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학에 문외한인 제가 2심 판결의 ‘골프 발언’ 부분을 살펴보았던 이유는 그 정치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 판결에 대한 성급한 비난이 부당하다는 감(感)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법조인은 문제의 발언 중에 골프라는 표현이 있는데 판결문에서 골프라는 표현이 없다 하는 것은 초보적인 오류(誤謬)라고 합니다. 그분이 오독(誤讀)한 것입니다. 판결문은 그 단어를 빼고 말한 것입니다. 선입견 없이 판결문을 읽어보면 문맥 속에서 이 점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조작과 확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상적인 의미의 조작 개념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판사 세 분이 오랫동안 심의하고 치열하게 토의한 끝에 내린 2심 판결이지만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반 선거인의 관점’입니다. 법률 용어답지 않게 모호해서 아래의 2심 판결문 정리 글에 의문점을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모호하면 장난치기 쉽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공식적으로 공개한 “대법원 판결 요지”를 보니 이것으로 독단적인 결론을 내렸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2.
대법관들처럼 설교자에게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 부임하면 이런 취지의 말을 한 번은 합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표적 설교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교인 한 분이라도 표적 설교로 오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전 검토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자가 제가 하는 정도의 주의(注意)를 기울이지 않고(판결문과 관련된 그 정치인의 이전 발언에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이다 맛’이 나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였는데 평소 앙심을 품고 있는 한 교인이 설교자가 의도없이 사용한 단어 하나를 가지고 자신을 공격했다고 느끼고 ‘인신공격의 죄’로 설교자를 고발하였고 결국 기소가 됩니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그 교인이 그렇게 들었다면 100% 유죄입니다. 설교자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발언하였다는 것은 “절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시벌로 광고 때 사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면 시무 사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해석하기 힘든 어려운 책을 다루는 훈련을 받고,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이 가득한 글들을 읽어온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더구나 늘 성경을 해석하고 공개적인 발언(설교)을 하는 우리들에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제가 앞글에서 제시한 2심 논증의 메인(main, 주主) 논증은 이것입니다.
[전제1] (양보하더라도) ‘골프 발언’의 취지는 “K와 골프 안 침”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전제2] 형사법의 기본 원칙(“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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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결론] 법정에서 인정해야 할 ‘골프 발언’의 취지는 “당시 K를 모름”이다.
‘양보하더라도’라는 표현에 들어있듯이 2심 재판부는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그 정치인의 골프 발언 취지가 “당시 K를 모름”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양보하여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다”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하려면 [전제1]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고 입증을 해야지요. 다른 해석 가능성을 차단하는 주장은 정당화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법조문에도 애매성과 모호성이 있는데 일반적인 글은 더욱 그러합니다. 대화 내용은 말할 것도 없지요. 아무리 대법원이라고 해도 정상(正常)적인 방식으로 [전제1]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2심 논증이 매우 탄탄하다고 평가한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해냈습니다’. 대법원 판결 요지 전문을 가지고 그분들의 비상(非常)한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3.
2심에 [전제1]은 중간 결론에 해당됩니다. 이 중간 결론을 뒷받침하는 전제는 두 개입니다. 이 섭(sub, 부속付屬, 하위, 부副) 논증은 이런 구조입니다.
[전제A] 질의와 답변의 문맥이 “골프 쳤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시 잘 알았느냐 잘 몰랐냐”이다.
[전제B] 일반 선거인의 관점에서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해야 한다.
- - - - -
[중간 결론]골프 발언’의 취지를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메인 논증과 달리 이 부속 논증은 논증이 두 개입니다. 먼저 [전제A]가 들어간 논증을 대법원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2심 판결을 저격하듯이 비판한 것이 아니라 산탄총처럼 산만하지만 제가 제시한 논증의 어디에 해당 되는지 자리를 찾아가면서 살펴보겠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떠받히고 있는 것은 이것 하나입니다. 발언을 의미를 파악할 때 견지해야 할 기준은 “발화자나 판검사의 관점이 아닌 일반 선거인의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표현의 의미는 후보자 개인이나 법원이 아닌 선거인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사실상 이것이 유일한 기준입니다. 문맥 등도 다루고 있지만 참고 사항에 불과합니다.
[전제A] 질의와 답변의 문맥이 “골프 쳤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시 잘 알았느냐 잘 몰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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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결론] 골프 발언’의 취지를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은 [전제A]를 반박하지 않습니다. 질문과 답변의 문맥을 보면 분명하니까요. 대신, 전제가 맞다고 해서 중간 결론이 맞는 것은 아니다는 쪽으로 논박합니다. 문맥이 그렇다 하더라고 일련의 발언 중의 ‘골프’라는 단어가 선거인들에게 인상적이어서 선거인들이 골프에 관한 주장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2심 재판부는 골프 단어가 들어간 발언이 골프에 대한 주장이 아니고 <골프 운운하면서 제시된 그 사진이>(골프 단어가 이렇게 등장) 단체 사진 중 몇 명만 확대해서 “잘 아는 사이”라는 암시를 주는데 당시에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고 피고가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해석합니다. 골프 발언이 “잘 아는 사이가 아니다”는 논거로 사용된 것이지요. 대법원은 이 점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피고인과 김문기의 골프 동반 행위는 피고인과 김문기 간의 관계에 대한 의혹과 관련하여 선거인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독자적 사실로서 주요한 사실이지 인식에 대한 보조적 논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설령 피고인이 “골프 치지 않았다”는 발언을 명시적으로 하더라도 일련의 발언 속에서 보조적 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당연히 보조적 논거입니다. 대법원이 문맥을 언급하고 있지만 대법원이 말하는 문맥은 발화자의 의도나 대화의 맥락이 아닙니다. 이 주장의 반복입니다. “문맥이 어떻든 선거인이 ‘골프 안 쳤다’고 받아들이면 그것이 취지이다”
문제는 검사와 판사가 “선거인의 관점”을 어떻게 헤아리냐는 것입니다. 선거인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맥락을 잘 파악하여 의미하는 바를 잘 포착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단어 하나로 발언 취지를 단정해 버리는 분들도 있으며 이 중간에 매우 다양한 인식 상황을 가지고 있는 선거인들이 있습니다. 발언자에게 우호적인 선거인은 허위사실 유포도 실수로 여길 것이고 적대적인 선거인은 사실을 이야기해도 허위로 받아들입니다. ‘골프’라는 단어를 “골프를 안 쳤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선거인이 있는 반면에, 맥락 파악에 서툴면서 골프 관련 뉴스를 못 본 선거인은 골프 단어를 듣고 후보자가 “내기 골프”했나보다 해석할 수도 있지요.
