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관한 묵상
바울 사도,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만큼 바울 사도에게 큰 힘이 되었다. 바울 사도가 힘들고 곤고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주님께서는 아굴라 부부를 예비하셨고, 바울 사도가 아테네를 급히 떠나 고린도에 당도하였을 때 이 부부를 만나게 하셨다. 그 이후, 아굴라 부부는 바울 사도와 동행하였는데, 때로는 먼저 가서 준비하였고, 때로는 뒤에 남아 사역을 이어갔고, 때로는 함께 동역하였다.
아테네를 돌연히 떠난 바울 사도
바울 사도와 아굴라 부부의 첫 만남은 고린도에서 일어났다. 2차 선교여행 중이었다. 아테네에서 아레오바고 연설을 마친 바울 사도가 아테네를 돌연히 떠나 고린도로 갔다. 그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가게 된 시점에 주목해보자. 그 시점을 서술하고 있는 사도행전 18장은 “그 뒤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1절)라고 보도한다. “그 뒤"는 무슨 일 뒤인가? 바로 앞 17장 마지막 절에 담긴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바울 편에 가담하여 신자가 되었다.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도 있었고, 다마리라는 부인도 있었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17:34)
아레오바고 연설의 결과, 아테네에 신자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위원회의 위원(Ἀρεοπαγίτης아레오파기테스)인 디오누시오도 있었다. 새번역은 아레오바고를 “법정”으로 그 구성원을 “판사”라고 번역하였지만, 아레오바고 위원회는 그 도시의 아르콘(ἄρχων) 곧 도시 최고 지도자 출신들의 모임으로, 그리스 시대로 말하자면 원로원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사법만 아니라 행정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아레오파기테스를 “관리"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이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고 바울 편에 가담하여 신자가 되었다고 사도행전은 전한다. 대단한 진전이다.
다마리라는 부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이름이 알려진 귀부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함께 있는 몇몇도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한글 번역은 공히 “디오누시오와 다마리와 그 밖의 몇 사람”이라고 번역하지만, 원문은 다르다. “그 밖에 다른 사람”에 해당하는 원문은 ἕτεροι σὺν αὐτοῖς(헤테로이 쉰 아우토이스)인데,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이다. ESV는 이 뉘앙스를 살려 “others with them”으로 번역하였다. 한글 성경 번역과 무엇이 다른가? 개별적인 몇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를 중심으로 하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테네 교회의 중심을 형성할 수 있는 그룹이 회심과 동시에 형성된 것이다. 무척이나 긍정적인 출발이다.
거기다가 그 앞 절에 이런 말도 있다.
32절 . . . 더러는 "이 일에 관해서 당신의 말을 다시 듣고 싶소" 하고 말하였다.
바울이 전한 예수 부활의 복음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다는 말이다.
자, 코어 그룹도 생겼고 대중적 호응도 얻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바로 그 때 아테네를 돌연히 떠나 고린도로 갔다. 이건 이해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왜 그랬을까?
성경에 직접적인 답이 없다. 쓰여 있는 내용에 기초하여 개연성 있는 상상을 펼쳐볼 수밖에 없다.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가서 바울 사도가 경험하게 된 것에 대해,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갔는데, 생업이 서로 같으므로, 바울은 그들 집에 묵으면서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행 18:2~3)
바울 사도가 아테네를 돌연히 떠나 고린도에 당도하였을 때, 바울 사도에게 일어난 일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고 그들과 동업하며 그 부부의 처소에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만남을 위하여 바울 사도는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를 간 것 아닐까?
만남을 통해 위로하시는 주님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전 바울 사도의 행적을 더듬어보자. 2차 선교여행을 떠난 다음 소아시아에서 겪은 갈등이나 막막함까지 돌아가지는 말자. 유럽으로 건너온 다음 바울 사도가 겪은 괴로움과 외로움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도행전 16~17장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에서 겪은 일이 쓰여 있으니 이 부분을 읽으며 바울 사도의 상황을 그려보고 심정을 느껴보자.
데살로니가전서의 한 구절만 인용하겠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살전 2:2)
고난, 모욕, 반대. 이 세 단어가 바울 사도의 형편을 잘 보여준다. 고난, 모욕, 반대의 상황은 빌립보부터 아테네까지 이어졌다.
사도행전의 큰 주제는 복음의 승리이다. 그런데 그 승리는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바울 사도를 포함한 헌신자들의 수고와 헌신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한 헌신자들의 고난과 곤고함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그가 겪은 고난과 곤고함, 외로움에 대해 무심한 채, 바울 사도를 마치 위대한 에픽물의 슈퍼 히어로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맞아도 아프지 않고 수고해도 지치지 않는. 그런데 바울도 사람이다. 그의 길이 참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주님이 지쳐가는 바울 사도를 위로하고 힘주기 위해 그를 급히 고린도로 보냈고, 거기서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신 것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주님께서 바울 사도를 위하여 예비하신 위로의 동역자였다.
바울 사도와 동행
아굴라 부부가 바울 사도와 동행한 기록을 정리해 보자. 고린도의 아굴라 부부 집에서 바울 사도는 1년 6개월을 묵었다(행 18:11). 그리고 에베소로 이동하였는데,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로 바울 사도와 동행하였다(행 18:18~19). 아래 사도행전 18장 26절과 고린도전서 16장 9절은 에베소에서 바울 사도와 동역하는 아굴라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말을 듣고서, 따로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행 18:26)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모이는 교회가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문안합니다.(고전 16:19)
사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베소를 떠나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행 18:21) 2차 선교여행을 마쳤고, 3차 선교여행 때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다(행 19:1). 바울 사도 부재의 시간, 에베소를 지키며 복음을 전한 사람은 아굴라 부부였다.
