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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은 루터의 종교개혁 1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21-10-21 (목) 07:52 2년전 1086  

1.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가 홀로 종교개혁을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당시 종교개혁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인 누구나 루터를 우상화 하는 생각이 추호도 없어야 할 것이다.

다시, 루터가 홀로 또는 몇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하였다고 할 수도 없다. 어떻게 감히 사람이 종교를 개혁하겠는가, 자기 자신도 연약한 사람이 어떻게 종교를 개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가장 큰 교만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도 개혁하기 힘든데 어떻게 연약한 사람이 종교를 개혁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실상 마르틴 루터도 자신이 종교를 개혁하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말이 적절하고 가능하다.

제목을 하나님의 도구라고만 하면 내용을 알 수 없어 루터를 붙인 것이다.

 

1. 나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루터에 관해서 논문을 루터의 정치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쓰기 위하여 일년 여 동안 루터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물론 논문은 그 주제가 아니라 다른 주제로 썼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하여 쓴 다는 것은 약간의 기초자료는 마음에 있다 할 수도 있다. 일년 여 동안 루터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 자료를 준비하면서 이미 잘 알려진 내용 외에 아, 바로 이거다 하고 특별히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 논문의 주제의 자료를 준비하며 뭔가 잡히는 것이 없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 정도 자료를 수집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루터에 관해서 쓰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약간의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다시, 그 자료를 수집하면서 새삼 얻는 것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그 때 자료를 수집하는 중에 깨달은 것과는 관계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성경 연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 나는 루터를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근본주의자라고 본다.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근본을 두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를 종교개혁의 도구로 사용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루터의 표어는 말씀 만으로 는 잘 알려진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혹 루터를 개혁자 진보주의자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그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근거 즉 역설적으로 가장 근본주의자이기에 개혁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말씀에 굳게 선자를 쓰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굳게 서지 않은 사람을 쓰신다는 것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멀다 할 것이다.

1. 이스라엘 성지 탐방의 과정에서 어떤 곳에 각 나라의 주기도문을 기록한 곳인가 하는 곳에 거의가 성모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 있는 것을 보았다. 대략 십여개의 각 나라의 주기도문을 기록한 곳 옆에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왜 성모 마리아가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가,  그것이 이상하였다. 왜 그러한 그림이 주기도문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거기에 있는가 말이다. 이것은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그림을 별 생각없이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문맹율이 높아서 그림 언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해도 그러하다.

이것은 로마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에 여러 종교가 있는데 그 중에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 또는 국교화 되는 과정에서 어떤 종교 또는 여러종교를 통합하여 기독교를 국교화 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타협한 것이 아니었나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한 그림은 존중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복음서의 핵심으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무엇보다 너무 상징적 또는 우상적 모습에도 개혁적 모습을 보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신앙을 가진 루터를 종교개혁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루터을 너무 높이고 심지어 혹 우상화까지 한다면 루터의 개혁과 가장 거리가 먼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러한 종류의 것을 개혁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을 선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어떤 분의 강연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사람들이 지난 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마틴 루터를 꼽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혹 루터의 자료를 준비하는 중에 읽었는지는 모르나 나의 기억에는 없다. 유럽 사람들은 중세기 천년을 마감하고 근대를 열었다는 인물로 루터를 꼽는 다는 것이다.

그가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말씀 만으로를  말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화하였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할 만하다.

