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1일(주일) 오전 7시 30분(1부) 오전 11시(2부) 주일낮예배 작천교회
창조절 둘째주일
성경본문 : 역대상 29장 10~12절
제 목 :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나이다!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성령강림후 열한 번째 주일에 하늘 아버지의 집에 예배드리고자 나아온 하나님의 자녀들 위,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1부 남도영-남영선 안수집사 / 2부 시온찬양대) 위에, 지금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과 지난 주간 소천하신 김진석 집사님과 박인숙 집사님의 모친이신 고(故) 조매자성도님과 모든 유자녀손들 위에 위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토요일 새벽에 조매자 성도님 향년 92세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어제 임종예배를 드렸고 오늘 1부 예배후에 산림조합추모관에서 입관예배를 드릴 예정입니다. 지혜있는 자의 마음은 잔치집보다는 초상집에 있다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추석명절이라 바쁘시겠지만 예배후 8시 45분경에 교회에서 산림조합추모관으로 출발하는 차들에 분승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국환송예배는 내일 월요일 아침 오전 6시 30분에 산림조합추모관에서 드릴 예정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고 조매자 성도님의 영혼을 은총의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기를 중보하며 기도해 주시고 천국환송예배에 참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잠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 추모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으로부터 92년 전에 이 땅에 생명을 주시어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하신 조매자 성도님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옵니다. 생명과 생명 이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매자 성도님의 영혼을 받아 주시옵시고 그 영혼이 하늘의 넉넉한 품, 구원과 영생의 품 안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예비해 주신 영원한 생명세계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김진석 집사님과 박인숙 집사님을 위로하여 주옵시고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삶이 참으로 짧고 유한함을 깨달아 더욱 주님의 일에 힘쓰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과 생명이 되신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 오늘 본문인 역대상 29장 12절 말씀을 다시금 들어보십시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 모든 사람을 /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는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이 이 신앙고백을 한 것은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하여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잘 아시겠지만 다윗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고 인생의 단 맛과 달콤한 맛이란 맛은 다 맛보았고 인생의 희노애락애오욕을 다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름도 없는 시골 한구석에서 일약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입니다. 왕으로서 온갖 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하고 개선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다윗은 온갖 인생의 쓴 맛, 매운 맛, 신 맛, 떫은 맛을 다 본 사람입니다. 아들한테 쫓겨다니는 비운의 쓴 맛을 다 보았습니다. 사울왕에게 죽을 뻔한 위험을 수도 없이 당하였을 뿐 아니라 불레셋 군대에게로 피신하여 침을 흘리면서 미친 척을 하여 살아나기도 한 떫은맛 매운맛도 보았습니다. 다윗과 같이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그야말로 하류인생도 없고 다윗과 같이 높은 봉우리에서 상류인생의 영광을 누리면서 인생의 산전, 수전, 수중전, 공중전까지도 다 치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말년에 이르러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짧게 한 마디로 요약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로 바치면서 분명하게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인생의 부귀, 인생의 영화, 인생의 출세와 성공,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주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 한 부분 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 역대상 29장 12절 상반절에서 나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부하게 됨은 주께로 말미암는다 고백하였습니다. 다윗과 같이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이스라엘 역사에 없을 것입니다. 조그만 시골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목동이었던 그가 선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누린 부귀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왕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 바친 재물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역대상 29장 22 절에 보면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 자신이 바친 금이 10 만 달란트 은이 100 만 달란트를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해 보면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니까 1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라고 할 때 80,000원으로 잡으면 금만 따져보아도 10 만 달란트이니까 48 조원어치의 금을 바친 것입니다. 