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0일(주일) 오전 7시 30분(1부), 11시(2부) 주일낮예배(132)
주현절 넷째주일 작천교회
성경본문 : 창세기 37장 13~17절
제 목 : 효도를 잘한 요셉
■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 우리 전통명절을 맞이하여 주님 거룩한 존전(尊前)에 주일낮 1부예배(2부예배)에 나아온 작천교회 성도님들 위에 여러 형편으로 성전에 나오지 못하고 유튜브를 통해 혹은 병상에서 예배드리시는 분들과 귀한 협연의 찬양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남도영 안수집사님과 묵장로님 손주손녀들 아울러 오늘은 조연숙 집사님의 외손주인 충남예술고 학생인 황도현이 첼로로 찬양하는데 이 모든 협연 찬양팀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전통명절입니다. 우리가 명절하면 그저 즐거워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명절이 되는 근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명절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 시점인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이것들이 서로 가만히 있지 않고 해를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달이 도는 가운데 그 조화 속에서 명절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근원적으로는 해와 달과 날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절기이며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는 육신의 부모님께 감사하고 형제자매들과 자녀손들과 함계 즐거워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본질적으로 명절은 위로는 하늘 어버이에게 이 땅에서는 육친의 어버이에게 감사하는 절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명절 기간에 저는 성경에서 하늘 아버지에게도 공경하고 경배하며 육친의 부모님에게도 까듯이 효도하는 인물 모델을 이 강단에 모셔와서 성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 그 이름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에서 나오는 야곱의 아들로 나오는 인물이요 동시에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아버지로 나오는 인물입니다. 성경에서 인물을 묘사할 때 그 긍정적인 모습도 그리지만 부정적인 모습도 그려지는데 비해 구약의 요셉이나 신약의 요셉은 그 어느 장과 절에서도 부정적인 모습은 하나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향해서나 사람에게서 신실한 자의 표상이고 모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 요셉이라는 인물을 벤치마킹하여 “요셉인재육성장학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요셉과 같은 인물을 키우고 육성하자는 뜻에서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김기현 안수집사님과 묵재화권사님의 아들이 또한 김요셉인데 지금 미국에서 골프연수 중인데 앞으로 타이거우즈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여 앞으로 대한민국과 세계골프계의 혜성과 같은 선수가 될 것이고 동시에 부모의 믿음을 이어받아 신실한 주님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 제 아버님의 존함은 배 야(耶) 자(字) 섭(燮) 자이신데 할아버지는 믿음의 인물 야곱을 본받으면서 요셉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야(耶) 자(字) 섭(燮) 자로 지으셨고 작은 아버지는 요셉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 요 자 섭자로 지으셨습니다. 두 분은 그 이름 그대로 한 사람은 장로로서 다른 한 사람은 목사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힘써 받들었습니다.
첫째는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잘 순종함으로 효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7장 13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3절 말씀에서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 부분에 밑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이 개역개정판입니다만 성경을 더 잘 번역하였다면 내가 그리하겠나이다가 아니라 제가 그리하겠나이다로 번역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제가 그리하겠나이다” 하면서 공손히 순종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할 때 어떤 말로도 반대의견이나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이것을 하라고 하면 이것을 하였고 저것을 하라 하면 저것을 하였고 요것을 하라 하면 요것을 하였습니다. 형들에게 다녀오라 아버지께서 말씀하였을 때 요셉은 “아니 아버지! 여기서 세겜이 허벌나게 먼데 어린 저에게 다녀오라고 하십니까? 그리고 거기에는 절 미워하는 형들이 많은데 무서워요! 못가겠어요! 아버지! 저는 지금 동생 베냐민과 놀기로 했으니까 안돼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말씀하였을 때 요셉은 공손히 “제가 그리하겠나이다” 순종하였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말씀에 아멘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순종하면서도 아무 말도 안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반쪽 순종밖에 안됩니다. 말을 안하면 나중에 그대로 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마음은 언짢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먼저 예 “제가 그리하겠나이다” 하면서 먼저 응답을 해드리고 그 담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온전한 순종입니다. 요셉을 보면서 저를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지나온 동안 가만히 살펴 본 저는 아버지가 나에게 유리한 말씀을 하시고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예! 