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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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4일 대림절 넷째주일 / 에베소서 4장 25~32절 / 용서하며 우리 살리라! / 작천교회
2025-12-09 15:17:28
배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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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4일(주일) 1부 예배, 오전 7시 30분 / 2부예배 오전 11시 
대림절 넷째주일

성경본문 : 에베소서 4장 25~32절        
제    목 : 용서하며 우리 살리라!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오늘 대림절 셋째 주일, 정성과 사랑으로 예배드리시는 모든 성도들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시온찬양대 위에, 연로하시거나 병상에 있으신 분들과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는지를 묵상하는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 왜 인간의 세상에 오셨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흘려 죽으신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예수님의 탄생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관광하고 생을 즐기러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인인 인간들이 심판받아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을 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게 하시고 그 피를 받으시고 죄인인 인간을 용서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인 것입니다. 

■ 오늘 말씀 제목이 “용서하며 우리 살리라!”입니다. 내일이면 성탄절입니다만 성탄절에는 단지 기뻐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교환하고 성탄절에는 가족들과 모여서 사랑의 식사를 하고 성탄절에 성탄절 감사예배도 드리고 감사의 봉헌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성탄하신 정신대로 우리가 그렇게 사는 일입니다. 예수님 성탄하신 목적은 예수님 이 땅에 오신 십자가 사역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피흘리신 것은 우리 죄를 씻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때 하신 말씀의 양식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13장 14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같은 양식이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또 나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먼저 본을 보이고 나서 그 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한 것과 같이 내가 너희에게 본을 이렇게 저렇게 보인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탄하심은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죽으심을 위해서 였는데 이는 똑같은 양식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너희 죄인들을 용서한 것 같이 너희 죄인들도 서로 용서하며 살아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적절한 예화를 드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에서 35절에 있는 한 동관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왕이 연말결산을 하기 위해 장부를 보니 일만 달란트나 되는 천문학적인 빚을 진자가 있어 당장 그 앞에 대령하라 하였습니다. 일만 달란트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돈인지 알아봅시다. 일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입니다. 그런데 일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하루 일당이었습니다. 요즘 노동자들 일당이 외국인의 경우에 15만이라고 합니다. 1달란트는 6천 곱하기 15만원이니 9억원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9억 곱하기 1만 달란트이니까 9조원인 셈입니다. 종은 왕에게 허벌나게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왕이 뭐라고 합니까? “야! 너 내 돈 갚아라!” 닥달하자 종은 도무지 막막하여 뭐라고 할 말이 없었을 때 왕은 차압명령을 내렸습니다. “네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종은 이때 궁색하게 엎드려 ”조금만 참아주소서 제가 갚겠습니다!” 하면서 눈물 콧물 흘렸습니다. 왕은 그 모습을 보니 짠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니가 갚겠다고 한다마는 그걸 어찌 다 갚겠느냐 빚 장부 가져오라고 하여 종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왕의 한마디에 9조원의 빚이 없어진 것입니다. 

■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그 종은 무덤덤합니다. 왕에게 고맙다는 한마디 있을 법한데 눈꼽만큼도 감사가 없습니다. 탕감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기쁨도 없고 엎드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갑니다. 그 종이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관리를 만났습니다. 일백 데나리온은 1데나리온이 15만원이니 1500만원 빚을 받을 것이 있었습니다. 만나자마자 당장 빚을 갚으라 하였습니다. 동료 관리는 자신이 왕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하며 엎드리면서 간구했는데 그 종은 돈을 다 갚기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종이 이를 민망히 여겨 이 상황을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왕은 그것을 듣고 대단히 분노하여 그 종을 불렀습니다. 18장 32절에서 34절입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상황이 반전되었다가 극적으로 다시 반전된 것입니다. 종이 나오면서 “왕이 나를 불쌍히 여겨 9조원의 빚을 가려주었으니 나도 나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이 얼마가 되던지 이번 기회에 그냥 다 탕감해주어야지!” 하면서 난 9조원 빚을 탕감받았는데 그까짓껏 일백 데나리온 1500만원 그 정도쯤이야 하고 흔쾌하게 탕감해 주었을 만도 할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1500만원을 갚지 않은 동료를 옥에다 잡아넣었습니다. 자신은 그 많은 돈을 탕감 받았으면서도 그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액수에 대해서 악착같이 받으려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악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예화를 드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는데, 그래서 멸망당하여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세상의 가치로 한다면 9조원 보다도 더 많은데 그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조그마한 잘못했다고 용서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그 9조원 빚을 탕감해 준 사람에게 했던 빚무효화 선언을 다시금 무효화하신다는 얘기입니다.    