나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좋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신앙의 인생들과 합력하여 그의 좋으신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도 본다. 말씀 만으로의  종교개혁을 보며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사용하시어 합력하여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 나는 루터를 필요이상으로 높이거나 그렇게 위대한 인물로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그것을 근본으로 회복하며 주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성경적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나님께서 루터를 사용하여서 말씀 만으로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 하였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또한 사실이 그렇다. 만약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개신교회가 없었다 할 수 있기에 종교개혁자들을 연구해 볼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하겠다. 그 시대의 그 종교개혁자들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 다른 방식으로 말씀만으로의 내용의 종교개혁을 누구를 통해서든지 하게 하셨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 개신교는 개인적 종교의 자유가 너무 만발충분하다 보니 어떤 면에서 저마다의 학설들이 남발되는 면도 있지만 말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당시 시대상황와 연결되어 가능하게 되었다. 루터가 말씀 만으로 하니 단순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전혀 아니었다. 왕과 귀족 농민들의 상황 그 시대의 상황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진행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여 모든 것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농민들인가 지지세력이 너무나 과격하게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터가 단칼에 종교개혁을 일사천리로 한 것은 전혀 아니었고 종교개혁자 루터를 높이거나 심지어 우상화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루터를 말씀으로만의 종교개혁의 도구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고 정확하다 할 것이다

누군가가 루터를 진보의 상징 개혁의 상징으로 본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루터가 이렇게 종교개혁을 해야겠다는 이론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라 불리우는 루터는 보수주의자 아니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근본을 두었기에 종교개혁의 도구가 된 것이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도 잘 모르고 자기 나름의 진보를 가지고 자기 식의 개혁 운운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루터의 종교개혁을 인용하는 것도 너무나 난센스라고 할 것이다. 루터는 철저한 보수주의자 아니 근본주의자이었던 것이다. 철저한 근본주의자이었기에 개혁의 도구로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신학 주장이나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시겠는가.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신뢰의 근본주의자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근본주의자를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된,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사람을 불러 쓰신 것이다.(행13:22)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부록  (supplement) 

1. 역사학을 더 공부하려고 한 이유

목사가 되려고 하고 당연하고 바윗돌 위에서도 기도 ,, 포기,, 어려운 시기에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절대적으로 포기하고 있던,, 신앙적으로 ,, 교회는 출석하였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리도 있었는지 ,, 아니 신의 존재 자체를 생각하지 않기로,,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어 마음 속에 잠시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든 아니든 나의 도움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떠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냐, 그러한 하나님이시라면 왜 믿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도 하였다.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였던 고 2학년 그 시기에 나는 나의 실존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그러한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어떤 학설이나 이론이나 남의 간증이 아니라 나의 실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강렬하였다. 그 이유가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은 잔잔한 마음의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실존적 체험 후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들을 통해 증명하였다면 그것을 증거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학도로서 역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열망 또는 그 무엇을 잔잔하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관적 개인의 역사 이상의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한국의 세계의 역사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학을 졸업하고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 사실 자체도 사실은 나의 신앙적 간증이기도 한 것이다. 


신학대학 일년 때 세 가지 제목 기도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다. 마음 속으로 신기하고 놀라웠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실존적 경험이 필요하였다. 책들을 읽으며, 기독교 바깥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찾아보기로,, 성경보다,, 부정적 비판적 세상의 혁명아 그러한 중에 고전 명작은 신학에 큰 도움,, 유학 가려면 어학에만 매달려야 ,, 실상 어학에 소통이 안되면 글을 말을,,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 서구 유학의 한국의 모든 교수들이 ,, 전공과 어학에만 전념 한다면 인문학에 부족할수 밖에 없을 듯, 이제는 기기들의 활용으로도 교통에 많이 다른 기회 ,, 번역기 외,,  

