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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7일 (금) 일점일획_"예수 이름"에 관한 묵상(우진성)(IBP)
2026-08-06 23:54:48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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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름"에 관한 묵상(우진성)

τὸ ὄνομα τοῦ Ἰησοῦ(토 오노마 투 이에수, 예를 들어 행 3:16, 4:18, 30)는 “예수라는 이름” 혹은 “예수의 이름”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가장 단순한 번역은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은 “주 예수의 이름”(τὸ ὄνομα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토 오노마 투 퀴리우 이에수, 예를 들어 행 19:17)이라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τὸ ὄνομα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토 오노마 이에수 크리스투, 예를 들어 행 2:38), “나사렛 예수의 이름”(τὸ ὄνομα Ἰησοῦ τοῦ Ναζωραίου 토 오노마 이에수 투 나조라이우, 예를 들어 행 26:9)과 같은 변형을 갖지만, 핵심은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은 예수님의 고별 설교인 요한복음에서는 “내 이름으로”(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엔 토 오노마티 무)라는 형태를 입고 “기도와 응답”이라는 주제를 담아 등장하기도 하고(14:13, 14, 16:23, 24), 바울서신에서는 “모든 것 위에 있는 이름”이라는 높은 기독론의 주제를 담아 등장하기도 하지만(빌 2:10-11), 빈도수로 보자면 사도행전이 단연 두드러진다.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라는 예수님의 승천 명령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사도행전의 전개(plot)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해 속에서 “성령”은 부각되었지만, “예수 이름”은 부각될 기회를 잃었다. 그러나, 이 승천 명령에서 “내 증인”이 된다는 말은 곧 “예수 이름”의 증언이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이 점이 명시적으로 기술되지는 않았지만, 사도행전 플롯 안에서는 명확하다. 

“예수 이름”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사도행전에 자주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 이름”에 특별한 주목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예수 이름”이 등장하는 구절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사도행전에서 “예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아래 구절을 읽으며 “예수 이름”의 역할을 마음 속으로 정리해 보라.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4:17-18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5: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5:40-41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9:14-16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9:27-28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그래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루살렘을 자유로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였고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19: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9: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사도행전에서 “예수 이름”은 29번이나 등장한다. “성령”이 이보다 빈번하게 등장하니, “예수 이름”이 사도행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이 빈도수는, 사도행전 안에서 “예수 이름”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사도행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축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사도행전에서 “예수 이름”은 구원, 죄 사함, 세례, 치유, 귀신 축출, 성령 임재, 믿음과 같은 신앙의 본질적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표현되었고, 논쟁과 갈등의 중심이자 핍박과 고난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온전히 신뢰할 이름으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 이름에 의지하여 치유와 축귀를 행사(혹은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이름 때문에 경험하는 핍박과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결국 “예수 이름”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높여진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것이 바로 “내 증인이 되라”는 1장 8절의 명령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예수 이름”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해석한 학자들의 견해도 짧게 소개하겠다. 가장 먼저 “예수 이름”의 의미에 주목한 이는 머레이(Andrew Murray)가 아닐까 싶다. 그는 1887년에 쓴 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에서 누군가의 이름은 그 사람의 “힘과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고, 그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은 곧 그 이름의 주인과 긴밀한 유대 관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였다. 즉 “예수 이름”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예수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예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고별의 시점에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이라고 역설하였다. 

현대 학자 중 “예수 이름”을 진지하게 고찰한 이는 버나드 랭(Bernhard Lang)이다. 그는 Sacred Games에서 예수 이후 초대교회에서, 그 당시 문화 속에 만연하던 주술적 요소가 “예수 이름”에 더하여졌다고 이해한다. 당시 문화 속에서, “치유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은 특정한 이름을 불러 그 능력을 빌릴 때 일어난다고 믿었고, 솔로몬(the King Solomon), 시몬(Simon the Magician), 메난드라스(Menander) 등의 이름이 치유와 기적을 위해 불리던 이름이었는데,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이름”으로 이런 이름들을 대신하였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치유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위해 “믿음”을 요청하셨는데, 예수 이후 초대교회는 “믿음” 뿐만 아니라 “예수 이름” 자체를 부르는 것이 그런 “능력”을 보증해 주는 길이라고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예수 이름”에 대해 말할 때, 후타도(Larry W. Hurtado)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Lord Jesus Christ에서 후타도는 초대교회에서 예수는 흔히 추정되는 시기보다 놀랍도록 이른 시기에 신적 존재로 예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대교가 견지한 배타적 유일신론은 예수가 신적 존재로 높아지는 데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예배의 대상으로 높아지는 데 촉진제가 되었다고 이해한다. 후타도에 따르면,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하나님과 독립적인 별개의 신으로 떠오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한 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의 신적 중요성이 표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발전이었다. 때문에 여러 예배 순서 안에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야훼의 이름 대신 불려지는 이름으로서,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아주 독특한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고백하는 방식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후타도는 “예수 이름”을 고대 이스라엘의 성명신학의 맥락 위에서 해석함으로, 한 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 된 예수라는 기독론적 고백을, “예수 이름”이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사도행전과 몇몇 신학자들을 통해 배운 “예수 이름”의 능력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먼저 “예수 이름”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주문이 아니라는 점을 사도행전 19장의 스게와 제사장의 일곱 아들 에피소드가 보여준다.

 

그런데 귀신 축출가로 행세하며 떠돌아다니는 몇몇 유대 사람조차도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힘입어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고 말하면서, 악귀 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내쫓으려고 시도하였다. 귀신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서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짓눌러 이기니, 그들은 몸에 상처를 입고서,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 (행 19:13-16)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예수 이름”의 능력이 항상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예수 이름”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은 경우도 복음서는 증언한다.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려 있습니다. 어디서나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이를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막 9:17-19)

스게와 제사장의 아들들의 문제는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 이름”을 이용했다는 것이고, 예수님 제자들의 문제는 그 이름에 합당한 기도 없이(막 9:28-29, 혹은 마태복음 17장에 의하면 “믿음이 없기”) “예수 이름”을 주문처럼 사용하려 한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려 했으나 실패한 예수님의 제자들 이야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데 있어서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순전한 마음으로 “예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자. 기도 끝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형식적으로 “예수 이름”을 붙이는 데 만족하지 말고, “주님, 예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을 이루어/도와/해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그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면 이루어주실 것이고, 합당하지 않으면 깨달음을 주시지 않겠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이름” 붙들고 기도하자. "예수 이름"은 믿는 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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