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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 2 - 현대 설교가들 연구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11-12 (화) 07:48 4년전 1987  

설교의 내용은 예수님은 메시야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고 하였는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

교회를  열렬이 핍박하다가 예수님으로부터 극적으로 부름을 받고 사도바울이 전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전하는 내용은 이것이 핵심이었다. 한편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을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했다고 여러 번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이다. 사도 바울도 당연히 그 내용을 잘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은 무엇이낙, 그것은 세상 나라의 정치경제 철학 문화 교육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세게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 란 세상의 어떤 지역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 주권 권세 경영 섭리 인도 하나님의 역사의 일들 (work)영적 세계의 일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몇 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였다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세계의 일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인상적이었던 몇 분에 대해서 보려고 한다.

 

 

1.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

언젠가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헨리 블렉가비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 대해서 들었다.

그 책을 보니 세계적으로 초대형 베스트 셀러 이었다. 그리고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알려진 책을 몰랐지 하며 구입하여 보았다. 나의 어떤 성경을 보는 주요관점과도 전적으로 일치하였다. 이 분의 핵심이 막12:28-30 의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핵심이 아닌가 하고 있다. 그리고 내용이 아주 쉬우면서도 목회자들에게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몇 부분에 아주 깊은 뜻이 있다고 보았다. 내용을 쉽게 말하였지만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그러한 무엇이 있기에 세계적임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의 실제의 설교와 목회가 어떠한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수많은 성도님들 앞에 대형집회를 인도하시고 교회도 소위 큰 교회에서 많은 성도님 앞에 표현이 좀 그러하지만 스타같은 모습으로 설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책에서도 일부 언급하였지만 십 칠명인가의 교회로 목회라고 성도님은 백여 분이 넘지 않는 수 십명의 교인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곳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데 상당이 큰 강당에 대략 삼십여 분의 성도님들이 띄엄 띄엄 앉아있는 모습의 집회도 보았다. 적어도 대형집회는 전혀 아닌 것 같고 소위 중 대형교회는 전혀 아니었다. 그 분의 설교도 뭐라할까 아주 소박하게 설교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분의 책과 성경 공부 책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이분은 정치 경제 사회의 최고 지도자들의 참여한 강의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최고 경영자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하고 어떤 전직의 미 대통령은 어떤 그의 책을 읽고 감사의 편지를 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이 분은 전형적이 목회자의 모습이다. 한국에도 이러한 목회자의 모습에도 도전을 받아 보았으면 한다. 이 분은 연세가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편안하고 소박한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이 분은 수 많은 교인을 대상으로 설교하지 않고 큰 교회당도 아닌 그러면서도 책으로 만들어진 그 성경 말씀의 영향력은 세계적이고 세계적 지도자 경영자도 그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교훈이 최고급의 지도자에게도 그렇게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리라. 성경은 당연히 세상의 경영자 지도자에게 큰 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역사와 자연의 최고의 경영자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1. 맥아더 목사님

맥아더 목사님은 이십대 후반부터 그 교회의 목회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지금 목회하고 있는 으느혜교회에 오직 설교 준비만하고 전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그 교회에 부임하였다고 하였다.