은은 100 만달란트이고 성전에 바친 것만 해도 그 만큼 되니까 어림추산하면 다윗은 사재로만해도 100 조원 정도의 재산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빌게이츠인데 총 재산이 600억 달러 정도 한다니까 72조원 정도됩니다만 다윗은 빌 게이츠 보다도 더 많은 재산가였습니다. 다윗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부가 하나님의 손길에 말미암는다 하였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여 자수성가하여 그만큼과 부를 일구었다 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 보면 견훤 황제는 신료들 앞에서나 부인들 앞에서 항상 뻐기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한 제국을 일구었어! 이 견훤이 말이야!” 견훤왕은 나라를 일군 것을 자기의 공으로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쥐꼬리만한 것을 이루고도 자신의 공적이라고 나타냅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다윗왕은 자기가 누린 부와 귀는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 역대상 29장 12절 상반절에서 나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귀하게 됨도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귀하게 됨도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다 고백하였습니다. 귀가 무엇입니까? 귀하게 되는 일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높이 우러러 보게 된다든지 귀한 역할을 하게 된다든지 무척 소중한 존재가 된다든지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모든 일입니다. 다윗과 같이 시대를 넘어서 온 세상에서 귀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인들 중에 다윗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데이비드란 이름ㅇ리 그것이고 한 때는 조용기 목사님도 조다윗으로 이름으로 바꾼 적이 있었을 만큼 다윗의 이름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구약과 성경 전체에서 보면 다윗이란 이름이 몇 번 나오는지 아십니까? 880번 나옵니다. 성경에 이름이 딱 한번 나온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로마서에 나오는 에베네도도 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네도에게 문안하라고 나옵니다. 에베네도의 후손들은 조상의 이름이 성경에 나왔다면 얼마나 광영으로 알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조상의 이름이 단 한번이라도 성경에 언급되었다면 얼마나 귀한 영광이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이 존귀하게 된 것은 자신이 정치를 잘하여 스스로 존귀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귀하게 되어지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총의 손길로 역사하셨기 때문에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 다윗의 고백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부와 귀의 반대인 빈과 천도 주의 손길에 의해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가락을 까딱하시어 허락하시자 욥의 그 많던 재산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욥은 한 방에 훅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욥의 재산의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이요, 암나귀가 오백이었습니다. 동산만 그러했지 부동산은 그 많은 것들이 노니는 모든 들과 토지가 다 욥의 것이었으니 그 재산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던 재산이 단 한 순간에 아침의 이슬방울 쉬사라짐과 같이 단 한 순간에 공중분해되었습니다. 졸지에 빈하고 천하게 된 것입니다. 무일푼 거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다시 까딱하시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이 다시 한순간에 다시 돌아오는데 따블이 되어 돌아옵니다. 욥기 42장 12절에 봅시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복을 주사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그렇다면 단 한순간에 날아가버린 재산의 딱 갑절이 단 한 순간에 욥에게 생긴 것입니다.
■ 빈부와 귀천이 다 주께로 말미암음 때문입니다. 왜 주께로 말미암습니까?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만물란 모든 존재하는 만물을 말하고 주재란 다스리시는 분을 말합니다. 부와 귀를 포함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재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야! 다윗에게로 가거라!” 하시면 부가 즉각 다윗에게로 가고 “귀야! 너는 지금 곧장 다윗에게로 가거라! ”하시면 귀는 곧장 다윗에게로 가고 “영화야! 너는 곧장 다윗에게로 가거라!” 하시면 다윗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거나 하늘을 날아다님도 만물의 주재의 손에 달려있는 일입니다. 어찌 부와 귀만 만유의 주재께서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다윗과 같이 부귀공명도 부귀영화도 빈부귀천도 생사화복도 미와 추도 상승과 하강도 만유의 주재이신 주께로 말미암는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무슨 부모를 잘 만나든지 조상의 음덕이든지 묫자리를 명당으로 잡아서이든지 선천적으로 재주가 좋아서 그런다든지 일곱 개 복 중에 하나가 맞았다든지 팔자가 풀려서 그렇다든지 그렇지 않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행복 역시 전적으로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행복의 지표라고 합니다. 인생이 느끼는 의미와 가치, 인생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도 사실상 주께로 말미암음이요 그것 역시 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역대상 29장 12절 중반절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옵니다”. 