1. 어떻게 한국의 역사 세계의 역사를 다 알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을 잊기도 하고 거의 불가능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깨달은 것이 있다. 역사에서 한국의 역사에서 세계 역사에서 찾기는 너무 광대하고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샘물의 물맛을 알려면 샘물 전체를 퍼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모금의 물만 마셔보아도 알 수 있다. 몸의 건강 상태를 한 곳을 진맥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다. 한국의 모든 역사 세계의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없다 하여도 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 인도하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세계의 모든 역사를 다 알고 분석까지 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세계의 모든 역사를 다 안다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국에 한글 성경이 출판되는 과정의 한 주제만 알아도 아니 극히 일부의 중요한 내용만 알아도 하나님의 사랑 능력 세밀하신 인도하심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 루터의  정치사상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쓰려고 하였다. 일반대학교의 논문이기에 너무 종교적인 내용을 주제를 잡을 수 없어 루터의 정치사상이라고 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였다. 서양사를 전공하는 분이 그 제목으로 논문을 승인하였다. 그 제목으로는 논문지도하기가 난감하고 어렵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 일년 내외를 자료를 수집하였다. 사실 그 자료를 수집하면서도 정확하게 어떤 줄거리고 쓰려고 정리하지 않았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무언가 주제와 내용전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년 내외 정도 자료를 수집하였다. 루터의 정치사상이라는 책도 있고 해서 읽으면, 책이 어려웠다. 내용도 어려웠고 문장도 어려웠다. 타교단 신학교의 유명한 교회사 전공 교수를 상담하며 루터의 정치사상 영어본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분도 새롭게 발견한 듯 하고 그 교수 이름으로 나중에 번역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논문 지도교수가 어느 날 그 주제로는 인지 어떤 이유인지 논문 못하겠다고 하였다. 뭐 전화상으로 간단하게 하였다. 뭐 냉정한 인간미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바로 처음에 그 주제로는 자신은 감당하고 지도하기 어렵다고 하지 승인 후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1. 나는 많고 많은 책을 읽었다. 나의 신학도일 때 사실 성경책보다 일반의 인문학 책을 더 많고 많이 열심히 절박하게 읽고 읽었다. 일생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면 일평생의 확실한 신앙의 근거를 확실한 무엇을 분명하게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성경의 주석서도 열심히 보았지만 성경보다 일반서적을 더 많이 읽었다. 학문하는 입장에서 성경은 당연히 하나님 잘 믿으라는 이야기 예수 잘 믿으라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하며 말이다.

문학작품과 함께 세상의 혁명아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 무신론자들의 주장 타종교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말이다.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찾았다.

그런데 채필근 교수의 비교종교학은 참으로 탁월한 책일 것이다. 이 부분은 다시 잠깐 언급하여야 하겠지만 실력있는 학자 목사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 선친께서 구입한 책이기에 읽었는데 이러한 탁월한 책이 한국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다시 출판되지 않았는데 출판사의 수익관계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수평이동의 교회성장론에만 올인한 시대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의 우찌무라 간죠의 책들도 유익하였다. 서구의 어렵게 번역한 책들보다 훨씬 더 유익하였을 것이다. 서구의 신학자들의 책들은 대부분 어렵고 머리가 아플 정도이다. 문화가 달라서 서구적 표현이어서 인지 번역이 완전 소화이해하고 번역하지 않아서 인지 여려운 책이다. 그런데 무슨 심오한 무엇이 있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이거구나 하는 내용을 참으로 어렵게 썼다. 그것은 원래 작가가 어렵게 썼는지 번역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하여서 그러한지 문화적 차이인지 대부분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썼다는 것이다. 

1. 중등 국사 교과서의 비교 분석 연구 ,, 대략 이러한 제목인데 입학할 때 이러한 논문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짧은 시간에 논문 쓸 수 있는 방안을 찾다 이러한 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그 논문을 쓰면서 새롭게 배운 것들 깨달은 것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학부에서 국사 역사를 전공한 학우 두어 사람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학우 자매등 인상적이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참 한국 사람들 친절한 면이 많다. 서로 경쟁적인 면이 많고 많지만,, 그래도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단 한 가지 무슨 ***** 이름으로 땅을 여러사람 묶어서 사게하는 사업으로 사기치는 사람들 빼고 그 사람들은 그 직원까지 세뇌되어 자신들이 지금 사기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지 모르겠다. 왜 지금 이러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제도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버젓이 이렇게 사람들의 부의 획득의 심리를 이용하여 사기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단속이 안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 등을 제외하고 세상의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특별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없기에 사람들의 친절한 선한 본성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학학부 때 또는 대학원 입학 때 전혀 상상하지도 않았던 중등 국사 교과서 비교 분석 연구 라는 주제의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주제를 바꾸고 지도 교수님을 정하고 그 논문을 썼는데 전혀 잘 알지 못하였던 그 지도교수님이 상당이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 루터와 종교개혁을 쓴다고 한다면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아야 그 글을 신뢰성을 가지고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나의 학문세계를 잠깐 말하자면,

