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0일(주일) 오전 7시 30분(1부), 11시(2부) 주일낮예배(135)
주현절 일곱 째주일 작천교회
성경본문 : 누가복음 12장 6~7절
제 목 :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었으니!
■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주현절 일곱 째주 일에 주님 거룩한 존전(尊前)에 나아와 주일낮 1부예배 (2부예배)를 드리는 작천교회 성도님들 위에 여러 형편으로 성전에 나오지 못하고 유튜브를 통해 혹은 병상에서 예배드리시는 분들과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1부 여신도 솔리데오팀) (2부 솔리데오찬양팀)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작년 가을 언제인가 어느 장로님에게서 카톡으로 무슨 선물이 왔습니다. 그것을 열어보았더니 아이스크림 케이크였습니다. 가까운 베스킨 라빈스에 가면 스마트폰을 보여주면 줄 것이라 설명되었습니다. 전화를 드려서 어떻게 해서 제 생일을 기억하고 그런 것을 보내느냐 했더니 “목사님!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아세요?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보내준 선물도 귀하게 여겨졌지만 그 분이 저에게 준 멘트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기억한다”는 말이 가슴에 길이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니까 기억하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니까 아는 것이고 사랑하니까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테제를 가지고 한번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본문 누가복음 12장 7절에 주목해 봅시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에게는”이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희가 누구일까요? 1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그동안에 무리 수만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러면 “너희에게”는 일차적으로 먼저는 제자들을 지칭해 말씀하신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수 만 명들 예수님을 따라온 이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제나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한 말씀이니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작천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에게는 그리고 뭐죠?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머리털을 누가 세는 거지요? 여기서 “세었다” 하지 않고 “세신 바 되었다” 하셨으니 즉 높임말을 쓴 걸 보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세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구라고 해도 그저 점에 불과할텐데 그분께서 뭐 할 일 없이 우리 머리털을 한 올 한 올씩을 세고 계시는 걸까요? 그 머리털을 세서 뭐하실려고 그 쓸데없는 일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하늘에 계시면서 하두 심심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머리털을 세셨을까요? 머리카락 숫자가 좀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 머리카락 숫자가 대충 몇 올인지 세고 있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무척 소중히 여깁니다. 제가 부교역자로 일했던 목사님이 지금은 소천하셨습니다만 그분은 빛나는 머리를 지니셨는데 머리카락당 한 올 당 10만원씩 주고 수천만원 어치를 심으셨습니다. 용인교회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 빛나는 머리에 검은 머리로 뒤덮이게 하자는 제안에 따라 나는 다섯 올, 그래서 오십만원 나는 7올 70만원 해서 그렇게 해서 거의 수천 올을 심게 되셨습니다. 목사님에게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얼마나 소중한지 만질 때도 조심스럽게 만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카락을 심어준 성도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목회를 하셨습니다. 우리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얼마나 귀합니까?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보통 사람 저같이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이 12만개 정도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다고 할 때 한 올당 10만원씩 주고 심는다면 약 120억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데 우리 머리에 120억원어치의 머리가 자라고 있는데 별로 쓰다듬어 주지도 않고 별로 감사하지 않고 지냅니다. 오늘 이후부터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아이구 내 머리 120억원어치!” 하면서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만 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에 보면 우리의 발걸음도 세신다 하셨습니다. 욥기 14장 16절에 보면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왜 욥의 발걸음을 세셨을까요? 저는 지난 2016년 2월말부터 3월말까지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왔습니다. 약 한 달간 800km를 걸었습니다. 원래 그 길은 프랑스 생장 피에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뽀스텔라까지 약 800킬로미터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스페인 전도를 위해 걸었던 길이기도 합니다. 사도 야고보가 전도를 위해 걸었던 길이라 하여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순례자들이 이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도 아들과 같이 30일간 매일 35km씩 걸었습니다. 하루에 거의 52000보를 걸은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간 스마트폰에 있는 앱에는 하루에 제가 몇 킬로미터를 걸었고 몇 보를 걸었는지를 알려주어서 대략 하루에 4만 보를 걸었고 한걸음 당 67cm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걸음도 세셨으니 내가 가는 순례길의 걸음도 세시겠지! 