오래 전에 소책자를 보았는데 근래에 성경 전체에 대한 주석의 방대한 책을 보았다. 지금까지의 설교를 위한 성경연구의 결과물이라 것이다. 미국에는 목회 은퇴연령의 제한이 없다고 한다. 지금은 팔십대 인데도 그 교회에서 성경 전체에 대한 강해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은 어떤 이상한 교리나 이단 그리고 정통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토론하며 변증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한국에도 이러한 스타일의 목회자가 많았으면 한다. 헨리 블렉가비 목사님과 같은 강해 설교자도 많고,,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경쟁적 대형교회를 향하는 것이 목회인 양 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문제였다 할 것이다. 그래 이 삼십년 동안 그러하였다. 한국의 신앙의 교인수가 아니라 이왕 믿는 교인들 내 교회로 오게하나 기업적 마인드가 한국 목회자와 교인들을 마을을 지배하였다 할 것이다. 경쟁적 대형교회 운동을 안했으면 한국교회가 더바람직하고 나았을 것 ,, 숫자도 더 성장할 수 있고,, 무슨 교회는 대을 이어 목회하는 것을 칭찬하고 존경할 수도 있는데 이상한 용어와 프레임으로 있는데 ,, 신학교는 촛불집회까지 하고 ,, 어느 교회가 누구는 그 담임목회자도 청빙 받을 수 없게 하는 희한한 법을 만들고 하는 것은 세계 교회사에 없을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가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은 대를 이어 제사의 직무를 하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어떤 경우는 대를 이어 하나님의 지명하셨다는 것이다. 오늘의 각 교회가 결정할 일을 어떤 법만들고 그것이 정의인양 하는 모습에 교계가 세상 사고에 끌려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의 개정이 문제가 많음에도 누가 하나 지적하지 않은 것 같다. 오직 자기 교회 숫자 교회당 성장에 올인하는 사이에 말씀과 멀어진 것이 아니로 어떤 수평이동의 부흥론과 그 전략전술에 올인한 결과 일 것이다.

 

1. 콩히 목사님

티브이를 보고 영어로 설교하는 모습,, 모습이 단정하고 샤아프하고 스마트한 비교적 짧은 머리에 정작 차림의 젊은 젊은 목회자 이었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보았는데 그러하였다. 동양인인데 젊고 스마트한 모습으로 설교를 영어로 열정적이고 진지하고 유창하게 하는 저 분이 누구일까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싱가포르의 하베스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인 교회에서 열정적 설교를 하는 분이었다. 젊은이가 많은 모인 교회 예배 분위기에 맞는다고 할까 하였다. 그 젊은 교인들도 열렬한 참여의 예배를 드렸다. 그 후 한국에도 상당히 많은 방영이 있었다. 한국의 일부 대형 교회가 이제 그 예배의 모습을 표현이 좀 그러하지만 따라하는 것 같았다. 그 예배 형식은 그 교회의 대상인 교인에 맞는 것임에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것을 한국의 중대형 교회들이 따라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콩히 목사님의 사역의 시작은 역시 막12:28-30의 말씀에 큰 도전을 받고 선교사 대신 목회자가 되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연할 것이다. 하베스트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주는 교회인 듯하다. 근래에는 그 예배 상황을 본적이 없기에 더 이상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강단에서 케쥬얼 복장에 머리를 특별하게 염색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청바지를 입고 말이다.그런데 구태여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였다.그것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다. 이삼십대 젊은이들이 많기에 그들과 자연스럽게 더 공감하기 위해서 인제 모른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교회에서 그 교회의 예배 모습을 보았는데 꼭 따라하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러운 공감대와 감동안에서 강단에서 예배 전에 찬양과 율동은 좋은데 좀 더 인위적이라면 그러한 느낌을 받는다. 뭔가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 말이다.

