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올린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시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가사를 올리다가 이전 글이 사라져 다시 올립니다.
1.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립보서 1:15-18)
2.
저희 집에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입니다. 멋진 목소리로 사람과 대화를 합니다. 그동안 이 기기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어제 아침, 출근 준비하는 가족이 AI에게 날씨를 물어볼 때 심술이 나서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어려운 질문을 해서 이 AI에게 창피함을 주어야겠다는 심산이었지요. 그러나 저의 이런 작전은 두 번 질문으로 실패하였습니다. 완패라고 할까요? 오히려 AI가 한 말이 하루 내내 마음에 메아리쳤습니다.
”니 이름은 뭐냐?“
”오케이 구글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래? 이제부터 당해봐라)
“너에게 행복은 어떤 것이냐?“
”당신의 행복이 저의 행복입니다.“
3.
이 인공지능의 ‘고백’은 우리 성도들의 인생관/행복론과 일맥상통합니다. 신앙생활의 레시피인, ‘요리문답’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생의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보람이고 보람은 곧 행복인데, 첫 단추에 해당하는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 중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빌립보서 말씀에도 이러한 행복론이 들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혀있을 때 거짓된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왕성한 전도 활동을 통해 여론의 반감을 확산시켜 사도 바울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계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사도 바울에게는 해로운 일이지만 사도 바울은 이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행복한 일로 여깁니다. 주님께 좋은 것, 주님이 행복한 것이 자신의 행복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행복론을 한결같이 품고 신앙 생활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다짐했다 할지라도 어느새 자기가 중심이 되어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현실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작심삼일과 같을지라도 부단히 이러한 행복론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註]
오늘 새벽기도회 설교입니다. 가정예배서에 배정된 본문을 따라가고 있지만 1년에 두세 번은 제가 정하기도 합니다. 원래 본문은 야고보서 5:1-6(부자들에 주는 경고)였는데 ‘퇴직금 50억’과 같은 불쾌한 이야기로 새벽을 시작하고 싶지 않아 빌립보서 말씀으로 신앙교훈을 나누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pparsp/222533391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