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무기력
2011-07-13 13:55:26
김주한
조회수 3423
무기력
김주한 교수(한신대, 교회사학)
수도사들이 대적해야 할 감정 중에 무기력 증은 심각한 질병이었다. 무기력은 헬라어로 “아케디아”인데 이 뜻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태로 인해 삶의 모든 영역이 게으름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인간의 죄성이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교만, 태만, 기만에서라고 말하면서 이 세 가지 치명적인 인간의 원죄성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속량되고 치유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바르트는 게으름(태만)을 인간의 죄성으로 규정한 것이다. 교회 목사직이나 대학 교수직은 일이 많고 바쁜 직업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사실은 일반 직장인들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시간에 얽매여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른 직업 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스스로 ‘매니지먼트’ 할 여유가 있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해서 열심을 내지 않으면 한 없이 게을러지기 쉬운 직업이 바로 종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수도사들은 무기력을 큰 죄악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무기력 증세는 삶을 느리게 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감정이다.『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도 나와 세간에 화제가 된 적도 있었지만, 요즘 천천히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상은 “빨리 빨리 증후군” 때문에 인간성이 파괴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리라. 어느 미국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그 분 말씀 인즉, 동양인들은 외모를 봐서는 한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잘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하면서 -마치 우리도 외모로 봐서는 캐나다 사람인지 영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 구별하기 힘든 것처럼-그렇지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자기가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재빨리 누르는 사람,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려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벌써 출발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한국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일만 빨리 처리하고자 서둘러 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한국인들의 얌체 같은 행동을 꼬집는 말이었다. 아무튼 느리게 천천히 사는 방식이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수도원의 전체 생활 태도는 항상 한 걸음 뒤로, 한 박자 느리게, 한 마디 적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임이 적고 느린 것이 일상의 몸에 베이도록 수도사들은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이런 생활 태도가 자칫 무기력으로 빠지지 않도록 극도의 경계를 하였다. 그래서 수도원들 마다 규칙을 마련하였는데 기도회 시간이나 각종 모임에 시간엄수를 각별히 강조하였다. 지각은 무기력이라는 병의 증상이 되어 한 사람의 고통을 넘어서서 전체를 괴롭히는 영적 전염병이 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바 안토니가 사막에 살 때 무기력에 빠져 많은 죄 된 생각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주여, 구원받기 원하오나 이런 생각들이 저를 홀로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이까? 어떻게 제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나이까?”하고 기도하였다. 잠시 후에 안토니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다가, 자기와 같은 한 사람이 일을 하다가는 기도하기 위하여 일어나고 그랬다가 다시 앉아서 로프를 엮고 또 다시 일어나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안토니에게 가르침과 확신을 주고자 보냄 받은 주의 천사였다. 안토니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이렇게 하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안토니는 그 말을 듣고 기쁨이 넘치고 용기가 솟아났다. 그는 이렇게 살았고 구원을 받았다..
무기력 증세에 빠진 수도사들은 겉잡을 수 없는 방황에 빠져 들었다. 무기력에 빠지면 무엇을 향해 전진하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가 유발되지 않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게 된다. 내가 왜 가족을 떠나 이렇게 황량한 사막에 들어와 이런 고생을 하는가? 이렇게 되면 무기력에 빠진 수도사들에게는 수도원의 모든 규칙들이 무의미하거나 강압적인 것으로 보여 진다. 수도원에 와서 수도생활을 하도록 만든 마음의 불꽃이 사라져 버리고 원초적인 힘이 빠져버린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수도사들은 게으름, 무기력은 천성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의 유혹이나 악한 생각의 지배에 의해서 생기는 전염병으로 진단하였다. 이 전염병은 세월이 흘러 갈수록 더욱 심해져 원로 수도사들은 젊은 세대의 수도사들이 나태해져 간다고 염려하였다.
난장이였던 아바 요한이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원로가 환상 가운데 세 명의 수도사가 바닷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다 반대쪽에서 “불의 날개를 취해서 내게로 오너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수도사는 불의 날개를 취해서 반대쪽으로 날아갔지만 세 번째 수도사는 몹시 울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잠시 후 그에게도 날개가 주어졌지만 불의 날개가 아니었다. 약해빠지고 힘이 없는 날개였다. 수도사는 그 날개로 온갖 고생을 하며 때론 물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물 위로 오르기도 하면서 반대편에 도달하였다. 이 마지막 수도사가 현 세대의 수도사와 같다는 것이 아바 요한의 한탄이었다..
날개를 받기는 했어도 능력이 없는 날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무기력 증의 원인은 자신의 신세에 대한 연민의 결과에서 오는 슬픔이나 또 경쟁심리에서 유발되기도 한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무기력 증에 빠져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잃어버리고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아이구, 내 신세야” 하는 자기연민에서 기인하며 또한 이웃 교회들과의 무한 경쟁에서 이기는 교회는 영적 교만에, 지는 교회는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암마 신클레티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익한 슬픔이 있고 파괴적인 슬픔이 있습니다. 첫 번째 슬픔은 자신의 허물과 이웃의 연약함에 대해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로부터 오는 조롱이 가득 찬 슬픔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무기력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정신은 주로 기도와 시편 낭송을 통해 없애야 합니다.
장마와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무기력 증에 빠지게 한다. 이 무더운 날씨에도 진리를 향해 용맹 정진하는 수도사들을 생각해보면서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 잡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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