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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4일 (금) 일점일획_브엘세바(בְּאֵר שֶׁבַע)에 대한 묵상(김창주)(IBP)
2026-07-23 23:04:43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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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בְּאֵר שֶׁבַע)

김창주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우물을 두고 갈등을 빗자 두 사람은 협상을 벌인다(창 21:22-34; 26:15-33). 아브라함이 우물을 판 증거로 암 양 새끼 일곱 마리를 제시하며 서로 서약하고 그곳을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브엘세바라 일컫는다(창 21:31). 아브라함은 그곳에 에셀나무를 심어 야웨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곳에 한 동안 머문다. 이로써 브엘세바는 족장 시대 중요한 거점이자 활동 범위의 남방 경계가 되었다. 예컨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에서 알 수 있듯 이스라엘의 활동 범위 또는 영토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관용구다(삼상 3:20; 24:2; 왕상 4:25; 대상 21:2).

 

브엘세바는 사전적으로 브엘(בְּאֵר)과 세바(שֶׁבַע) 두 낱말이 결합되어 ‘맹세의 우물’(창 21:31) 또는 ‘일곱 개의 샘’이란 뜻으로 풀 수 있다. ‘브엘’은 사막 지대에서 사람이 땅을 파거나 깊은 데서 물을 끌어올린 우물이며(민 21:16) ‘엔’(עֵין)은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샘물이다(삼상 23:29; 아 1:14; 겔 47:10). 지명 중에 브엘라해로이(בְּאֵר לַחַי רֹאִי: 창 16:14), 바알랏 브엘(בַּעֲלַת בְּאֵר: 수 19:8) 등은 인공 시설이 나중에 지명으로 불린 예다. 그러나 ‘세바’는 두 갈래로 살펴봐야 한다. ① 일곱: 물리적인 숫자를 묘사한다. 곧 아브라함의 종들이 샘을 파자 아비멜렉 군사들이 빼앗기를 거듭 반복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해당 본문에서 아비멜렉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일곱 차례 차지한 것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맹세의 언약을 치르는 과정에 ‘일곱 암양 새끼’를 우물의 증거로 제시한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여기의 ‘일곱’은 양측이 더는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상생하겠다는 상호 존중의 확인과 이를 제의적으로 반영한 숫자로 보면 무방하다. ② 맹세: 일곱을 뜻하는 세바(שֶׁבַע)와 맹세의 세바(שְׁבֻעָה)가 비슷한 데다가 변형되어 쓰이면 둘의 식별이 어려워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일곱과 맹세가 어떤 점에서 서로 관련되며 겹친 것일까? 고대 셈족의 독특한 생활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곧 계약 당사자가 맹세할 때 일곱 번 자신의 몸을 묶는다. 그 뜻은 상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언약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다. 일곱 차례 결박은 서약의 엄숙함과 계약을 끝까지 준수한다는 확약이다. 이로써 브엘세바는 하나님의 언약이 맺어진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한 셈이다.

 

사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브엘세바와 관련 있다. 아브라함은 우물을 파고,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후 에셀 나무를 심어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이삭은 우물을 다시 팠으며 하나님이 그곳에 나타나시자(창 26:23) 단을 쌓고, 언약을 체결하였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떠나고, 애굽으로 떠나기 전에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즉 브엘세바는 계약을 맺고 상생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예배처다. 브엘세바는 인공적인 오아시스로서 유목민과 정착민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며 광야와 문명의 경계다. 동시에 언약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브엘세바는 긴장과 분쟁 중에서도 언약이라는 의식을 통하여 상생과 평화를 유지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하란(חָרָן)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잠시 들렀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다. 지정학적인 위치는 유프라테스 상류 지역으로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팔레스틴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써 각종 물산이 모여드는 요충지다. 그러니 하란은 양보하고 공존하는 브엘세바와 달리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앞서는 곳이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하란을 전쟁과 살육이 벌어진 종말론인 공간으로 인식한다(사 37:12). 하란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교차점, 사거리’ 등을 가리킨다. 자연히 물산과 사람이 몰려들어 왕래가 빈번한 곳이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거주하였고(창 11:31), 아브람은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으며(창 12:4), 야곱은 하란에서 외삼촌 라반을 만난다(창 28:5).

 

그렇다면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간다는 뜻은 무슨 의미인가? 이야기의 맥락으로 볼 때 리브가의 충고대로 에서를 떠나서 라반에게 몸을 숨기는 것이다(창 27:43). 그러나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거리는 약 400km가 넘는다. 야곱은 이렇듯 익숙하고 정든 브엘세바를 떠나 완전히 낯설고 물서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삶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실 당장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고 보면 외삼촌 라반은 기댈 수 있는 최소이자 마지막 희망이다. 더구나 장거리 여행이나 중간 도착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는 이후 전개되는 야곱의 앞길이 만만치 않음을 암시한다. 즉 야곱의 여정과 행로가 암시하는 최소 정보만 제공한 것이지만 여기에 함축된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는 상대를 서로 인정하며 함께 살 길을 모색하던 아버지와 선조들의 익숙한 공간을 떠나서 오로지 힘과 생존의 논리를 내세우는 치열한 ‘무림의 세계,’ 곧 무한경쟁의 공간으로 뛰어든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아브라함은 ‘빛의 고을’ 우르(אוּר)에서 나와 하란에 잠시 머물렀다(창 11:31). 그러나 그의 나이 75세에 조카 롯과 함께 하란에서 얻은 모든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다(창 12:4-5).

 

역설적이게도 야곱은 아브라함의 길과 정반대의 행로를 따른다. 할아버지의 길 ‘하란에서 브엘세바’가 아니라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간 것이다. 여기에는 야곱이 한 우물을 함께 사용하며 언약을 통하여 서로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세계, 그리고 안정된 삶이 보장된 공간을 떠나 약육강식의 생존 논리, 곧 정글의 법칙을 앞세우는 불안한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럼에도 야곱은 하란에서 20년 동안 두 아내를 만나 가족을 이루었고 재산을 축적한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는 도망자 야곱이 피신한 길이다. 하란은 ‘속이는 자’ 야곱이 되려 속임을 당하고, 혹독한 시련과 연단의 시간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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