나는 졸업 후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학부에서도 역사에 관해서 많은 독학을 하였지만 역사를 더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간 역사교육과에 들어갔다. 그 때 신학과에서 역사교육과를 들어갈 수 있었다는 나에게는 감사요 간증이었다.

나는 목사가 당연히 되어야 하고 또한 되려고 기도하였다가 고등학교을 다니면서 세상이 너무 부조리하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현실 등등을 보고 죽으면 죽어도 목사가 안될 것 혹시 이 마음 변치 말고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겠다 하다가 고3때 하나님께 찰싹 얻어맞고 죽을 뻔 하였다. 그 후 서서히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듯 다시 기적같이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진정 기적같이 돌이킨 후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체험하고 믿는 다는것은 기적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일학년 때 좀 세 가지를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였는데 그것이 다 이루어졌다. 그것이 쉽지 않는 기도제목인데 그러하였다. 그 해 겨울 도서관에서 아 나를 인도하고 이끄시는 분이 계셨구나 잔잔한 그러나 강하게 확신이 왔다. 그후 신학을 공부하면서 무엇인가 문제가 있으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고 그의 뜻과 일치하다면 실천하였을 때 다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러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목회자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기도하였는데 혹 우연의 일치라고 할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하니 목회자의 길을 거부할 수 없다. 성경이 아닌 수많은 책을 읽으면 성경을 검증하여 보아도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이 가장 큰 힘이라는 진리가 맞다고 거부할 수 없이 확신하였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 별개로 그 진리가 맞다는 것이다.

그 실험을 군대에서도 검증을 하였고 그 검증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환희에 차서 나의 교육계원 싸인 란에 희랍어로 아가페라고 쓰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군대에서 마저도 사람을 감화하고 움직이는 사랑의 힘이 가장 크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를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 후 목회를 대단히 잘하고 못하고들 떠나서 말이다. 사실 나는 군대 삼년여 중 모세의 가시덤불의 불길에서 부르는 것 같은 그러한 체험을 바랐는데 하나님의 사랑이시고 사랑의 힘이 가장 크다는 것을 확신 하는 것이었다. 전에 가끔 쎄미나에서 어떤 목회자의 간증을 들으면 대부분 무명인사의 간증은 놀랍다. 대부분의 보통의 평법한 평신도분들의 간증도 놀랍다. 그것을 한국사나 세계사의 객관적 사실을 통해 그 하나님의 역사를 해석하여 증거하자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개인적 기적을 말한다고 해도 객관적 증거가 없다면 누가 믿겠느냐 그리고 과장할 수도 있고,, 그 때,, 가능할까 하면서도 한국사 세계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분명히 객관적으로 밝히고 증명하겠다고 한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여 감사 감격 한 것이다.

나는 철저한 신앙 목회자가 될 것, 회의 불신에서, 불가지론,,청소년이 이성적 판단으로도 신의 존재와 부정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함, 불가지론으로,, 그런데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살아 계신다 한들 나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의 존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러한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해도 나와 무슨상관이냐고, 그 후 내 인생의 인도자가 계셨구나 잔잔하고 강력한 깨달음 ,, 세 가지 여려운 기도 제목이 신기하게 놀랍게 응답이 되고,, 개인의 체험 후 가능하면 한국사 세계사 속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 역사를 객관적으로 실증적으로 증명 증거할 것의 서막이 이루어진 것 같았던 것이다.

