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진목사

커뮤니티   >   목회자칼럼및활동   >   전직총무   >   배태진목사
2022년 9월 18일 창조절 셋째주일 / 고린도후서 2장 12~17절 /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 작천교회
2025-12-25 16:25:07
배태진
조회수   158

2022년 9월 18일(주일) 오전 7시 30분(1부) 오전 11시(2부) 주일낮예배 작천교회
창조절 셋째주일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2장 12~17절      
제    목 :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성령강림후 열한 번째 주일에 하늘 아버지의 집에 예배드리고자 나아온 하나님의 자녀들 위,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1부 남도영 안수집사 / 2부 시온찬양대) 위에, 지금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교단 총회가 정한 남신도주일입니다. 참 오래전입니다만 저는 “남자의 향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외국 영화인데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인데 춤도 잘 추고 여자의 마음을 알아주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여자의 혼을 빼놓는 멋진 말을 하고 어려운 처지에 속한 소년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어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제목을 왜 남자의 향기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서 남자의 향기는 주인공인 그 남자가 무슨 유명제품의 향수를 쳐서 바르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그 향기는 그 남자의 말이나 인격이나 그 남자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은은하게 배여 나오는 것들을 잡아서 영화제목으로 남자의 향기라 한 것입니다. 저도 남자입니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삶에서 은은한 꽃향기나 풀향기가 그 영화에서처럼 무슨 남자의 향기가 풀풀 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있었을 때 전병금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강남교회에 다녔는데 목사님이 해외 다녀오신 후에 언젠가 저에게 향수 하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걸 한 번 뿌렸는데 주변 사람들이 배 목사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계속 열심히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게 무슨 향수이길래 그렇게 말하나 해서 인터넷으로 향수 브랜드명을 검색해 보니 여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많이 당황하였고 그 즉시 딸에게 주었습니다. 딸에게 준 이후에는 향수를 더 이상 바르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저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향수에서 나는 향기가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에게서는 향기가 있는데 내가 향수를 바르지 않기에 향수의 향기는 더 이상 나지 않겠지만 내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하는데 나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는 현재 나고 있지 않는 것이구나! 저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회개를 하고 난 얼마 이후에 아내가 카카오톡에 문자를 하나를 보냈습니다. “오늘의 명언 -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교단 일을 할 때 저를 찍으려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났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그들의 도끼날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묻혀주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찍으려는 이들을 직접 도끼날을 들고 찍으려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도끼날을 들고 찍으려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쿠 목사가 예수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야 하는데 큰 일 났구나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요즘도 그런 회개를 또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얼마나 수련을 하고 연단이 되어야 나에 대해서 긍정적이지 않는 이들에게 나에 대하여 좋은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의 생각의 날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묻혀 줄 것인가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아득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둘째 편지에서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사망과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풍기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자들에게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망할 자들에게나 그리스도의 향기가 하였습니다. 이는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끼리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약 5년 살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가서 하루에도 여러 번 이를 닦는 일과 샤워하는 일을 자주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이유가 있었습니다. 첨에 갔을 때 버클리 대학에서 언어공부부터 하는데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학생이 코를 싸쥐면서 “You stink!” 했습니다. 너한테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뜻입니다. 그제서야 제가 먹은 김치 냄새와 마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슬슬 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 이를 두 세 번씩 닦고 샤워도 자주 하고 안 바르던 향수를 살짝 뿌리고 밖을 나갔습니다. 그제서야 제 옆자리에 차츰 한 두 사람들이 앉기 시작하였고 저에게서 냄새문제는 없어졌습니다. 미국생활 잘하려면 냄새관리부터 잘해야 하겠다는 관념을 가진 것입니다.  

