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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일 (금) 일점일획_"구원"에 관한 묵상(우진성)(IBP)
2026-05-01 23:16:32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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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관한 묵상

우진성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실라가 갇혔을 때, 감옥문이 열리고 수갑과 차꼬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16장에 실린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그때 바울과 실라와 감옥 간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행 16:30-31)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간단한 오역을 지적하고자 한다. 간수가 사도들을 부른 호칭은 κύριοι(퀴리오이) 즉 "주님"이었지, "두 분 사도님"(새번역)이나 "선생들이여"(개역개정)이 아니었다. "주님"이라 부렀는데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알 수 없다. 본문비평 입장에서도 전혀 가능성 없는 번역이다.)

이 짧은 대화의 주제는 "구원"이다. 간수는 사도들에게 "구원받을" 길을 물었고, 사도들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라 답했다. 이 대화에서 언급된 "구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며 신약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를 탐색하려 한다. 

"구원하다"의 헬라어는 σῴζω(소조)이다. "구원받다"로 사용될 경우에는 수동태를 취한다. 명사형은 σωτηρία(소테리아)이다. 이 글은 헬라어 σῴζω(소조)가(그리고 σωτηρία(소테리아)가) 그리스 고전시대와 구약 시대에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는지 살피며, 사도행전 16장 대화에 등장하는 구원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사실, 그렇게 광대한 범위의 시기에 걸친 구원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은 '일점일획말씀묵상' 지면에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 글은 신약신학사전인 NIDNTT의 σῴζω 항목(by J. Schneider) 아티클을 '일점일획말씀묵상' 취지에 맞게 간략히 살펴 요약한 후, 사도행전 16장의 구원에 적용할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며 마음에 묻는 질문은 "구원은 '내세의 천국'을 말하는가?"이다. 

 

그리스 고전 시기의 구원

 

그리스 고전에서 사용된 크게 보아 '육체적 구원'과 '영적인 구원'으로 나누어진다. 

육체적 구원은 생명을 위협하는 일체의 위험으로부터 구조되는 것을 말한다. 전쟁에서 적의 공격, 바다에서 폭풍, 질병 등 여러 형태의 위험을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다. 소극적으로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아 무사히 살아 있는 것이 구원이고, 때로는 전쟁터에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간 것도 구원으로 언급되었다. 구원이 늘 종교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구원이 신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날 때, 구원은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고대 사회에서 신들의 도움은 영적이라기보다는 전쟁과 같은 육체적 측면에서 일어났다. 

이런 육체적 구원에 대비되는 영적인 구원을 주창한 그룹은 '영지주의'와 '미스테리 종교'이다. 영지주의는 특별하고 배타적인 영적 지식을 가진 자들만이 죽음의 권세(육체의 세계)를 벗어나, 자신들의 고향인 영원한 영적인 신(Monad)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journey of the soul' 개념이다. 인간의 영은 Monad에게서 알지 못하는 경로로 육의 세계로 떨어졌다가, 영지를 통하여 육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Monad에게 돌아간다. 미스테리 종교 역시 이와 비슷하다. 미스테리 종교(밀의, 밀교)의 종류는 많았지만, 그들의 교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의 미스테리 종교가 시행하는 비밀스러운 제의(mystery cult)를 통하여 신과 연합하고, 그렇게 함으로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영지주의 세계관은 미스테리 종교의 사상적 바탕을 제공하였고, 미스테리 종교는 영지주의의 세계관을 제의의 형태로 구현하여 그 시대 여러 계층 사람들 속에 '영의 구원'이나 '영생' 같은 개념을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영지주의와 미스테리 종교의 공통점은 하나다. 구원을 영적으로 본 것이다. 

더하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런 영적인 구원의 이야기가 영지주의와 미스테리 종교 담론 밖에서도 일찌기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 필립2세의 무덤에서 발견된 심포지움을 위한 은잔 세트는 보여주는 내세관이다. 이미 쓴 글(클릭)에서 말했듯이, 이 심포지움 잔 세트는 "복된 자들은 낙원에서 영원한 심포지움에 참여하게 된다"(αιωνια συμπόσια των Μακαριων 아이오니아 쉼포지아 톤 마카리온)는 민간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마 26:29)라고 하신 말씀은 이런 민간신앙의 맥락 위에 있다. 영원한 심포지움이 진행되는 영원한 내세에 대한 믿음이 일찌기 발전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약과 신구약중간기(제2성전시기)의 구원

 

1)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약 전반에 걸쳐 구원과 관련한 중요한 주제는 구원의 주체 문제이다. 구약의 여러 책들이 강조하는 바는 강대국이나 어떤 위대한 왕이나 인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점이다. 때로 사람이 구원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그가 주님의 도구(agent)로 사용된 것이지, 그 자체가 구원자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시편 두 구절은 이런 사상을 잘 보여 주며, 이는 구약의 헤아일 수 없이 많은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구제이다. 

 

시편 33:16-20

군대가 많다고 해서 왕이 나라를 구하는 것은 아니며, 힘이 세다고 해서 용사가 제 목숨을 건지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구하는 데 군마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목숨을 건지는 데 많은 군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 주님의 눈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시고, 그들의 목숨을 죽을 자리에서 건져내시고, 굶주릴 때에 살려 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요, 우리의 방패이시니, 우리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편 44:3, 7-8

우리 조상이 이 땅을 차지한 것은 그들의 칼로 차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상이 얻은 승리도 그들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오른손과 오른팔과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이 이루어 주셨으니, 참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 . 오직 주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적에게서 승리를 얻게 하셨으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만 자랑합니다.

