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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7일 (금) 일점일획_"이스라엘(יִשְׂרָאֵל)에 대한 묵상(김창주)"(김범식)(IBP)
2026-04-16 21:26:33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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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יִשְׂרָאֵל)에 대한 묵상(김창주)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기사가 두 차례 나온다. 창세기 32장은 야곱이 형 에서를 대면하기 전 두렵고 불안한 가운데 얍복 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밤새 씨름한 뒤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שָׂרִיתָ)’며 이스라엘이라 부르라고 한다(창 32:28). 한편 35장은 야곱이 벧엘에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장면으로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며 야곱을 축복한다(창 35:10). 그리하여 대부분 기독교 독자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이해한다(호 12:4). 정작 히브리어 이스라엘(יִשְׂרָאֵל)에서 위와 같은 설명의 근거를 찾기란 간단하지 않다. 먼저 이스마엘(יִשְׁמָעֵאל), 브니엘(פְּנִיאֵל), 임마누엘(עִמָּנוּאֵל) 등에서 ‘하나님이 들으셨다,’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처럼 ‘엘’은 주격에 해당한다(창 16:11; 32:30; 사 7:14).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었다’보다 ‘하나님이 겨루셨다’로 읽어야 맞다. 더구나 이스라엘(יִשְׂרָאֵל)에서 겨루다(שרה)를 읽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첫째는 히브리어 낱말을 쪼개서 푸는 파자(破字) 방식이다. 랍비들의 해석에 이따금 나타나는 독법이자 해석이다. 이스라엘은 이쉬(אִישׁ)-라아(רָאָה)-엘(אֵל)의 단축형으로 곧 ‘하나님을 본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야곱은 밤새 옥신각신 엘과 씨름하는 동안 허벅다리를 다쳐 절뚝거렸을 뿐(25절)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고(출 33:20) 생명을 보전하였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으로 ‘브니엘’이라 불렀다(창32:30). 이렇듯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본 사람’으로 해석하면 그 땅의 이름 브니엘과도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진다.

둘째로 명사 ‘사르’는 ‘우두머리, 고위 관리, 왕자, 대장’ 등을 가리키고, 여성형으로 쓰이면 ‘공주, 귀부인’ 등을 뜻하는 사라가 된다. 후자는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이고, 전자를 따라가면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과 관련하여 어깨에 맨 ‘정사’(政事)와 메시아의 이름 ‘평강의 왕’을 만난다(사 9:6). 메시아의 통치를 암시하는 두 단어의 뿌리에 ‘이스라엘’을 해석할 단서가 들어있다. 곧 ‘정사’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스라(מִשְׂרָה)와 ‘평강의 왕’ 사르 샬롬(שַׂר־שָׁלֹום)에 포함된 ‘사르’가 추상명사와 보통명사로 활용된 것이다. 정사는 왕 곧 메시아의 임무를 나타낸다면 평강의 왕은 평화로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킨다. 한편 ‘엘’(אֵל)은 가나안의 최고신이며 조상들도 익히 알고 있던 신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 ‘엘’은 가장 위대한 신으로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분이며, 장차 오실 왕, 메시아를 암시한다.

셋째로 동사 사라르(שָׂרַר)의 분석은 복잡하다. ‘관철하다’(persist), ‘굴하지 않고 이기다’(exert oneself), ‘끝까지 버티다’(persevere) 등으로 풀이되는 사라르는 야곱의 생애를 통해 보여준 굴하지 않는 성격을 반영한다. 그러면 (야곱이) ‘엘과 겨루어 이겼다’로 번역할 수 있고, 또는 ‘엘이여 이기소서’도 가능하다. 후자에서 이스라엘은 ‘엘이여 다스리소서’(Let El persist!)라는 기원문, 또는 축복문이 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출처는 기원전 13세기 메르닙타 비석(Merneptah Stele)이다. 그 비문에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 씨가 말랐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지역인지 집단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기원전 13세기 후반 가나안의 도시국가들과 함께 언급된 것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실체가 드러난다. 더구나 이스라엘이 당시 주변국과 달리 비교적 뒤늦은 시기에 왕정을 도입했다면 당시 이스라엘은 국가 형성 이전의 상태, 사사의 치리를 상정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엘’을 믿는 부족공동체의 끈끈한 신앙관이 요구되었고 그 이름 속에 ‘엘이여 다스리소서’를 담아 선언한 이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네번째 여수룬(יְשֻׁרוּן)은 창세기 32장과 35장 맥락에서 볼 때 야곱의 이름을 관련시키기에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불리는 장면에 단서가 들어있다(창 35:10). 잘 알려진 대로 야곱은 ‘발꿈치’를 뜻하는 아켑(עֲקֵב)에서 비롯된 이름이며(창 25:26) 동사 아카브(עָקַב)로 ‘속이다, 뒤통수치다’는 활용과 겹친다(창 27:36; 렘 9:3; 호 12:3). 과연 ‘속이는 자’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 이름을 바꾼다면 어떤 이름이어야 할까? ‘정직한 자’ 여수룬이면 자연스럽고 논리적이다. 어원적으로 여수룬은 어근 ‘야샤르’(יָשַׁר)와 파라고직 ‘눈’(ן), 또는 ‘연장의(paragogic) 눈’으로 분석할 수 있고 ‘곧은, 올바른’을 뜻한다(사 44:2; 신 32:15; 33:15, 26). 이와 관련하여 중세 랍비 모세 마니모니데스(1138-1204)는 야곱을 ‘하나님께 정직한 자’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었다’보다 ‘하나님이 (정직한 자의 길을) 곧게 하시며 평탄케 하신다’고 해석해야 옳다(사 26:2). 성서에서 개명은 하나님이나 권위자가 사명을 주어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하는 과정에 주어진다. 따라서 바뀐 이름에 그의 정체성이 부여된다. 예컨대 ‘존귀한 아버지’ 아브람이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창 17:5), ‘슬픔의 아들’ 베노니가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으로(창 35:18), ‘구원’ 호세아에서 ‘야웨는 구원이시라’ 여호수아로(민 13:16), ‘엘이 세우시다’ 엘리야김에서 ‘야웨가 세우시다’ 여호야김으로(왕하 23:34), ‘야웨의 선물’ 맛다니야에서 ‘야웨는 의로우시다’ 시드기야로(왕하 24:17)처럼 개명 전과 후의 의미 변화가 명확하다. 그리하여 포로기 익명의 예언자는 야곱과 이스라엘을 (개명하여) ‘여수룬’으로 호칭한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 44:2).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새롭게 태어난다. 곧 ‘속이는 자’ 야곱(יַעֲקֹב)이 거듭나고 ‘정직한 자’ 여수룬이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야곱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한 자가 된다는 의미다(롬 5:1). 정직한 자라야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시 11:7; 17:15; 119: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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