■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2장 16절 상반절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이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 그리스도인은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풍기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냄새라 하였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망하면 시체가 되고 시체가 되면 썩는 냄새가 납니다. 냄새 중에 가장 고약한 냄새가 바로 시체 썩는 냄새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망에 이르는 냄새라 하였을 때 말씀하고자 한 바는 시체 썩는 냄새 그 자체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 말라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 썩으면 다른 것들보다 더 안좋은 냄새가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악에 의하여 썩으면 세상사람들보다도 더 역겨운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사망에 이르는 냄새는 죽어서 시체가 되어 썩는 냄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생이 죄악으로 버무려져 있어서 나오는 것인데 이는 시체 썩는 냄새보다도 더 역겨운 냄새로서 그 사람의 인격에서 새어 나오는 독소요 냄새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고린도는 항구도시로서 온갖 항구를 통해서 향락문화, 쾌락음란문화, 폭력문화, 우상문화가 스며들어왔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한 편으로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런 문화에 푹 젖어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한 발은 교회 안에 두고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받아 챙기려 하고 또 한 발은 세상에다가 두어 세상이 주는 쾌락과 탐욕을 채우려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저 놀부 두 손에 떡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세상사람과 섞여 온갖 나쁜 풍조에 물들어가고 물들이는 것을 보고 사도바울은 걱정하고 근심한 것입니다. 저들이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풍기며 교회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라고 하고 생명이라고 하는 것들을 믿겠느냐 그것입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보다도 훨씬 악하고 더러운 사망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을 진실하게 받아 드리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고 그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예수도 그작저작하고 냄새를 피우는 속세적 인간으로 생각하고 믿으려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음의 냄새를 피우는 이로 생각할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예수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일이 되어 예수복음이 가로 막혀질 것이 아닌가 걱정하면서 사망의 냄새를 풍기는 이가 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내가 이 마을에 살면서 온갖 악행을 다하면서 그 악행을 회개하지 않으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알려지거난 내가 교회를 다니자고 권면하면 그 마을 사람들이 분명 그럴 것입니다. “나는 예수 같은 것 절대 믿지 않겠다! 너 같은 똑같은 새끼가 될까봐 결코 믿지 않겠다! 네가 그렇게 해서 천국을 간다면 그 천국에도 가지 않겠다 너 같은 것이 있는 그곳은 천국이란 이름이 붙어 있을지라도 그곳은 지옥일테니까 가지 않겠다!”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개판오분전으로 산다면 나라는 존재는 가는데 마다 사망의 냄새를 풍기게 된다면 나로 인해 복음전도는 가로 막히게 되고 나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과는 영원히 빠이빠이하게 되고 믿음이란 것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바람의 파이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바로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한국인 최배달인데 그는 자기가 죽을 것을 대비해 항상 깨끗한 내복으로 갈아입는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죽었을 때 더러운 내복을 입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죽고 난 다음에 내 내복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았을 때 그리고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내 인격에서 나는 냄새가 문제입니다. 언젠가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데 바로 앞자리에 검은 옷을 입고 상복마크를 입은 두 사람이 휴게소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그 사람에게 형님뻘 되는 사람이었는데 “하이고 그 인생 잘 가부렀어! 술만 쳐 자시고 새끼들은 하나도 돌보지 않았제! 형수님에게 빚만 잔뜩 안겨놓고 가버린거야! 하이고 그 인생 잘 가부렀어!” 들어보니 “아이고!”도 아니고 “하이고”였고 그 인생 잘 가부렀어! 하는 얘기를 두 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을 듣고 고인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고 가는데 남겨놓고 간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으면 쓰겄습니까? 그래도 그 사람이 가니까 참 아쉽다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2장 15절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서 향기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향기를 맡으시기를 좋아하신다 그 말씀입니다. 