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나라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와 같이 그토록 많은 퍼센테이지의 성도들이 교회나 성당을 출입하는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새벽기도회를 하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OECD 나라들 중 자살율 1위, 5분마다 1명 자살, OECD 나라들 중 부패률 1위, 낙태율 세계 1위, 술소비량 세계 1위, 1인당 음주량 세계 1위, 간암으로 사망률 세계 1위, 담배로 인한 페암 사망률 세계 1위, 매춘부 수출율 세계 3위, 우리나라가 첨단을 달리는 1위가 많습니다만 술에 관해서는 단연코 톱입니다. 술과 관련하여 교통사고 내는 비율도 세계 1위, 술로 인한 간암발생율 세계 1위, 간암으로 사망하는 비율 세계 1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적 갈등지수 세계 1위, 남녀성별갈등지수도 세계 1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누룩이라 하셨고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였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대한민국 안에서 30퍼센트가 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토록 세계최고의 죄악으로 얼룩지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개독교라고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시면서 소금이 제맛을 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에게 단지 밟힐 뿐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개독교라고 개같은 종교! 독을 품어내는 종교!라고 짓밟히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서 진정 빛을 비추이고 소금이 되었다면 정의롭게 살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감화를 받아 저들도 따라하기에 사회적으로 부패와 부정도 상당히 없어졌을 것이고 관급비리나 모든 공사가 정당하게 되었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무슨 성수대교의 붕괴도 없었을 것이요 삼풍백화점의 붕괴도 없었을 것이요 유병언의 구원파 같은 이단들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요 세월호 참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빛이 되지 못하였기에 도도처처에 어둠의 세력들이 판을 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금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탐욕과 부정이 더욱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특별히 저를 포함하여 교회의 교역자들의 책임이 너무도 큽니다. 강단에서 복음을 강조하지 아니하고 복받으라! 은혜 받으라! 하여 영적인 탐욕만을 자극하여 성도들이 바르게 살고 정의롭게 살고 평화를 추구하고 생명을 살리고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생활신앙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기독교로 인해 오히려 사회가 영적인 탐욕으로 더 푹푹 썩게 되었습니다. 금번 이태원 참사 역시도 더 깊은 근원을 탐사해 가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잘못이 있습니다. 이 사회를 기도하지 않는 잘못,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잘못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할로윈 축제가 무엇입니까? 켈트족은 일 년을 열두 달이 아니라 열 달로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10월 31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해 농사인 추수가 끝나고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일이 바로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10월 마지막 날에 축제를 열었습니다. 특히 10월 마지막 날은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가 열려 있어,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으로 내려와서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자는 그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도 차려놓았으며 변장까지 해야만 망령들이 알아보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금번에 20대와 30대 젊은이들이 많이 희생되었는데 이것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해야 할 제목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은 젊은이들이 그런 망령들에게 흥미를 일으켜 가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집으로 몰려가게 하고 미어터지게 해야할 책임과 진리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교회 안에는 점점 텅텅 비어가고 젊은이들은 그런 놀이와 축제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 회개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실로암 망대 사건을 언급하면서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망하리라 하셨습니다. 회개는 단지 잘못했다고 눈물을 질질 짜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바꾸는 것입니다.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저 세상의 탐욕으로 무한 경쟁하고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성경 헬라어르는 메타노이아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요 가치를 바꾸는 것이요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마귀와 지옥을 향하는 가치와 문화로부터 하늘나라와 주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요 바꾸는 것입니다. 복음성가에 이 땅에 부흥과 회복은 나로부터 시작되리!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정의와 생명의 회복은 나로부터 나의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금번 참사사태와 그 이전의 참사사태들을 보면서 내가 이 땅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 땅에서 소금과 빛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참사가 일어났다고 깨닫고 나로부터 먼저 진실한 삶,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삶,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삶,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여기시는 삶으로 주님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삶으로 전환하는 첫걸음으로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누룩씨가 되어 이 땅의 사람들과 이 땅의 모든 세대들과 이 땅의 문화와 가치관들을 거룩하게 부풀어 오르게 할 때 이 땅에 참사는 더더욱 줄어들게 되고 하늘을 찬양하는 기쁨의 축제는 더욱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금번 이태원 참사 사태를 보면서 저희로부터 회개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게 하여 주옵시고 그리스도의 빛과 그리스도의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로부터 먼저 회개하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정의롭고 올바른 삶을 살게 하시고 모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거룩한 누룩씨가 되어 이 땅을 바꾸어 나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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