하고 순종을 하고 아버지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내 뜻과 계획이 있는데 이렇게 하거라 하면 아버지에게 예!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거나 아버지에게 토를 달 때도 많이 있었고 아버지의 말씀을 어길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으로 있으니 데모하지 말아라! 공부를 열심히 하거라! 하였는데 청개구리와 같이 데모를 공부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였습니다. 데모하다가 전주에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한참 만에 풀려난 때도 있었고 한국신학대학교에서 데모하고 서울역에서 데모하다가 나중에 요주의 대상인물이 되어 계엄령이 발효된 때 형사들과 군인들이 절 잡으러 기숙사에 세 번이나 잡으러 왔는데 결국 잡혀서 2군 계엄사령부에서 취조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군목으로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보증을 하고 풀려난 적이 있습니다만 아버지는 상습적으로 데모를 하는 아들을 둔 덕택에 당시 군목으로서는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군종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예편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제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실로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야단을 치셨지만 조금 지나면 아버지는 제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다 잊으셨습니다. 어느 때인가 갑자기 아버지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두 번씩이나 말을 했는데 아들이 그 말 그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전화로 야단야단을 치고 난 다음에 속으로 무척 상했습니다. “저런 썩을 놈이 즈그 애비 말을 안 들어! 두 번씩이나 말했는데!!” 내 새끼가 내 말을 안 들었을 때 정말 속이 썩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아버지의 심정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속에 있는 양심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이고 이놈아! 니새끼가 속을 썩이니 너도 맘이 아프제! 옛날에 니가 느그 아버지 말을 안 들었을 때 느그 아버지 속 썩은 것을 생각해 봤냐?” 양심이 그 말을 하였을 때 저도 속이 뜨끔하였습니다. 아이가 두 번 말을 했는데 내 속이 썩었는데 나는 말을 안들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부지기수이니 아버지도 나로 인해 참 속이 많이 썩으셨겠구나! 속 많이 썩으신 것을 회개하면서 얼마 전에 갔을 때 홍삼과 포도주를 가져다드렸는데 아버지는 홍삼과 포도주만 보시고 좋아하시지 제 과거를 이제는 기억하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아버지는 제 머리를 보면서 잔소리를 많이 하셨습니다. 왜 머리를 그렇게 길게 기르고 다니느냐? 짧게 깍아라! 머리가 귀를 덮으면 안된다! 하면서 수십 차례 얘기하셨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고 내 머리는 내 머리제!하고 깍은 시늉만 내었습니다. 수염을 깍아 깨끗이 면도하고 다녀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한 소리를 하셨습니다. “아 내 머리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고 내 수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는데 왜 그렇게 간섭하시는지! 제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최초로 한 일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솔찬히 길러서 품위가 있어서 매일 거울을 보면서 수염을 잡고 쓸어내렸는데 우유를 마시다가 잘못하면 우유가 수염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선거할 때 미국에 있었는데 친구들이 이번에 와서 투표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 하여 가서 표를 찍으러 한국으로 나갔는데 수염을 길러 가지고 갔다가 아버지에게 호통을 맞고 그 자리에서 이발관으로 끌려가 수염을 다 밀게 되었습니다. 그 공력을 들어 길었던 긴 수염이 떨어질 때 눈물도 함께 떨어졌습니다. 머리도 깍고 수염도 다 밀었는데 아버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왜 머리를 기름을 발라 가르마를 타서 넘기지 않느냐 너는 애빌 닮아 이마가 이쁜 데 포마드를 발라넘기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여기서 밀리면 한이 없겠다 싶은 것입니다. 급기야 아버지는 저를 이발소에 데리고 다니면서 이발사 아저씨에게 ”이놈 머리에 기름발라 잘 넘겨달라!“고 하셨습니다. 하두 아버지가 그렇게 하시니까 이제는 머리를 짧게 귀 위로 자르고 기름을 발라 넘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버지가 깍으라 하면 아버님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깍고 아버지가 기름을 바르라 하면 아버님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기름을 바르고 아버지가 넘기라 하옵시면 아버님 그리하겠나이다 왜 그렇게 일찍 그렇게 해드리지 못하였을까 요즘은 쪼끔 후회를 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명절이라 아버지 집에 가는데 아버지 집에 갈 때면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올백으로 넘겨가지고 갈려 합니다. 올해 아버지 연세가 아흔 둘이시고 어머니 팔십 다섯이십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남아 있지 않을 실텐데 아버지 남은 생애동안 ”예 그리하겠나이다!