창세기 8장 20절에서 21절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올려 드리는 향기를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하였을 때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야 하는 존재임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구절을 잘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 내야할 대상은 먼저는 하나님 앞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향기를 풍겨내야 하고 그것이 전도도 되고 선교가 되어야 하는 것만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삶이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눈이 있으시고 오른손과 왼손이 있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코가 있으셔서 냄새를 맡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에 사람들이 온갖 죄악의 쓰레기 냄새를 풍기자 노아와 그 가족들만 남기고 물로 쓸어버리셨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죄악이 풍기는 역한 냄새를 풍기자 유황불로 다 태워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고약한 냄새, 역겨운 냄새를 맡으시고 심판을 행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향기를 맡으시고 그 향기를 풍기는 자에게 복과 은혜를 내리심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향기를 제일 좋아하실까? 그것은 고린도후서 2장 15절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향기는 우리가 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최고의 선물이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향기가 어디서부터 나게 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때 하나님께서는 최고로 좋아하시고 그 향기를 내는 인간을 복과 은혜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면 사람들도 그 향기를 즐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 향기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겠습니까? 불교의 법구경에 보면 그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깨끗하지만 연기법에 따라 복도 부르고 죄도 부르나니 마치 이 종이가 향 가까이에 있어 향내가 나고 저 새끼줄이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남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주변에 물들어 조금씩 익숙해지건만 스스로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세기의 미인이고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연인이었던 마릴린 몬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을 잘 때 무슨 옷을 입고 자나요? 할 때 마릴린 몬로가 짧게 대답하였습니다. “샤넬 넘버 파이브!” 그것은 잘 때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몸에 샤넬 넘버 파이브 향수만 바르고 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중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유명하게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샤넬 넘버 파이브란 향수를 구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까요? 그리스도 넘버 파이브라는 향수라는 브랜드 네임의 향수가 있어서 그것을 바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까요? 아닙니다. 정채봉 시인이 쓴 수필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그 방에서 화투판을 벌였다. 담배를 피우며 고기를 구었다. 술을 마시고 또 마시며 벌겋게 되어 떠들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악취에 코를 쥐었다. 그러나 그도 얼마가지 않아 함께 묻혀 버리고 말았다. 저녁 무렾이 되자 그를 데리러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한테서는 신선한 향기가 나고 있었다. 어른들이 물었다. ”너는 어디 있다가 오느냐?“ 아이가 대답했다. ”꽃밭에서 놀았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무슨 내음을 묻히고 있는지요?” 이렇게 끝납니다. 내 존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고기 굽고 담배 냄새 자욱하고 공기도 잘 소통되지 않는 냄새 나는 곳에 있었느냐 꽃밭에서 하루종일 놀았느냐가 내가 무슨 냄새를 피우는지 내가 무슨 향취가 나는지가 결정됩니다. 내 존재의 중심, 내 영혼의 한 가운데 무엇을 영접하였는지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가사에 보면 “주는 저 산 밑에 백합”이라고 두 번 적혀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중심 속에 저 산 밑에 피어나는 백합꽃이신 주 예수님을 모시게 되면 나는 내가 무슨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 인생은 내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어 하나님으로 부텅 은혜와 복을 받게 되고 사람들에게도 풍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향을 싼 종이가 되면 종이가 무슨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히 향내를 발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면 하나님의 사랑과 고임을 받고 은혜와 복을 받고 사람들로부터도 존경과 칭찬을 받고 싶다면 내 인생의 품질을 상향시키고 고품위의 인생으로 살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할 일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내 존재의 중심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의 예수님만 영접하면 그 은혜로우신 예수님만 영접하면 내 인생은 내가 무슨 땀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어느 새인지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고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내 안에 내 자아가 중심이 되게 하고 내 탐욕의 생각과 판단이 중심이 될 때 결국 나는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얼마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영빈관을 짓겠다고 내년 예산을 짜는데 880억을 책정해 놓아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벌집과 같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공격하였습니다. 국민은 태풍 힌남노로 인해 수해를 당하여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코로나로 장사도 안되고 얼마나 고통당하고 있는데 국민은 물가고로 신음하고 있는데 삼중고 사중고 오중고로 고생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한가로이 아방궁 같은 것을 지어 혈세를 거기에다가 바치는 것이냐 하고 질책하자 황급하게 그 예산항목을 거두어 드렸습니다. 