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지금 읽으려고 하는 글은 어떤 연설의 끝부분인데요.
퀴즈라고 생각하고 ‘누구의 연설일까’ 추정해보며 들어보십시오.
단서는 곳곳에 있습니다.
제 52년 군인 생활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전 20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군에 입대했고, 군인은 제 소년 시절의 모든 희망과 꿈이었습니다.
제가 웨스트포인트 연병장에서 선서한 이래로, 이 세계에는 수많은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희망과 꿈에 부풀었던 시절도 오래전에 사라졌지요. 하지만 저는 그 시절 가장 즐겨 부르던 군가의 후렴구 하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고 외치는 후렴구입니다.
그 노래 속의 노병처럼 이제 저는 군인생활을 마감하고 사라져갑니다. 신의 은총으로 저의 의무를 깨달았으며, 그 의무를 완수하려고 애썼던 한 노병으로 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짐작하신대로 연설자는 맥아더 장군입니다. 1951년 4월 19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한 연설이었습니다.
이 연설문을 들으면서 제가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는 명언이 맥아더가 만든 것이 아니라 맥아더 시절의 군가 가사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은 맥아더의 사명 의식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군인의 길이 나의 의무(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사명을 완수하려고 지금까지 애쓴 노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2.
오늘 살펴볼 에녹은 맥아더 장군의 연설문과 이모저모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녹에게 맥아더의 사명 의식 같은 것이 없을 리 없고, 무엇보다도 에녹이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의 사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맥락은 아담의 셋째 아들의 “셋”의 족보 중에서 노아까지의 계보입니다. 셋 후손들이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몇 년 살다가 죽었다’. 그러나 성경은 에녹에 대해서는 지나칠 수 없다는 듯이 다음과 같은 서술을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4절)
‘데려가시므로’의 원어는 승천(昇天)을 암시하고 있고 히브리서 11:5에서는 승천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사라진 첫 ‘노병’이 에녹인 셈입니다(두 번째 노병은 엘리야).
인간으로 죽음을 통과하지 않았다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특별대우 하신 것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특별대우를 받은 에녹의 삶의 비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되는데요, 본문과 성경 전체에 있는 에녹 관련 구절을 함께 살펴보면 서서히 에녹 삶의 비밀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부터 다시 한번 잘 살펴봐야겠습니다’(<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멘트).
3.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이 두 번 나옵니다. 에녹 삶의 특성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이 언제부터 이런 삶을 살았을까요? 므두셀라를 낳았을 때부터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요. 에녹 방식의 “하나님과 동행”이 무엇인지는 므두셀라를 낳은 65세 때 에녹에게 어떤 깨달음이 있었느냐를 추적하면 될 듯합니다.
(1) 첫 번째 단서는 이때 얻은 아이의 이름에 있습니다. 므두셀라 이름의 뜻은 “창 던지는 자”라고 합니다. 튼튼한 사람 한 명이 창을 들고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는 것과 관련된 이름이며 축구 골키퍼와 비슷한 역할입니다. ‘내가 무너지면 끝이다’이지요. 므두셀라 이름에 ‘므두셀라가 쓰러지면 끝이다’는 예언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끝은 “심판”과 “종말”을 의미하고요.
성경을 보면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심판이 있었습니다.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인간 중 가장 장수하였으며 969년을 살았는데 성경 구절을 맞추어보면 노아 할아버지인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노아의 홍수가 마침내 터집니다.
아마도 에녹이 65세 때 깨달은 것은 유한한 인생과 하나님 심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2)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는 구절은 유다서 1:14-15입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의 삶과 하나님 심판의 관계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에녹이 65세에 깨달은 것을 압축적으로 담은 말씀은 히브리서 9:27 아닌가 싶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므두셀라가 태어난 시기에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에녹은 하나님의 평가(심판)를 의식하며 하루하루 신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러한 에녹의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히브리서 11:5-6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는 요절은 에녹의 신앙생활에 대한 언급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상’(賞)은 “평가”나 “심판”의 후속 조치이니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평가(심판)를 의식하며 살아간 에녹의 삶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녹 방식의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 받을 평가를 의식하며 신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5.
오늘 본문의 근처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발견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명이 700살 중반에서 900살 중반 사이입니다.
반면에 에녹이 이 땅에 머문 해는 365년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이 땅에서 지낸 기간이 반 이하입니다.
비록 에녹이 죽지 않았지만 이 땅을 떠났다는 점에서는 죽음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반 이하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이 땅에 오래 머무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물론 일찍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쉽고 애석하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수명은 도토리 키재기 비슷합니다. 짧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면 에녹과 같은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은 이러한 삶을 혼자 해냅니다. 자본금 없이 개척한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본금을 대어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시지요.
성도 여러분들을 성령께서 도우시고
성도 여러분들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
(1) 주일예배(25. 11. 2)에서 전한 “말씀새김”입니다. 제목은 “에녹의 비밀”이고 본문은 “창세기 5:21-24”입니다. 요약하고 문어체로 바꾸어 올립니다.
(2) 2014년 9월 7일에 전했던 원고를 리바이벌(revival)했습니다. 조금 보완하였고요. 성경 말씀 풀이 대부분은 신학자 책들을 참고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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