“ 되도록이면 많이 하려 합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에 보면 우리 예수님께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께서도 순종하며 어머님을 잘 받드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창세기 요셉과 같이 부모님에게는 “예, 제가 그리하겠나이다”를 잘하시고 누가복음의 예수님과 같이 순종하며 부모님을 발 받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요셉은 아버지의 안부를 여쭈고 문안을 잘 드려 효도하였습니다. 창세기 43장 27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형들이 애굽에 양식을 사러 왔을 때 요셉은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제일 먼저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속에는 항상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와서 항상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있었을 때도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고 애매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울었고 애굽의 총리대신을 할 때에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마침내 형들을 만났을 때도 그리운 아버지 안부부터 여쭌 것입니다. 효도를 잘 하라면 안부를 잘 물어보아야 합니다. 안부를 묻는 것은 부모님이 멀리 계실 때 묻습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에서 제일 전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모님에게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하루에 한 번 씩 전화로 안부를 물을 수 있습니다. 잘 계신지 연로하셔서 편찮으시지는 않는지 전화로 물어드리면 그 전화를 받은 것만으로도 무척 기뻐합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고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 전화를 드렸습니다. 전화를 하면 나다 하시면서 좋아하시고 하루걸러 전화를 하면 국제전화요금이 많이 나올 텐데 왜 또 전화했냐 하시면서 좋아하십니다. 자식이 안부를 물어주니까 너무너무 좋은 것입니다. 멀리 있을 때 전화로 안부를 물어드리는 것,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그렇다고 굉장히 돈도 들지 않지만 부모님은 자식의 음성을 듣고 한량없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제 후배 목사는 미국에 유학하고 있었을 때 자기 두 아들들에게 한국에 계시는 할아부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게 합니다. “하다부지” “하무니”하고 전화를 걸면 그 전화를 받으시고 손주들의 전화를 받으면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후배는 좋아하는 느낌이 피크에 이르렀을 때 큰 손주가 코멍멍이 목소리로 “할아버지! 아빠가 우유 안줘!” 작은 손주가 “아빠가 장난감 안사줘!” 말하게 합니다. 돈을 보내달라는 소리인데 그러면 할아버지는 그 소리만 듣고 며느리를 바꾸게 하여 “왜 우리 새끼 우유 안주냐? 장난감 좋은 것으로 사주어라!” 하면서 달러를 송금해 줍니다. 손주손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저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목소리를 들으면 너무 좋아서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보내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통해 아버지의 안부만 여쭌 것이 아닙니다. 직접 찾아가서 문안을 잘 드렸습니다. 창세기 48장 1절입니다.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요셉은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손자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가 뵙고 자주 병문안을 하였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 중에 하나가 부모에게 문안을 드리는 일입니다. 문안은 직접 부모님을 찾아가서 드리는 일입니다. 문안 가서 부모님이 자식의 손을 잡아보게 해드리는 일이고 문안 가서 직접 얼굴을 만져보게 해 드리는 것이고 문안 가서 손주손녀들을 데리고 가서 부모님 품에 안겨 드리는 일도 최고 수준의 효도하는 일입니다. 그저 온라인으로 돈을 보내드리고 효도상품을 보내드리는 것보다도 직접 찾아가 뵙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 이름을 불러 드리고 껴안아드리는 일 참으로 효도 중에 효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자식이 찾아오면 좋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부모님들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들은 외로워지십니다. 실제로 늙어가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이 바로 외로움입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도 정을 나누고 살던 이웃들도 평생을 함께했던 아내와 남편도 하나둘씩 하나님의 나라로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외로움이 많이 밀려듭니다. 제가 심방을 가면 말씀을 합니다만 그러면 심방을 받으시던 분들이 그냥 저보다도 더 많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해합니다. 외로우시니까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말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심방가면 제가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좀 더 많이 들으려 합니다. 외로운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드려 말씀을 많이 하게 하거나 말씀을 드리는 것, 찾아가서 말씀을 많이 들어주는 것 이것도 효도 중의 효도인 것입니다. 요셉은 그런 면에서 효도를 잘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부모님께 가서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하나도 토를 달지 않고 들었습니다. 제가 들었던 얘기를 그동안 수십번도 더 하셨던 얘기들입니다만 가끔 아버지! 그 얘기를 하시면 이제는 이십번 들은 거예요! 