대통령이건 그 누구이건 간에 자기 중심으로 정책을 하거나 정치를 하게 되면 그것은 국민들에게 여실히 드러나서 냄새를 피우게 되고 대통령 지지율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자기의 유익만을 위하여 살게 되면 그 인간은 악취를 풍기게 되고 얼른 그 공해지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있는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하지 아니하고 아무런 봉사를 하지 아니하고 섬기지 아니한다면 오직 자기 교회만을 성장시키려 하고 교인수나 늘이려 하고 교회 헌금액수를 늘이는데서 교회의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면 세상공동체와 무슨 차별성이 있고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교회나 생명을 나누는 교회가 아닌 것으로서 결국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게 되고 악취를 풍겨내게 되어 교회는 점점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저는 오늘날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가 개독교로 욕을 얻어 먹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말할 수 없이 축소재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1970 년대 고공행진의 성장을 멈추고 1980 년대와 1990 년대 정체기간을 지나 이제 21세기에서부터는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별로 한국기독교가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보고는 예수 믿고 싶지 않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뭐니뭐니해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전도의 문을 닫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착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만 무섭게 이기주의적이고 차갑고 비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점점 하향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새 교우가 왔는데 적지 않은 수가 교회 안에 있는 교우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 다시는 예수 따위는 믿지 않겠다고 하고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아니면 카톨릭 교회로 가버립니다. 인구전수조사 -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간 경우 조사 : 개신교는 시댁과 같은데 카톨릭은 친정과 같더라!)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아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 버리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닌 악취를 풍겨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교회에 왔다가 얼른 그 공해지대를 피해서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죄와 악에 버무려 살고 똑같이 종교인의 아집과 독선을 행하게 된다면 교회 안에서부터 붕괴의 조짐이 일어나 교회는 이제 쇠망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에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 안에 사시게 되면 나는 자연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어 점점 그 향기를 맡으려고 그 사람 곁에 오게 되고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나아오게 되어 교회는 점점 확대재생산을 하게 되고 선교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질 것입니다. 교회가 서게 되거나 넘어지게 됨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담지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느냐 그렇지 아니하고 종교인의 아집과 독선의 냄새를 풍기느냐에 따라 정하여지게 될 것입니다. 

■ 저는 저와 작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그 향기를 풍겨내면서 신나게 의미있게 가치있게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기관에서 오래 일하였고 거기서 배우다 보니 무척 정치적인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멀고 먼 삶을 오래 살았습니다. 저도 간데마다 향기 풍겨내게 하소서!의 삶이 아니라 간데마다 악취 풍겨내게 하소서! 는 삶을 살았습니다. 일을 할 때에도 주장하는 자세로 할 때가 많았고 내가 하는 방법과 원칙을 꼭 관철시키려 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저와 함께 일하는 이들이 제가 안보일 때는 저를 꼰대라고 부르며 저를 많이 비판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중심 화두로 살았던 주제가 어떻게 하면 제가 악한 영향력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않으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그저 예수만 믿는 독선적인 사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착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교단정치를 하면서 나쁜 정치를 함으로 인해 저로 인해 상처를 받은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고치려 해도 잘 고쳐지지 않고 다시금 예전의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제가 가진 한 가지 해결책은 바로 내 중심 속에 예수님께서 언제나 계시게 하자는 것이었고 그 방법 중에 하나는 찬송가 278 장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그 찬송의 후렴을 계속해서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늘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가슴에 손을 얹고 반복하여 278장 후렴을 부르게 되면 어느 사이인가 주님이 내 안게 현현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이기주의적인 것들이 차츰 사라지게 되고 주님께서 저를 이끌어가심을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내 인생이 진실로 은총의 예수님을 모시고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진실로 찬송부르고 기도하는 삶으로 산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로부터 퍼져 나가게 됩니다. 