제가 걸었던 걸음을 총 합산해 보니 약 126만 8천547보를 걸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길에서 여러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때론 스페인 사람들로 분장한 천사, 때로 같이 길을 가는 사람으로 도움을 주다가 사라지는 천사 등등 여러 천사들이 있어서 끝까지 그 길을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무척 목이 마르는데 속으로 콜라 한 잔 딱 마시면 좋겠는데 생각했지만 그 산 길에 무슨 콜라 같은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콜라 두 병 오렌지 서너개를 놓고 산기슭에서 팔고 있었습니다. 콜라 1유로 50센트를 해서 그 골짜기에서 콜라를 사서 마셨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못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거기서 그 사람이 콜라 몇 캔 오렌지 몇 개를 팔아서 뭐가 남겠습니까? 저는 꼭 천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가면서 길을 잃으면 꼭 그 지점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때론 할머니가 때론 길을 가는 순례객들이 그 길이 아니라고 말해주곤 표표히 사라졌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않고!! 저는 그들을 나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이 보내주시는 천사로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 제가 산티아고에서 걷는 길의 발걸음만 세셨겠습니까? 제가 인생에서 걸었던 모든 걸음을 세셨을 것이고 물론 제 머리카락도 다 세신 것은 그저 전능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 헤아리셨을 것입니다. 이는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 발걸음만 세신 것이 아니라 제가 가는 그 여정 위에 동행하셔서 이모저모의 도움을 주시고 걷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깨달음과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 머리카락을 세시고 발걸음도 세신다면 그분이 내 심장 박동도 세시지 않을까요? 내가 어머니 태에서 조직이 되어 어느 순간 심장이 쿵!하고 처음으로 뛰었덤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이 세상 이별하는 그 날까지 심장의 박동이 멈춰지는 그 순간까지 단 일이십초도 쉬지 않고 뛰었는데 그 심장박동수도 마찬가지로 세지 않으시겠습니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은 최초의 심장박동으로 시작되며 마지막 박동으로 끝난다 하였습니다. 보통 1분에 심장박동은 60회에서 100회 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이 1분에 80회를 뛰고 80년을 산다고 하면 80회 곱하기 1분 60초 곱하기 24시간 곱하기 1년 365일 곱하기 80년을 산다면 내 심장은 거의 한번도 쉬지 않고 3,363,840,000번을 뛴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의 심장 박동수 이 모든 것을 다 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머리카락도 세시고 계시는데 다른 것을 물어 무엇하겠습니다. 왜 세셨겠습니까? 시편 139편 1절에서 6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시는데 그저 단순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빠삭하게 알고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앉고 일어섬도 아시고 내 생각도 아시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무슨 말을 할지도 알고 계시고 내 앞도 아시고 내 뒤도 아시고 나의 존재의 전후좌우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고 합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마치 실시간으로 cctv가 촬영을 하는 것과 같이 한 동작 한 동작 다 알고 계시고 그저 내 겉으로 나타난 동작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은밀한 속까지도 한 눈에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시인은 말합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도무지 미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나의 발걸음도 오늘 일자까지 세시고 계시고 오늘 교회를 나왔을 때 집에서 교회까지 발걸음 수도 세시고 하나님께서 내 혈압의 수치도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내 심장박동수가 일 분에 몇 번 고동치는 지도 알고 계시고 내 혈당수치도 재고 계시고 내 혈압수치도 다 재고 계시다는 것인데 왜 하나님께서 그헐게 하실까요? 광대무비한 우주에 그 우주를 운행하는 거대한 일에만 매달려 있지 않으시고 왜 우주에서 보면 지구가 새까만 조그마한 점과 같을 것이고 그 지구 안에서 지극히 미물과 같은 나를 그것도 머리카락까지 왜 세고 계시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6절에 답이 있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두 앗사리온은 우리 돈 삼사천원에도 못미치는 것인데 그렇게 팔리는 참새까지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살피시는 것 아니냐? 지극히 적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로서 잊지 아니하신데 하물며 너희들이야 내가 내 형상으로 만들었으니 참새보다도 훨씬 귀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냥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보다도 더 귀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그 피로 속죄하시고 구원하실 만큼 나라는 존재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한 번 따라서 해 봅시다. “나는 나의 하나님께 온 우주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을 알려 합니다. 그저 아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알고자 합니다. 그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노영심이 부른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라는 가사가 참 재미있습니다. “나를 처음 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쓰는지 같이 걷던 한강 인도교의 철조 아치가 6개인지 7개인지 그때 우리를 조용히 따르던 하늘의 달이 초생달인지 보름달인지 우리동네 목욕탕 정기휴일은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속의 깊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이 노래가사를 보십시오! 어떤 남자가 왜 여자 노영심의 모든 것을 그것도 시시콜콜하게 별 걸 다 기억하는 것입니까? 다름이 아닙니다. 