 

구원의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구원의 주체가 누구인지르 중시하는 구약의 전통이 중요한 이유는 이 주제가 신약에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 육체적 물질적 회복 

구약에서 구원의 대상은 세 차원을 가진다. 개인, 이스라엘, 그리고 창조세계 전체이다. 개인과 이스라엘의 구원은 공통점을 갖는데 대개 적이나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위의 그리스 고전시대에 사용한 범주로 분류하자면 '육체적'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선민사상과 연결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택함 받은 민족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관계에 신실하지 못하였다. 주님께서는 용서나 신실하신 사랑과 같은 영적인 복을 이스라엘에게 부어주시지만,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는 물질적(육체적) 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제2성전시기(신구약중간기) 이전 구약 안에는 위에 언급한 영지주의나 미스테리종교에서 말하는 "영적인" 구원이나 "내세"나 "영생"의 개념 혹은 그와 유사한 무엇은 찾아볼 수 없다. 

 

3) 창조세계의 회복(종말론적 구원) 

구약에서는 위의 2)번 류와 다른 구원 개념이 존재한다. 주님의 극적 역사 개입을 통한 창조세계 전체의 회복이다. 이를 '종말론적 구원'이라 부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셔서, 둘째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창조 전반의 차원에서, 셋째 원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신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편 74편이 좋은 예가 된다. 

시편 74:13 - 17 주님께서는, 주님의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물에 있는 타닌들의 머리를 깨뜨려 부수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짓부수셔서 사막에 사는 짐승들에게 먹이로 주셨으며, 샘을 터뜨리셔서 개울을 만드시는가 하면, 유유히 흐르는 강을 메마르게 하셨습니다. 낮도 주님의 것이요, 밤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달과 해를 제자리에 두셨습니다. 주님께서 땅의 모든 경계를 정하시고, 여름과 겨울도 만드셨습니다.

구원의 내용이 우주적 질서 회복이다. 육체적 회복과 거리가 있는, 구약에 나타난 이런 종말론적 구원은 신약의 구원관과 연결된다. 

 

4) 제2성전기 외경의 종말론적 구원 

 

제2성전 시기에 나타난 마카비서, 솔로몬의 지혜서, 토빗기, 바룩서 등에 나타난 구원은, 구약에 간헐적으로 나타난 구원의 의미보다 더욱 분명하게 종말론적 의미를 담는다. 이 시기 구원의 의미는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이 셋이 더해지면 종말론적 의미를 갖게 된다. 

    • 영원성(Eternal): 지상의 구원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영원한 구원'(4마카 15:3) 혹은 '영원한 즐거움'(바룩 4:29)과 연결된다.
    • 최종적 승리: 세상적인 눈으로는 패배한 것 같은 순교자나 의인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뜻밖의 구원'(지혜 5:2)을 강조한다.

    • 오직 하나님이 구원자: 인간의 타협이나 군사력(earthly one)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회복을 말한다.

하나님의 궁극적 회복을 뜻하는 종말론적 구원이 구약에도 나타나 있지만, 제2성전 시기 외경 속에서 만개한다. 이 시기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시기로, 이 사상들은 신약의 구원 사상과 연속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결론

 

이상 살펴본 그리스 고전시대, 구약 시대, 제2성전 시대의 σῴζω(소조) 용례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1) 구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육체적 구원, 영적 구원, 종말론적 구원. 

2) 이 시기 구원의 의미에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관찰이 신약성서에 사용된 구원의 의미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된다. 신약의 개념들을 탐구할 때, 먼저 신약의 토양이 되는 그리스 사상과 구약의 사상을 점검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위의 결론을 사도행전 16장에 나타난 구원에 적용하여 그 의미를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사도행전 16장의 구원의 의미는 이와 같을 것이다. 

간수가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물었을 때 그가 사용한 "σωθῶ(소쏘)의 의미는, 위의 육체적 구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간수가 물은 질문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깁니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물은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단히 죄인을 지켜야 할 임무를 가진 간수가 너무나 압도적인 초자연적 신비 앞에서 "저 이제 죽었는데,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죠?"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바울과 실라에게 물은 것이다. 그리스 고전이나 구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위험에서의 탈출'로서의 구원을 말한 것이다. 이를 '육체적' 차원의 구원이라 말한다. 

바울과 실라가 이 질문에 대해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σωθήσῃ 소쎄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바울과 실라는 그 질문을 낚아 채 새로운 의미로 대답한 것이다. 바울과 실라의 대답은 위 분류 중 종말론적 구원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예수를 통하여, 2)죄용서를 받고, 3)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4)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신약의 구원 사상으로 보아야 하며, 여기에 붙일 수 있는 형용어는 '영적'이 아니라 '종말론적'이다. 종말론적 구원은, 여기에서 지금 시작하지만 미래에 완성되는 구원이요,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넘어 오직 하나님과 그의 대리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한다. 따라서 이 구원 개념 안에서 현재와 미래는 연결된다. 간수와 그 집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것은, 죽어서 천국갈 보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구원의 현실에 참여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신약에서 언급되는 구원을 해석할 때,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교회 현장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그 보다 훨씬 풍성하며 현재(현세)적이다. 

지면 관계로 급히 결론 내리지만, 다음 글에서는 신약 성서에서 소조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핌으로 이 급한 결론이 틀린 결론은 아니라는 점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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