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솔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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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노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
2024-04-04 19:52:20
신솔문
조회수   222

1.

저녁에 텔레비전으로 단종(강봉된 이름은 노산군) 이야기를 보면서

22년 초에 보관해둔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임실의 “노산”에는 단종과 관련된 미담이 배여 있는데요.

지금이라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2.

빨간 동그라미가 노산 정상입니다.

산기슭에 임실시찰의 교회가 세 개나 있습니다.

(1) 주천교회

(2) 한암교회

(3) 봉천교회

약 3년 전 아내와 올랐던 산입니다.

등산로가 안 보여(없다고 보십시오) 힘들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3.

박경일기자의 여행/ 문화일보 2018. 09. 05

목숨보다 중한 건 ‘명분’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그랬다. 명분을 위해서라면 선비들은 기꺼이 목을 내놓았다. 명분에 죽고 살았던 조선 선비들의 자취가 그곳에 있다. 임실 오수면의 노산(蘆山). 노산은 그다지 높은 산도 아니고, 산세가 훌륭한 것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등산로조차 변변히 없다. 뭐하나 특별할 게 없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산이다. 존재감이 없는 게 어디 노산뿐일까. 노산이 있는 임실부터가 존재감이 희미하다. 임실은 뭐하나 내세울 게 없다. 이웃한 전주나 남원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지금이야 임실이라면 대번에 ‘치즈’를 떠올리지만, 딱 그것뿐이다. 임실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존재감이 없는 임실에서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노산. 그 산 이래 조선 초기에 선비들이 잇따라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털끝만 한 연고 하나 없는 자그마치 15개 가문이 여기로 낙향한 것이다.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비밀은 최근에서야 풀렸다. 임실군청 학예연구사 김철배 박사의 얘기. “노산 아래 살던 선비들의 지리적 중심이 ‘노산’이었어요. 어떤 곳의 지리를 말하면서 ‘노산에서 서쪽으로 몇 리에 있다’ 뭐 이런 식이었지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자그마한 산이 왜 중심이 됐던 것일까. 궁금했지요.”

노산 아래에는 문중의 조상을 모시는 재실과 제각이 스무 곳이 넘을 정도로 유독 많다. 의문은 노산 아래 현풍곽씨의 제각 ‘귀로재(歸魯齋)’의 기문(記文)에서 풀렸다.

처음 노산 아래 자리를 잡은 조상의 행적을 담은 기문에는 “노산(魯山·단종)이 왕위를 빼앗기는 날을 당해 벼슬을 버리고 노산 아래 내려가서 노재를 짓고 스스로 호를 삼았다”고 적혀있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다른 이름인 ‘노산군’의 노산과 같은 지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연고 없는 전북 임실의 노산 아래로 내려와 거처를 삼았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명분에 죽고 사는 선비의 삶이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서 벼슬을 버렸던 선비들은 고향으로 귀향할 수 없었다. 벼슬을 던지며 항의했던 건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의 안위까지 위태롭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륜과 천륜의 배반을 목격하고서 고향으로 돌아가 차마 ‘배부르고 등 따시게’ 지낼 수도 없었다. 이들은 누추한 거처와 거친 밥상을 받을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임실에서 폐위된 단종의 다른 이름인 ‘노산군’의 이름과 같은 지명을 찾아냈던 것이었다. 노산이란 이름의 산은 전국에서 이곳밖에 없다.

‘노산의 발견’의 의미는 작지 않다. 향토사 연구가 거둔 주목할 만한 성과다. 조선 600년 동안 임실의 문과 급제자는 고작 15명. 이웃 전주가 95명, 남원이 94명인 것에다 대면 형편없다. 하지만 노산의 발치 아래 기거하며 세상의 명리나 출세를 꿈꾸지 않고 살았던 선비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임실에는 깊이 숨어 살면서 평생 노산을 우러러보겠노라 다짐했던 이들, 도리를 목숨처럼 여기던 대쪽같은 선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귀로재가 있는 노산의 동쪽 자락 아랫마을의 이름이 ‘주천(酒泉)’이다. ‘술이 솟는 샘’이란 뜻이다. 주천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솔숲과 대숲을 끼고 제각과 재실이 마을 곳곳에 있고, 돌담을 끼고 유연하게 굽은 길이 있다. 주천이란 이름은 중국의 고사에 등장한다. 진나라 때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평생 은둔하며 살았다는 송섬의 은거지였다. 그렇다면 노산 아래 주천은 선비들이 은거하던 땅을 빗댄 이름이 아닐까.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 영월에 똑같은 이름의 주천면(酒泉面)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는 아닐까.



4월 7일 교회설립주일 주보


주일예배 드린 후 교회생일기념으로 공동식사를 교회뜰에서 '바비큐파티'를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야외 예배 멀리 갈 필요가 없는 듯해요(오후찬양집회는 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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