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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9일 (금) 일점일획_"아레오바고"에 관한 묵상(우진성)(IBP)
2026-05-28 20:37:34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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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에 관한 묵상(우진성)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에게 핍박받아 아테네로 오게 된 바울 사도는 아테네에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한다. 사도행전 17장에 기술된 이야기이다.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자행한 폭력적 박해를 피하고 나니, 이제 아테네에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 방식으로 믿음을 변증해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울 사도가 이 과제를 위해 서게 된 곳은 아레오바고이다. 이 글은 아레오바고에 관한 묵상 글이다. 아레오바고를 개념적으로 살피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아레오바고의 지형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쓸 것이다. 가보지 않고 알 수 없는, 아니 갔다 할지라도 미처 깨닫지 못할 수 있는 아레오바오의 지형 설명을 통해, 거기 서서 부활의 복음을 전한 바울 사도의 마음에 공감해 보고자 한다.

 

아레오바고(Ἄρειος πάγος)

 

헬라어부터 잠깐 살피자. 아레오바고는 Ἄρειος πάγος(아레이오스 파고스)에 대한 한글 음역이다. 여기서 Ἄρειος는 ‘전쟁의 신 Ares에게 헌정된’이라는 뜻인데, 왜 이 언덕이 아레스 신에게 헌정되었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Ares 신이 로마에서는 Mars로 불렸기 때문에 때로 아레오바고(Hill of Ares)는 Mars’ Hill로도 불렸다는 점은 언급하고 넘어간다. 

새번역은 아레오바고를 “법정”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원문에 “법정”이라는 단어는 없다. “아레오바고 위에”(행 17:19, ἐπὶ τὸν Ἄρειον πάγον 에피 톤 아레이온 파곤)와 “아레오바고 가운데”(행 17:21, ἐν μέσῳ τοῦ Ἀρείου πάγου 엔 메소 투 아레이우 파구)가 있을 뿐이다. 이 부분 번역은 “법정” 없이 번역한 개정개역이 새번역 보다 낫다. 아레오바오의 기능을 “법정”으로 한정짓는 것은 반만 맞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 아레오바고에는 아레오바고 평의회(Council of Aregopaus)가 모였다. 아테네의 통치자(ἄρχων 아르콘=ruler) 출신들로 이루어진 이 회의는 사실상 로마 속주 아테네의 최고 자치 기관이었다. 삼권분립이 없던 시절 법정이 따로 있고 행정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통치를 위해 필요하면 행정적 조치나 법적 조치를 동일 주체가 결정하였지, 법관이 따로 있고 행정관이 따로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34절에서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고 신자가 된 디오누시오의 직함을 개정개역은 “관리”로, 새번역은 “판사”로 번역한 것은 이해가 된다. Ἀρεοπαγίτης(아레오파기테스)에 해당하는 직함이  오늘날 없기 때문에, 번역자는 한쪽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레오파기테스는 아레오파구스 평의회의 회원을 뜻한다. 관리의 역할과 판사의 역할을 모두 한다. 꼭 아레오파구스 평의회만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도시의 통치자(혹은 통치 그룹)는 행정과 사법을 겸하였고, 그런 기능이 주로 베마βῆμα에서 일어난다고 일점일획말씀묵상 “아고라” 편에서 설명한 바 있다. 여기를 클릭하여 아고라와 베마에 대해 복기하면 이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아테네

 

이제 본격적으로 아레오바고의 지형에 대해 살펴보자. 이 지형을 이해하면 아레오바고 위에 선 바울 사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런 공감이 성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아레오바고를 이해하기 위해 고대 아테네의 중심지를 이해해 보자. 셋을 이해하면 된다. 아크로폴리스, 아고라, 그리고 그 사이의 아레오바고. 