대법원처럼 선거인의 관점을 유일한 기준으로 사용하면 앞으로 이런 기소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대법원 판결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그 후보자를 “중범죄자” 취급하는 자들은 모두 “허위사실 유포죄”로 기소할 수 있습니다. 선거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번 판결을 “대장동 판결”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방송 대담 과정에서 한 말이 꼬투리 잡혀서 기소되었다는 점을 꼭 언급한 후 범죄자라고 비난해야 ‘선거인의 관점’의 덫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선거인의 관점”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제B]가 있는 부속 논증입니다.
[전제B] 일반 선거인의 관점에서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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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결론]골프 발언’의 취지를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판결문의 논리 구조는 이 세상 어떤 글보다 정리하기 쉽습니다. 대법원도 이 논증을 발견했을 것이며 아마 반박하기 난처했을 겁니다. 자신들에게 중요한 “일반 선거인의 관점”을 적용해보니 “당시 K를 모름”으로 해석된다고 2심 재판부가 주장했으니까요.
2심 판사의 주위의 일반 선거인들은 문맥을 잘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대법원 판사들 주위에는 단어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았고요(농담입니다^^)
[전제B]를 부정하기 위해 대법원은 새로운 용어를 추가합니다. “전체적인 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요.
발언의 의미를 확정할 때는 사후적으로 개별 발언들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추론하는 데에 치중하기보다는, 발언이 이루어진 당시의 상황과 발언의 전체적 맥락에 기초해, 일반 선거인에게 발언의 내용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기준으로 살펴봐야 한다. 특히 특정된 하나의 주제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행해진 일련의 발언 내용이 흐름상 특별한 주제 전환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는 경우에는 그 연결된 발언 전부의 내용이 일반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공표된 발언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하나의 연결된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사후적인 세분 또는 인위적인 분절을 통해 연결된 발언 전부에 대한 표현 당시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꼼꼼하게 문맥을 파악한 2심 판결을 ‘인수분해’같다고 즉흥적으로 비난하던 사람들의 표현을 대법원이 다듬은 것이 ‘사후적인 세분 또는 인위적인 분절’입니다. 이것의 반대가 ‘전체적인 인상’일 것인데 전체적인 인상은 어떻게 헤아리는지요. 판사가 판단을 할 때 해당 발언을 세세히 살펴보지 말고 가만히 들어보라는 것이 전체적인 인상입니다. 그러다가 느낌이 오면 판결문에 이렇게 적으면 되지요. 재판부가 사후적인 세분 또는 인위적인 분절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어보니 이 발언의 취지는 “골프 안 침”이었다! 끝.
전체적인 인상을 파악하는 짧은 순간에서 숙달된 해석자들 뇌에서는 세분과 분절이 진행됩니다. 운동선수의 놀라운 움직임처럼요. 부분과 전체는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습니다.
“일반 선거인의 관점”도 그렇습니다. 이 기준만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2심을 무리하게 뒤집으려 보니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 이상해졌습니다. 이 기준을 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적용하기 쉽지 않지만 이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되 발화자의 의도와 문맥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법 시스템에서 파기환송심 유죄는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발화자의 의도와 문맥을 감안해서(정상을 참작하여)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최선의 해소책입니다. 2심 재판부의 명예도 지켜주시고요.
[추신/ 8일 아침]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네요. "출생지, 가족관계, 직업, 경력, 재산, 행위 등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 금지"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것이 골자라고 합니다. 대선 끝나고 발의 해야 오해를 사지 않지요.
[추신/ 15일 아침] 채널A에서 3심 판결문을 정리한 것을 캡처해서 추가합니다. 기사의 제목을 보면 대법원이 판결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것처럼 단정했는데요. 기자들이 보기에 대법원 판결이 탄탄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숙고 끝에 나온 판결이 아닙니다. 2심 판결에도 일리가 있음을 2명의 대법관이 확인해주고 있으니, 2심 판결을 부정하는 것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은 토의를 거쳐 1심과 2심을 아우르는 새로운 판례를 내놓아야 했는데 아쉽습니다...제가 올린 기사 끝에 유권자들은 '주어' 등등으로 분석하지 않고 듣는다고 했는데 기자들의 말인지 대법관들의 말인지 모르겠으나 피상적인 판단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청자가 어떻게 듣느냐를 헤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자가 어떤 의도로 행한 발언인지를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추신/ 5월 30일] 법률 전문가의 글(주간 경향 6월 2일)이 위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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