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방을 찾아서
변방은 언제나 중심의 바깥에 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이름도 잘 불리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변화는 늘 변방에서 시작된다. 중심은 질서를 유지하는 곳이지만, 변방은 균열을 품는 자리다. 기존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말이 태어나고, 익숙한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른 방향이 열린다.
변방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맨발이다.
보호받지 못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도 없다. 그 대신 땅의 온도와 질감을 가장 먼저 느낀다. 중심에 있는 이들이 통계와 보고서로 세상을 이해할 때, 변방에 있는 이들은 몸으로 현실을 겪는다. 그래서 변방의 목소리는 종종 거칠고, 불편하며, 때로는 너무 정직하다.
문제는 변방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변방이 변방이기를 거부하고 중심을 욕망할 때, 그 자리는 더 이상 변화의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 중심의 언어를 흉내 내고, 중심의 기준을 따르며, 중심의 인정을 갈망하는 순간, 변방은 그 고유한 감각을 잃는다. 그때 변방은 저항의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모방된 중심으로 변질된다.
변방의 힘은 중심이 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중심을 대체하려 하지 않고, 중심을 닮으려 애쓰지 않을 때, 변방은 끝까지 질문하는 자리에 머문다. 왜 이 질서가 당연한가, 왜 이 목소리는 배제되는가, 누가 기준을 정했는가. 이러한 질문은 언제나 중심보다 한 걸음 바깥에서 시작된다.
예수의 삶 또한 중심을 향한 상승이 아니라 변방을 향한 하강이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와 병든 자 곁에 섰고, 제도의 언어 대신 몸의 언어로 말했으며, 안전한 자리보다 위험한 자리를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발은 언제나 거칠었고, 그의 길은 늘 느렸다. 그 느린 걸음이 결국 역사를 움직였다.
변방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특별한 장소를 찾는 일이 아니다.
중심이 요구하는 속도와 성공의 논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다.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보이지 않는 자 곁에 머무는 선택이다. 변방에 남는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선언이다.
변방은 오늘도 중심의 바깥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모든 시작은 그곳에서 조용히 준비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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