■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예화 속의 그 모습은 다른 것이 아닌 오늘 죄인들인 인간들의 모습, 나의 모습! 타락한 본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그토록 많이 용서받았는데 이웃 사람에게는 털끝만큼도 용서하지 않고 손톱만치도 용서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내 모습을 빗댄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그토록 너그러우면서도 남에게는 악착같이 구는 본성,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솜방망이이면서도 이웃에 대해서는 예리한 칼끝이 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만큼 하늘로부터 한량없는 용서를 받았으면 그래도 개미눈물만큼이라도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데 일절 없는 것입니다. 왕이 다른 종에게서 종이 한 일을 들었을 때 분기탱천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배은망덕 한 놈이 있나? 탕감받은 것에 대해서 티끌만큼도 감사하지 않고 그냥 가더니 내가 용서해준 것에 비하면 쥐꼬리만큼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동료를 옥에 잡아넣다니!” 노발대발하여 그 종을 불렀습니다. 종은 영문을 몰랐습니다. 빚에 대해서는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또 부르실까 해서 갔더니 왕은 그 종을 호되게 야단치면서 그 자리에서 그를 법정구속하고 말았습니다. 9조원을 다 갚기까지는 풀려날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종신징역을 살게 된 것입니다. 1500만원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지 않아 9조원을 다시 갚아야 했으니 이 종이 손해 본 것이 얼마입니까? 9조원 나누기 1500만원하면 60만배 손해를 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용서를 안하고 산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60만배 손해를 보고 하늘나라도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직행하니 이는 단지 60만배 손해가 아니라 하늘과 땅 천지간에 얼마나 엄청난 손해인 것입니까? 지극히 적은 빚을 용서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원래의 빚인 9조원 즉 60만배의 징벌적 보상을 명한 것이니 아마도 일만 달란트를 빚진 그 사람은 옥중에서 내가 왜 그 일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지 못하여 이 모양 이꼴이 되었을꼬 그렇게 했던 자기 가슴을 때리면서 자신의 발등에 도끼로 찍고 싶었을 것이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때는 늦으리!가 되었습니다.  

■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정보는 무엇입니까?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빚진 것을 상징하고 일백 데나리온 빚진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빚지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빚을 갚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채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인간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굉장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죄 용서하심에 대한 아주 획기적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나와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며” 이 기도에 무슨 뜻이 담겨진 것입니까? 만일 이웃이 나에게 지은 죄를 내가 용서하면 그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면서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역으로 이웃이 나에게 잘못을 했는데 내가 그것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의 죄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 줄 때 나는 하나님께 지은 허다한 죄도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돈으로 계산한다고 할 때 이웃이 내게 10만원을 빚졌을 때 내가 그것을 탕감해 주면 내가 하나님께 빚진 600억원을 탕감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0만배의 효과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의 잘못이나 허물을 용서해 주고 덮어주면 하나님께서도 내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 주되 60만배 정도로 셈하여 용서하여 주시고 탕감해 주시니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 오늘 본문 중에서 특별히 에베소서 4장 32절을 보겠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로 쓴 것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 사이에 다툼과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한 번만 하신 것이 아니라 거의 같은 뜻으로 여러 번 하신데 근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독히 에베소서는 대적, 싸움, 미움, 분노, 어리석은 말, 헛된 말, 책망과 같은 단어나 화해와 용납과 오래 참음과 하나됨이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뜻을 담아 예수님께서 우리의 피와 같은 붉은 죄를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친절하게 하며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며 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가정에서도 다툼과 문제가 많았고 교회 안에서 싸움과 분쟁이 많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훨씬 분쟁과 싸움의 문제가 더 크고 많았습니다만 에베소 교회도 교회 안에서 그런 분쟁과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화목과 평안의 은총을 더욱 강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끼리 피차간에 용서하면서 살라고 권면합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 여러 요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드린 후에 에베소 교회 교인이 된 사람도 있었고 로마제국의 시민으로써 관리나 군인으로서 에베소에 주둔하면서 복음을 받아드려 에베소 교회 교인이 된 사람도 있었고 원래 토박이 에베소 사람으로 사도 바울의 복음을 받아드려 교인이 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노예계급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도 귀족계급의 사람들도 있었고 하급관리들도 있었습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고 세상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도 있었고 그저 길거리의 노숙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드렸지만 유대율법도 중요시하는 교인도 있었고 유대율법은 전혀 모른 채 복음만 받아드려 교인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여자들은 집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였으며 시장에 가는 일도 남자가 하였습니다. 여자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교회 안의 남자들은 당시 교회 안의 여자들을 개무시하였으며 귀족계급들 중에 교인이 된 사람들 중에는 교회 안에 나아온 노예들을 여전히 노예로 취급하여 자신의 시종과 같이 부리려 하였으며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없수이 여겼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헬라 그리스도인들을 약간 깔보는 경향을 지녔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지위와 계급을 교회 안에서 여전히 누리려 하였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를 교회 안에서도 자랑하고 떠들어 댔으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전통과 지식으로 그렇지 못한 교인들을 깔아뭉개는 일을 다반사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교인들끼리 서로 싸워 로마의 법체계에 호소하여 송사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교인들끼리 조그마한 이권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호소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교회 안과 교회 밖 세상과 한치도 차별성이 없었습니다. 