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0일(주일) 오전 7시 30분(1부) 오전 11시(2부) 주일낮예배 작천교회
창조절 아홉 째주일 / 종교개혁주일 505주년
성경본문 : 로마서 1장 17절
제 목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창조절 여덟 째 주일과 종교개혁주일 제505주년 기념주일에 하늘 아버지의 집에 예배드리고자 나아온 하나님의 자녀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1부 남도영 안수집사 / 2부 시온찬양대) 위에 지금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작천교회가 속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국에 있는 카톨릭교회들과 이단종교를 제외한 모든 개신교회들이 함께 지키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주일에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말씀인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만일 하나님의 의가 인간세상에 있는 정의 같은 것이어서 잘못한 것을 추상같이 밝히고 벌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죄인들에게 복음이 되는 것일까요? 만일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합시다. 그 죄는 주홍같이 붉은 죄여서 심판을 피해갈 수가 없다고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가 그 죄에 대해서 판결하기를 죽음과 동시에 영영 형벌인 지옥행이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면 그것이 죄인인 그 인간에게 복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내가 영영 형벌에 받아 지옥으로 가게 된다면 그것이 어찌 복음이겠습니까? 오히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슬픈 소식이고 반복음이고 비복음인 것이죠! 내가 죽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지옥에 간다고 한다면 참으로 원통한 일인데 어찌 그것이 복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는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 같은 것이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가 어디에 나타났습니까? 인간 세상에 나타났지요! 인간세상은 그러면 어떠하였습니까? 노아시대는 인간의 불의로 가득하였습니다. 어디 한 번 볼까요? 창세기 6장 5절에서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인간의 불의를 보시자 하나님은 한탄하고 근심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7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노아시대의 하나님의 의는 인간을 모두 쓸어버리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가만히 있지 아니하셨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죽음입니다. 한 때 인간의 불의를 보았을 때 하나님은 대홍수를 일으켜 노아 가족 만 남겨두고 전멸시키셨습니다.
□ 그렇다면 노아시대가 아닌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노아시대 사람들의 불의와는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의 불의는 서로 차원이 달랐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대의 불의와 악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아담과 이브 이후에 인간의 불의는 점점 더 그 정도가 심해져 가지 않았습니까? 카인과 아벨은 사람을 죽이더니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도 나를 해가 되고 상하게 하면 77배 복수를 하겠다고 한 만큼 더 악해져 갔습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의 악은 더욱 극심해져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 불의한 인간들을 노아시대의 홍수로 전멸시켜 버린 것과 같이 소돔과 고모라 시대 유황불로 전멸시킨 것과 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은 모든 무리들을 다 몰살시켜 버리는 것과 같이 나타났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셨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이룬다면 인간의 불의에 대한 심판은 죽음입니다. 성경에 보면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만일 불의한 인간을 죄악을 행하는 인간을 그냥 살려둔다면 죄악을 묵과하신다면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은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신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은 되실지언정 의의 하나님은 아니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의가 울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딜렘마를 어떻게 해결하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의와 사랑을 어떻게 동시에 해결하신 것입니까?
