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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3일 (화) 로중(Lousung)_항상 [주님께 대한 감사 속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라(이주형목사)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3-05-22 (월) 21:09 10개월전 223  
‘항상 [주님께 대한 감사 속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라!’

1. 전도서 8:15 (구약 954쪽).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2. 빌립보서 4:4 (신약 322쪽).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쁨에 대한 찬양이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에 삽입된 쉴러(F. Schiller)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떠올리게 한다. 기쁨에게 바쳐진 헌정시이다. 기쁨은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schöner Götterfunken)’이며 이상계인 엘리시움의 딸(Tochter aus Elisium)로 표현된다]. ‘해 아래에서’ 즉 사람이 [공간적으로] 땅에서 사는 [시간] 동안 얻을 최상의 보상이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기쁨이다. 그것 외에 무엇이 사람이 사는 동안 얻을 내용 있는 선물일 수 있는가? [기쁨의 대체어는 춤(시 30:11; 렘 31:13)이나 웃음(전 7:3) 등이다.
기쁨의 맞은편에 있는 슬픔 역시 많은 평행어와 대체어를 가진다. 탄식이나 환난이나 괴로움이나 근심이나 곤고나 고역이나 고생이나 고통과 같은 것이다. 기쁨 위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이며 그 기쁨을 밀어내는 어둠의 요소들이다].
물론 기뻐하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 세상에 나은 것이 없다(3:12).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관찰하며 삶을 숙고하고 묵상한 이의 결론이다. 즐거움과 기쁨은 하나님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주시는 것이다(전 5:20. cf. 사 9:3). 그러므로 ‘기쁘게 사는 것’을 권한다. [누구는 기뻐하고 싶지 않아서 기쁘게 살 수 없는 것인가? 그럼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냥 기뻐하지 않고 있을 것인가? 권면은 어쨌든 이를 지향할 것을 말한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의 조각은 땅에서 수고에 대하여 얻는 몫[삯]이다(전 3:22; 5:18-19; 9:9). ‘수고와 슬픔’으로 요약되는(cf. 시 90:10) 그리고 그것도 날아간다고 할 만큼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리는 허망한 삶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것으로서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보상이다. 삶의 민낯을 보여주고 아주 현실적으로 인생을 이해하는 전도서의 충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쾌락을 뜻할 수도 있는 기쁨을 추구하라! 네가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라! 그러나 한 가지를 염두에 두어라!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네 삶의 내용을 또는 네가 누린 그 기쁨을] 평가하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이 [기쁨의] 서신의 앞쪽에서 ‘나와 함께 기뻐하라!’(2:18)고 말하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3:1)고 권한다. 그것이 믿음의 생활을 규정한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그것에 부속되는 삶이 고린도후서 13:11의 인사에 기록된다. ‘기뻐하라!’는 바람이 담긴 권유로서 마지막 인사의 내용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건네신 인사 ‘평안하냐?’가 같은 형태의 단어이다(cf. 마 28:9). 속된 삶의 기쁨이 물론 꼭 부정적으로 이해되지는 않다(cf. 전 9:7). 그러나 – 쾌락적이며 육체적이며 자극적이며 동시에 순간적인 –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은 허망하여 속임수이다(cf. 전 2:1). [누림은 소비이다. 즉 누리면서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마치 피부에서 느끼는 시원함이 거기서 열기가 없어지는 순간의 감각을 – 사실상 열기를 빼앗기는 것을 – 말하듯이 기쁨이란 소비되면서 알고 누리게 되는 것이며 누림으로서 없어지는 (순간의 느낌인) 것이다. 현실적 조언은 그러므로 ‘즐겨라 그러나 과하지 말라!’ 또는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즐길 자격도 없다!’ 등으로 요약될 것이다]. 
주 안에서 얻는 기쁨은 환경을 넘어서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유효한 것이다(고후 6:10). 그 기쁨엔 제약이 없으며 무엇 즉 어떤 조건에도 방해받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이름이 있는 것으로 기뻐하라 하신다(눅 10:20. cf. 마 5:12). 근원적인 기쁨의 이유로서 소망 가운데 미리 누리는 내용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오늘 구절에서는 ‘기뻐하라!’가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의 두 번째 덕목으로서 사실상 근본적인 열매로서 ‘사랑’을 제외하면 첫 번째 것이다. 아니 사랑의 첫 현상이며 실제적인 발현의 형태가 기쁨이다(갈 5:22-23)].
기쁨은 구원의 실재로서 평안과 함께 예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요 15:11). 빼앗길 수 없는 것 즉 누가 빼앗아갈 수 없는 것으로서 마음의 기쁨이다(요 16:22.[24; 17:1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환경과 조건을 넘어 늘 행복하게 하시옵소서. 땅에서 사는 동안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땅에서 무수히 또는 수시로 만나는 괴로움을 넘을 만한 그리고 슬픔을 덮을 만한 하늘의 기쁨을 선물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해주시는 그것을 소망 중에 이미 이곳에서부터 받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담당해 주시어 우리에게서 근심과 걱정이 거두어지고 그래서 우리가 얻게 된 기쁨인 것에 감사하며 그 영적 기쁨을 세상 염려 때문에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22장 (만유의 주 앞에); 61장 (우리가 기다리던); 34장 (참 놀랍도다 주 크신 이름)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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