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소금”(마 5:1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 같은 존재이니 소금의 역할을 해내라는 당부이시지요. 마가복음 9:50이나 골로새서 4:6에도 비슷한 당부가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소금의 어떤 특성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당부를 하고 있을까요? 최대 11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앙교훈 추출에 도움이 되는, 소금 관련 성경구절들을 먼저 두 번 걸러내야 합니다. 첫 번째 필터는 “하나님과 관련된 구절인가 사람과 관련된 구절인가?”입니다. “소금 언약”(민 18:19, 대하 13:5)은 하나님의 변함 없는 약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합니다. 신앙교훈은 사람(성도)의 삶과 관련되어 있지요. 두 번째 필터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입니다. 당위 성격의 신앙교훈은 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소금밭“ 구절(삿 9:45, 겔 47:11, 습 2:9)과 ‘상처에 소금’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 마가복음 9:49은 제외됩니다[에스겔서와 마가복음 구절은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에스겔서는 소금 자원資源을 주신다는 의미로, 마가복음은 ”정화“의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2.
성도들에게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신앙교훈과 관련된 소금의 특성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주위를 살리고 지속가능하도록 정화(淨化)하는 것: 출 30:35, 레 2:13, 왕하 2:21, 겔 16:4, 겔 43:24
우리들에게 소금의 기능을 물어보면 가장 먼저 ”부패 방지“를 말합니다. ”정화“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부패 방지든 정화이든 성도들 때문에 성도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를 살아나고 존속됩니다. 소돔은 ‘의인 10명’도 없어 그 역할을 못했지요. 이 특성을 세분할 수 있지만 ‘정화’가 가장 포괄적인 것 같습니다
(2) 주위를 풍요롭게 하는 거름(자양분, 비료)가 되는 것: 마 5:13, 눅 14:35
http://www.prok.org/gnu/bbs/board.php?bo_table=c_01&wr_id=39140&page=13&p_id=twotalent
(3) 주위를 맛나게(멋지게) 하는 ‘조미료’가 되는 것: 막 9:50, 골 4:6
골로새서 말씀이 이것에 해당되는 것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의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에 관해서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저는 오붓한 식탁이 떠오릅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고 식탁 가운데에 조미료인 소금이 있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있고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를 참고하면 소금이 맛있는 음식을 대표하는 제유(提喩)일 수도 있습니다. 저만의 해석이 아닙니다. ”소금을 가운데 둔다는 것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의 상징적 표현일 수 있다. 평화로운 식탁에서는 소금이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신현우, <메시아 예수의 복음>).
3.
솔직히 말해서, 소금처럼 이 세 가지 역할을 하면서 살기 쉽지 않습니다. 부담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당부하셨을 때는 능력도 주신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 세 가지 역할을 위해 ‘한 걸음’만 더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신앙의 길 갑시다.
[註]
(1) 이번 한가위감사주일 설교 요약입니다. ”소금 비유“를 다룬 설교가 매우 흔하다 보니 그동안 이 주제를 의도적으로 피해왔습니다. 소금의 기능의 하나로 거름을 부각시킨 설교를 한번 한 적은 있습니다. ”소금 비유“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정리한 것을 어제 나누었습니다.
(2) 설교 때 막 9:50을 (3)으로 분류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문맥을 고려할 때 바로 앞 구절인 49절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립된 구절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오늘 <메시아 예수의 복음>이라는 책을 보고 그 문제의 해법을 찾았습니다. 교차대구구조로 보면 50절의 짝은 33-34절입니다. 49절이 아니라 33-34절 문맥이면 분위기가 서로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