□ 하나님의 의를 나타나게 하시는 계획은 아주 심원한 데 있었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저지른 모든 불의와 죄악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이 받을 형벌과 심판을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형벌을 받으심을 보시고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으심은 불의한 인간의 죄를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인간은 심판받아야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받아드리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뿐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영생으로 옮겨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바로 이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긍휼하신 뜻이며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긍휼하신 뜻은 인간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며 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구원의 배후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불의를 단지 심판시켜 멸망시키고 지옥을 예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인간을 긍휼히 여겨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심판당하심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함이 바로 이것입니다. 노아시대의 하나님의 의는 그저 심판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의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보시고 그 예전과 같이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싹 쓸어버리셨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기는 하겠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아니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의를 보시고 그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용서하셨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일지언정 의의 하나님이 아니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는 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의의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보통 종교상에 나타난 신(神)들은 아주 엄격합니다. 조금치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형벌이 아주 심합니다. 보통 신들은 계율을 지키라고 하고 지키지 않은 신도들을 무참하게 죽여 버립니다. 물론 그렇게 나타나는 신들은 참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만든 우상신들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인간은 참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몸을 입으시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하나님이셨고 자신을 희생하시어 자식을 살리는 진정 하늘 아버지이셨습니다. 마치 어미가 자신을 죽여 새끼를 살리는 모정으로 가득 찬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되 그저 마법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 있으라 한마디 말씀으로 구원하심이 아니라 직접 인간세상에 내려 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죽으심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시고 최고의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어떤 종교의 신이 도무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상상이상의 방법으로 하나님 만의 방법으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능한 방법으로 그냥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손해보심도 없이 하나님은 하나도 눈물흘리심이나 고통당하심 없이 그렇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희생하시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지극히 인간을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에서 태어나서 34세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본래 카톨릭교회의 어거스틴파 수사였던 루터는 한마디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회개가 없이 면죄부를 주고 속죄를 주는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것임을 비판하고 로마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는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을 주장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원래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루터의 아버지는 아들이 귀족계급의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여 아들을 법대로 보냈고 루터는 엘볼트 대학에서 열심히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들판을 걸으면서 인생에 대하여 얘기하던 도중에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쳐서 친구가 새카맣게 그을린 시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루터는 너무도 무섭고 놀라서 “오! 하나님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서원하게 됩니다. 그 길로 어거스틴파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해 나갔습니다. 당시 카톨릭교회는 공적신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면 뭔가 행위와 공적이 쌓아야 한다는 신학입니다. 루터 역시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고행을 거듭하였으며 수도원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하였습니다. 카톨릭 신학에 근거하여 고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루터가 구원을 얻으려고 그렇게 갖은 고행을 하고 뭔가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런 고행을 아무리 해도 마음에 어떤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의 두려움은 높아져 갔지만 속죄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루터는 라틴어 원전을 읽게 되었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에 집중해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로마서 1장 17절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말씀은 어둠 속에 있었던 마르틴 루터의 영혼에 큰 빛을 던져 주었으며 그 말씀을 부여잡고 카톨릭교회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중세교회를 뒤집어 버리는 개혁을 말씀과 더불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한 말씀으로 그 말씀과 배치되는 행태를 한 카톨릭 교회의 공적주의 신학과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고 그것을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를 발표함으로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 된 것입니다.
■ 카톨릭교회의 공적주의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어떤 공적과 선행과 업적을 쌓아야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죄투성이의 인간이라도 선행이나 공적을 쌓으면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카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에 비추어서 틀렸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말씀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을 말하였습니다. 예수님 어머님 마리아, 교황, 사제들 및 모든 고위 성직자와 하위 성직자들, 그리고 성물들도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이같은 가르침의 연장선상에서 로마 교황이 명령하는 바 면죄부를 사게 되면 지옥에서 연옥으로 옮겨지게 되고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어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성경에 없는 가르침을 교리로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 로마 카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항목을 통해서 카톨릭 신학과 교리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성경말씀을 조목조목 인용하여 주장하였습니다. 루터는 어떻게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뇌했는데, 어거스틴파 수도회에서 루터는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로마서, 시편, 갈라디아서 강의를 통해 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칭의(稱義)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교리입니다. 당시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면죄부를 팔아서 그 돈으로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함이었습니다. 중세 카톨릭교회에서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이 직접 나서서 면죄부 판매를 독려하였고 로마 교황청에서 파송한 수사들이 각 나라와 각 교회를 다니면서 면죄부를 판매한 것입니다.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지옥에 갈 영혼이 연옥으로 옮겨지게 되고 연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바로 직행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당신 부모가 죽어서 지옥에 가 있는데 당신이 카톨릭교회가 판매하는 1000만원 짜리 면죄부를 사면 하나님께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신다고 강변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모에게 효성스런 이들이 부모님을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기고자 그 면죄부를 거액을 주고 샀습니다. 카톨릭교회 독일면죄부 판매위원장이었던 요한 테첼이라는 수사는 “여러분들이 헌금함에 금화를 집어넣어 쨍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여러분 부모님의 영혼은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갑자기 연옥으로 옮겨지게될 것”이라고 사기를 쳤던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이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게 됐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 성당은 한꺼번에 8천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입니다. 짓는 데만 100년이 걸렸고,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당대의 최고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했습니다. 이 막대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교황청은 면죄부를 판 것입니다. 그 면죄부를 더 많이 팔기 위해서 교황청은 전문 판매원 신부를 두고 그 일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면죄부를 사면 영혼을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워 진다는 것에 대해서 루터는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연옥은 성경에도 없는, 카톨릭 교회가 만들어 낸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 있는 중간 지대입니다. 아주 악한 죄인은 죽으면 지옥으로 가지만, 보통 죄인은 지옥으로 가지 않고, 연옥으로 보내져서 거기서 고행을 한 다음, 자격이 되면 천국으로 보내진다는 것입니다. 그 연옥생활은 몇 천년이 될 지 모르는데, 면죄부를 사는 순간 연옥에 있는 영혼은 그냥 천국으로 뛰어오른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카톨릭 사제로서 교황청 사업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면죄부 파는 것을 보고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이 면죄부 판매는 기독교 복음의 변질이며, 교황청의 기만이라고 공격하며 95개조 조항에 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루터는 성경에 근거하여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신학에 대해서 강하게 반박을 하고 그래서 가르치는 강단에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하여 반박하였던 것입니다.