다윗은 큰 권세와 능력을 한 손에 쥐었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권력의 힘과 능력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통치하면서 세상 권세와 능력이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를 철저히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큰 풍랑으로 휩쓸어 가시면 순식간에 잠시 만들어졌다가 꺼져 버리는 한바탕의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마치 바닷가 백사장에 모래성을 지어놓지만 파도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세상의 권력과 부가 그와 같이 허망한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주의 손에는 없는 것이 없으며 주의 손에 전혀 결핍되는 것이 없으며 주의 손에 모든 사건을 일으키시고 모든 폭풍과 사건을 잠재우실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이를 증언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0장 6절에 봅시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하나님의 손이 하고자 하시면 어떤 강대한 제국이나 어떤 권세가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을 막지 못합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제국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애급은 역사상 존재했던 이집트제국을 이름이요, 파샤는 페르시아 제국을 이름이요, 바벨론은 바빌로니아 제국을 말합니다. 이런 강대한 제국들이 모두가 한 순간에 모래성과 같이 무너져 내렸고 성경은 이런 제국들의 멸망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어 그렇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막강한 권력도 하나님의 손끝이 한번 스쳐 가시면 끝장입니다. 그 높고 높았던 바벨탑도 한 방에 훅하고 가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권세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거나 유를 무화시킬 수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권세는 전혀 없는 것에서 천지와 우주를 창조하시는 권세요, 있는 것을 단 한 순간에 사멸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지니고 있는 권세가 나 자신에게 역사하여도 그렇습니다. 나를 흥하고 흥하게 하여 번성하게 할 수도 있고 나를 단 한 순간에 망하게도 하시며 밑바닥까지 내려가게도 하시며 망하게 하시는 이상으로 당장에 생명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은 나를 패하게도 하셨다가 다시 패자부활전에 세워 나를 최종적으로 우승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 역대상 29장 12절 하반절의 고백을 들어 봅시다.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자를 크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크게 하셨습니다. 요셉 당시에는 아직 나라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아직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한 부족의 무리였을 뿐입니다. 이에 비해 당시 애급은 큰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없는 한 부족의 자손인 요셉이 애급이라는 대제국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가 어디 요셉이 피 눈물 나는 노력에 의하여 된 것입니까? 그 자리가 어디 요셉이 부단히 대권의 꿈을 꾸어왔고 그래서 대권프로젝트를 면밀주도하게 추진한 가운데 그 자리에 마침내 앉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손이 붙잡아 그를 그 자리에 앉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드 향유를 부은 여인을 말씀 한 마디로 크게 해 주셨습니다.마가복음 14장 9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만일 예수님이 아무 말씀을 하지 않고 넘어가셨다면 그 여인의 존재는 그저 잊혀진 존재로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은 그 여자가 당시는 물론이요,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한 귀한 일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1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기 까지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 여인의 삶을 두고두고 설교하고 기리고 높였습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로 인해 이 여인은 굉장히 알려지고 커진 대표적인 여인입니다.
■ 다윗은 모든 자를 강하게 하심도 주의 손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모세를 강하게 된 것이 모세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영도할 지도자로 강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훈련시켜 강한 지도자로 약 300만명의 민족을 이동시킨 지도자로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자 하시면 마른 막대기 같은 것일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을 영도하는 홀(지팡이)로 만들어 사용하실 수 있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면 마른 뼈와 같이 산산조각이 나 있을지라도 뼈를 붙이고 살을 붙여 일으켜서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이 고백 가운데 우리 역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자를 크게 하실 수 있으시다면 또한 모든 자를 적게도 하실 수 있음도 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자를 강하게 할 수 있으시다면 모든 자를 약하게 하심도 주의 손에 있습니다. 크게 하시고 작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약하게 하심이 아름답게 하시고 추하게 하심이 다 주의 손에 있습니다. 모든 자를 올라가게 하심도 주의 손에 있음이요, 모든 자를 내려가게 하심도 다 주의 손에 있습니다. 꼭 모든 자만이 아닙니다. 그 모든 자 안에는 나도 포함됩니다. 주의 손이 나를 크게 하실 수 있고 나를 적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실 수 있고 나를 약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시편 39편 10절에 봅시다. 주의 손이 약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시편 37편 24절을 봅시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나의 부귀영화, 나의 부귀공명, 나의 빈부귀천, 나의 인생행복, 나의 강함약함, 나의 큼과 적음 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 말미암고 주의 손에 달려 있다는 고백입니다.