영심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그녀와 관계된 것이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면 자식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거나 기억하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의 모든 것을 알려 하고 자식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식이 밥 먹는 습관하며 어느 반찬에 젓가락이 자주 가는지 자식이 몸이 아픈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그 부분이 왜 아픈지 어느 병원이 그 부분에 전문인지 어느 의사가 그 분야에서 최고인지를 잘 압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가지고 있는 습관도 다 압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라든지, 밤에 잠꼬대하는 소리라든지 자식에게 역류성 위장병이 있다든지 그 위장병에는 무슨 약이 좋고 어떤 생활습관이 좋고 어떤 약이 있다든지 자식이 게임을 좋아하면 어떤 게임을 즐겨하는지 압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아는 것입니다. 그저 자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힘써 알려고 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 돈 많은 사람이 자식이 없는데 내 자식을 자기에게 준다면 그 자식의 몸무게만큼 나가는 양의 다이아몬드를 준다면 기꺼이 그 다이아먼드를 받고 엣따 내 자식 가져라 하고 선선히 넘겨주겠습니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입니다. 내가 혹 자식을 혹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자식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식이 난장판을 쳐도 사고뭉치다 하더라도 그 부모에게는 그 자식이 살아있으면 그 자식이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라고 부르면 그냥 그것으로 그냥 좋은 것입니다. 자식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결코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알고 알려고 하고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께서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세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머리카락수를 세시고 나의 발걸음을 세시고 나의 심장박동수를 세시고 내 고혈압 수치를 알고 계시고 내 혈당수치를 알고 계시고 내 약점과 결점과 허점과 단점을 알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나를 너무도 소중히 여기시고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다 아시고 다 세시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라고 너무 넓게 보지 말고 나 자신이라고 축소해 놓고 보십시다. 내가 믿고 있는 그 하나님께서는 내 걸음을 다 세시고 내 머리카락이 123,456올인지 그중에서 흰머리카락 올수도 98,765올인지도 아시고 계시고 주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세시고 계시는 것이 너무도 많아 내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여 오늘 이날 이때까지 걸어온 걸음이 몇걸음인지도 알고 계시며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수도 세고 계시며 내 몸속의 유전자 엑스 염색체와 와이 염색체의 조합도 알고 계시며 내 유전자 코드를 찍어 놓으시고 내가 지금까지 하였던 모든 말을 가슴 속에 새겨놓고 계시며 내가 했던 말이 모두 몇 문장인가 몇 마디인지도 알고 계시며 그 내용도 알고 계시며 내 몸속의 피가 하루에 몇바퀴를 돌고 있는지 총 몇 바퀴를 운행했는지를 다 세고 계십니다. 왜 세십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참 사랑하시니까 그렇습니다.
■ 그것들만 세실까요?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집인 성전에 나아오는 발걸음을 세시지 않을까요? 사랑하시기에 자신을 위해 바치는 봉헌물의 가치와 그것들을 드리는 그 마음의 정성의 무게를 다 달아 놓으시지 않을까요? 성도 여러분들에게 나중에 상을 줄라고 예수님 사랑과 예수님의 생명으로 여러분들이 베풀었던 그 사랑의 나눔과 그 생명의 나눔도 다 셈하여 계산해 놓지 않으셨을까요? 하늘 아버지께서 생각하시기를 저 집사는 지난번 고관절 수술을 했는데 걸을 때마다 오른쪽 무릎 관절에 큰 하중이 와서 결리고 아플텐데 그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이기고 하늘 아버지의 집이라고 날 찾아왔구나! 저 집사와 권사는 젊은 자식을 일찍 하늘로 불러왔는데 생명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믿고서도 일찍 데려간 나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새벽제단에 나아와서 늘 범사에 감사하는 예물을 드리고 있구나! 참으로 하박국을 닮았구나! 저 권사는 딸을 죽인 자를 내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을 간직하여 각 법정을 돌아다니면서 용서하여 풀어 주라고 증언하고 있구나! 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아니 저 장로는 아내가 먼저 갔는데도 아내의 몫까지 나에게 영광을 돌리려구 참으로 갖은 애를 쓰면서 정성을 다하는구나! 아니 내가 그 주변의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 친근한 이들의 생명을 먼저 데려갔는데도 나를 향한 사랑이 식어지지 않고 내 집에 나아오기를 정기적으로 하고 나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데 집중하고 있는데 그런 이들이 작천교회 가운데 결코 적지 않구나! 하시면서 작천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살고 말씀을 준행하면서 사는 것을 예민하신 눈길로 눈동자와 같이 분명 살피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당하는 고통과 설움과 눈물도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 속에 있는 좌절과 슬픔도 아시고 인생을 살면서 당한 가슴 아픔도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 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바램과 여러분들 속에 감춰진 저희의 열정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여기 모여있는 작천교회 성도들 한 성도 한 성도를 낱낱이 여실히 빠삭하게 알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이 여러분들이 이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는 시간과 분과 초도 합산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작천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일하는 현장도 지켜보고 계시며 거기서 힘들게 뼈빠지게 일하는 모습도 알고 계시며 그렇게 힘들게 번 재화를 십일조라고 감사예물이라고 드리는 것도 가슴 속에 깊게 아로새겨 놓으실 것입니다. 