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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8일 (금) 일점일획_ἀνάγω(아나고, 인도하다)에 대하여(김범식)(IBP)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4-11-07 (목) 22:59 4개월전 95  

ἀνάγω(아나고, 인도하다)에 대하여

김범식



신약성경에 23번 나타나는 동사가 있다. 그 가운데서 사도행전에 17번이나 나오는 중요한 동사가 있다. 그것은 ἀνάγω(아나고)라는 동사이다. 이 동사는 ἄγω(아고, 인도하다, lead) 앞에 전치사 ἀνά(아나, 위로, upward)가 결합된 형태이다. 고전 헬라어에서는 더 다양한 뜻으로 쓰였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대체적으로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다.

첫째는 동사의 형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래에서 위로 이끌어 가다(lead up, bring up)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결예식을 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나사렛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눅 2:22). 성령은 낮은 요단강 지대로부터 예수를 광야로 이끌었고(마 4:1), 마귀는 시험하려고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천한 만국을 보여주었다(눅 4:5). 베드로를 사람들이 죽은 과부 도르가가 있는 다락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행 9:39).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라는 표현에 쓰이는 단어가 ἀνάγω(아나고)이다. 특별히 성경은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이끌어 올리신 것도 ἀνάγω(아나고)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롬 10:7; 히 13:20). 고전 헬라어에서 죽은 자를 데려오다(bring up from the dead), 깨우다(wake up), 되살리다(revive), 새롭게 하다(renew)의 뜻으로 사용되었기에,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심에 이 단어를 쉽게 사용한 것이다.  ἀνάγω(아나고)는 사탄의 시험이나 우상의 유혹으로 이끌려 가다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고전 12:2),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하나님의 건져주심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둘째는 법정용어로 사용되어 심문이나 법정에서 사람들 앞에 세워지는 것을 의미하였다(bring before). 사도행전 12: 14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박해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는 감옥에 가두어서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어(아나가게인 ἀναγαγεῖν) 재판하려 하였다. 심문을 위해 죄수를 감옥에서 이끌어내어 법정에 세우는 의미로 고전 헬라어에서 사용하였다.


셋째는 은유적으로서 ‘제사하다'(offer up)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 집사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성전과 율법을 무시했다는 고발에 대해서 자신을 변증하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출애굽 후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때 ‘우상 앞에 제사하였다’라는 언급에서 ἀνάγω(아나고)를 ‘제사하다’(offer up sacrifice)의 뜻으로 사용하였다(행 7:41). 고전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종교적 축제에서 제물을 가져와서 바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한 후에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때, 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꿈에서 깨어난 솔로몬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며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다. 70인경의 번역자는 “번제를 드렸다"라는 부분에서 ἀνήγαγεν ὁλοκαυτώσεις (아네가겐 홀로카우토세이스, make a sacrifice of holocaust)라고 ἀνάγω(아나고)를 사용하였다(왕상 3:15). 번역자는 ‘번제를 드리다’의 히브리어 표현 יַּ֤עַל עֹלוֹת (얄라 올레)에서 '올라가다’(עלה, go up)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ἀνάγω(아나고) 동사를 사용한 것 같다(go up).


마지막으로 ἀνάγω(아나고)는 ‘항해하다’(set sail), ‘배를 타다’(put out to sea)의 의미로서 특별히 사도행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행 13:13; 16:11; 18:21; 20:3, 13; 21:1, 2; 27:2, 4, 12, 21; 28:10, 11; 눅 8:22). 이 뜻은 중간태로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바울의 선교여행은 시리아 땅 안디옥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 구브로 섬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2차 선교여행에서 터키 서쪽 에게 해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 트로이(Alexandrian Troas)에서 배를 타고 유럽의 관문 마케도니아로 가는 것으로 중요한 선교전환점이 있었다. 고대 전설이 담긴 도시 Troy가 더 이상 항구 역할을 못하자, 근처에 새로이 만들어진 Troas에서 배를 타고 빌립보로 건너간 바울이었다. 로마가 건설하여 동서를 잇는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를 따라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사역했던 선교여행이었다. 선교여정을 마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도 배를 타는 여행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공회와 총독들 앞에서 심문을 받고 로마로 가는 길도, 배를 타고 가는 긴 항해여정이었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저자는 예루살렘을 올라가는 예수의 여정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사도 바울의 로마로 가는 여정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항해 이야기를 자세히 한다. 사도행전 27:1에서 저자라 할 수 있는 ‘우리’는 배 항해를 시작하며 항해 일지를 쓰기 시작한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믿음의 영웅 바울이 로마로 가는 항해 이야기는 Homer의 그리스 서사시 [오딧세이]의 주인공 Odysseus 장군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해나, Vergilius의 라틴 서사시 [아아네이아드]의 주인공 Aineias가 로마로 가는 항해를 생각하게 한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항해는 광풍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와 난파라는 위험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 가운데 바울과 함께 한 276명의 목숨이 보존되고(행 27:37), 결국 고난의 항해를 마치고 로마에 도착하여 거기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으로 끝난다. 바울 곁에서 항해일지를 쓰는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는 호위대의 이름을 Sebastos 부대라 불렀다. 이 이름은 초대황제 Augustus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Sebastos는 라틴어 Augustus에 대한 헬라어 명칭), 호위대의 책임자는 율리오(Julius)로서 Julius Caesar를 생각하게 하는 이름이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항해가 로마제국을 있게 한 사람들의 호위를 받는 것처럼 항해를 쓰고 있다. 바울의 항해길은 복음이 로마를 정복하러 가는 길이다. Troy(Ilias)를 떠난 Aineias의 항해가 결국 로마를 세운 것처럼, 드로아(Troas)를 떠나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의 항해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길이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로마로 위험한 항해를 시작한 바울의 ἀνάγω(아나고)를 신학적이고 문학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흔히 인생을 바다항해처럼 비유한다. 불확실하고 위험하며 막막한 바다 한 가운데를 항해하는 배에 탄 인생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팬데믹 재난에서 우리는 지금 더욱 거친 항해를 하고 있기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긍휼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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