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광복절 특강 - 성경과 인문학 그리고 역사관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08-14 (수) 07:16 3개월전 318  

나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역사 아니 역사의 시각 관점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공부를 독학으로 하였다. 신학대학 4년과 그 과정에서 군대 복무 햇수로 3년이면 칠년이다. 군 복무 삼년도 일단 제도권의 그 신학과정에 포함된다면 된다고 할 수도 있는 동안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 관심은 어느 정도 치열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세상 역사를 과연 하나님이 운영하시고 경영 인도하시는 것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증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주관적 경험과 신앙 또한 확신에 근거하여 좀 더 객관적으로 알 수 있고 볼 수 있게 연구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 대학을 졸업하고 역사학을 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물론 기대와 마음의 기도도 하였음은 물론 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전공이 다른 학과로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마침 교육대학원에 역사교육이라는 학과가 있었다. 역사라는 단어를 찾았기에 거기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시험을 보았고 합격이었다. 약간 아니 매우 감사 감격이었다. 역사와 연결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말이다. 더구나 세상에서 명문대학이라고도 한다. 그 대학의 대학원에서 역사와 관련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신앙적으로 간증할 내용이라 할 것이다.

치열한 나의 관심에 비해 처음 약간 실망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유익이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어떤 기대이상의 제도권 학문과 학자에 대한 필요 이상의 그 무엇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처음 약간 실망도 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기대하고 찾고자 하는 것과 그 무엇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지금 어렴풋이 기억되는 단재 신채호 그리고 식민사관에 대하여 열강의 교수님도 있었다.


1. 역사를 해석하는 어떤 사관 (a viewpoint  of  the history, a historical view, a one's view of history)이 없다면,
나는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관점과 시각 그리고 그 증거들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그 동안 치열하게 탐구하고 탐구하였다. 그런데 세상의 역사학자들이 어떤 신앙적 관점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아닌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 학문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관이 없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으로 보았다. 세상의 여러 역사적 사건 사실들의 나열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저마다 알아서 해석하면 된다는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사건 사실의 선택에 주관과 사관이 들어간다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어떤 헤겔의 역사 철학의 사관도 또는 젼혀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는 칼 막스의 사관도 물론 아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관이 역사를 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사관이 없이 그냥 여러 사실을 나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강렬한 확고한 사관이 없이 역사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사실의 나열만 배운다는 것은 고급학문으로서 좀 맥 빠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나의 어떤 치열한 열정을 가지고 찾는 그 무엇과는 좀 동 떨어지는 듯 하여 기대에 좀 실망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지 무슨 타이틀이나 직을 가진 사람들을 어떤 면에서 무엇을 모르고 너무 높이 평가 할 수도 있을뻔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 신학대학이 아니지면 일반 역사와도 연결점이 있는 루터의 정치사상의 논문을 위해 자료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정작 논문은 한국의 국사 교과서 비교 분석에 관한 논문을 썼다. 전혀 생각지도 않는 논문 제목으로 논문을 쓴 것이다. 사 연구를 하기 하기 위해 준비하고 들어간 학교에서 전혀, 참 생각하지 않는 논문을 쓰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논문을 쓰며 서로 비교하면서 그 당시 새로 배우는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인생사에 뜻밖의 일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유익도 많이 되었을 것이다.    

1. 최근 몇 몇 교수가 객관적이고 학문적이라는 미명인지 모르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이고 어떠한 역사적 사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식민사관 이론이다. 그들 중 전 교수, 또는 소위 명문대 교수이고 이었다는 것에 자괴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나라 국민인지, 자칫 객관적이라고 변명할지 모르나, 어떤 사관 무엇을 초점으로 하여 말하는지 모르나 인류의 공동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 번영 휴머니즘 서로 사랑의 관점과도 거리가 먼 학설을 주창하며 국적불명의 시각과 판단으로 탁월한 한국의 일반 상식적인 보통의 국민보다 나은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식민사관에 세뇌된 것이 아닌가 자성하여야 할 것이었다.

어떤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하여 만든 이론을 침략당한 나라의 교수나 누군가 같이 말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어떤 나라를 식민지 지배를 하기 위해 만든 논리를, 그 식민지화를 미화 정당화 합리화 하기 위한 이론을 그대로 말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 당시는 또 그 당시이고 그 훗날에 식민지 된 나라의 후손들이 그것을 미화하는 나라가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 때문에 입에 꺼내고 싶지도 않지만 어떤 나라의 식민자기 되었다는 것 그리고 식민기간에 겪었고 있었던 내용과 그 실상이 무엇인가 알기나 하는 것인가  말이다.

