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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을 세계어와 읽어야 할 이유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8-07-12 (목) 07:39 5년전 1938  

1. 경전을 세계어와 함께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어떤 분이 성경을 읽는 중 나무의 이름의 종류인 조각목을 조각조각 낸 나무를 말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찾기가 힘든 단어 싯딤나무 라는 것이 무엇일까,무슨 나무를 말하는 것일까.

나도 구약을 읽다가 같은 단어에 두 가지 다른 뜻이 있는 단어의 뜻이 그 어느 단어일까 답답할 때가 있었다. 그 단어의 다른 뜻을 거기에 대입해도 문장의 뜻이 매우 잘 통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뜻일까, 둘 중 어떤 뜻일까, 순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한 단어의 두 가지 다른 뜻이 그 문장에서 다 통했다. 참 답답할 때가 있었다. 둘 중 어느 단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햄릿의 고뇌의 결단의 선택의 순간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신약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본다. 성경을 읽는 중 '시내' 라는 단어가 나온다. 내용상 시냇물 흐르는 시내 (stream)로 생각할 수가 있다. 그렇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시내는 그 당시의 성 (city)을  말하는데 시내를 그 당시의 성으로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오늘날 영어 성경을 같이 읽지 않고는 성 안에서의 위험을 시냇물 건너다가 당한 위험으로 알기 쉽다.

(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6 I have been constantly on the move. I have been in danger from rivers, in danger from bandits, in danger from my own countrymen, in danger from Gentiles; in danger in the city, in danger in the country, in danger at sea; and in danger from false brothers.

 

1. 많고 많은 경우가 있는데,

아들이라는 뜻의 한문의 소자를 한글 개정 번역에서는 작은 자로 수정하였다. 여기에서 소자는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은 자야 불렀다는 것과 아들아 불렀다는 것은 어쩌면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었을 것이다.

(막2:5 )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개역)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개정)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 개정번역이 소자를 작은 자로 수정하였다는 것은 기가막힐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번역된 정경을 공인하여 성도들이 읽고 강단에서 읽고 하는 것 역시,,. 물론 작은 자를 뜻하는 소자라는 뜻이 있기는 하다. 여기서는 아들이다.)

1. 예수님께서는 약 12년 동안 혈루증 않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여인에게 '딸아' 라고 부르셨다.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from that moment.

장년 여인에게 딸아 라고 부르셨다면 예수님은 누구이시라는 말인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예수님이시구나. 예수님만이 아들아, 딸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지나가다가 나이가 비슷한 청년이나 자매에게 누가 아들아 딸아 부를 수 있겠는가
,
그렇게 부르실 뿐 아니라 그 역사를 통해서 그가 누구이신가, 이 분이 누구이신가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장면이었다.

그런데 개정 번역은 소자를 (son) 작은 자로 수정한 것이다. 개역의 소자는 적을 작을 소, 아들 자 의 뜻으로 소자라고 하였을 것이다. 하였던 것이다. 영어 성경은 son으로 번역하였다. 개정 수정팀이 성경 내용도 원문도 영어성경도 보셨는지 개역번역의 권위도 아셨는지 하는 것이다.



1. 또 한글 성경에 문맥 문장내용에 맞지 않는 말이 나왔다.

여기서 게으르다라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할 때 일일이 원문을 찾아볼 수도 없고 사실 원문도 잘 모르고 하는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영어성경과 같이 보면 되는 것이다. 잘 번역되고 신뢰 권위 인정받는 번역은 원문과 거의 다름이 없다고 할 정도로 권위가 있는 번역들이 있다.

(계2:3)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3 You have persevered and have endured hardships for my name, and have not grown weary.

(원,,캄노,,피로하다, 허약해지다,수고하다, 즉(함축적으로) , 아프다. 근심되다 <히 12:3>.

to toil; be wearied 1, sick 1, faint,  to grow weary, be weary.