[고대 아테네의 중심: 아크로폴리스, 아고라, 그리고 그 사이의 아레오바고 언덕] 

 

아크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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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우스 항구 쪽을 향하여 내려다보는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아크로) 세워진 도시(폴리스)라는 뜻이다.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는 그리스 여기저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크로고린도가 있고 아크로베르가마(버가모)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최고 도시였던 아테네의 지위에 걸맞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단연 최고였다. 언덕이나 산 위에 도시를 짓는 목적도 달랐다. 버가모는 실제 주민이 거하는 도시였고, 고린도는 전쟁이 났을 때 피할 수 있는 입보성(入保城) 성격이었다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여신을 위한 파르테논 신전을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하였다. 아크로폴리스 위에는 금박을 입은 수호신 아테네 여신이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 안에 우뚝 서 있었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무장을 갖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는 아테네는 전쟁의 여신이면서 동시에 지혜의 여신, 공예의 여신이다. 아테네 여신과 그에 딸린 신들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들은 아크로폴리스 위에 우뚝 섰고, 온 천지의 감탄과 경외를 자아낼 만했다. 고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다신교 시대에 신들은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신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도덕적 행위를 기대하지도 않았고 도덕적 가르침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신들은 선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고, 신들 역시 인간처럼 욕망에 따라 움직였다. 유일신 시대의 신들과 그 점에서 다르다. 그들의 역할은 딱 하나로 한정되었는데 바로 “수호신”이다. 그래서 그냥 신이 아니라 수호신이다. 아테네 여신에게 예배드리는 이유는 여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아테네를 지켜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럼, 도덕과 삶의 지혜는 누가 담당했는가? 그것은 종교와 무관한 철학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철학이 유통되던 곳은 아크로폴리스 아래의 아고라였다. 한마디로,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가 수호신들의 세계였고 언덕 아래 아고라가 인간 세상의 중심이었다.  

 

아고라-아탈로스 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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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아고라의 복원도. 왼편의 길쭉한 건물이 아탈로스 주랑]

 

아테네 아고라에서 가장 큰 건물은 아탈로스 스토아이다. 현재 아테네 아고라는 그 터만 발굴되었고, 복원된 건물은 몇 개 없는데 그 중 아고라의 시그니쳐 건물인 아탈로스 스토아가 1950년대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토아는 스토어(store)가 아니다. 높은 기둥이 길게 도열해 있는 콜로네이드(colonnade 열주)가 스토아(στοα)의 뼈대이고 거기에 씌워진 지붕까지 합친 구조를 스토아(στοα)라 부른다. 한글로는 주랑 혹은 회랑이 된다. 신약에는 솔로몬 스토아(στοα τοῦ Σολομῶνος 스토아 투 슬로모노스)가 자주 언급된다. 솔로몬 스토아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셨고(요 10:23), 베드로가 설교했고(행 3:11), 첫 그리스도인들이 모였다.(행 5:12)  이곳을 새번역 개역개정 모두 이를 “행각”이라 번역하는데, 행각도 비슷한 기둥 건축이지만, 경복궁 근전정 행각의 원래 모습이 보여주듯 기둥 사이에 벽을 두어 사무실이나 창고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행각은 복도 기능에 충실한 주랑/회랑과는 살짝 다르다. “솔로몬 행각”은 “솔로몬 주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0장 23절 새번역처럼 말이다. 스토아(주랑)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장소가 아니다. 철학자들이 이미 자기들의 활동 중심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스토아학파가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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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복원된 아탈로스 주랑. 이곳이 철학자들의 토론장이었다.]