하면서 말씀을 짤랐습니다만 이번 명절에는 갈 때에는 일절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처음 들은 것처럼 들으려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오늘 설교를 듣고 난 다음부터는 부모님에게 안부를 일주일에 한번 드렸다면 오늘 부터는 두 번 혹은 세 번 드리시고 한 달에 한번 찾아갔다면 한 달에 두 세 번 더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전화로도 드리고 편지로도 드리고 손주손녀를 통해서도 드리고 직접 찾아가 문안도 드리되 “보고 또 보고” 자주 문안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안부와 문안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요셉은 깍듯하게 아버지를 봉양하는 효도를 하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다음에 깍듯하게 아버지를 봉양하려 하고 봉양합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합니까? 창세기 45장 11절에 보겠습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 전하소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땅은 흉년이 들어서 도무지 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를 봉양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말만 하고 그칩니까? 아닙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딘지 알고 부모형제를 어디로 모십니까? 고센땅으로 모십니다. 고센땅은 애굽의 나일강 델타 동편에 있는 땅으로 무척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물이 많으니 토양도 비옥하였고 풀도 많이 나서 목축업을 하기에도 아주 좋은 땅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에게 애굽에서 제일 좋은 땅을 배려해서 거기서 살게 해 드린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자신이 사는 왕궁 바로 옆에 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사려깊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버님과 형들은 양들과 소를 데리고 일평생 목축업을 해오셨으니 초장들이 많이 있고 물들이 많이 있는 곳들이 아버님과 형님들에게 더욱 친숙하실 것이고 그런 곳이 아버지가 고향과 같이 사실만 하실 것이다하고 목축에 적합한 땅 고센땅을 지정하여 놓았습니다. 만일 요셉이 자신이 편리한 대로 아버지를 모시려 하였다면 왕궁 옆에서 살게 하시게 하였겠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가 익숙하고 아버지가 편리한 대로 아버지를 모신 것입니다. 봉양을 하더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봉양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편리한 방식으로 봉양하려 하였습니다. 봉양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떤 자식들이 부모님을 잘 모시고자 수도권에 거액 아파트를 사 놓고 시골에 사시던 부모님을 오시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한 달을 살아보다가 이 감옥 같은 곳에서는 도무지 살지 못하겠다 하고 다시금 시골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 얘기를 아십니까? “옛날에 도시 효자가 시골에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시골로 찾아갔습니다. 시골 효자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까 옷을 누추하게 입은 청년이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던 노모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의 나무 짐을 받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대야에 물을 떠 왔습니다. 노모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열심히 아들의 발을 씻기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아들과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도시 효자는 시골 효자에게 이렇게 충고를 했습니다. "여보게, 어떻게 기력도 없으신 어머니께서 자네 발을 씻게 하는가? 효자라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시골 효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효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마음속에 "내가 효행을 잘못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시 효자는 이때까지 자신의 생각대로만 부모님을 공경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잠자리, 좋은 음식, 많은 용돈은 드렸지만 자기 부모님의 얼굴에는 시골 어머니와 같은 환한 웃음이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봉양을 할 때 그 봉양이 부모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이가 빠져서 고기를 드시지 못하는데 산해진미를 차려 드린다고 봉양을 잘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호박죽을 드시게 하는 것이 제대로의 봉양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를 잘 공경하고 봉양을 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이 내립니다. 요셉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어버이에게 순종하고 어버이에게 안부와 문안을 잘 여쭙고 어버이를 잘 봉양하였습니다. 지성스럽게 부모를 잘 모셨습니다. 