한 시대의 역사학 선생이라면 과거의 교훈과 그 시대에 비전을 주어야 할 직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거의 그들이 합리화 정당화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든 식민사관의 말이나 이 시대에 한다면 이 나라 학교의 역사학 교수라는 긍지를 조금이나마 가질수 있을까, 일반 국민들은 그들이 무엇을 배웠고 그들의 사관이 무엇인지 한심하다고 할 것이 아닐까 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1. 일본의 민간인이 아니라 전범 그리고 그들이 선량한 민간인들에게 행한 행적은 간단히 말 할 수도 없어 새삼 언급하지 않겠다. 지금도 일본인 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평화헌법을 수호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전쟁 중에도 지식인 지성인들 중 탁월한 평신도 성경학자 우찌무라 같은 같은 분은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주의 비전주의 평화주의자로서 그러한 반전 비전을 선언하므로 가르칠 수 없게 되어 가정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해박하고 탁월한 성서학자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일본의 국민들 중에도 성서학자 중에도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인 평화를 주창하는 시민은 나라를 초월하여 세계의 선량한 시민들과 함께 평화의 여정의 행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물리적인 총돌이 아니어도 환경 대기오염 지구 온난화 등등 세계시민들이 공동으로 연합하여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렇다해도 쉽지 만은 않은데 무슨 전쟁을 하는 무기 만드는데 시간과 돈을 써야 할 때가 아니다.

1. 어떤 나라가 침략 전쟁을 감행하려 한다면 가장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침략을 당한 나라가 공격의 침략을 하는 나라의 이론과 명분을 옹호한다면 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지식인이 그러하다면 정상이라고 하겠는가, 어떤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명분을 만드는데 침략당하는 나라가 그 침략자의 명분에 같이 옹호 동조 칭송한다면 정상이라 할 수 없다. 그것도 과거의 역사에서 그 침략한 나라를 미화해 준다면 더더구나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전쟁의 공격자들은 언제나 가장 그럴듯한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 가지고 다른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어떤 경우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어떤 경우는 자신의 군력 강화를 위하여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등이 있을 것이다. 그 경우도 가장 그럴 듯한 명분을 만들어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공격을 침략을 당하는 나라가 식민지의 고통을 당한 나라가 그것을 합리화하는 이론에 동화되고 또한 그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침략의 공격의 합리화 이론을 그들은 미화 동조하였다면 이것은 민족정기와 정신을 위해 세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인도주의적 가치로 볼 때에도 있을 수도 없고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데 그러한 책을 써서 많은 국민들의 분노와 공분을 얻어 화제가 되어 그러한 책이 많이 팔리게 된다는 것은 또한 번의 역사의 슬픔이라고 할까 무엇이라고 할까,

 

1. 어떤 나라를 정복하고 식민지화 할 때 많은 사람을 회유하기도 하고 동화정책을 쓸 것이며 가장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 것이다. 그것을 배우고 세뇌된 일부 지식인 중에는 아직도 그 세뇌된 지식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부각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지난 후에도 그러한 지식을 전하며 자신들은 마치 객관적이라는 듯이 하는 모습은 식민사관 세뇌의 영향이 아직도 일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민족 정기 민족 정신은 협소하지 않고 세계인의 공동의 가치와 대의 평화와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삼일운동의 그 선언은 놀랍게도 그 내용을 다 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극소수의 일부 지식인들이 그들의 만행으로 당한 한국인의 고통과 슬픔과 비애의 역사를 모르는 듯이 그들의 침략 공격과 식민지화의 그럴듯한 합리화를 말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들 나라의 입장에서는 타국과 자국에 그 큰 비극과 슬픔과 많은 생명이 알고 모르고 당한 세계사적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전범으로 본 것이 아니라 참배하기도 하는 입장에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그러한 입장을 두둔하거나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 일부 극소수의 지식인들이 또한 대학 교수의 현직이나 전직 직함을 가지고  이것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들을 현대판 무엇이라고 하여야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의 사고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근래 젊은이들이 오히려 역사의식이 있고 판단이 좀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제한된 일부 메스컴이 아니라 국내외 세계 정보를 좀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다시, 어떤 나라가 어떤 나라를 공격 침략할 경우 가장 그럴듯한 이론과 명분이 있거나 그것을 만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 침략 전쟁도 식민지화도 그러한다. 침략 명분이론 식민사관을 만들어 공격하고 통치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침략 당하고 식민지 지배를 받은 사람들이 그 침략공격자의 이론을 노래 불러 주고 그것도 더욱 후세에 노래를 그 노래를 불러 준다면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없다. 아직도 그 식민사관의 세뇌에 벗어나지 못하고 지배받고 있는 정신적 식민자라 할 것이다.

