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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여성 3인, 한국교회 장로되다

관리자 2011-09-06 (화) 18:05 12년전 2971  
조선족 여성 3인, 한국교회 장로되다


[미션라이프] “절망과 고통의 삶 속으로 예수님은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랑을 제가 다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그저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임직자 인사를 하던 이덕남(67) 장로가 울먹이자 옆에 있던 김해성(50·중국동포교회) 목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걸 지켜보던 500여 교인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4일 오후, 서울 가리봉동 중국동포교회(김해성 목사)에서 열린 장로 임직식은 여느 교회 임직식과는 달랐다. 흥겨운 축하와 뜨거운 감격이 어우러진 잔치 자리였다. 이 교회 최초이자 국내 최초로 중국 여성 동포 3명이 장로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2시간의 임직식이 다 끝나도록 꽃다발과 선물을 가득 든 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장로 임직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듯했다. 세 장로가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꿋꿋이 지켜왔다는 사실을 가족처럼 잘 알고 있어서다.

이날 장로가 된 세 중국 동포 여성은 이 장로 외에도 이순녀(63) 지춘옥(55) 장로. 이들의 공통점은 중국 동포 여성인데다, 초등학교 출신으로 현재는 남한에서 가정부나 간병인으로 보잘것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 너무나 힘들어 여러 차례 자살을 생각했다는 점도 닮았다.

중국 흑룡강성 출신인 이덕남 장로의 인생은 50세가 될 때까지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었다. 26세에 남편이 우물 공사를 하다 매몰돼 사망했다. 세 자녀 중 첫째는 뇌성마비 장애아였다. 국가 배급으로 연명하던 그녀는 병, 인생의 허무와 숱하게 싸웠다. 2005년 2월 한국에 와서 중국동포교회에 다니기까지는 자살이 유일한 대안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순녀 장로는 1997년 한국에 왔지만 불법 체류자 신세에 IMF 환란으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중국동포교회에 피신해 있다시피 했다. 결국 다시 중국엘 갔다가 2005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엔 국내 다른 교회에서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중국동포교회에 와본 뒤엔 편안한 신앙생활을 접었다. 밀려드는 중국 동포를 위해 너무나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장로가 하는 일은 가정부. 한 달 월급이라야 70만원이 전부다. 월급을 더 많이 준다는 곳도 있었지만 주일예배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이 장로는 “처음엔 가진 돈도 없어 장로가 될 수 없다고 도망다녔지만 힘들고 지친 나 같은 중국 동포들에게 미력하나마 위로가 되자는 마음으로 순종했다”고 밝혔다.

지 장로는 한국에 먼저 와 있던 남편을 1997년 차사고로 잃었다. 남편의 시체는 사고 처리가 제때 되지 않아 5개월이나 병원 영안실에 방치돼 있었다. 결국 김 목사의 노력으로 합의하에 남편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가정부를 전전하던 그녀는 2000년부터 경기도 일대 요양병원에서 보조요양사 일을 해왔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생기고 온몸이 붓는 힘겨운 일이었지만 배운 것도 많다. 아무리 돈과 권세가 있어도 결국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한다는 사실. 몸이 불편한 지금도 그녀가 자원해 요양사 일을 하는 이유다. 지 장로는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를 몰라줬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해해 주셨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세 장로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는 말씀이 새겨진 패를 ‘중국동포교회 교인 일동’ 이름으로 전달했다.

글·사진=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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