요셉이 땅에서 잘 되고 형통한 것과 요셉이 부모님에게 효도 잘하는 것과 분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잘 되고 형통하게 해주신다 하였으니까 그렇게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계명들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런 계명을 지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특별한 약속이나 큰 혜택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계명 중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인데도 하나님의 특별보너스가 많고 프리미엄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축복의 약속을 많이 붙여 놓으셨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첫째, 건강하게 장수하게 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은 특별하게 무슨 보약을 먹거나 무슨 특별한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과 장수를 보증하셨으니까! 에베소서 6장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땅에서 장수하리라에 밑줄을 그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무슨 일을 하던지 형통하게 잘 되게 해 주십니다. 에베소서 6장 3절에 보면 “네가 잘되고”라는 부분이 있는데 무슨 일을 하던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안 나옵니다만 부모를 공경하면 자신도 나중에 부모가 되었을 때 공경을 받습니다. 자식도 따라 배우는 것입니다. 정채봉 씨가 지은 "멀리 가는 향기"라는 책에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인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혹 다투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년이 들을세라, 할머니가 들을 세라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토닥거렸습니다. 그러나 차츰 날이 감에 따라 부부싸움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소년도 듣게 되고, 할머니도 듣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담을 넘어가게도 되었습니다. "당신 어머닌 비위생적이어서 함께 못살겠어요."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내 병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당신 어머니가 남한테 망신 사는 일만 저지르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밖 에요." 날이 가면서 소년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소년의 아버지도 할머니 방 앞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또 죽는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퍼렇게 되어서 외쳤습니다. "나를 택하든지, 당신의 어머니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말해요!" 마침내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나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상자를 묶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거들었습니다.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와서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부모를 무시하면 그 자식들에게도 무시를 당하지만 부모를 공경하면 공경하는 자신이 자식들에게 공경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모세대들이라면 자식세대들이 명절이라고 인사하고 문안하려 찾아오면 그저 용돈을 받고 선물을 받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녀들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권면하시고 만일 현재 안하고 있다면 자식들 손을 잡고 이 에미의 소원이다 이 애비의 소원이다고 하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집에 나아가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생활을 하라고 권면하시고 그것이 나에게 하는 가장 큰 효도인 것을 강조하시고 끝으로는 자식들 손을 잡으시고 축복하는 기도를 꼭 해 주시기 바랍니다. 축복기도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 제 자식들이 하늘 아버지를 잘 받들게 하시고 예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면 그 이상 좋은 축복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명절을 맞이해서 우리 자녀세대들은 요셉과 같이 부모를 잘 공경하며 사시기를 바라고 부모를 공경할 때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보너스를 받아 형통의 은총을 누리며 인생을 더욱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라고 부모세대들은 더 이상 섬길 육친의 부모님을 섬길 이들이 없을 때는 이제 곧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것을 예상하면서 이 땅에서 하늘 아버지를 지극히 섬기다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창세기 요셉을 통하여 귀한 가르침을 내려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로 요셉과 같이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자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로 요셉과 같이 부모님께서 말씀을 할 때 “네 그리하겠나이다” 순종하며 효도하게 해 주옵소서! 저희로 요셉과 같이 부모님께 안부와 문안을 잘 드리며 효도하게 해 주옵소서! 저희로 요셉과 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봉양하며 효도하게 해 주옵소서! 저희로 요셉과 같이 부모를 공경하여 형통케 되는 복을 받게 해 주옵소서! 저희가 부모세대이든지 자녀세대이든지 저희 모두가 저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잘 공경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빛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살 면서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늘 아버지를 잘 섬기고 하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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