서로 싸우고 서로 고발하고 남을 시켜 내 발을 씻기게 하고 교회 밖에서 누리는 지위를 교회 안에서 똑같이 누리려 하고 세상에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하는 것은 세상과 똑같아서 교회 안이라고 해서 차별성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축소판이 아니라 세상의 악과 죄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필을 들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으며, 너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다”(갈라디아서 3:28) 것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써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화해와 평화의 사역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 우리 신앙인들이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런 도무지 용서 못할 사람이 있다면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용서못할 사람이 천국에 있다면 내가 만일 그 천국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기서도 으르렁거리고 싸울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국물이 용서못하는 두 사람들 이 품어내는 미움과 증오 때문에 그 아름다운 천국이 공해와 오염으로 물들여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저 우두커니 지켜보시기만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예 그렇게 용서못하고 싸울 사람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사전 조치를 해 놓을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 땅에서 도무지 용서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 인생에 무한대로 손해보게 만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 이 세상을 이별한다면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차단하고 방해하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을 60만배 이상으로 손해를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용서못하고 죽었다든지 내가 용서못하고 알츠하이머로 가서 용서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갔다든지 하면 그것은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내가 지은 죄가 있는데 내가 그 죄를 예수님께 고하지 못하여 용서받지 못했다고 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을 천국에다가 예약해 놓는 지혜로운 인생은 첫 번 째는 내가 지은 죄를 예수님 앞에 이실직고하고 용서의 은총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혹시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땅에서 먼저찾아가서 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뭐라 하셨습니까?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 매인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내 인생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필수적으로 해 놓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은 허물과 잘못에 대하여 피와 같이 붉은 죄를 성탄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주 예수님께 다 고하여 용서받는 일과 다른 하나는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리고 내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에게 찾아가서 용서하는 일이요 용서받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들 중에서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도무지 죽어도 용서못해요!, 하나님도 저를 이해하실 꺼예요!”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옥을 자동적으로 예약해 놓는 미련한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죽어도 용서못한다”는 말은 “용서 안한 채로 죽겠다!”는 것이고 결국은 그 미움을 품은 채로 가는 그 사람이 지옥외에는 갈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천국의 수정같이 맑은 강이 그 사람이 품어내는 독기로 오염되고 흐려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죽어도 용서못해요!” 하는 말은 “저는 죽어도 천국은 안가겠어요!” 하는 말과 같습니다. 천국에서까지도 이를 갈고 용서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서로 등을 돌리며 으르렁거리고 살 것 같습니까? 용서를 못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천국에서는 미움과 증오를 가진 옛 인간이 용서를 하지 못하는 인간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는 천국에 결코 안가겠다고 그 사람을 용서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고 작심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끝까지 용서안하고 미움을 품고 살면 됩니다. 천국 가기 싫으신 분, 지옥을 그토록 원하시는 분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더 미워하시고 증오를 품고 사시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사시고 끝까지 복수하겠다고 마음을 벼르고 사시면 직통으로 지옥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 마태복음 6장에서도 예수님 다시금 강조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면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는 분명히 어떤 경제학의 법칙이 담겨 있습니다. 경제에 있어서 교환의 법칙, 무엇과 무엇을 바꾸는 빠터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일에서는 그저 은혜를 내리시는데 유독 용서를 말하실 때 인간과 무슨 경제행위와 같은 상거래하듯이 빠터제로 하십니다.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데 조건이 있으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너희 주변에 있는 형제와 자매를 용서해 준다면 나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겠지만 만일 너희가 용서를 안한다면 국물도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에는 하나님의 엄격하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만일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고 내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결코 기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께 육백만개의 잘못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가 형제가 잘못한 열 개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나도 육백만개의 내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지만 형제의 열 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은 채 나의 백만개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고 그렇게 요청하는 기도도 드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허물을 끝까지 가슴에 새긴 채로 “아무리 해도 저놈만은 용서할 수 없어!” 그런 마음이 새겨 있는 채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아예 간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 역시 얼마나 손해입니까? 육백만개 빼기 열 개가 얼마입니까? 오백 구십만 구천구백구십개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손해 아닙니까? 