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이 십자가
어린아이는 떼를 써도 예쁜데
늙은이는 노래를 불러도 듣기 싫고 춤을 추어도 보기 싫다.
늙은이는 모름지기 시대의 선생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렇다.
첨단 기술 앞에 늙은이들은 속수무책이다. 초등학생들도 능숙히 다루는 핸드폰도 다루지 못하여 전전긍긍인데 무엇을 가르칠까?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인터넷만 검색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 젊은이들은 늙은이에게 물을 것이 없다. 그러면 삶의 지혜를 줄까? 안타깝게도 그것도 없다.
오늘날 늙은이들은 산업사회의 경쟁에 몰려 치열하게 사느라 깊이 있는 학문을 하지 못했다. 우선 급한 대로 실용적인 것만 배웠다. 유교와 불교는 구시대의 유물로 버림받았고 기독교는 깊은 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구원과 축복만 가르쳤다. 그러니 머리가 비었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실용 지식은 첨단기술 앞에 아무짝에도 쓸데없고 삶의 깊은 지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으니 오늘날 늙은이들은 정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근본을 찾지 않고 현상만 쫓아 숨 가쁘게 살아온 결과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깊이 있게 살지를 못했다. 바쁘게 살았지만 알차게 살지 못했다. 그래서 추하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추하다.
이미 늙은이가 된 사람들과, 늙은이가 될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과 같다. 이제 어떻게 살까? 가치관이 깊지 못하니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건강과 웰빙이다. 아직도 근본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생각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 생각이 깨끗하고 거룩해지면 삶도 깨끗하고 거룩해진다. 낙엽은 곱게 단풍 든 후 떨어진다.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십자가를 포도나무로 만들었다. 여러 해 동안 달콤한 포도를 생산하면서 굵어지고 단단해졌다. 추한 모습을 담으려 했는데 오히려 자연미가 있고 기품이 있다.
- 김홍한목사의 <십자가 묵상2>, 대장간 중에서 -
출처 : 겨자씨신문(https://www.gyeoja.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