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읽는 지혜_고인 물 (유대은 목사)
2026-09-30 10:19:2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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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읽는 지혜_고인 물
지독한 가뭄 끝에 드디어 벼베기를 시작한다.
벼 한 뿌리를 뽑아보았다. 손바닥이 들어갈 정도로 갈라진 논바닥을 삽을 넣어 뒤집어 본다.
뿌리는 살기 위해 흙을 꽉 붙잡으며 뻗어나갔다.
생명이란 놀랍다. 아니 가뭄보다 더 독하다.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깊은 흙바닥 속은 아직 습기가 있어 놀랐다.
아마 이슬이 뿌리쪽으로 모여들었을 것 같다.
이 이슬을 먹으려는 지 갈라진 논 틈 사이를 검은 말벌이 왕래한다.
필시 물을 찾고 있을 터. 샘물도 둠벙도 마른지 오래지만 논틈사이의 물자국을 부지런히 찾는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물이 많은 개울이나 농수로로 가지 않을까?
조금 더 내려가면 졸졸 흐르는 농수로가 있는데 말이다.
아차,
벌에게는 흐르는 물이 아니라 고인물, 얕은 물이 필요했다.
물이라고 다 똑같지 않다. 자연에는 흐르는 물도 고인 물도, 깊은 물도 얕은 물도 필요하다.
고인 물은 산짐승들에게도 소중한 놀이터이자 물을 공급받는 곳이다.
샘물이 나오는 작은 둠벙 쪽으로 멧돼지길이 나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여 있는 물 안엔 작은 생물들이 헤엄친다.
아마 물살이 쎈 곳이었다면 머무르지 못했을 존재들이다.
바다라는 넓은 물이 필요한 존재들이 있듯이
작게 고인 물이 넉넉한 존재들이 있다.
서로가 보기엔 부족해 보이거나 너무 과해보일지 모르지만
그 곳에 사는 이들에겐 중요한 공간이다.
이것이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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