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그럼에도 용서하시는 분이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앞에 나아가라!’
1. 사사기 3:9 (구약 364쪽).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2. 히브리서 10:35 (신약 364쪽).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사사시대란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왕이 없어 제 좋은 대로 하던 시기로 특정된다(1:1; 21:25).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한 세대가 그분에게 반역했던 때로 압축 이해된다(2:6-17). 이 시기를 특징짓는 구원의 도식은 그렇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결국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벌을 받아 주변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부르짖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수 없어 사사를 보내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살만 하면 그들은 그러나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 패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다. 그러면 또... 말하자면 하나님의 반복된 용서와 끊임없는 은총으로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백성이 그렇게 유지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담대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무모함의 다른 말인가? 그것은 끝까지 잡아야 하는 것으로 그래야 버티고 견딜 수 있는 힘이다(3:6). 그것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게 밀어내는 힘이다(4:16).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이다(10:19). ‘은혜의 보좌’(Thron der Gnade)는 루터가 언약궤의 덮개인 속죄소를 표현하는 말로 채택한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에 부조되어 있는 스랍들 사이에 계신다(출 25:22; 민 7:89; 삼상 4:4). 그 임재의 상징 위에 재판장으로 좌정하신 분이시다. 담대함이란 용서를 선언하는 재판장 앞에 나아가는 용기와 같은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가능하게 된다. 담대함이란 결국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란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제대로 알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어 구원하시는 분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망각하고 살만하다 싶으면 제 멋대로 하고 별일 없다 싶으면 옛 습관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받은 이들로서 이제부터의 삶은 또 다시 죄악에 빠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의롭고 선한 삶을 삶으로 일생이 주님께 드려지는 값진 제물이 되게 하시옵소서. 제 생각대로 하기에 우리 삶은 복잡하고 위험한 것임을 깨닫고 제 맘대로 살기에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귀한 것을 되새기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평생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많은 이웃과 형제들에게 즐거움과 유익을 주는 헌신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50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253장 (그 자비하신 주님);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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