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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번역과 국어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4-05 (목) 08:12 5년전 1936  

한국어 국어가 개정 성경에 들어와서 개정된 부분에 고생이 심하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겠지요.

개정판이 아니라 개정 부분에 관해서만 말이지요. 그리고 아름답고 정확하게 깊이 있고 운율감 있게 잘 번역된 부분을 그것을 모르고 거의 대부분의 수정 부분이 그렇게 수정했다고 할까요.

 

경전 번역과 수정을 하려고 한다면

경전이 쓰여진 곳의 상황과 배경 문화 역사 지리 전통

신구약 전체를 잘 알고 깊은 이해와 감동

원어와 모국어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개정의 수정을 원어는 원어이고  국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아니 많은 곳에서 보았다.

 

한국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적이다.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사교육의 열심등은 세계 금 메달 감일 것이다. 입시옥 , 사교육의 부담감 , 기러기 아빠, 고시촌 등등 물론 그것이 그러한 교육열이 한국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인문학 등의 부족함을 볼 수 있다. 단지 시험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고전 인문학의 부족함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오로지 기계적인 입시 경쟁 과정에서 인문학으로 인성의 풍부함과 성장을 가질 겨를이 부족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대중 보다 학문의 학위나 명문 고시패스를 하였다는 인사들에게서 오히려 인문학 등의 부족을 많이 본다. 대표적인 곳이 정치판이지만 거의 모든 곳에서 본다.

교육의 과정 중에 넓고 깊은 독서등을 통한 과정에서 얻은 교양과 인문학의 잠재력은 나중에 어떤 분야이든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큰 발전을 가져오는 밑거름이라는 학설도 있다.

 

개정을 보면서도 입시 학위 등등은 있었는데 성경 전체내용과 원문 등등은 그렇다하여도 문학적 그리고 한국어의 국어적 표현이 어찌 이러할 수 있는가 하는 경우를 여러 곳에서 보았다. 초 중등 과정을 월반 하였나 할 정도의 느낌도 받았다. 혹시나 오직 입시 고시 학위 경쟁을 위한 경쟁 위주의 그 동안의 한국 교육의 영향이 이곳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도 가지고 있다.

        

이미 많은 부분을 언급을 하였지만 몇 부분을 볼 수 있다. 물론 반복 부분도 있다.

 

1.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개정)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능치 못할 일'과 '능히 하지 못할 일'은 같은 뜻이라 할 수 있겠는가.

능치 못할 일은 능력에 관한 것이고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뉘앙스가 있다. 믿는 자라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주 안에서, 그리고 문장의 내용상 운율감에서도 능히 하지 못할 일이라는 단어는 문장에서 더 부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만약 같은 뜻이라면 무엇때문에 수정하였다는 것인가,

( 그리고 언어의 흐름이라할까 운율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 강렬하고 강렬한 문장의 말씀에 ' 능히 하지 못할 일' 에서 액센트가 능히 인가 하지 못할 일인가, 강렬한 내용어가 무엇인가, 내용이 선명하게 잘 전달 되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하신 후,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믿는자는. 참으로 강렬한 메지시이다. 이 강렬한 말씀의 그 흐름을 약간 맥빠지게 하는 단어 그리고 부정확한 단어로 수정하였다. 경전의 번역에서 다른 여러 면은 말을 하였지만 국어 언어 감각이 개정번역 수정팀은 참 부족하고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지금 한국교계 우리 모두 말씀을 향한 종교개혁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아닌가 보자.)

( 신약도 신약이지만 적어도 구약을 최초 번역한 분의 객관적인 실력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잘 갖춘 분이 성경을 어려운 시편을 포함하여 번역하였을까 하나님이 한국에 성경 번역을 주시는 선물이라고 반복해서 말하였다.)

 

1. 성경의 개역으로 보면 이렇게 정확한 내용을 운율감 있게 번역하였다. 세상의 문학 작품에서도 사실적인 내용을 이러한 운율감 있는 표현한 부분을 찾기가 많지 않을 것이다.

맺히는 이슬, 가는 비, 단비 ,, 얼마나 사실적이고 적절하고 정확하고 세밀한 표현인가,
거기에 리듬의 흐름까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장이 어떠하다고 수정을 하였는지. 그것도 시적 감도 없이,

(신32: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개역)

Listen, O heavens, and I will speak; hear, O earth, the words of my mouth. /

Let my teaching fall like rain and

my words descend like dew,

like showers on new grass,

like abundant rain on tender plants.(32:1-2)

이렇게 정확하고 운율감 있게 번역한 개역을 개정은 문학적 소양의 감이 없는 듯한 표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성경의 내용도 문학적 소양도 없는 분들이 국내 또는 외국에서 학위를 가진 것으로 자신의 학문적 자만을 나타낸 것인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번역자와 지금까지의 검증하신 주석가의 검증 등으로 잘 번역되어 감동 은혜 받은 정확하고 리듬있고 암기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내용을 문학적 감도 부족한 듯 수정한 많은 곳 중의 몇 부분이다.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32: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1. 없고 없고 없더라.