( 어떤 개인의 놀라운 신앙적 간증은 과장도 있을 수 있고 그대로 말한다해도 그 놀라운 역사를 말하여도 타인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을 수 있고 믿을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그러므로 모두가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려는 생각을 계획을 서서히 갖게 된 것이다. 그래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역사학 역사철학을 독학으로 탐구하였고 대학원에는 역사학을 배우는 과정을 약간 막연히 기대하였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찾게 되었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내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래도 오히려 학문적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된 것은 유익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거의 다 그러하였듯 많은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나는 여러가지 성경공부 세미나 과정 중 베델성서대학 연구가 유익하였고 특히 가르치기위해 준비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

지방에서 목회할 때 계명대학교 목회신학원에 일년 수강하고 논문을 쓰고 수료하였다. 그 때는 아직 학위과정이 아니었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배우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을 배웠다. 초교파적으로 모였기에 다른 교단의 특성과 무엇을 감으로 서로 배우는 유익이 있었고 특별히 은퇴하신 저명한 교수님도 와서 두 세시간 엑기스 강의로 한 학기 강의를 압축하여 전달 해 준 것 같았다. 한편 외국에서 공부하고 갓 돌아와서 강의하는 어떤 교수는  다 아는 이야기 오분이면 할 이야기를 삼 사 십분 이상을 강의하였다. 뭐 실력이 있고 없고 보다 그 현장과 대상을 잘 알아야 할 것이었다.

그 후 교계에 학위 열풍도 어느정도 있어서 목회중 서울에서 미국의 모신학교 분교의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수학을 하였다. 논문은 쓰지 않았다. 거기서도 그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다. 어떤 경우 어떤 이름이 약간 유명한 곳에서 기대만큼 배울 것이 없다는 것 그것도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학문적인 자신감을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 ing )


이혜신(서울동노회,무임,목사) 2022-01-24 (월) 10:09 2년전
지난 번에도 뭔가를 검색하다 이동원 목사님의 글을 읽고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루터에 대해 검색하다 이동원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감동~ 감탄~ 그 자체입니다.
한기장에 이동원 목사님이 계신 것이 자랑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우선 이렇게 긴 글^^을 읽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런 긴 글을 쓰신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거의 매일!!!
거두절미하고 우선

★..................각 나라의 주기도문을 기록한 곳 옆에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왜 성모 마리아가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가,  그것이 이상하였다.
맞습니다. 그때는 그 생각을 못했는데 쓰신 글을 읽으니 거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 샘물의 물 맛을 알려면 샘물 전체를 퍼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모금의 물만 마셔보아도 알 수 있다. ................ 한국의 모든 역사 세계의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없다 하여도 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 인도하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동감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단 한 가지 무슨 ***** 이름으로 땅을 여러사람 묶어서 사게하는 사업으로 사기치는 사람들 빼고
아~ 기획부동산,.....아마도 지옥 갈텐데요

귀한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며 배움을 감사합니다.
주소
이혜신(서울동노회,무임,목사) 2022-01-24 (월) 10:10 2년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현실 등등을 보고 죽으면 죽어도 목사가 안될 것 혹시 이 마음 변치 말고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겠다 하다가 고 3때 하나님께 찰싹 얻어맞고 죽을 뻔 하였다.

마음이 찡~ 합니다.
정말 왜 그렇게도 가난하였는지요ㅠㅠ
그럼에도(가난~ 고생~ 가난~ 고생~) 불구하고 아버지의 3남 2녀중 3남 1녀가 목사가 된 것( 차녀의 아들이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아버지의 자손 3남 2녀의 줄기에서 다 목사가 나왔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루터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셨듯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택하셨다는 생각에 다시 감사합니다.
주소
이혜신(서울동노회,무임,목사) 2022-01-24 (월) 10:13 2년전
중등 국사 교과서 비교 분석 연구논문 쓰신 것 잘하신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참으로 중요하니까요. 큰일 하셨습니다.
주소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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