ζηλωτής(젤로테스, 열심당원)에 대하여
김범식
주후 1세기 유대교 종파들에 대하여 신약성경, 특별히 복음서에서 구체적이지 않지만, 그들의 이름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그리고 가장 스쳐가는 이름처럼 열심당원이 언급되고 있다. ζηλωτής(젤로테스)라는 단어는 열정(passion), 열심(zeal), 시기심(jealousy)을 뜻하는 명사 ζῆλος(젤로스)에서 온 것이다.
열심(ζῆλος)에 대하여는 이미 2권에서 서술하였기에, 유대교 종파로서의 의미를 가진ζηλωτής(젤로테스)를 생각해 본다. 바울이 언급하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 율법과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열심은 단순한 개인적 바램이나 목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방 문화, 특별히 우상숭배와 관계된 이방종교와 이방관습에 대한 거부감과 배척은 신구약 중간시대에 유대교(Ἰουδαϊσμός, Judaism)라는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의 강화로 이어졌다. 유대인처럼 사는 것(Judaism)은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일상에서는 안식일과 정결법을 지키는 정체성을 말한다. 이것에 대한 종교적 일상적 도전이 예수의 삶과 교훈이었기에, 예수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대제사장들과 갈등하였고 대립하였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가 정죄 받은 죄목은 ‘신성모독’의 죄였다(막 14:64). 성전과 율법에 대한 무시와 모독이 곧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와 지위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판단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처형권이 없는 그들이기에 로마총독의 재판에 회부하여 죽게 만드는 방안으로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하고 선동했다는 혐의로 빌라도 총독에게 고발하여 사형을 받도록 공모했다. 하나님의 통치를 내세우며 반로마적 메시아적 운동을 주동하는 사람들(messianic pretenders)을 정죄하는 용어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다.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고발하하여 결국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볼 때, 로마의 통치를 거부하는 유대교의 한 당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ζηλωτής(젤로테스, 열심당원)의 존재이다.
ζηλωτής(젤로테스)는 단순히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열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주후 1세기에 정치적 종교적 종파로 존재했던 고유명사 ζηλωτής(젤로테스)이다. 예수의 열 두 제자 중에 어부 시몬과 동명이인이었던 시몬을 가리켜 “가나나인 시몬”(마 10:4; 막 3:18) 혹은 “셀롯이라는 시몬”(눅 6:15; 행 1:13)이라 칭하고 있다. ζηλωτής(젤로테스, 셀롯)의 아람어 등가어가 Καναναῖος(카나나이오스)인데, 후자는 히브리어 קִנְאָה(킨아흐, 열심)에서 유래된 것이다. 열심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일으킨 유대인 반란전쟁(주후 66-70년)은 요세푸스의 역사저작 [The Jewish War]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한 세대 이후에 일어난 이 전쟁은 로마군단에 의한 성전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으로 이어졌고, 약탈과 파괴, 수십 만명의 죽음과 포로라는 불행을 유대인들이 겪게 되었다. 이 예루살렘 불행을 아는 예수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눅 19:41). 누가복음은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그림처럼 묘사하였다(눅 19:43; 21:20). 예루살렘 멸망의 불행은 결국 열심당원의 반란 때문이었고, 로마군대로 포위된 예루살렘 성읍 안에서 행한 열심당원들의 악한 행위들을 비판하며, 1세기 역사가이며 증인이었던 요세푸스는 로마군대를 오히려 하나님의 대리자로 묘사하였다.
요한복음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십자가형틀 위에 붙은 예수의 죄목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것에 불만을 품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으라고 빌라도 총독에게 요구한다(요 19:21). 이것은 빌라도 총독 전후에 일어난 많은 거짓 메시아 운동의 연장선에서 예수의 운동을 정죄하는 것인데, 실제로 빌라도 총독은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메시아 운동을 잔인하게 피의 학살로 진압하면서, 그것의 잔인함과 무고한 죽음들에 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탄원에 결국 로마로 소환되고, 총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주후 36년). '자칭'의 의미는 '주장하지만 결국 진실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열심당원의 신정정치 운동과 연관된 '자칭 메시아들'이 있었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자칭 유대인의 왕', 곧 가이사에 대한 반역자라고 총독에게 항의한다(요 19:12).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는 자신의 나라는 하늘에 속한 것이고, 만일 세상 나라를 원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종들이 자신을 위하여 싸울 것이라고 변호한다(요 18:36). 유대교 지도자들의 판단과 요한복음 18장에서의 예수의 최후진술은 열심당원의 존재와 그들의 주장과 행동을 배경으로 삼고, 또 예루살렘 멸망의 불행이 열심당원과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잘 알고 있는 저자의 시점을 보여주고 있다. ζηλωτής(젤로테스)의 존재가 만들어낸 불행을 알고 있었고, 예수의 제자 중 시몬과 같은 열심당원들의 주장, 곧 하나님의 통치(theocracy)를 주장하며 이방제국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며 일으킨 이념적 폭력적 행동의 어리석음을 암시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로마의 통치와 로마관리들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념적 민족적 폭력적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한다. 누가복음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 안에,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치이다: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b-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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