이 부분의 개정의 수정 역시 원문의 이해는 따로 논한다해도 문학적인 감각이 너무나 부족하다.

내용 운율감 정확성 부족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한다. 사실 그대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아름답고 좋으며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개정 번역 팀은 너무 실력이 빈약하고 감수자 등 최고의 실력이 있다는 분들이 수정하였을 것인데 우리의 현주소가 보인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왕상18:29)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개역)

Midday passed, and they continued their frantic prophesying until the time for the evening sacrifice.

But there was

no response,

no one answered,

no one paid attention.(18:29)

      

1. 여쭈어 이르되,

한국의 현대어로 이러한 단어가  있었던가,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개역)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개정)

So when they met together, they asked him,

"Lord, are you at this time going to restore the kingdom to Israel?"

여쭈어 이르되’ - 요즈음 이러한 말이 있는지 사용하는지 그러하다. 우리나라 말에는 경어가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기는 하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물었다는 뜻이다. 질문하다를 높임말인 것으로 사용하여 묻자와 가로되 를 여쭈어 이르되 로 수정하였다는 것이다. 글쎄 수정까지 하여 여쭈어 이르되 라 많고 많은 곳에서 보는데 수정을 위한 수정 그리고 더 나을 것도 없는 수정을 왜 그렇게 많이 하였는지, 그 깊은 뜻을 이해 못하고 수정한 부분을 제외하고도 그렇다는 것이다.

 

묻자와 가로되가 아닌게 아니라 예날식 표현인 점이 있다. 그렇다면 묻기를 하면 될 것이고 경어 표현을 하여야 한다면 여쭈어 하면 되지 여쭈어 이르되는 또 무슨 표현인가, 이러한 경우 여기에 적절한 표현들이 있는데 경전이라 삼가겠다. 묻자와 가로되가 어렵다면 묻기를 하였으면 될 것이다.

 

1. 반복이지만

개역의 찾을 것을 개정의 수정은 찾아 낼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마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초등학생들도 '찾을 것' 과 '찾아 낼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찾을 것은 하나님이 찾게 해 주셔서 찾는 다는 것, 그리고 찾아낼 것은 인간의 열심 노력으로 마침내 찾아내는 것

라 할 것이다. 번역 팀이 혹 월반을 해서 초등과정을 건너뛰었는지 하는 생각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성경 사람의 신앙의 성장 이어야 하는데 수평이동의 숫자 과시 건물 프로그램 학위 언젠가 부터는 강단의 가운의 양팔에 세 줄을 붙여 학위를 표시하는 권위인지 하는 것인데 말씀의 권위가 중요하지 구약의 하나님의 디자인한 제사장 예복에는 무슨 학위 표시하라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강단에서 주님의 말씀의 권위가 중요하지 구태여 학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적절할 것은 없다고 본다. 혹 교인들이 지적권위를 인정해 말씀을 받는데 유익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희박하다고 할 것이다. 자칫 자랑 과시로 보이면 역효과 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어도 강단에 서는 분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그 권위를 인정해 주고 있을 것이다.

   

1. 한국의 초대교회는 수평이동의 교회성장이니 그러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 민족에게 복음을 이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민족에게 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각 지교회의 교회는 소위 숫자 부흥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구태여 교파로 나눌 것이 없으니 한국에서는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교단으로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모양인데 본국과의 관계 때문에 그것이 성사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만든 교파 경쟁한 것이 아니라 지역을 구분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다. 이렇게 오직 주님 중심인 본 받을 만한 태도였던 것이다.

( 그후 언젠가는 한국에서 교파가 경쟁 심지어 대립까지 한 경우가 있었다.

그래 선교사들이 본국에 전하기를 한국에서는 희한하게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움네다 하였다는 것이다, 예수교 기독교로 말이다. 우리가 자성할 일이다. 말씀을 향한 종교개혁에 교파 연합도 포함해야 할 것을 고찰하여 볼 것이다. 그리고 혹 거기에 감투도 없앨 수는 없지만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 이름만 높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이 민족에게 다시 영적으로 복 주시고 또 복을 주실 것이다.

그 분의 속성대로 그의 충만한데서 계속적으로 은혜 위에 은혜의 또 또 복을 주시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언제 부터인가는 어떠했는가 보라. 이왕 믿는 분들 자기 교회 많이 나오게 하는 소위 교인이동 숫자성장론에 모두가 집중 올인하고 과시 자랑한 것이 아니었는가. 마치 자기들의 방법론이나 그 무엇이 한 것 같은 교만이나 미화 우상화 그리고 세상 기업적 사고는 없었던가.

이제라도 한국 교계는 깨닫고

수평이동의 성장론을 반성하고 우리들 자신들의 과시 자랑 모습으로 외적 무엇의 성장보다

존귀하게 창조된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잘 번역된 성경을 읽고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세계인으로서 모국어와 세계어로도 함께 읽으며 영적성장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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