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커뮤니티   >   오늘의 묵상
2026년 9월 11일 (금) 일점일획_‘완악해지다’에 대한 묵상(김창주)(IBP)
2026-09-10 23:15:28
묵상 관리자
조회수   45

‘완악해지다’에 대한 묵상(김창주)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지만 바로는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출애굽기 7-12장은 10가지 재앙을 통해 고집이 점점 드세지는 바로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준다. 나일 강의 물이 피로 변하는 첫째 재앙을 시작으로(출 7:20) 피해가 커지는 데도 바로는 모세의 거듭되는 요청을 거절한다. 그럴수록 재산 손실은 커지고 백성들의 아우성은 거리에 넘친다. 모세와 바로의 대결 구도에서 바로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히브리어로 ‘하자크’(חזק), ‘카바드’(כבד) 그리고 ‘카샤’(קשׁה) 등이 언급되었다(출 4:21; 7:3, 13, 14, 22; 8:15, 19, 32; 9:7, 12, 34, 35; 10:1, 20, 27; 11:10; 14:4, 8; 신 2:30; 15:7; 대하 36:13; 막 3:5; 10:5; 마 19:8; 롬 2:5; 9:18). 세 동사는 차례로 ‘비틀어 짜다,’ ‘납덩이처럼 무겁다,’ ‘딱딱하게 하다’를 각각 가리키며 바로의 내면을 다각도로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흠정역은 세 동사를 구별하지 않고 ‘바로의 심장이 굳었다(hardened Pharoh’s heart)’로 옮긴다. 그 영향 때문인지 개역한글은 ‘드세고 괴팍하다’는 한자어 ‘강퍅(剛愎)하게’로 번역하였고 개역개정은 ‘고집스럽고 모질다’는 뜻의 ‘완악(頑惡)하다’, ‘완강하다’로 옮겼다. 공동번역은 ‘억지를 부려,’ 새한글은 ‘마음이 닫혀’로 번역하여 마음의 요동과 평온하지 않은 상태를 반영한다(신 2:30; 수 11:20; 왕상 18:37). 목이 꼿꼿하다(출 32:9; 33:3,5; 34:9), 마음이 둔하다(사 6:10) 등도 같은 의미다.

 

구약에서 심장은 감정과 지성을 통제하는 중추 기관이다. 히브리어 레브(לב)는 신체의 기관 중 심장을 가리키는데 실상 번역은 다양하다. 예컨대 마음(창 6:5; 출 4:21; 31:6; 신 6:5; 왕상 8:23; 아 3:11; 사 7:2; 렘 31:33), 임의(민 16:28; 겔 13:2), 담대(시 27:14; 76:5; 암 2:16), 양심(삼상 24:6; 전 7:22), 교만한 자리(잠 21:4; 렘 48:29; 49:16; 호 13:6) 등이다. 출애굽기 서두에는 대부분 ‘마음’으로 옮겨서 바로의 심경이 점차 굳어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유대 전통에서 태아의 심장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존엄한 생명체로 인정된다. 사람의 심장은 처음 박동이 시작되면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은 생명이 살아있는 동안 벌어지는 활동이다. 이렇듯 생명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관으로서 심장은 혈액 순환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온 몸 구석구석에 공급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산화탄소와 노폐물 등을 빼낸다. 심장의 박동은 수정체가 맺는 순간 시작되지만, 박동의 세기와 속도는 자율신경으로 조절된다. 인체의 심장이 멈춘다면 곧 죽음이다. ‘완악하다’는 것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상태를 암시한다. 따라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바로의 판단이 이성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공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유대교는 심장을 인간의 생각과 지적인 행위, 이해와 통찰력, 의식과 성찰, 판단과 선택 등이 비롯되는 곳으로 여겼다. 그러니 심장이 ‘뒤틀리고 무거우며 굳으면’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등 이성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출애굽기 서두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지다’는 표현이 거듭된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의 반영이다. 모세의 집요한 요청과 일련의 재앙에도 바로는 사람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이 죽는 치명적인 일격을 맞을 때까지(출 12:29-30)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뒤틀리고 무겁고 굳어’ 완강해졌기 때문이다.