교회예배 중에 율동과 열렬한 찬양 자체는 좋을 수 있다. 홍해 바다에서 구원 후 여선지 미리암과 여인들이 북을 치고 춤추며 찬양하였다. 어린 갓난 아이들도 음악이 나오면 몸을 움직이는 춤추는 율동적 모습을 본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창조주의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인위적으로 될때는 보기에도 그렇고 참여도 어색하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보기에도 어색한 보습이 보인다. 그것은 감동과 철학이 없는데 인위적으로 하면 그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알맹이보다 그 대형교회를 흉내내어 대형교회를 할 수 있을까의 자세는 바람직하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아뭏든 콩히 목사님의 목회와 설교도 참고할 만 하다 할 것이다.한국의 소위 대형교회에 덩달아 그 외면적인 모습을 유행따라 가듯이 가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콩히 목사님이 언젠가부터 머리카락을 특별하게 색깔 염색 케주얼 복장에의 모습을 보았다. 젊은들이 분위기에서 맞추어서 그러한 듯한데 처음의 모습이 더 좋은 것 같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니 그러했을 것이지만 더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 근래에 들으니 재정적인 문제에 구설수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오늘 보니 참 안좋은 소식이 있었다. 목회자가 대형교회로 키우고 운영하는데 재정적인 문제에 안좋은 소식이 있게 된 것이다. 참 아타까운 일이다. 목회자도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대형교회에 여러가지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재정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면 그것이이 오히려 기적이라 할 것이다.  목회자가 오직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시련의 과정을 지나 더 좋은 목회자가 되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 한국에서나 외국의 경우에서나 너무 젊은 나이에 대형교회를 이룬 후에는 자기관리가 더 문제가 있는 듯하다. 목회자가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것은 세속적인 목적이 되어 꼭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교인 수 감소한다는데 교회당은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 많은 것 같다. 교인이 아닌 교회당이 줄어드는 것은 오히려 좋을지 모른다. 대단히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전철을 타고 조금 교외로 나아가는데 한 지역에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 서울은 물론이지만 말이다.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다. 불신자가 보기에도 그것이 과연 좋을까 하는 것이다. 적절한 거리에 교회당이 있고 교회는 오직 말씀을 전하고듣고 그 계명을 세상에서 지키는 , 대형교회를 목적으로 하며 경쟁하는 것은 우리가 반성할 부분일 것이다.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1. 한경직 목사님

음은 한목사님의 설교를 음성으로 들었을 때보다 글로 그리고 주요설교를 선택하여 전집으로 읽었을 때의 경우이다.

한 목사님은 한국의 가장 큰 교회라는 곳에서 목회하신 분이다. 이 십세 전후에 그 교회에서 두어 번 설교를 들은 것도 같다. 특별히 받은 인상은 없고 전형적인 목회자 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주 특별한 인상을 받은 것은 없다. 설교가 좀 엄숙하고 무겁다고 할까 윤리적이고 딱딱하다는 인상은 있었던 듯 하다.

그런데 그의 설교 전집의 한권을 읽게 되었다. 그 한권을 받아보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옛날 스타일의 표현이 족 그러하지만 현대 감각보다 좀 권위적인 옛날 스타일의 설교가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내용은 아주 변증적이고 논리적인 설교로서 생각한 것보다 좋았다그 당시의 어떤 설교의 흐름과 달랐다. 그 당시 설교가 좀 가볍고 과시와 튀는 듯한 모습이 많았다면 한목사님의 설교는 좀 더 진지하고 학구적이고 논리적인 설교였다대학에서 이과계통의 분야를 전공하셔서인지 여러 자연과학적인 실증의 실례를 통하여도 성경을 전하였다. 내용이 상당히 한국적이고 변증적인 설교로서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 전집을 계속 읽었다.

설교의 내용을 글로 읽었는데 세계적인 설교가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많은 설교 중 선택하여 전집으로 출간한 내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설교를 하면서 이른 바 울리고 웃기는 그러한 스타일도 유모어도 전혀 없는 변증적인 논리적인 설교였다. 유머어로 웃기고 울리는 그러한 스타일이 아니라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리적이고 진지한 말씀의 전달자 이었다. 물론 유모어가 안좋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목사님은 유모어 감각은 거의 없는 듯한 캐릭터로 보인다. 그것은 그것이고 목회적인 설교로서 수준 높은 설교라고 하겠다. 그의 설교 전집은 번역하여 외국에 전달되었어도 나름대로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한국교회가 이왕의 교인들 설교 한 편으로 감동을 주어 자신의 교회에 오게하는 목적으로 설교를 흐름도 있었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하느냐에 너무 관심의 많았는데 즉 어떻게 한편의 설교를 감동적으로 하여 교인을 우리 교회에 오게하느냐에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은 데 그러한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목적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세계적인 설교자의 한분이라고 할 수 있는 선교전집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선배 분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도 옛날 분의 엣날식 설교가 아닐까 하였는데 상당히 논리적 과학적인 설교를 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 한목사님의 설교는 성경 본문의 강해식 설교보다 성경 본문의 주제를 가지고 변증적 논리를 가지고 전하는 내용이 많다. 한목사님의 대학에서 이과 즉 과학계통의 학문을 전공하셔서 그 영향도 있는지 모른다. 한편 맥아더 목사님은 본문 주석적 설교라면 한 목사님은 본문의 제목 주제설교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모든 설교가 꼭 이 공식이라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1. 이세진 목사님