 

아테네의 바울 사도가 처음으로 토론을 시작한 곳이 주랑이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17장은 “장터”(개역개정) “광장”(새번역)에서 바울 사도가 “만나는 사람들과 날마다 토론”했고(17절),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논쟁했다고(18절)하는데, “장터”나 “광장”은 아고라(ἀγορά)에 대한 한글 번역인데, 아탈로스 주랑은 아고라를 이루는 한 부분이었다. 바울 사도는 틀림없이 아탈로스 주랑에 서서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설파하며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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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아고라 터의 위성 사진 모습. 위의 복원도와는 아래 위가 바뀌었다. 오른쪽에 아탈로스 주랑, 주랑 앞 쪽에 아래에서 설명하는 판아테나이코스 대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여기까지 아테네의 신계 아크로폴리스와 인간계 아고라에 관해 설명했다. 이 두 세계는 연결되어 있었는데, 둘을 연결하는 길이 판아테나이코스(Παναθηναϊκός) 대로이다. 아테네를 예배하거나 아테네 이름으로 열리는 도시의 큰 행사 때 이 길 위에서 프로세션(procession)이 진행되었다. 바울 사도가 아고라에서 아레오바고로 올라갈 때 걸은 길도 이 길이 분명하다. 다른 길은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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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에서 아크로폴리스로 향하는 판아네타이코스 대로]

 

다시, 아레오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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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 지금은 돌 언덕이지만 여기에 평의회 건물이 있었다. 아래 상상도 참고. 저쪽으로 아크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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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레오바고의 위치를 설명하겠다. 아레오바고는 아고라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이어지는 판아테나이코스 길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다. 달리 말하면,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 사이에 아레오바고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레오바고 언덕에 서서 아래를 보면 세상의 지혜롭다는 자들이 모여 지혜를 자랑하고 대결하는 아고라, 그리고 아고라의 대표 건물인 아탈로스 회랑이 보인다. 몸을 살짝 돌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전문前門을 프로필라이아(προπύλαια)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앞에(προ) 있는 문(πύλαια, gate을 뜻하는 πύλη의 복수)을 뜻한다.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는 그런 류 중에 특별히 거대하고 웅장하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며 신들의 세계를 향하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압도하기에 충분한 크기이다. 아레오바고에서 올려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프로필라이아는 실제보다 더 커보인다. 그리고 그 안 쪽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위엄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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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에서 올려다보는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웅장한지 보인다]

 

내가 아레오바고를 묵상하며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바울 사도가 그 위에 섰을 때, 그는 아테네의 두 세계 한 복판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래에는 세계에서 모여든 지혜롭다는 사람들의 향연장이 펼쳐있다. 아테네는 그리스 시대만큼 명성을 향유하고 있지 못했지만, 로마 속주가 된 후에도 과거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존중했고 특히 아테네가 이어온 유산을 흠모하였다. 바울 사도는 그곳에서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논쟁하며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다가 이제 또 다른 토론 리그인 아레오바고에 세워진 것이다. 저 아래 아고라의 철학자들보다 더 큰 권위를 겸비한 사람들이 아레오바고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위로는 불멸하는 신들의 찬란한 전승戰勝 신화와 그 이야기를 담기에 합당하게 장엄한 건축물들이 함께 인간에게 깊은 경외감을 자아내며 압도하고 있었다. 아래와 위는 합쳐져 아테네를 이루고 움직여가는 시스템이었다. 바울 사도가 아레오바고에서 마주한 것은 단지 아레오바고 평의회나 아테네의 엘리트들이 아니었다. 로마 속주가 된 후에도 사멸하지 않는 아테네의 위대함이었다. 

 

어떻게 느꼈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두려움, 불안, 위축, 초조, 무기력, 좌절감, 고립감? 방금 경험하고 올라온 아고라와 지금 눈으로 경험하고 있는 아크로폴리스 앞에서 바울 사도가 느낀 감정은 이런 것이어야 마땅하다. 바울 사도가 느꼈을 감정을 느껴보자. 

 

아레오바고에서 바울 사도는 그의 연설의 많은 부분을, 신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갇혀 살지 않는다는 주장에 할애한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의 부활을 선포한다. 바울 연설 내용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감정이 두려움이나 고립감 따위가 아니라, 담대함이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묻게 된다. 그는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는가? 아레오바고 위 바울 사도의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우리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한다. 이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혹여 뒤처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담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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