■ 원래 면죄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곱 성사들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와 연관된 것입니다. 사제는 통회하는 고해자의 죄 고백을 듣고 죄 사면을 한 뒤 죄책에 대한 보속으로 시편 낭송, 특별기도 등의 행위를 하게 하였는데 면죄부는 이러한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되는 증서였습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맘껏 죄를 지어놓고도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면죄부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로마 교황청은 면죄부 영업에 열을 올렸는데, 연옥에서 당신들의 부모가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감정에도 호소함으로써 순진한 신자들을 현혹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황청에 교인들도 동조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진지한 신앙생활보다는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죄의식을 면하려는 손쉬운 신앙생활을 좋아하였으며 얼마든지 죄를 짓고 면죄부만 사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돈이 많은 신자들은 많은 죄를 저질러도 많은 돈으로 카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인데 그 근거를 로마서 1장 17절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 그때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개혁의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이,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만!!~, Sola Gratia 오직 은혜로만!!~,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만!!~ 이 세 원리로 당시 썩어빠진 교회를 개혁해 나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고 오직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로부터 비롯된 이 세 가지 원리로 의해 전 세계 각 곳에 개신교회들을 세웠는데 이들을 카톨릭교회와 대비하여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등 개신교회가 생겼고 개신교도들은 성경을 중심으로 한 믿음을 강조하였고 성경에 따라 구원은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권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강조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의 3대 원리가 중요한데 이 원리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종교개혁의 첫 번째 원리는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일반 신도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또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부들이 전하는 것만 백성들은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권리는 교회에만 있었고, 최종적 성경해석 권한은 교황에게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 루터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 사람들이 이것을 읽으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신자의 신앙과 행실의 표준입니다. 개신교는 우리 신앙의 표준, 우리 삶의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 하면, 오직 신구약 성경에 둡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를 따라 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말씀을 높이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 종교개혁의 두 번째 원리는, '오직 은혜로만' (Sola Gratia)입니다. 구원이 면죄부를 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어떤 공로나, 돈이나 면죄부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면죄부를 사면 구원을 얻는다’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루터의 입장은 에베소서 2:8-9절에 근거해서 말씀을 하였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값비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 세 번째 종교개혁의 원리는”오직 믿음으로“ (Sola Fide)입니다. 종교개혁은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말씀에 기초합니다. 마틴 루터는 당시 수도원에서 도를 닦던 수도사로 당시 교회의 교훈대로 아무리 선행을 힘써 보았으나 마음 깊은 곳의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대학의 교수 자격을 얻은 후 성경을 강의하게 되어, 로마서를 깊이 연구하는 중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비로소 확신과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요구하시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죄악을 속죄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없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사하여 주시고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작천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로마서 1장 17절에 굳건하게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종교개혁자의 3대 원리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바로 이 세 가지 원리에 의해 우리 작천교회가 굳건한 반석 위에 서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 나의 반석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이 찬송가 가사 그대로 우리 교회가 믿음과 말씀과 은혜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는 교회,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는 교회, 종교개혁의 전통에 서 있는 교회가 되도록 더욱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종교개혁주일에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하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작천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믿음과 삶이 로마서 1장 17절 말씀에 굳게 서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교회 작천교회가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오직 은혜로 살게 하시며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교회 작천교회가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굳게 서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에게 믿음도 저희가 만든 공로가 아니라 은총의 선물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구원해 주시는 은혜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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