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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2인칭 - 경전 안에서,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4-05 (목) 07:40 5개월전 596  

1. 한국어의 2인칭 - 경전 안에서, 

you are right.

우리말로 번역하면 맞습니다.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등으로 번역할 것이다.

이 영어 문장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주어 없이 말해도 충분히 전달되는 네가, 당신이, 맞다는 뜻이다.

구태여 네가, 당신이 맞습니다 라고 하지 않는다. 네가, 당신이 맞습니다. 네가, 당신이 옳습니다, 하면 오히려 어색할 것이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정확이 따진다면 맞습니다가 네가 맞다는 것인지 내가 맞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우리 나라 말로는 주어 없이 대화를 하여 네가 옳다는 것인지 내가 옳다는 것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럼에도 대화 내용에서 다 알고 있고 일반적으로 이인칭 주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한지 네가, 당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오히려 반말이거나 도전적인 말이 되어 버린 듯 하다.

물론 일인칭 주어도 문장이나 말할 때에 내가, 내가 , 제가, 제가 연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 언젠가 정치권에서 상당히 배운 듯한 어떤 정치인이 당연한 이야기를 주어가 없다는 말로 호도하는 일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할 때 2 인칭을 넣는 경우도 문제이다.

상대에게 네가, 하기도 그렇고 당신이, 하기도 그렇다. 제자가 스승에게 말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선생님 네가 맞습니까 할 것인가, 당신이 맞습니까 할 것인가, 선생님이 맞습니까 할 것인가,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하면 대화의 상대자인 2인칭은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가장 정확성이 중요할 때가 문제다. 경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외국어의 번역에서 2인칭을 한국어의 번역에서 문제점을 본다.

1. 16:16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한 제자의 대답에서 원문에서 2인칭으로 you 시작한다. 이것을 한국 말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너는 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당신은 이라고 하여도 그렇다.  원문이나 영어 성경은 당연히 2인칭을 쓴다. 우리나라 말로 네가 라고 하면 상대를 낮추는 말이 되어 버린다. 당신이 해도 역시 그러하다.

원어나 영어번역은 2인칭을 사용한다.

다음은 예수님의 질문에 한 제자의 대답이다.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마16:15-16)

 

2. 9: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러 외국까지 가는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는냐,

바울 된 사울은 당연히 하나님의 음성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아니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열심을 다하여 교회를 핍박하는데 이 분이 누구이신가,

그래 사울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주님.

성경에서 주 는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이다. 물론 주인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높이어 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일 것이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여기에 대답이 있었는가, 대답없는 메아리 뿐이었는가,

대답이 있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나는 예수라, 네가 핍박하는.

 

후 아 유, 로드.

주어가 있어야 내용이 더 강렬하다.

 

주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주 하나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주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외국까지 가서 주를 위하여 교회를 핍박하려는데,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핍박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는데, 하나님을 핍박하다니요, ( 런데, 그렇다면) 하나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내 이름을 어떻게 아시고 두번이나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 하시는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주님.

갑자기, 홀연히 말씀으로 나타나신 주님, 나를 두번 부르시고 말씀하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었을 때 대답없는 메아리었는가, 무엇이라고 다시 말씀으로 대답하시었는가, 즉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는가, 일방적인 말씀과 명령이었는가, 교통이 (communication) 있었다는 것이다.

'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 to him,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Who are you, Lord?" Saul aske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he replied. ' (행9:4-5)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바로 이 장면의 사건의 체험에서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그가 나중에 예수님에 대해서 더욱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구나.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구나.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구나를 나중에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는 예수의 몸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빌2:6)

 

주는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이다. 물론 상대를 아주 높여서 주인이나 임금을 부를 때도 간혹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칭하는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아니 목숨 걸고 교회를 핍박하는데 , 나를 핍박한다고 하시니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3. 17:3 

이 구절은 깊고 심오하고 중요하고 의미 있다 할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다. 요한복음은 문장이 쉽고도 내용이 깊다. 영적세계가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예수님게서도 제자들에게 지금 너희에게 다 말을 해도 너희가 지금은 다 이해하는데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여기에서도 자세히 읽으면 예수님 자신이 나를 이라고 하시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반적인 표현이 아니다. 원문은 아니어도 잘 번역된 영어 성경으로 보자.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요17:3)

2인칭이 있는 원문은 물론 영어 성경으로 보면 깊은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영어성경에 있는 쉼표가 원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심오한 내용임을 알 수도 있다.

영어 문법적으로 이 뜻이 무슨 뜻인가, 그리고 그 내용의 깊은 뜻이 무엇인가, 내용이 대단히 깊다고 할 수 있다.

핵심은 여기에서 한국어의 '그' 가 원문에서 그리고 영어에서는 you 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 자신이 나를 아는 이라고 하시기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라고 제 3 자를 칭한 듯이 말씀하였다는 것이다.

