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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로의 하나님(성령강림후 열둘째주일)
2017-08-26 12:24:37
김민수
조회수   2967

모든 위로의 하나님


고린도후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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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퇴직, 질병, 파산 혹은 가족의 죽음 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문제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저 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큰 아픔을 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기의 선 자리에서 보기 때문에 자기의 아픔이 가장 크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아픔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 때도 있습니다. “위로하려면 위로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상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합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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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있었습니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첫사랑에 실패한 후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남자(조인성)와 부모의 이혼과 오빠와의 결별, 갑자기 찾아온 시각 장애로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사는 여자(송혜교)가 만나 차갑고 외로웠던 그들의 삶에서 희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드라마의 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뇌종양에 걸렸을 때, 내가 바란 것도 위로였어. 근데 사람들은 오빠 너처럼 위로하지 않았어. 위로는커녕 여섯 살 아이에게 용기를 강요했어. 잔인하게. 괜찮아, 영이야. 수술은 안 무서울 거야. 괜찮아. 넌 이길 수 있어. 항암 치료? 그까짓 거 별거 아니야.”


그럼 사람들이 그 말밖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


안 괜찮아도 돼, 영이야. 안 괜찮아도 돼. 무서워해도 돼. 울어도 돼.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난 하루 이틀 울다가 괜찮아졌을 거야. 근데 그때 못 울어서 그런가? 지금도 난 여섯 살 그때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에서




 


이 구절을 통해서 위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맞아, 네가 당한 일이 억울할 수 있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하는 말이이 울지 마, 너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야, 이래야 돼하는 설교조의 말보다 훨씬 위로가 되는 말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픔을 당한 이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노력하지만, 아픔을 당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아픔을 당했을 때 위로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삶의 저 밑바닥, 아픔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모든 위로가 되시는 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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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는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영성이 뛰어난 서신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다른 서신들은 주로 교리나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반하여, 고린도후서는 바울 개인의 신앙고백과 체험이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바울이 힘겨워했는지는 고린도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는 주전 146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100년 동안이나 버려졌다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에 의해 주전 44년에 재건된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운 것은 주후 50년 어간(2차 전도여행)이었습니다. 고린도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로마 제국 내에서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경제 기적을 일구었습니다. 급격한 발전은 스포츠와 유흥문화, 종교적 다원주의, 물질주의를 가져왔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3년이 지났을 무렵,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계획으로 디모데를 먼저 보냅니다. 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황망했습니다.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본 것은 우상숭배와 음행과 거짓 교사들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급히 서둘러 방문했는데 그들은 사도의 권위를 문제 삼았고, 바울 사도의 사역과 인격에 대해서 비난했습니다. 그들이 주장은 바울이 진짜 하나님의 사도라면 왜 그렇게 그의 삶에는 고난이 많은가? 왜 그의 사역은 다른 지극히 큰 사도(super-apostles)’들과 비교하여 활기가 없는가? 왜 그의 설교는 와 닿는 것이 없는가? 왜 그는 하나님이 자기 삶을 인도한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방문하는가? 왜 그는 다른 설교자들처럼 사례를 받지 않는가? 그가 모금한다는 것은 믿을만한 것인가? 왜 그는 다른 사도들처럼 추천장이 없는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한 상처를 입고 돌아왔습니다. 설교자에게 이런 비난은 얼마나 큰 상처겠습니까?




 


바울은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를 써서 디도에게 보냅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지금 전해지지 않지만, 그 편지를 읽고 고린도 교회는 회개합니다. 그 회개에 감사하면서 바울이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에 앞서 쓴 서신이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특히 오늘 읽은 말씀은 고난과 위로와 구원과 감사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문제로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받고 구원받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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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교 교회의 공격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크게 낙심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게도냐로 돌아와 그들에게 편지를 쓰지만,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직접 대면했을 때에도 회개하지 않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편지로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회개의 영은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는 말로 힘내, 괜찮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5절 말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라는 말씀을 유심히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미 바울이 당한 고난보다 더 깊은 고난을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고난을 겪으십니다.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은 주님이 겪으신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바울을 닦달하지 않습니다. 오히랴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어, 바울로 하여금 힘겹게 하는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 서운하게 했을 때, 가장 큰 위로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같이 험담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의 위로는 되겠지만, 근원적인 위로는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잘못되어도 마음이 찝찝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이 직접 진솔한 마음으로 미안했어!”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이 방법을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 그런 황망한 일 앞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주님은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가장 적절한 위로가 무엇인지 아시는 주님이 환난의 때에 함께 하시며, 환난의 근원을 치유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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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것은 인간적인 모든 노력이 끝난 것과도 같은 상황을 의미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이겨내려고 하거나 주변 사람을 의지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저마다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의지로 한 말이나 행동도 상처가 되고,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람의 말은 양면의 두 날이 있어서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만일 삶이 자기의 의지대로 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사형 선고를 당한 것 같은 환난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나오는 드라마의 멋진 대사처럼 안 괜찮아도 돼, 영이야. 안 괜찮아도 돼. 무서워해도 돼. 울어도 돼.”라는 말 정도로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는 어떤 위로의 말도 오히려 상처가 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축하의 말보다 위로의 말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만!”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의 뜻은 하나님만이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일으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도 같은 상황에서 만방으로 노력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사람을 보고 신앙 생활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습니다. 또 목사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목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을 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곳입니다. 목사건 교인이건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만 바라봐!” 하면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것도 교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 깊은 심연에서는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험한 세상에서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내치지 않으시며,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형 선고와도 같은 환난 속에서도 이미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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