우리 인생은 이것도 모른 채 미련곰탱이같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고있는 것입니다. 내가 형제를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은총의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할 수 있으며 비로소 내 인생은 막대한 손해를 보지 않고 적자 인생이 아닌 막대한 흑자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 특별히 작천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이제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성탄의 은총 십자가 속죄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 성도들 간에 무슨 용서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그 용서 못한 것들을 다 깨끗이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못하면 내 인생에 엄청나게 손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용서못하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하늘나라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내 인생에 엄청난 적자와 빚덩이로 만든다는 것을 알고 이 시간 용서 못한 것들이 있다면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내가 나이 들어 치매로 가기 전에 한꺼번에 다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지 않고 골백번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해도 결코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도 귀막으시고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손해입니까? 용서할 때 천국이 내게로 다가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특별히 성도들 중에나 내 가족과 친적들 중에서 눈꼽만큼도 용서못한 것이 있다면 이제 내일 성탄절을 앞두고 이 시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필요적절한 자세가 될 것입니다.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입니다. 내가 그저 마음을 크게 열어 용서해 주고 감싸주는 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엄청난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죄도 속죄함을 받는 길임을 아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긍휼의 손길을 펼쳐서 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눈을 감겠습니다. 이 시간 육의 눈을 닫고 마음의 눈을 열고 내가 지금까지 용서못한 사람이 있는가 한번 그 얼굴들을 떠올려 봅시다! 내 가족 중에라도 용서못한 사람이 혹 있어도 좋습니다. 교회 안의 구역이나 신도회 부서 중에 있어도 좋습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어도 좋습니다. 이미 소천하였던 사람도 좋습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께 하나님 내 힘으로 용서할 수 없사오니 제가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이 시간 침묵 가운데 바로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을 떠올리시고 용서의 기도를 간절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님께서 저희의 피와 같이 붉은 죄를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는데 저희는 형제와 이웃의 지극히 적은 허물도 다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앙갚음하고 복수하려 했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이제는 용서하며 살게 하시고 어디를 가든지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따뜻한 가슴을 열어주면서 살아가게 하시고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만들어 가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하심의 뜻을 묵상하면서 이제부터 저희가 용서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로 이제는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시며 용서함으로 이 땅에 천국을 만들며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의 용서가 안될 때에는 저희가 주님께 기도하겠사오니 저희의 가슴을 열어 주셔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저희가 이웃과 형제를 용서할 때 저희 죄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때라도 주 성령님께서 저희 마음을 뒤덮어 주시어 저희가 용서로 돌아서게 해 주시옵소서!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가며 세상에 소망을 불어 넣어주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로 성탄하신 주 예수님의 깊고 깊으신 뜻을 이무려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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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공지 2025년 10월 25,26일 CPBC 평화방송 라디오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인터뷰 배태진 2025-11-12 41
4431 2022년 2월 27일 주현절 여덟째주일, 에스더 기도주일 / 사도행전 13장 16~22절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4
4430 2022년 2월 20일 주현절 일곱째주일 / 누가복음 12장 6~7절 /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었으니!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9
4429 2022년 2월 13일 주현절 여섯째주일, 신학교육주일 / 창세기 26장 1~5절 / 네 아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19
4428 2022년 2월 6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 시편 146편 1~5절 /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2
4427 2022년 1월 30일, 주현절 넷째주일 / 창세기 37장 13~17절 / 효도를 잘한 요셉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7
4426 2022년 1월 23일 주현절 셋째주일 / 마태복음 13장 33절 /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4
4425 2022년 1월 16일 주현절 둘째주일, 여신도주일 / 누가복음 15장 11~24절 /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3
4424 2022년 1월 2일 새해주일 제직임명식 / 디모데전서 4장 6~10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15
4423 2021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 빌립보서 4장 6~7절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19
4422 2023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 스바냐 3장 17절 /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6
4421 2023년 12월 31일 성탄절 첫째주일 / 시편 100편 1~5절 / 성전에 가는 목적은?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5
4420 2023년 12월 25일 성탄절 감사예배 / 요한복음 3장 16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9
4419 2023년 12월 24일 대림절 넷째주일 / 에베소서 4장 25~32절 / 용서하며 우리 살리라!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1
4418 2023년 12월 17일 대림절 셋째주일 / 마태복음 4장 14~16절 / 빛을 비추러 오신 예수님!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36
4417 2023년 12월 10일 대림절 둘째주일 / 시편 146편 9~10절 /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 / 작천교회 배태진 2025-12-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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