영어 성경이 원문 그대로 번역하였기에 영어 성경으로 깊이 묵상해 볼 내용이다. 우리 언어가 상대방을 높여서 2인칭을 부르는 단어가 없다고 할 것이다. 네가 라고 하기도 그렇고 당신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대화 중 너라고 할 수 없어 좀 높여서 당신이라고 하였다가는 무슨 반응이 올 것인가, 뭐, 당신이, 나를 당신이라고, 당신 말 다했어, 이렇게 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가령 왕과 대화할 때 2인칭을 부를 때 you 를 너라고 할 수도 없고 당신이라고 할 수 도 없는 것이다. 너를 너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4. 나는 너를 -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1).
나는 너를 - 하나님과 사람은 인격적 관계

(출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And God spoke all these words: /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하나님과 믿는 사람과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는 너를 이라고 인격적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을 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식물들은 하나님과 you and I 의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쌍방통행의 인격적 교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로 제한 되어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은 나와 너를 부를 수 있는 사랑의 인격적 관계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돌판 을 손수 써 주실 때 나는 너를 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해 오셨는가를 , 문장은 짧지만 그 압축을 풀면 엄청나고 길고 놀랍다. 그 내용만 자세히 쓴다 해도 길고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스릴 써스펜스 감동 우리가 그 장면을 잘 표현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만 표현한다하여도 경이 감동 놀람 소망 담대함 등등 그 표현언어가 제한 되었을 것이다.

잘 표현하고 그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시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복이다. 압축하여 시로 쓸 수 있다는 것 시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게 나를 너를 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나를 너를 하신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사람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인격적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복습 ( review, lession)

언어의 체계상 영어는 중요한 말이 결론이 앞 부분에 나오므로 중요한 내용이 좀 더 강렬하게 들어올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말은 결론이 중요한 말이 나중에 나오므로 끝까지 집중하여 잘 읽지 않으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이것이 경전을 읽을 때도 영어 성경과 함께 읽으면 좋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나는 어제 저녁에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서 식당에 가서,, 그 다음은 ,, 햄버거를 먹었다. 심지어 또는 햄버거를 먹으려다가 다 떨어져서 그냥 나왔다.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끝까지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중요한 핵심 키 포인트를 지나칠 수 있다.

 

영어는 나는 먹었다. 햄버거를 , 이미 중요한 내용을 다 알았다. 그런데 한국어는 이 핵심 단어가 긴 문장 속에서 제일 뒤로 간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복습을 해 보자. ,, 드디어 드디어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바로를 통해서 광야애서 예배하도록 선언한다. 놀라운 내용이다.

너희를 자유케 한다. 너희에게 자유를 준다.

그러므로 예배하라, 너희가 그렇게 원하는 대로, 너희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그런데

다음의 문장에서 어떤 단어가 키 포인트 인가 찾아보라. 과연 어느 단어가 키 포인트 핵심단어인가,

다음의 문장을 읽고 핵심 동사를 찾아보자. 잠시 또는 한참 찾아야 할 것이다.

(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영어는 핵심동사가 앞 부분에 나와서 찾기가 쉽다. 중요한 내용에는 자동 액센트가 있게 된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대하고 원하는 단어였던가, 그런데 읽으면서 그 핵심 단어를 지나치거나 무심코 지나갈 수 밖에 없다면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없다.

(출12:31)

During the night Pharaoh summoned Moses and Aaron and said,

"Up! Leave my people, you and the Israelites!

Go, worship the LORD as you have requested.

 

영어 문장에서는 느낌표까지 있는 "Up! Leave ,,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가,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우리 나라의 8.15 광복같은 놀라운 감격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무엇을,,

Go, worship the LORD ,, 역시 놀라운 감동이다. 이것은 아는 만큼 크게 받을 감동이다.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 능력, 그 놀라운 능력,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던 그 약속의 성취이다. 그런데 이러한 핵심의 중요한 단어가 문장의 단어들에 섞여서 그리고 뒤에 자리잡고 있기에 별 느낌없이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다시 보자 하는 감격을 가지고 읽을 수 있어야 사실은 읽는 이에게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 전후 내용과 그 상황을 제대로 안다면 그러하다 할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그 단어가 뒷 부분에 나오므로 앞 부분을 읽다가 별 큰 감동을 못 느끼면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유를 얻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 누구도 사람으로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어찌 놀람과 감격 감동 없이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문장에서 제일 핵심이고 중요한 단어가 뒷 부분으로 가 있어 그 강세 놀라움 감격을 읽는 자가 깨닫지도 못하고 읽게 되는 경우가 있을 아니 많을 것이다. 대부분 그 감격을 못 느끼며 읽을 수 있다. 물론 그 앞의 상황을 잘 알 때 그 감격이 더 크고 놀라울 것이다.)

                                                                                                       ( - ing ) # 줄 간격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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