( 원어의 뜻에도 없는 듯한 게으르지 아니한 이라는 정확하다 할 수 없는 단어인듯 한대 개정 번역팀은 이러한 부분을 수정하였어야 하는데 엉뚱한 부분 잘 번역된 깊은 뜻의 단어, 그리고  잘 번역된 깊은 뜻의 번역을 잘못 번역한 줄 알고 수정한 부분이 많다. 특히 구약의 최초의 번역자 또는 번역팀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실력과 역량을 가지고 감히 수정을 한 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계는 가슴을 치며 크게 자성하여 개역 중심으로 다시 더 완벽한 번역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말씀 중심 신학교육 또한 원문은 아니어도 잘 번역된 신뢰 권위 있는 세계의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세계어 성경과 함께 말씀 읽는 일을 함께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1. 말씀을 인내로 지켜야

다음 구절을 읽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내의 말씀이라는 단어 문장이 있을까,

러한 문장이 성립이 될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로 지키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인내로 말씀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성경은 연결하여 이해 할 수 있다. 인내의 말씀이 아니라 인내로 지키라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3:10 Since you have kept my command to endure patiently, I will also keep you from the hour of trial that is going to come upon the whole world to test those who live on the earth.

 

(눅8:15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But the seed on good soil stands for those with a noble and good heart, who hear the word, retain it, and by persevering produce a crop.

 

1. 개역 성경은 놀라울 정도로 잘 번역을 하였다. 물론 어려운 한문 또는 고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어려운 구약과 시편의 번역을 생각하면 번역팀에 대한 존중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하였다.

개역 성경이 어렵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근래에는 성경 하단에 해설과 주석과 설명이 잘 보충이 되어있다. 예전에 있는 관주성경도 많이 펴 내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읽기가 어렵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놀라운 생명의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전이기 때문이다. 경전이 우화집이나 어린이 동화책은 아니지 않는가,

경전이 쉬우면 누구나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내용 정확도 보다 쉽게를 강조하다보면 경전의 그 내용을 손상하지 않을까 신중하여야 한다. 쉬운 목적이라면 차라리 아예 내용을 잘 요약하여 재미있게 이야기체로 따로 펴내는 것은 매우 좋다고 본다. 이것은 분명 경전 원본은 아니고 경전을 이야기 체로 쉽게 요약하여 쓴 것임을 알리고 말이다. 한편 쉬운 이야기라고 이솝 우화나 동화집을 전 국민이 한 두번 두 세번 읽지 자주 읽는 것도 아닐 것이다. 종교적인 경전은 경전으로 경전답게 읽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신약은 번역이 상대적으로 구약 보다 쉽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는 번역을 더욱 완벽하게 하였으면 하는 문장들이 있다. 그리고 한국어로 읽어도 문장의 내용이 좀 맞지 않은 듯 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경우도 영어 성경을 보면 도움이 된다. 원문은 아니어도 잘 번역된 세계어인 영어 성경을 같이 보아야 할 이유이다. 그것은 세계어를 배우고 익숙하게 되어 국익에도 유익이라고 이미 말하였다.

                                                                              < 성광교회 이동원 목사 드림>

 





=. 부록 (appendix)

(출25: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Have them make a chest of acacia wood--two and a half cubits long, a cubit and a half wide, and a cubit and a half high.

(신10:3)

내가 싯딤나무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So I made the ark out of acacia wood and chiseled out two stone tablets like the first ones, and I went up on the mountain with the two tablets in my hands.

 

( 물론 아카시아 나무라고 하여도 그곳의 , 그곳에서 자란 아카시아 나무와  한국에서의 아카시아 나무와 완전 같은 것인지도 알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도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문화 자연 지리등을 잘 배워야 할 것이다.

한편 마6: 28의 백합화도 한국에서 보는 약간 청순 담백 고상해 보이는 백합화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들판에서 자라는 빨강 노랑 자주 등 다양한 색깔의 들풀 백합화를 말하는 것이다.)      

                                                                                                                                                                                                                                                              ( -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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