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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골짜기에 불었던 하나님의 영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영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9-07-15 (월) 20:21 4년전 1843  

에스겔 골짜기에 불었던 하나님의 영은 에스겔 37: 1-14, 15-28

한반도 평화통일의 영 사도행전 2: 1-4, 42- 47

2019714일 성령강림 후 다섯째

1. 평화 염원 이야기

15개의 나라 세계 여성평화운동가들 30, 위민 크로스 디엠제트(Women Cross DMZ)가 평화 염원 안고, 평화와 여성의 이름으로 지난 201552412시쯤 북쪽에서 비무장지대를 지나 경의선 육로를 통해 걸어서 남쪽 땅을 밟았습니다. 이들이 애초 바란 대로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넘어온 것은 아니지만,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군사분계선을 돌파한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남북을 잇는 물꼬를 튼 것은 다른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한 것 보다 상징성과 그 파급의 힘이 큽니다. 이들의 상상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56일의 방북기간 동안 기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5일간 북한 통역가와 가장 많이 한 일은 같이 웃는 것이었다. 긴 시간 동안 분단되어 있으면서 서로 두려워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남북이 서로 형제자매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DMZ 통과 참여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44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525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년 국제여성평화회의에서 화해. 협력을 위한 남북대화에 나서라고 당시 정부에 주문했습니다. 무기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어떤 다른 나라도 남북한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고 북한은 러시아에 의지하지만, 미국. 러시아는 평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보수단체들이 위민 크로스 디엠제트종북 세력이라고 비난하는데 대해 리마 보위는 우리는 어떤 정권도 옹호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우리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절하지 않았다. 이것 자체가 북한사람들이 자신들의 숭배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도전한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이 외부와 교류를 지속한다면 10년 뒤에 북한은 매우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DMZ도보 통과 제시도남에서 북으로 위민 크로스 DMZ 연례화 추진과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는 판문점을 걸어서 통과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도 밝혔습니다.

 

2. 성서 본문, 에스겔의 역사적 배경 이야기

이스라엘인들이 오랜 바빌론 포로생활에 지쳐 자기들의 신 야훼마저 의심하고 낙심하며 희망을 잃고 살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여 이 뼈들이 살겠느냐(37:3)고 묻습니다. 이어 하나님의 말씀을 뼈들에게 대언하라며 하나님의 영이 뼈들에게 들어갈 때 그들이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대로 대언하자 뼈들이 소리를 내고 움직이며 서로 연결되고 가죽이 생겼으나 생기는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 영의 기운을 불어 넣을 때 그들이 곧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뼈들이 바로 이스라엘 족속이라며 소망 없이 멸절되는 족속 같았으나,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와 고국으로 귀환케 하시기에 자신이 역사의 주 하나님이심을 알라 했습니다(37:1-14).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지 5년째 되던 해에 아주 특이한 환상을 본 뒤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게 됩니다. 그날 그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며, 나는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1:1)고 말합니다. 에스겔은 예언을 구두로 선포하기도 하였지만 무언극과 같은 상징성 짙은 행위로도 예언활동을 하던 특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예루살렘이 위기에 처하자 에스겔은 그 도성을 애워 싼 그림을 그려서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기도 하였고(4:1),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받아먹는 연극적 효과를 보여주는 예언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머리 가락과 수염을 날카로운 칼로 깎아서 저울에 달아 1/3은 도성 안에서 불사르고, 1/3은 도성 내 장소에서 칼로 치고, 나머지 1/3은 바람에 날려서 예루살렘의 수난을 예고하는(5:1-2) 등 예언자로서 유난히도 독특한 행적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가 됩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그들의 생명력 없는 육체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예언합니다. 이것은 포로로부터 구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브라임)과 유다가 서로 화해의 포옹을 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을 다스릴 에게 기름 부으심으로 이스라엘이 한민족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일치되는 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계약의 완성이 됩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으로 삼으리라(37:23).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그 민족이 계약백성이기에 그 깊은 죄악 된 인간 본성을 완전히 바꿔 놓으려고 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새로운 삶의 형태가 시작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마음(정신, 의지)은 바뀌어야만 했으며, 백성들의 깊은 곳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만 했습니다.(36:26-27참조) 그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영원한 계약(37:26)이 세워지게 됩니다. 에스겔36장과 예레미야의 새로운 계약(31:31-34)이라는 예언은 매우 근사해 보이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에스겔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버나드 W. 앤더슨, <구약성서이해> 524-527, 2001)

