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 사태는 지난 2009년 회사 측이 2,646명의 노동자를 강제 해고한 데서 시작됐다. 공장 주변에는 '정리 해고 철폐', '비정규 노동자 복직'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호소가 담긴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밤이 가장 길다는 12월 22일 동지,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캄캄한 밤을 80여 개가 넘는 촛불이 환하게 비추었다. 비정규 노동문제, 강제 해고 등 3년째 고난받는 현장을 찾아가 불을 밝히는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촛불그리스도인들) 연합 예배가 저녁 7시 30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거리에서 열렸다. 80여 개의 촛불 중 60여 개는 이날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들고 있었던 것이고, 19개는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투쟁하다 죽어 간 조합원 숫자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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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박수치며 신나게 노래했다. 차가운 바닥에 작은 깔개 하나씩을 놓고 앉았지만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예배를 이어 갔다. 찬양을 인도한 김여름 한국기독학생청년연합회(한기연·이사장 홍근수 목사) 회장은 "조합원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19개 초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러나 짧아진 초 길이만큼의 온기를 우리가 나눠 가진 것 같다"며, 피곤하고 지친 노동자들이 찬양을 통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김여름 한기연 회장의 찬양 인도(사진 위)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연합 예배를 시작했다. 참석한 60여 명의 사람들이 찬양하며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최유진
   
▲ '지금도 꿈꾸는가 빗물에 젖은 공장 담벼락 그곳, 패인 낙서 속 희미한 얼굴 그대 그 눈동자여.' 설교 전 노동가수 김성만 씨가 노동자의 삶을 담은 '그 눈동자'라는 곡을 부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 학생들 공연도 이어졌다. 숙명여대 양효진(사진 좌), 서울대 위지원(사진 우) 학생이 'return to love'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찬양을 바이올린과 리코더로 연주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울부짖는 노동자들이여, '마리아의 찬가'를 부르자

   
▲ 김경호 목사는 '여자'라는 낮은 사회적 지위와 원인 모를 임신으로 파혼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한 마리아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정리 해고 철폐하자!' '죽이지 마라, 우리는 살아서 일하고 싶다', '죽음의 공장, 쌍용차 경영진은 즉각 대화에 나서라! 약속을 지켜라! 무급 휴직자, 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복직시켜라!'

공장 주변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호소가 담긴 갖가지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쌍용차 사태는 지난 2009년 사측이 2,646명의 노동자를 강제 해고한 데서 시작됐다. 노동자들의 77일간의 파업 끝에 회사는 비정규직 복직, 무급 휴직 후 복직, 징계 철회와 원직 복직을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96명을 구속하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등의 행태를 보였다. 이 와중에 투쟁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19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여인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마리아는 '여자'라는 낮은 사회적 지위에다 원인 모를 임신으로 파혼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다. 김 목사는 "우리는 마리아를 가냘프고 연약한 여인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누가복음 1장 46~55절에서 마리아가 부르는 노래는 옛날부터 혁명 주제가로 쓰이던 노래다. 러시아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세울 때도, 남미에서 농민 혁명을 일으킬 때도 이 노래가 주제곡으로 쓰였다"고 했다.

김경호 목사는 "새로운 메시아는 물질, 권력, 힘 등 세상적인 조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마리아의 의지를 통해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오게 되었다"며, 사람들의 비난을 각오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낳기로 결단한 마리아의 의지를 사람들이 기억하길 바랐다. 그는 하나님이 이집트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던 것처럼 바로 이 아픔의 현장에도 함께해 주기를 요청하는 '마리아의 찬가'를 부르자고 했다.

설교 후 한기연 박보름 간사의 인도로 기도회가 이어졌다. 먼저 2009년 사 측이 2,646명의 노동자를 정리 해고하겠다고 발표한 4월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오창부 씨를 위해 기도했다. 박 간사는 "반쪽짜리 노동자로 살아 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리 해고는 남은 반쪽마저 뺏기는 가혹한 고통"이라고 했다. 비록 우리는 그를 안아 주지 못했지만,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오창부 씨의 아픔을 위로해 주시길 기도하자고 했다.

2,646명의 해고 노동자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희망퇴직, 무급 휴직 등으로 분류되었지만 누구 하나 온전히 일터로 돌아간 사람은 없었다. 박 간사는 이 땅 어딘가에서 해고와 단절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하나님께서 닦아 주시기를, 또한 그들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한 우리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하자고 했다.

   
   
▲ 설교 후, 2009년 쌍용차 회사 측에 의해 정리 해고당한 2,646명의 노동자와 해고 발표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오창부 씨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은 기도회를 인도하는 박보름 간사(위)와 기도하는 참석자들의 모습(아래). ⓒ뉴스앤조이 최유진
스무 번째 죽음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투쟁 속에 동지 모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동지의 손 맞잡고 /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노래하며 촛불 침묵 행진을 했다. 십자가를 들고 공장 정문까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모였다. 십자가를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모인 참석자들이 두 손을 잡았다. "아이구, 손이 다 얼었네." 기자의 얼은 손을 노동자 분이 장갑 낀 손으로 꽉 쥐어 주었다. 따뜻했다.

   
▲ 테이블 위에 놓인 19개의 촛불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투쟁하다 죽어 간 조합원 숫자를 의미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 예배 후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성금과 방한 장비를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성금 전달 후 격려 인사로 악수 대신 포옹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 예배 마지막 순서로 참석자들은 십자가를 들고 공장 정문 앞을 한 바퀴 도는 촛불 침묵 행진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