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돌’(מִגְדֹּ֖ל)에 관한 묵상(김창주)
1.
구약에서 ‘믹돌’은 경우에 따라 음역과 번역으로 나오기 때문에 둘의 관련성을 인식하기 어렵다. 음역 ‘믹돌’은 지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어떤 구조물 또는 경계를 뜻한다(출 14:2; 민 33:7; 렘 44:1; 46:14; 겔 29:10; 30:6), 그러나 ‘탑’(塔) 또는 ‘망대’로 번역되면 공간적 의미는 사라지고 사물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쓰인다(창 11:4; 삿 8:9; 9:51-52; 왕하 9:17; 시 48:13; 61:4; 아 4:4; 7:4; 8:10; 사 2:15; 30:25; 겔 26:4,9;). 오직 한 번 ‘강단’으로 번역된 예가 있다(느 8:4). 귀환 후 에스라가 수문 광장에서 율법책을 읽을 때 오른 단상이다. 개역개정이 ‘나무 강단’으로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로 ‘믹돌-에츠’(מִגְדַּל־עֵץ֮)이다. 한편 신약에 마리아와 함께 언급되는 ‘막달라’ 또한 어원적으로 믹돌과 연관되어 생성된 지명이니 비교하면 도움이 된다.
2.
출애굽 경로에 ‘믹돌’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두 차례 언급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출 14:2; 민 33:7). 한 구절에 이렇듯 많은 지명이 섞여 나온 적은 많지 않다. 이 지점을 성서지도에서 확인하려 한다면 곤혹스럽다. 지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바알스본이 두세 곳이며 믹돌이나 비하히롯 역시 정확한 지점의 좌표를 확인하기 어렵다. 출애굽 경로와 관련된 정보이기 때문에 지명으로 간주하기 쉽다. 고고학자들은 람세스 2세 당시 진흙 벽돌로 축조된 성읍이나 도로 또는 국경선 경계에 설치한 망루를 가리킨다고 본다. 실제로 당시 국경에 군사 시설들을 세워 선대 왕의 이름을 붙였다. 예컨대 ‘멘 마아트레의 성곽,’ ‘라암셋 2세의 망루’ 등이 그것이다. 믹돌이 지명일 가능성보다 군사적 용도의 높이 솟은 망대라고 볼 수 있는 근거다.
한편 예레미야가 언급한 믹돌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렘 44:1; 46:14). 에스겔 또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겔 29:10; 30:6)라고 지칭함으로써 믹돌과 수에네가 이집트의 동서 국경선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로써 믹돌은 나일강 하류 고센 접경 지대의 국경선이나 외부 침략 세력을 정찰하거나 내부 이탈자를 감시하는 높이 솟은 망대나 초소를 가리키는 용어일 가능성이 크다.
3.
바벨탑으로 유명한 창세기 11장에서 ‘믹돌’(מִגְדָּל֙)은 두 번 모두 ‘탑’으로 번역되었다(창 11:4,5). 출애굽기 14장과 모음의 차이가 살짝 보인다. 사람들이 ‘성읍과 탑’을 세웠던 지역을 ‘바벨’(בָּבֶ֔ל)이라 칭한 것일 뿐 ‘바벨탑’이란 말은 성서 외적인 관용적 표현이다. 그 밖에는 번역은 대부분 일반명사 ‘망대’로 성과 수에 관계없이 여러 차례 나온다(삿 8:7; 왕하 9:17; 대하 26:9; 느 3:1; 12:39; 시 48:12; 61:3; 아 7:4; 사 2:15; 30:25; 겔 26:4; 27:11).
흥미로운 대목은 여호수아의 ‘믹다렐’(מִגְדַּל־אֵ֔ל)이다(수 19:38).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어 Mikdalel, 라틴어 Magdalel로 복음서의 ‘막달라’(Magdala)와 관련된다. 갈릴리 호수 북서쪽 긴네렛 부근의 성읍이다(수 19:35). 신약에 이름으로 ‘막달라 마리아’(마 27:56; 막 15:40), 그 지역 사람 ‘막달라인(人)’으로 쓰인다(눅 8:2;), 지명으로 나온 적이 없지만 ‘막달라 마리아’에서 그녀의 출신지로 설명된다. 아람어 막달라(מגדלא)는 ‘높은 탑’이나 ‘망대’를 뜻하고, 그리스어 Magdalhnh,는 ‘막달라’의 여성형이다. ‘마가단’(Magada,n)은 막달라의 잘못된 표기다(마 15:39).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촌 언어’로 자형과 문법의 유사점이 상당히 많다. 히브리어 믹돌과 아람어 막달라의 어원은 모두 가달(גָדַ֣ל)이다.