에스겔은 그의 거룩한 백성을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선포합니다. 새로운 계약의 시대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그들의 한가운데 계시면서, 그 거룩한 땅을 축복의 소나기로 적셔 주실 것이며, 평화롭고 안전한 가운데 그 수가 부쩍부쩍 늘어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34:26). 이스라엘이 회복된 것에 대한 모습은 제사장 에스겔의 환상가운데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37:26)라고 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한 새로운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일을 에스겔은 통일왕국(2:3설명), 종종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주전 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이 당했던 것과 비슷한 운명을 유다도 주전 587-586년에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왕국의 회복을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은 두 나라의 통일을 포함합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간의 종교분쟁이 지속되었지만, 이 약속은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아래서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습니다. 신약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는 토대위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구성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오늘의 교회와 한반도에서의 평화문제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합니까? 에스겔이 본 죽은 뼈들은 마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 그리고 한반도 평화문제 등에 생기를 잃고 두려움과 초췌한 방황 가운데 있는 우리자신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불의와 세속의 욕망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치는 분단의 한반도에서 그 힘이 소진한 삶의 갈등과 고뇌에 쓰러진 꼴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도권 다툼과 맘몬 신에 홀려 정직과 양심, 속사람 진심에서 솟아나는 꼴이란 볼 수 없는 메마르고 생기 없는 죽음의 골짜기와 같은 한반도입니다. 거기에 세상적인 안목으로 무슨 희망과 생기, 민족의 하나 됨의 숭고한 비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영을 불어넣어 소생케 하고 생명을 주어 남과 북의 하나 되게 하시는 새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오늘날 한반도 우리 민족에게도 하나님의 영기만 주신다면 평화통일의 새 나라와 남북의 새 생명의 새 역사가 용솟음칠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불었던 하나님의 영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영이라는 주제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며, 성령의 새 지혜와 능력을 기다리며 성령강림절 이후를 보내기 바랍니다.

 

3. 펜타코스트(Pentacost)의 성령강림

먼저 하나님의 영의 기운이 메말라 시들어가는 우리의 심혼에 불러오기를 열망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메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 같은 자신들의 처지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기를 부어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강력한 세속풍랑에 뭇 영혼들이 쓰러지고 물질문명에 휩싸여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새로운 기운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경우 교인들은 많으나 진리의 바른 터득은 없어 세상에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세상의 소금 노릇을 못한다면 잎만 무성한 나무같이 될까 두렵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들은 펜타코스트의 성령강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초의 교회가 지상에 탄생한 날이요, 사도행전 2장은 본래의 교회 모습을 잘 전해 줍니다. 이는 모든 땅 위의 교회의 모본이요, 항상 교회는 그 본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지상의 어디에 어느 교회든, 초대교회와 같은 자세를 가질 때 그 교회는 살아나고 생기 넘치는 산 신앙의 공동체가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죽은 뼈들과 같은 교회도 하나님의 영기를 받게 될 때, 새 생명으로 소생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이 전하는 초대교회를 좀 더 광범하게 깊이 있게 되새기며 유념해 봐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받은 신도들로 생기가 넘쳤습니다. 2)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함께 먹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3) 사도들로 이적기사가 많이 나타나고 믿는 자들이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필요에 따라 함께 나누어 썼습니다. 4)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5)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기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했습니다(2:1-4, 42-47). 이상의 사건들은 초대교회에서만 나타난 사도시대의 특징이었던 사실도 있으나, 지상의 교회는 언제나 초대교회를 그 이상으로 목표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최소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정성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수하고 거짓 없는 신앙으로 기도하며 이웃과 더불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때 펜타코스트의 성령강림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4. 한국교회 성령강림과 얽긴 이야기

한국교회는 1903년 원산에서 선교사들의 성경공부와 기도회 가운데서 성령강림 경험을 하였고, 1904년 개성지방 사경회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경험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에서 성령운동의 100주년 되는 뜻 깊은 기념행사를 2007년에 행한바 있습니다. 100년 전에 있었던 성령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현재의 교회현실을 반성하고, 선교 2세기를 향한 올바른 교회의 미래를 전망해 보려는 것입니다. 교회의 관심은 단지 연대기적 의미만이 아니라 교회성장의 정체라는 위기의식과 세속화된 교회 변화와 개혁의 요구가 맞물려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1) 성령운동에 대한 정의와 평가는 한국교회 출발점을 회상하며 현재 상태를 반성하고 미래전망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1907년 성령체험을 통한 회개와 중생에 근거한 부흥운동 혹은 평양 대 부흥 운동으로써 비정치적인 순수한 영적 운동으로 정의합니다. 그러한 평가에는 상반된 입장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1907년 성령운동을 회개운동, 기도운동, 전도운동, 말씀운동, 한국적 그리스도교 신앙의 형성과 토착화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 내적 변화를 통한 교회갱신과 사회개혁운동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와는 다르게 1907년 성령운동이 몰역사적 신앙의 강조, 교회의 비정치화, 탈지성화, 성령의도구화와 교회주의를 가져왔다고 비판하는 면도 있습니다. (<신학연구> 52, 2008, 94-95, 류장현, <한국교회 신앙운동의 통섭> 2009, 12-45)

