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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저에게" (사도행전 12:24) - 장활천 목사

이인배 (서울동노회,prok,목사) 2016-10-11 (화) 18:07 3년전 1852  

캐나다에서 30년간 목회를 하셨던 장활천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우리에게 가끔 다가오는 고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설교입니다.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사도행전 12:24)

 

 

저에게 왜 이런 가혹한 일이 있지요?”

어느 중학교 교사인 성도 한 분이 찾아와 목사님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내용인즉 그에게는 아주 귀여운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교육자로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해서 아이들을 양육했습니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유아세례도 받고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니며 공부도 잘 했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교육자의 아들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15살 되어서 갑자기 아편을 피우고, 마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길렀던 아이인데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했습니까? 우리 주님은 무엇을 하셨나?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늘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믿고 있었던 친구의 배신, 어떤 몰락 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들이, 준비도 할 수 있는 시간도 없이 갑자기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더 나아가서 내가 하나님께 어떤 잘못된 일을 했는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등등 많은 질문을 가집니다.

 

이런 질문은 198410월에 조사했던 <Reader's Digest>의 설문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던지기는 쉽지만 답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그동안의 삶에서 수없이 직면했고, 여러분들도 역시 그랬을 줄로 압니다. 더 나가서 이런 질문을 솔직하게 던지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을 당할만한 죄를 짓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계속 의문을 가지고 손쉽게 운명론을 가지고 장사하는 무리들에 가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터가 어떻다든지, 어째서 노여움을 샀다든지, 동쪽이 어떻고 서쪽이 어떻고 떠들어대는 말에 부적 몇 개를 사 붙여놓고 이제는 되었다고 안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숙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성서의 말씀을 통하여 희미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나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큰 번민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사람이 선하게 살면 행복을 가져오지만, 악하게 살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바탕으로 한 믿음의 세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고통의 세월이 지나면 어느 때보다 더 기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 그러한 원리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때 신앙세계의 다른 면을 <욥기>는 밝혀주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네가 이러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은 분명히 너의 죄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욥 자신도,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욥은 그들이 말하는 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양심으로 정확하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와 같은 저주를 받을만한 일은 없었다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도 욥의 의를 대하여 인정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깊은 수렁의 고통에 빠져 신음하는 자들을 향하여 주변의 입바른 사람들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조잘댑니다.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본문의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흥왕 하여 더하더라하였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가운데는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많은 단어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사도행전 12장을 주의 깊게 다시 읽어보십시다. 12장은 박해에 대한 기록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종교적인 박해가 있은 다음 정치적인 박해로 바뀌는 단계였습니다. 정치적인 왕 헤롯이 기독교 박해에 손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에 의하여 투옥되고 온 교회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게 될 때, 그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들은 여기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신학적인 해답을 얻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축복도 받고 또한 우리의 생명이 보호함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라 착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보호하여 주실 책임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 다가왔을 때 왜 이런 일이 다가왔는가?’ 질문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에게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만 하나님을 의심을 하는 습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돈을 주고 살 수도 없고, 우리의 어떤 행동을 통해서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받을 자격이 있으며 받을 권리가 있는 양 행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라 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분명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선행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 우리를 지키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치 하나님에게 빚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에게 아무런 부채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서두에서 말씀 드렸던 실망에 가득 찬 어느 부모가 목사를 찾아가서 불평조로 털어놓았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사람은 사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학교 교육을 다 마쳤고, 그가 마지막 한 가지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여섯 아이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던 점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원하고 있었지만 그 때 이미 여섯 아이 중 세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연령이었지만 하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한 아이는 어릴 때 결혼하여 입대했고, 둘째 역시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셋째는 사생아를 임신하여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목사를 향하여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어려서 주일학교에도 빠짐없이 출석했고, 십일조도 어김없이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잘 섬겼기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축복해 주실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러한 신앙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축복을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어떤 행위의 보상으로도 그 축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심리학적인 방향에서 대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축복이 무엇인가 셈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한 훈련으로 : 우리가 불가항력적인 어떤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있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하나씩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보아야 합니다.

 

심오한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역설적입니다만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라 생각되는 것들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된 아름다운 일들이 더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주변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과 기쁨 가운데 나는 지금 어느 것을 더 겪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들은 우리의 생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작업이 부족하게 될 때는 축복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일들만이 주변에서 발견되고 짜증스런 모습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3) 내적인 감정을 기초로 한 해답을 구하자면 우리들은 새로운 자세를 개발해야 합니다.

 

늘 감사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주변에서 찾아보는 하나님의 축복들을 찾아본다면 감사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신앙인의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을 하겠다고 결단을 가지는 순간, 사도행전 12장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헤롯의 심한 핍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때 교회는 성장하게 되었고 그들의 믿음은 굳세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나의 믿음을 굳세게 해 보겠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물이 담겨있다고 했습니다(고후 4:7).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의 비밀스런 경험입니다. 나 자신에 의하여 솟아오르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힘입니다.

 

종종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 너무 힘들다 생각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러한 고난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인가 고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잠시 눈을 돌려서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신가 하는 것을 발견하고 응답하며 믿음을 굳세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욥은 그의 고난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욥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이후(42:5),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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