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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밟기 유감

관리자 2010-12-24 (금) 11:25 13년전 3631  
땅밟기 유감<교회연합 12.19>
 

강 경 신 목사
<동부교회>


 요즈음 교회가 부끄럽다. 지난 세월 온갖 짓밟힘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내 온 한국교회가 이제 남을 짓밟고, 다른 종교를 짓밟는 종교처럼 보여서 민망하기 그지없다. 일전에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한국교회가 큰 창피를 당했다. 봉은사뿐만 아니라, 대구 동화사와 그 외의 여러 사찰들, 심지어 미얀마와 같은 외국에서까지 ‘땅밟기’가 행하여진 것이 알려지면서, 기독교는 타종교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크게 지탄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왠 땅밟기인가?” 하고 어이없어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여러 교회들이나 선교단체들이 ‘땅밟기’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땅밟기’는 원래 ‘땅밟기 기도’에서 유래한다. 스티브 호돈과 그래함 캔드릭 공저인 ‘그리스도인의 땅밟기 기도’라는 책은 ‘땅밟기 기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보면 ‘땅밟기 기도’는 나름대로 기도의 유익이 분명히 있다. 땅을 밟으면서 지역사회의 실상에 민감해지고, 지역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기도와 전도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비전이 땅밟기를 통하여 연결되며, 구체적인 행동의 첫걸음이 된다. 나아가 소극적인 기도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기도자로 기도생활에 향상을 가져온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익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교회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땅밟기는 너무 거칠다. 마치 ‘십자군 원정’을 하는 양 과격하고 전투적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무례하기 그지없다. 최근 대구의 어느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영전전쟁의 최우선공격목표”로 팔공산 땅밟기를 독려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흔히 땅밟기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로 ‘여리고성 점령’을 언급한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 땅밟기를 해서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신학적인 면에서 지극히 단편적이다. 땅밟기가 초자연적인 이적을 불러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원시적이고 미신적인 신앙이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한국교회는 기복주의 신앙이나 무속적인 신앙으로 오도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땅밟기가 극단적인 신앙행동이 되어 기독교가 타종교와 ‘종교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된다.

 오래 전에 발간된 일본소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보면, 끝까지 배교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던 로도이꼬 신부가 고문당하고 있는 신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초상을 밟기로 결심한다. 그가 배교의 행위로 그리스도의 초상을 발로 밟으려는 순간 한 소리를 듣게 된다. “밟아라. 밟아도 좋다. 내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진 것이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참히 짓밟힘을 당하셨다. 모욕과 수치와 아픔을 참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과연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세워진 교회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가 선교의 이름으로, 혹은 영적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가? 이제 교회는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세상 사람들로부터 짓밟히면서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를 더 이상 타도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에 교회는 성도들을 ‘영적전쟁’이란 이름으로 부추겨서도 안된다. 다른 종교와 이방지역에 가서 땅밟기를 통하여 ‘하나님 만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위하여 수치와 패배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별의별 소리를 듣는다. “천박하다. 시끄럽다. 극성이다. 독선적이다. 배타적이다.” 왜 교회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교회가 종교전쟁의 승리자가 되거나, 타종교의 정복자가 되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주님의 말씀은 정복자의 외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고난받는 종이 되게 하고, 이웃을 위한 섬김의 종이 되기를 원하신다. 교회는 단순히 타 종교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종교적 승리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오늘의 교회는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기를 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더 낮아져야 한다. 한없이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 한다. 그래서 “네 마음을 밟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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