■ 오늘 본문 역대상 29 장 12 절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부귀영화, 인생의 부귀공명, 인생의 빈부귀천, 인생의 생사화복, 인생의 강함과 약함, 인생의 큼과 적음, 인생의 출세행복, 인생의 상류인생와 하류인생, 우리 인생의 고저장단, 인생의 아름다움과 추함도 이 모두가 주께로 말미암고 이 모두가 다 주님의 능력과 권세의 손에 달려 있다 그 말입니다.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능력과 권세를 지니고 계시는 주님의 손입니다. 바로 부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의 손을 잡아야 우리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귀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의 손을 잡아야 우리 인생 가치하게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바로 강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의 손을 잡아야 우리는 건강하게 짱짱하게 그 힘으로 이웃을 도우면서 신명나게 살 수 있습니다. 바로 크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의 손을 잡아야 우리 인생 의미있고 가치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이 주님을 손을 잡습니까? 다윗은 어떻게 주님의 손을 잡았습니까? 시편 141 편 1절과 2절을 봅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여기서 “나의 기도가” 나오고 “나의 손드는 것”이 나옵니다. 다윗은 기도하며 손을 하늘을 향해 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다윗이 기도함으로 주님의 능력의 손을 꼭 붙잡았다함인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두 손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창세기 32장 26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축복하지 않으면 안 놓아주겠다고 주님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손을 잡은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29절을 보겠습니다.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렇습니다. 야곱도 주님이 능력의 주님이신 것을 알고 축복하기까지 주님을 놓아주지 않았을 때 결국 축복을 얻었습니다. 다윗도 부와 귀와 주께로 말미암는 줄 알고 항상 두 손을 들어 주님의 손을 잡으며 기도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결국 부와 귀와 크고 강하게 하심을 체험했습니다. 모세도 두 손을 높이 올려 주님의 손을 붙잡았고 결국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하여 그 유명한 자린고비에게 와서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자린고비는 그를 깊은 우물가 버드나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우물 바로 위에 있는 버드나무를 두 손으로 꼭 잡으라 하였습니다. 꼭 잡았습니다. 자린고비는 그 사람에게 이제는 한 손만으로 잡으라 하였습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한 손으로 온 전신의 힘으로 벌벌 떨며 잡았습니다. 마침내 자린고비는 두 손을 다 놓으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이구 그러면 난 죽어요! 소리쳤습니다. 자린고비는 바로 그것이네! 가르쳤습니다. “돈이 들어오거든 그것을 놓으면 내가 바로 죽는다는 마음으로 꼭 붙들게! 이 얘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영적인 면에서도 교훈을 줍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의 손길 없이는 견딜 수 없다! 우리 인생 하나님을 잡는 손을 놓아버리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허접하고 공허한 인생이 된다는 절실한 깨우침이 분명히 확실하게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 없이는 도무지 생존할 수도 없고 실존할 수도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기도하면서 마치 야곱과 같이 마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꼭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새로운 길과 새로운 삶의 차원을 활짝 열어 주십니다. 브니엘의 태양으로 우리 가는 앞 길을 환히 비추어 주십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술과 여자로 쾌락으로 주색잡기를 하여 할 때 우리 성도들은 두 손 불끈 쥐고 기도와 간구로 주손잡기를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 저는 언젠가 미국 카톨릭 수녀원에서 영성훈련을 하면서 배운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저 혼자 이 노래를 반복해서 부릅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외치사 빛으로 손 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제 마음이 간절해질 때마다 주님의 손은 제 곁에 오셔서 뭔가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사이 주님께서는 두 손으로 제 손을 꼭 붙잡아 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제가 큰 위기에 봉착할 때 저는 두 손을 모아쥐고 주님께 나의 약함을 호소하고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잡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분명히 주님은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역사해 주심을 한 두 번 체험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양 손을 한번 보시고 그 두 손을 꼭 모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손으로 하는 수십 만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손으로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있습니다. 그 손이 다른 손이 아닙니다. 그 손이야말로 바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손입니다. 그 손이야말로 주님의 은총을 꼭 붙잡아야 할 손입니다. 여러분의 그 손이야말로 주님의 능력의 손을 꼭 붙잡아야만 하는 거룩한 손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양손으로 주님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내리시고 부함도 내리시고 귀함도 안겨주시고 크게도 하시고 강하게도 하시고 높여도 주시고 짱짱하고 단단하게도 하시고 의미있게도 하시고 가치있게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두 손은 오른손과 왼 손은 그 손으로 다른 무엇을 하기 전에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요 가장 우선적으로 두 손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야곱이 그러하였습니다. 두 손으로 하나님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 때 비로소 야곱이 나아가는 인생길에 환한 브니엘의 햇살을 비추어주심을 체험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두 손에 힘을 주시고 앞으로 내 이 두손으로 다른 무엇을 하기 전에 주님을 꼭 붙잡는 기도의 손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할 때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손으로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에 브니엘의 태양을 비추어 주시고 부함도 주시고 강함도 주시고 귀함도 주시고 크게 하심을 주시고 복되게 하심도 주시고 아름답게 하심도 주시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넘치게 부어주실 줄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귀한 말씀을 주셔서 저희 인생에 지침을 삼도록 은혜 내려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주신 말씀대로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만유의 주재가 되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자를 강하게 하심과 크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저희가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늘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의 손을 붙잡아 주시어 저희손을 기도하는 손으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며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손으로 변케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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