세계의 고상한 공동가치 공동추구 세계 평화 공존 번영의 비젼을 말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1. 근래 일부 교수들이 일본에 관한 무슨 논문들을 썼는데 그것이 국민들이 반발하는 면도 있고 해서 결과적으로 졸지에 책이 좀 팔리는 듯하다. 이렇게도 화제가 되어 책이 팔리는 비법도 있다는 것이다. 전혀 받아드릴 수 없는 극단적인 내용이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 학자들이 식민지 사관을 만들고 그것을 배우고 그 식민사관을 받아드리고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일본 학자들이 한국을 정신적으로도 식민지화 하기 위해서 만든 학설인데 말이다. 그것이 어느 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면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그러나 일반의 국민들이 현실에서 겪은 내용을 그 사람들이 알기나 하겠는가, 관심이나 가졌겠는가, 일본의 식민지 사관에 세뇌된 한국의 학자들 그리고 그 당시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그래도 권력의 부스러기와 회유와 여러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비슷한 사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모든 전쟁을 일으키는 어떤 나라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하지 않겠는가, 자신들이 옳고 정당하고 가장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침략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젊은 나이에 누가 청춘을 바치겠는가, 진주만 공격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무엇을 위하여 산화하였다는 것인가, 진주만의 선량한 시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무슨 날벼락의 공격을 받아야 했던가. 과거의 어떤 나라도 자기가 옳다고 하닌 목숨을 버리지 않겠는가, 일제 식민지를 살면서 일본식민사관에 세뇌되고 고위관직과 권력을 누리는 이익을 얻은 입장에서 아직도 그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무슨 목적 이유로 졸지에 전쟁의 총알받이 한국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만행 그리고 교회에 교인에 대한 핍박 고문 등등의 아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들 그것은 그것을 겪은 일반 국민들이 잘 알 것이다.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에 세뇌되고 그 때 동조 협력하여 권력을 누린 입장에서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침략을 당하고 수탈과 만행을 당한 나라에서 침략자의 침략명분에 동조한다면 더구나 소위 지식인이 그러하다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저 나라가 우리 나라를 해방하고 잘살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나라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나라가 세상에 있겠는가, 그런데 더구나 그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침략과 수탈과 만행과 회유를 정당화 해 준다면 이러한 일이 어느 나라에서 있겠는가, 더더구나 시간이 지난 그 이후에 말이다. 그 당시 겪은 많은 동포들의 상황을 알고 그 입장에서 판단하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그들이 겪은 큰 비극이 어떠한 사고와 무엇때문에 겪었는지도 보아야 할 것이다. 왜 갑자기 선량한 시민이 사는 진주만을 공격하여 그 엄청난 피해를 얻게 하였는가, 풍신수길은 왜 중국의 대륙을 공격하고 한국에 임진왜란이 있었는가, 한 권력자의 자리 보존과 내부의 문제을 외부로 돌리려는 듯한 통치술 또는 무슨 이유로 그 엄청난 피해들을 주고 지금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냉철히 반성하고 평화 헌법을 보존하고 세계와 함께 평화 번영하는 행진에 함께 하여야 할 것이다선량한 세계 시민들은 여기에 동참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 후꾸시마 원전의 문제는 일본 뿐 아니라 나아가서 지리적 인접나라 그리고 세계의 문제가 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문제를 잘 대처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향하는데도 벅찰 일이다. 그러한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세계의 평화 공존 번영에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

 

1. 역사에서 인류의 최고의 가치 대의는 무엇인가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역사를 운영 인도하는 분은 누구이신가,

그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의 역사는 개인 가정 교회 민족 세계사에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시126:)



   

=. 묵상 (medidation)

1. 너는 누구의 편이냐,,

( 수 5:13-15)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너는 누구 편이냐 하였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을까요,

 

1. 성경의 선지자들은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로 증거하고 있다.

 

성경과 독서 ,, 역사 인문학 책,,

세상에 많고 많은 책이 있다.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일생을 두고 읽어야 할 몇 권의 책 또는 한권을 책을 선택한다면 어떠한 책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세계어로도 읽어야 할까요.


그 성경에서 말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즉 성경의 핵심 교리는 무엇일까요.누구를 무엇을 믿으라고 한 것일까요.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서로 실천하라고 한 것일까요. 서로 사랑,, win win

성경 역사 문학,,

 

성경은 국력,,

국어와 세계어는 국민과 세계인이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력이기도 하다 할 것이다.

쉽고 잘 표현할 책 드물다,,

한권의 책 추천 ,, 66권이다.

번역 본 ,,

 

모세

다윗

솔로몬

다니엘

                                 

1. 시126:  A song of ascents

126:1  When the LORD brought back the captives to Zion, we were like men who dreamed.

126:2 Our mouths were filled with laughter, our tongues with songs of joy. Then it was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126:3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and we are filled with joy.

126:4 Restore our fortunes, O LORD, like streams in the Negev.

126:5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126:6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 여호와께서,, 이 시편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노래한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 경영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조상들이 민족적으로 불렀고 현재에도 부르고 앞으로도 부를 노래이다.

본문의  LORD 는 원문에서 '여호와' 이다. 있다 존재하다 계시다를 뜻하는 여호와는 예수 이름과 동일하다 할 것이다. 요1:1, 14, 10:30, 14:8-9, 17:11, 8:58, 출3:14))     

                                                            

                                                                         ( - ing )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 츲ҺڻȰ 忩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п ⵶̰߿ 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