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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등록자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등록일 2011.08.06

제목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 6:5-10, 17-22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점점 타락해 가고, 세상은 날로 부패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 했습니다. 그리고 에던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자 의인의 피를 삼킨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있었기에, 이 땅에 한 번 태어나면 그야말로 영원히 살았습니다. 무두셀라 같은 이는 969세까지 살았어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림을 받아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그들은 육체만 남게 됩니다. 육체가 되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은 영원히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생명은 120 세로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육체만 남아버린 오늘의 인간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120년도 사는 이가 없고, 그것도 수고와 근심, 고통뿐입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모세도 이 120세라는 연한의 덫에 걸려 평생소원 했던 가나안 정복의 꿈을 눈앞에 둔 채 느보산에서 죽어야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해 줍니까?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딸들과 결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감정적 기분일 뿐입니다. 결혼 같이 중대사를 어떻게 기분에 따라합니까? 살다보면 싫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죽도록 미워질 때도 생깁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결혼생활입니다. 그러기에 결혼은 서로 사랑할 때, 사랑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결혼뿐만이 아니올시다. 만사가 다 그런 것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실패하게 됩니까? 왜 원망합니까? 왜 후회하는 것입니까? 자기 좋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하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려고 한다면 늘 상 좌절하고,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면 잘 되는 것입니까? 내 뜻대로 되었다가는 큰 일 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며, 욕심껏 사는데 그 탐욕이 다 이루어지게 된다면 이 세상은 하루에도 골 백 번 망하고, 큰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가장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만사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었건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망하기라도 한 것입니까? 지금 나는 잘 살고 있지를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 좋으신 대로 살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고, 하나님 뜻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자기 좋은 대로 살다 보니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었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서 영원히 떠나버린 거예요. 우리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인간은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육적본능에 따라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없이 육적 본능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마다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5-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러하리라”

이렇게 모든 인간들이 다 악해지고 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노아만은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까? 그 키는 노아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한데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22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는 하는데, 준행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믿음과 행함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행하면 좋고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행함을 강조하면 예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불경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신앙은 형식만 남게 되고, 열매 없는 위선적 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해 주셨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세운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24-27) 지금 우리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쓰나미처럼 밀러 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람이 미친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반석 위해서 흔들림 없이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행함이 없다면 말씀은 들으나 마나입니다. 내 삶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 열매도 맺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내 인생은 허무하게 광풍과 쓰나미에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큰 공포와 절망의 사건은 아마도 노아시대 대 홍수 사건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 홍수 사건은 노아시대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노아시대보다도 더 크고 무서운 대 홍수사건이 자주 일어나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대란이 전 세계 경제를 침체 속에 빠트리지 않았습니까? 벌써 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를 견인해 오던 미국은 천문학적인 부채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경제부양 정책을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세계 증권가에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대 홍수는 경제뿐만이 아닙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고, 쓰나미와 자연 재해의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세속화의 거센 바람은 지난 수 십 년 서구교회에서 교인들이 썰물처럼 교회를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돈을 신으로 신봉하며 살아갑니다.

노아가 궁창의 문이 열리듯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땅이 갈라져 창수가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그 광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아니하고, 자신을 굳게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명령을 준행하는 데서 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필라델피아 교회에 편지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올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3: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지킨 그 말씀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노아가 천지가 다 물에 잠기는 대홍수의 환난 날에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켰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부패하고 타락해도 노아만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행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지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의인으로 만들어주었고, 완전한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9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환난에서 지켜주고, 시험을 이기게 할 뿐만 아니라, 온전하게 합니다. 바울은 딤후 3장 16절 이하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3:16-17)고 했습니다.

의인이 되고,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하나는 죄짓지 말고 바르게 살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바르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면 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바르게 살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 바른가?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바르게 살도록 지혜를 주고, 용기를 줘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던 노아는 의인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의인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죄인과 함께 심판하거나 죽이지 않습니다. 의인은 자신을 구원받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그 시대의 기둥이요, 구원의 능력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습니까? 그 땅 사람들이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땅에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죄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인을 찾습니다. 이 세상은 죄인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죄인을 구원할 의인이 없어서 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아 의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으로 온전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온전해집니까? 여기에서 완전하다는 말은 흠이 없는 완벽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노아도 흠이 있었고,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완전한 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노아가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어버지처럼 온전 하라는 말은 하나님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올시다.

노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 때문에 망하게 될 세상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온갖 시험과 비난, 모욕과 환난, 장애물을 극복하고 방주를 지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은 자기 집 8식구만 구원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홍수로 망하게 될 세상 사람들과 숱한 생물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노아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죄로 인해 부패하고 타락하는 데서 나를 지켜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 온전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나 좋은 데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저는 요즈음 얼마나 기쁘고 신명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서로 사랑하고, 교우 여러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이 한량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 있고, 온전해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희망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희망을 소중하게 키워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우리 모두 “사랑과 희락, 화평의 열매”를 꼭 맺읍시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의 심장이다.’는 기대와 확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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