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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
2025-07-16 14:58:37
신솔문
조회수   101

작년 상반기,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말이 있습니다. ‘개소리’입니다. 점잖은 자리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이 갑자기 회자되면서 비속어에서 벗어났습니다. 원서는 해리 G. 프랭크퍼트의 입니다. “허튼소리”에 대한 글인데 원제의 뉘앙스를 살려 ‘개소리’로 번역되었습니다. 1986년에 나온 이 글은 일상언어철학 논문에 가깝습니다. 진리 탐구 마인드 없이 “아무말잔치”해놓은 논문들이 프랭크퍼트의 1차적 비판 대상이었습니다. 이 글이 학술지에 실린 지 약 20년 후 당시 상황과 맞물려 미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이 되어 주목을 받았고 우리나라에는 다시 약 20년 후에 번역 됩니다. 다시 8년이 지난 후, 12·3 비상계엄 사태 속에서 접하는 해괴한 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람들이 고심한 끝에 이구동성으로 발탁된 단어가 ‘개소리’였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러한 개소리의 원조가 나옵니다. 거짓 교사 같은 이단(1절)들입니다. 자기들이 샘(泉)이라고 떠벌이지만 물이 없고 대기에 충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람에 사라질 안개같은 자들이며, 어두움 속에 있다가 결국 주님께 심판받는 자들입니다(17절). 이들이 하는 말은 그야말로 “부풀려서 떠들어 대는 터무니없는 빈말”(새한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는 것”(개역개정), “허무맹랑한 큰소리”(새번역)입니다. 떠벌이는 허튼소리라는 것인데요, 문맥에 깔려있는 거룩한 분노를 감안해서 이들의 말을 규정하면 한마디로 ‘개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후예로서 지금 우리 성도들을 괴롭히는 이단들도 똑같습니다. 성경의 진리들을 자기들이 알고 있다고 떠벌이지만 성경에 대한 무지와 성경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지적 무능력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성경을 왜곡하는 교활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범벅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세상의 더러움에서 피한 성도들을 다시 그 구렁텅이에 몰아넣습니다(20-22절). 개수작(말보다는 행동 쪽에 초점을 둔 단어)을 하는 것이지요. 프랭크퍼트에 의하면 개소리의 포장지는 진심(sincerity)입니다. 내용물은 진리(옳음 correctness)와 무관하고요. 이단들이 자신들의 집단과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해 진심인 것에 적지 않은 성도들이 현혹되지만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내구주 신앙에서 이탈해있기 때문입니다(1절). 이들의 개소리와 개수작를 단호히 거부하십시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라디아서 6:17)

[주] 내년도 어느 가정예배서에 보내기 위해 쓴 묵상글 초고입니다. 분량을 줄이고 표현도 순화시켜 보냈습니다. 프랭크퍼트의 책을 소개하고 싶어 올립니다. 저에게 주어진 본문은 베드로후서 2:17-22입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 가는 안개입니다.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둠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8 그들은 허무맹랑하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들은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육체의 방종한 정욕으로 유혹합니다.

19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기들은 타락한 종이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0 사람들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어서 정복을 당하면, 그런 사람들의 형편은 마지막에 더 나빠질 것입니다.

21 그들이 의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22 다음과 같은 속담이 그들에게 사실로 들어맞았습니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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