아굴라 부부가 다시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간 시점을 글라우디오 황제가 사망(54년)하여 그의 칙령이 해제된 이후일 것이다(55년경). 바울 사도의 로마 이송을 60년 이후로 보니, 로마에서도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예비한 셈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들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롬 16:3~4)
위의 로마서 구절은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와 믿음의 공동체를 세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흔적을 보여준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 두 가지만 첨언하자.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
하나는 로마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로마 제국의 네 번째 황제인 클라우디우스가 기원후 49년에 칙령 발표하는데, 흔히 로마에서 모든 유대인을 추방하라는 칙령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 회당에 혼란과 폭력 사태 발생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인데 그들이 회당에서 예수를 전하였고, 이를 핍박하는 유대인에 의해 회당 내 갈등이 심화되었다.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이 이슈는 격화되었고,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이 내려졌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가 기술한 <황제전>은 클라우디우스 칙령을, “유대인들이 크레스투스(Chrestus, Christos의 오기)의 선동으로 끊임없이 소동을 일으키므로, 그는 그들을 로마에서 쫓아냈다."고 진술한다. 당시 로마시 인구를 100만, 그중 유대인 인구를 4만으로 추정하는데, 이 갈등으로 로마의 유대인 전부를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사회적 혼란의 중심에 선 인물들을 추방했을 것인데, 그 중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는 역으로, 이 부부의 믿음을 반증한다. 로마의 유대인으로 일찍이 예수를 받아들이고, 회당에서 동료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전도하려다 핍박받고 추방당한 점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먼저 와 있었다.
부자가 아닌 수공업자
바울 사도를 자기 집에 받아들인 아굴라 부부에 대한 오해는 이 사람들을 도무스에 사는 부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house of Dioscuri in Pompeii

Roman terrace house in Ephesus
도무스는 방이나 다른 독립 공간을 여럿 가진 건축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 넓은 집에서 방 하나를 떼어 바울 사도가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정도로 아굴라 부부와 바울 사도 관계를 상상한다. 부유한 페이트론(patron)이 방랑하는 철학자를 자기 집으로 청하여 들이고, 그의 활동을 후원하는 그림은 로마 사회에 낯설지 않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증언처럼 아굴라는 수공업자였다. 수공업자가 도무스에 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수공업자는 신분적으로는 자유인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에 속했고, 사회적으로 존경보다는 멸시의 대상이었다. 키케로가 그의 <의무론>에 적은 글은 이를 보여준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장인(수공업자)의 일은 비천하다. 작업장 안에는 고상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상류층을 타깃으로 하는 보석 세공 같은 일을 하는 수공업자라면 혹시 부유한 후원자를 잘 만나 그의 도무스 외벽에 조그만 가게(taberna) 하나를 낼 가능성은 있겠다. 그러나 서민을 상대하여 천막 따위를 만드는 수공업자는 그 자신이 서민이거나 그 아래 계층에 속한다.
수공업자의 공간은 도무스가 아니라 인슐라이다. 넓어야 20m x 20m 정도 되는 단칸방 구조. 거기서 먹고 자고 만들고 판매한다. 어느 도시에나 아고라 주변에는 수공업자의 인슐라가 위치해 있었고, 고린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린도 아고라의 인슐라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아, 다른 도시의 수공업자 인슐라를 덧붙인다.

External view of the insula of the House of Diana in Ostia Antica
아굴라는 그 누추한 공간에 바울 사도를 초대하여, 함께 일하고 먹고 잤다. 작업대나 판매대로 공간을 나누어 부부와 바울 사도가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불편하지 않았을까? 같은 뜻, 같은 믿음을 가진 하늘 가족이었기 때문에 따뜻했으리라. 그뿐 아니라 고향을 떠나 떠돌고 타향에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리라. 물질적 부유함과 편리함이 아니라, 이 공감과 따스함 속에서 바울 사도는 위로받았다. 이 사람들과의 만남은 주님께서 바울을 위해 준비하신 위로와 격려였다.
바울 사도가 아굴라 부부를 만난 사도행전 18장은 이런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행 18:9~10)
주님의 일을 하는 바울 사도에게 “함께 하겠다"고 하시는 주님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는가? 아굴라 브리스길라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아테네 교회는 그후에?
글을 마치며, 바울 사도가 돌연히 떠난 다음 아테네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유세비우스 <교회사> 4권 23장에 이런 구절을 찾을 수 있다.
that Dionysius the Areopagite, who was converted to the faith by the apostle Paul, according to the statement in the Acts of the Apostles, first obtained the episcopate of the church at Athens.
아레오바고 위원인 디오누시우스는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 사도가 전도했을 때 가장 먼저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인데, 그가 아테네 교회의 첫 번째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바울 사도가 돌연히 떠났음에도 아테네 교회는 살아남았고, 디오누시오도 그 믿음을 지켜 아테네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가 되었다. 아테네 교회를 세우는 데 바울 사도가 쓰임 받았지만, 모든 일은 주님이 하신다.
https://ibp.or.kr/wordspostachio/?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72240025&t=boar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