‘막달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요세푸스가 막달라를 ‘생선 절임’이라는 뜻의 ‘Taricheia’라고 일렀을 정도로 어업이 성행하던 성읍이다. 갈릴리 호수의 어획량 중 상당 부분이 막달라로 집산되어 중개상들로 붐볐으며 가공업도 활발했다. 생선은 신선도가 최우선이다. 어판장에서 모두 소화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보관한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수증기로 생선을 익히는 조리법이 있다. 훈제(燻製)다. 이 조리에는 풍부한 땔감이 필수적이다. 막달라 지역은 갈릴리 호수를 끼고 연중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삼림자원이 넉넉하다. 훈제에는 땔감 못지 않게 불의 효과적 이용이 관건이다. 즉 고도의 화력에 끓는 수증기로 생선을 익혀야 양질의 훈제가 가공된다. 불의 강도를 높이려는 장치가 우뚝 솟은 굴뚝이다. 높은 굴뚝은 맛 좋은 훈제를 만들기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생선가공을 위한 굴뚝이 여기저기 많이 축조되었다. 높이 솟은 굴뚝들이 즐비한 독특한 풍경 때문에 ‘막달레나’(מגדלנא), 또는 물고기 탑을 뜻하는 ‘믹달 누니에’(מגדלא נוניה)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막달라의 훈제는 예루살렘은 물론 심지어 로마까지 진상 되던 갈릴리의 특산품이 되었다.
구약의 믹돌과 복음서의 막달라는 높은 탑과 큰 굴뚝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다. 믹돌과 막달라가 의미상으로는 비슷하지만 공간적으로는 전혀 다른 두 지역이며 일반명사로 망대, 또는 탑이다. 막달라가 높은 굴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믹돌은 주변을 정찰하기 위해 세운 초소나 요새를 가리킨다. 둘의 공통점은 솟은 탑이나 망루여서 한 눈에 간파된다는 점이다. 나일강 하류의 국경선 망대이거나 갈릴리 호수의 높은 굴뚝이거나 관계없이 믹돌과 막달라는 주변의 경관에 비해 크고 높은 인공 구조물인 것은 분명하다. 창세기 11장의 바벨 ‘탑’ 역시 시날 평지에 우뚝 솟은 조형물이다.
3.
출애굽 경로에서 믹돌로 표기된 것은 지명이 아니라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높은 망대’로 이집트 백성과 노예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며 적군의 동태를 포착할 수 있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믹돌이 ‘망대’나 ‘요새’를 가리킨다면 이집트 국경지대 어디쯤으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믹돌의 정확한 위치나 지명보다 믹돌의 지정학적 신학, 또는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야 한다.
모세가 이와 같은 국경선 부근의 삼엄한 정찰과 빈틈없는 경비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왜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의 길’을 경유하지 않았는지에 관한 답은 자명해진다. ‘믹돌’은 출애굽 행로와 관련하여 지리적인 위치나 좌표라기보다는 출애굽의 신학적 의미를 제고하려는 수사적 장치다. 다시 말해서 믹돌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며 종살이를 강요하던 이집트의 상징물로서 국경에 배치된 제국의 표식이다. 막달라가 갈릴리 호숫가에 즐비한 훈제공장을 상징하듯, 출애굽기의 믹돌은 단순히 지명을 넘어 당시 세계 패권 세력이던 이집트의 폭력적인 통치를 담아낸 은유다.
출애굽기 14장에서 믹돌은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하였지만 여전히 망대의 꼭대기가 보이는 지점이다. 언제든 바로의 군대가 추적할 수 있는 거리다. 한편 바알스본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믹돌과 바알스본 어디쯤 비하히롯에 진을 치고 잠시 머문다. 그들이 활보할 수 있는 자유는 무한정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믹돌’과 ‘바알스본’이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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