 

랍비들은 심장이 심리적 평안과 마음의 안정에 직결되는 상호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의 평온과 생활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궁리해낸다. 그것은 성서일과다. 유대교는 오경을 디아스포라에서 1년, 예루살렘에서는 3 년에 완독할 수 있는 일과표를 제정한다. 현재는 1년 주기 성서일과로 통일되었다. 한 주를 기준으로 월요일 아침, 목요일 아침, 그리고 안식일 아침과 저녁 등 네 차례 읽을 분량을 배치한다. 여기에 기원전 2세기경부터 예언서 일과가 추가되었다(눅 4:16-20을 보라).[1] 한편 탈무드는 7년 6개월 동안에 완독할 수 있는 방대한 일과다. 오경일과는 ‘시두르’(סדור), 탈무드일과는 ‘다프 요미’(דף יומי)라고 한다. ‘그날 읽을 분량’이란 뜻의 다프 요미는 매일매일 빠짐없이 해당 본문을 읽어야만 정해진 기간에 마칠 수 있다. 오경의 경우 일 년 52-53 차례 안식일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면 저절로 오경의 일독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참여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2] 

 

성서일과가 완성되는 주간의 월요일은 초막절 행사의 마지막 날이다. 초막절이 끝나는 날 밤은 ‘토라의 기쁨’(שִׂמְחַת תּוֹרָה)을 나누는 ‘여덟 번째 날 성회’(שְּׁמִינִי עֲצֶרֶת)로 모인다(레 23:36).[3] 이 날은 안식일처럼 노동이 금지되고 거룩한 모임, 곧 예배에 충실해야 한다. 눈여겨볼 것은 독서의 내용과 범위다. 신명기 마지막 본문까지(33:1-34:12) 읽으면 일년 과정은 저절로 끝난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종결되지 않고 곧장 창세기 1장 1절을 낭독한다. 이것은 토라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는 상징적 의식이다. 즉 신명기의 마지막 글자 라메드(ל)는 창세기의 첫 글자 베트(ב)를 만나 심장을 뜻하는 레브(לב)가 된다. 이것은 토라가 처음과 마지막이 있는 단순한 책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의미다. 토라의 끝나는 곳이 다시 토라의 처음이 된다. 마치 심장의 펌프질처럼 토라 역시 이스라엘의 삶과 신앙에 혈액을 공급하듯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살아 움직이는 한 토라는 신체의 심장처럼 딱딱해지거나 무뎌서 ‘완악해지지’ 않고 유연하게 순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아네테 그로스본가르트, 『성서, 인류의 영원한 고전』 46.

[2]Graves, "The Public Reading of Scripture in Early Judaism," 467-87. 

[3]2026년 ‘여덟 번째 날 성회’는 10월 3일(토)이고, ‘토라의 기쁨’은 10월 3-4일까지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공지 홈페이지 개편에 따른 [오늘의 묵상] 게시판 이용을 안내드립니다. 관리자 2025-09-08 1288
3366 2026년 9월 11일 (금) 일점일획_‘완악해지다’에 대한 묵상(김창주)(IBP) 묵상 관리자 2026-09-10 45
3365 2026년 9월 10일 (목) - 하늘씨앗향기_사랑의 선택!(김옥성 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9 73
3364 주변을 읽는 지혜_부끄러움 (유대은 목사) 관리자 2026-09-09 92
3363 2026년 9월 9일 (수) 십자가 묵상 -책임 십자가(김홍한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8 110
3362 2026년 9월 8일 (화)-로중_ ‘우리를 온갖 곤경과 재앙에서 이끌어내시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_이주형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7 121
3361 2026년 9월 7일 (월) - 빌레로부터 온 이야기-낯선 아픔을 지는 법_윤태현 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6 157
3360 감정조절 (이승정 목사) 관리자 2026-09-06 136
3359 [절기예식서] 2026년 한가위 가정 예식    묵상 관리자 2026-09-06 143
3358 2026년 9월 6일 (주일) 말씀과삶(구원, 과거에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시간의 창조), 623장 주님의 시간에    묵상 관리자 2026-09-06 152
3357 2026년 9월 5일 (토) 사진그림묵상_자화상(김민수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4 191
3356 2026년 9월 4일 (금) 일점일획_ 제자 Ἀνδρέας(안드레)에 대하여(김범식)(IBP) 묵상 관리자 2026-09-03 154
3355 2026년 9월 3일 (목) - 하늘씨앗향기_사랑 안의 영혼!(김옥성 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3 164
3354 주변을 읽는 지혜_생명에 담긴 시간 (유대은 목사) 관리자 2026-09-02 215
3353 2026년 9월 2일 (수) 십자가 묵상 -노근리 십자가(김홍한목사)    묵상 관리자 2026-09-02 181
3352 2026년 9월 1일 (화)-로중_ ‘주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 사는 이로서 주님께 기쁨으로 예물을 드립니다!’_이주형목사 묵상 관리자 2026-08-31 207
1 2 3 4 5 6 7 8 9 10 ...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