내 맘에 기쁨의 주님이 사실 때에는 그것이 넘쳐나서 자연히 이웃에게도 넘쳐흐르게 되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됩니다. 오늘은 남신도주일입니다. 우리 남신도들에게 여러 가지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물질을 더 주십시오! 더 높이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내 가족들이 더욱 안전하게 해 주십시오! 그런 기타 등등의 소원도 있을 것입니다만 다른 소원은 접어 두시고 내가 진실로 향기를 품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원과 함께 이 시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 제 안에 거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안에 생명이 되옵시고 저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제 조용히 침묵으로 묵상하면서 내 안에 주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들어오시기를 간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냄새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 세상에서 냄새를 피우는 이들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인생이 죄와 악과 짝하여 사망의 악취를 풍겨내면서 사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가 이 세상에 있음으로 인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의 맘을 상하게 하거나 남의 눈에 눈물을 쏟아내는 일에 가담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 인생이 남의 말을 나쁘게 하거나 남을 해꼬지하거나 이웃의 생명을 허약하게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돕는 일을 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의 삶이 이웃에게 슬픔을 안겨주거나 사람들을 무시하고 나 자신을 주장하거나 사람들과 합하여 사람을 소외시키는 자리에 결코 서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삶이 있음으로 해서 조금치라도 주변이 밝아지고 맑게 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지극히 적은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 인생이 누군가에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고 보람을 안겨주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인생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은은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저희 속에 오시옵소서! 저희 속에 좌정하여 주시어 생명이 되어 주시옵소서! 저희를 다스려 주옵시고 저희가 이 땅에서 욕정과 탐욕에 의하여 살지 않게 하옵시고 저희가 주님의 참 사랑의 향기를 풍겨내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 속에 늘 좌정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계심으로 인해 어디를 가던지 저희가 주님의 향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모두가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그 사랑의 향기를 풍겨내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공지 2025년 10월 25,26일 CPBC 평화방송 라디오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인터뷰 배태진 2025-11-12 113
4480 2024년 4월 28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 창세기 8장 20~22절 / 노아의 예배 정신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03
4479 2024년 4월 21일 부활절 넷째주일 / 시편 37편 1~4절 /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87
4478 2024년 4월 14일 부활절 셋째주일 / 마태복음 5장 13~16절 / 너희는 세상의 소금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04
4477 2024년 4월 7일 부활절 둘째주일 / 여호수아 24장 14~18절 / 너희가 오늘 택하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02
4476 2024년 3월 31일 부활주일 / 로마서 8장 31~39절 / 넉넉히 이기느니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00
4475 2024년 3월 24일 종려주일 / 이사야 53장 4~6절 / 고통에 따른 인간의 네 가지 반응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23
4474 2024년 3월 17일 사순절 다섯째주일 / 베드로전서 4장 8절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42
4473 2024년 3월 10일 사순절 넷째주일 / 요한계시록 14장 12~13절 / 권사님! 우리 장복례 권사님!!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94
4472 2024년 2월 25일 사순절 둘째주일 / 이사야 53장 1~7절 / 십자가! 나 항상 생각할 때에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11
4471 2024년 2월 18일 사순절 첫째주일 / 창세기 26장 1~5절 /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일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95
4470 2024년 2월 11일 주현절 여섯 째주일, 신학교육주일 / 마가복음 4장 30~32절 / 겨자씨와 겨자나무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10
4469 2024년 2월 4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 창세기 1장 25~31절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15
4468 2024년 1월 28일 주현절 넷째주일 / 시편 90편 1~12절 /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53
4467 2024년 1월 21일 주현절 셋째주일 / 마태복음 26장 6~13절 / 그를 기억하리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46
4466 2024년 1월 14일 주현절 둘째주일 / 태복음 7장 9~11절 / 하늘 아버지의 마음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28 116
1 2 3 4 5 6 7 8 9 10 ...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