그래도 주일날 하루는 쉬어야 하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성전에 나아와 각종 봉사를 하는 성도 여러분을 은밀하게 인자한 눈길로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나 자신이 아닌 교회를 위해 이 작천교회를 위해 담임목사를 위해 이 땅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는 시간도 그 시간과 분과 초도 이미 카운트하시고 그 총 시간을 합산해 놓으셨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바친 모든 정성과 사랑 그리고 물질과 마음 교회를 위해 땀흘린 그 땀방울, 교회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흘린 그 눈물 방울도 주님의 눈물병에 다 담아 놓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광대무비한 우주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위에서 내려다 보시면 먼지나 점과 같을 터인데 그런 우리들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보고 계시면서 이것도 헤아리시고 저것도 세시고 계실지 모르지만 나 같은 것이 뭐가 중요하다고 나의 머리카락을 헤아리고 내 발걸음 세시랍디여? 아니 나 같은 것이 뭣이라고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 내 심장박동수를 세시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시고 그런답디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참새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나는 지구상에 77억명 중에 한 사람이겠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신다면 77억분의 1을 나에게 쏟아 붓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람에게나 신경을 쓰시겠지! 나 같은 것에게는 그냥 77억분의 1로 생각하시겠지 그렇게 착각을 하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나와 하나님을 1대 1로 여기십니다. 나는 하나님과 일 대 일로 대면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선 나는 실존적으로 단독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를 대하실 때 나에게만 집중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나는 참새보다도 온 우주보다도 귀한 존재이고 바로 나를 위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인간관계로 보면 그것은 그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나를 생각하실 때 1 대 1로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기에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 테제공동체가 부르는 노래에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잠잠히 주를 바라보라 주님의 사랑 넘쳐나리 잠잠히 주를 바라보라!” 여러분을 24시간 1440분 86400초를 한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잠잠히 여러분을 바라보시면서 여러분을 지켜보시고 헤아리시고 세시고 계시고 일거수일투족을 집중해서 보시는 나의 주님을 잠잠히 생각해 보시고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향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작천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전화기로 다이얼을 누르면 저기 지구 반대쪽에 다른 사람이 받으면 무슨 전깃줄이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파라는 것이 있어서 상대방이 거기서 받고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그런 차원입니까?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그런 정도의 차원의 믿음 정도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의 나의 하나님 믿음은 천지를 만드신 분이 날 온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최고이신 하나님께서 날 아시되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도 날 더 잘 아시고 날 사랑하시되 내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도 날 더 사랑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시기에 내 머리카락도 세고 계시고 내 발걸음도 세고 계시고 내 심장박동도 내가 모태에서 조직될 때부터 지금까지 세고 계시고 날 사랑하시기에 날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만큼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굳게 붙잡는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되 온 세상보다도 우주보다도 온 피조물보다도 나를 최고로 나를 제일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 바로 그것이 신앙입니다. 작천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날 그토록 날 최고로 사랑하시는 주님 바로 그 손을 꼭 붙잡고 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 주님과 동행동거동락하시며 이 땅에서 기쁘고 즐겁게 행복하게 웰빙을 누리시며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저희를 아시는 것은 주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저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심을 알았습니다. 사랑하시기에 저희를 귀하게 여기시고 저희의 발걸음도 세고 계시며 저희의 머리카락도 세시고 계시며 저희의 눈물방울도 세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것을 압니다. 저희 작천교회 성도들을 참으로 아끼시고 저희를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하며 의지하며 꼭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며 동거하며 동락하며 기쁨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저희를 아신 것같이 저희도 주님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저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가슴을 알게 해 주시옵시며 저희를 향한 주님의 눈물도 알게 해 주옵소서! 저희를 향한 주님의 가장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뜻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사랑을 만분지 일이나마 알게 해 주옵시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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