저의 부친으로서가 아니라 한 설교자로서 참으로 높이 평가 한다. 음성 마스크 내용에 있어서 뛰어나다. 나 자신도 자신이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설교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설교에 거부감이나 경쟁의식 설교를 평가하는 마음을 갖는데 그러한 마음이 없는 웅변적이 아니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거부감이 없다.

새벽에 언제나 성경을 공부하시는 한학과 그 당시 누구나 할 수 있는 한자어와 일어에 익숙하고 ,, 독학이라는 면이 있다. 더 외국 유학등 더 신학을 많이 공부하였으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그러한 제도적 신학이나 학설을 공부하지 않은 것이 더 다행이었을까 한다. 수많은 설교가가 있고 참 잘한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는데,이 분은 웅변적이 아니고 자연스러우면서 거부감이 없고 어떤 인위적인 권위가 전혀 없으면서도 권위가 있는 이러한 목습은 연구 대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가장 큰 특징은 성경을 연구하며 성경 본문 설교를 하셨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형교회나 좀 더 유명인사가 되었다면 설교의 한 유형의 하나로 배울 수 있는 설교의 한 실례가 되었다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개척교회를 하실 때 저렇게 자연스러우면서도 흡인력 있게 전하는데 소수의 성도님 앞에 설교를 하시는 것이 아쉬었다. 신학을 막 시작할 어떤 때에 뭐 대단한 다른 학자들이 무엇이 있는가도 생각하였는데, 목회를 오히려 상당기간 한 후에 보아도 너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권위가 있는 은혜스러운 설교가 였다. 그 설교의 스타일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신학도들이 객관적으로 들어보고 배울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서도 전형적인 목회자가장 맞다는 생각도 든다. 한 설교자에게 많은 설교를 듣다보면 다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간혹 들으면 거부감이 없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탁월한 이라는 수식어가 맞지 않은 탁월한 설교가 이다. 그 특징는 누구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설교가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설교에 좀 특별한 달란트르 가지신 것 같다.다시 한번 많은 후배 목회자들이 그 설교를 설교학적으로 들어보았으면 어떠할까 배워 볼 설교가 인 것이다. 혹 저의 부친이기에 과장하거나 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처음 듣는 많은 목회자와 중직자 그리고 성도님들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분은 우렁차거나 대담하거나 등의 설교 스타일은 아니었다.

물론 성경 연구를 많이 하시고 체질적으로 새벽 2, 3시 전후에 일어나셔서 성경을 연구하는 새벽 체질이기도 하였다. 성우나 아나운서 웅변가의 스타일이 아니면서 즉 목소리가 튀지 않으면서 내용이 들어오는 설교가로서 진정 음성도 타고 난 것인지 내면의 표현인지 그러하였다. 저의 부친은 그 당시 몇 분의 무명의 선배 설교자를 들면서 설교가 은혜스럽다고 몇 분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나는 가끔 저의 부친이 설교가로서 배우는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성자이거나 또는 인격적으로 등 참으로 뛰어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보통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식이 있기에 많은 보통 교인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 본 란에 등장한 설교자들은 각자의 달란트에 따른 전형적인 목회적 설교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콩히 목사님은 대중 전도설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분도 목회 초기에는 소수의 무리들과 함께 성경공부 중심의 목회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젊은 교인들이 모인 후 설교의 스타일등 여러가지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처음의 오직 말씀연구 중심의 그 방법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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