2) 대부분의 주한 선교사들은 비정치화를 강조하였음에도, 당시 한국교회가 민족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선교사들이 교인들의 애국운동, 특히 반미감정을 순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영적 각성에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그런 의도에서 계획적으로 부흥회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정치적 투쟁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1907년 성령운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한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1907년 성령운동을 통해서 급성장한 교회의 내적인 영적 역량은 12년 후 19193.1운동 때에 역사 참여적 신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당시 총인구의 1.5%에 지나지 않았던 기독교인(20만 성도)3.1운동 전체 피검자의 17.6%를 차지했으며, 특히 피검된 교역자는 244명으로 천도교나 불교의 두 배나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민족과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는 애국적인 민족종교로 사람들에게 각인 되었고, 교인들은 애국자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신학연구> 52, 2008, 105-107)

3) 성령운동의 역사적 상황: 1907년 성령운동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성령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청일전쟁(1894-95)노일전쟁(1904-05)에서 승리한 일제가 190511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민족의 주권상실의 위기가 고조 되었고, 500여 년 동안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유교적 가치관과 봉건적 사회질서가 봉기되어 민족적 절망감과 정신적 혼돈이 심화되는 암울한 시기에 일어났으며 19077월 고종황제의 퇴위, 그 해 8월에 군대해산 및 보안법과 신문지법을 통한 언론통제, 1910년 치욕적인 한일합방, 1911105인 사건, 1919122일 고종황제 서거와 191931일 독립운동이 일어난 격동의 시기에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한국민들은 민족주권의 상실과 경제적 빈곤으로 이중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낡은 세계의 붕괴와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종말론적 희망을 갈망했습니다. 특히 개혁파 인사들은 정치적 한계를 느꼈을 때 교회를 찾아서 구국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으며 많은 지사들과 지식인들은 기독교에 입교하여 그들의 통렬한 감정을 승화시키고 민족의 새로운 소망을 찾았습니다. (이만열, <한국기독교의 역사 II> 48-51, 2012)

4) 성령운동의 재조명: 1907년 성령운동은 1876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으로 한국 민중에 의해서 받은 복음이 어떻게 한국인의 영성에 뿌리내리게 되었고, 성령체험을 통해 내적 변화를 체험한 교인들이 어떻게 사회개혁과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했는가를 밝힐 때 올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밝힌 대로, 1907년 성령운동은 비정치적인 순수한 영적 각성운동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침략에 의해 민족의 주권이 상실되는 암담한 현실에서 이 민족의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집단적 회개운동이었고, 성령의 중생체험을 교회개혁, 사회변혁과 민족해방운동으로 승화시킨 종교적-사회적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초월적 신앙과 역사적 상황의 결합, 즉 복음과 한국역사의 내적 결합이었습니다. 이러한 1907년 성령운동은 새 천년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과 민족 앞에 참회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하고, 교회개혁과 민주사회 건설, 그리고 평화적 민족통일에 헌신하는 책임적 실체여야 합니다.

 

5. 본 회퍼의 평화사상과 한반도 평화통일

금년은 본 회퍼가 나치정권의 처형으로 순교한지 74주년이 되고 한반도 광복과 분단 7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본 회퍼는 20세기 후반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 민주화와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무엇인가와 평화 위해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평화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본 회퍼가 그리스도교 평화에 관심을 갖는데 영향을 준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프랑스인 쟝 라세르인데 본 회퍼에게 평화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입니다. 본 회퍼가 1930-31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쟝 라세르를 만났는데 그 때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본 회퍼는 산상설교에 나타난 평화사상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 보복금지, 비폭력, 원수 사랑으로부터 그리스도교 평화를 깨닫고 배웁니다. 당시 독일 루터 교회는 이런 평화를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본 회퍼는 이 때 평화는 민족적 배경을 초월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인도의 간디인데 본 회퍼는 간디의 비폭력방법을 높이 평가하고,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저항의 형식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본 회퍼는 인도를 방문하고 간디를 만나기로 간디의 허락을 받았으나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본 회퍼는 간디가 예수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 회퍼는 그의 평화설교에서 우리는 동쪽에 있는 이교도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여기서 이교도는 힌두교도인 간디를 지칭한 말인데, 간디가 그리스도인보다 잘 실천했기에 수치스럽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본 회퍼의 평화사상은 1930년대 강연과 설교,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 <윤리학>을 비롯한 그의 저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1) 본 회퍼의 평화사상은 성서에 기초한 것인데 산상설교와 구약과 복음서 바울 서신에 나타난 평화에 관한 말씀을 토대로 말한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론적이며 교회론적입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평화 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 된 마땅한 의무와 책임입니다. 본 회퍼는 전 세계가 연합하여 평화를 만드는 것은 교회의 역할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인 모든 경계를 초월합니다. 본 회퍼의 평화는 무기와 군비확장, 안전보장의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비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이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 회퍼는 진리와 정의가 실천되는 곳에 평화가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평화실현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평화를 행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1930년대 초에 평화주의를 주장하였던 본 회퍼가 1940년대 초에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것은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의 계명에 순종한 것을 의미합니다. 본 회퍼는 히틀러는 전쟁을 의미 한다고 말했고, 본 회퍼의 신학과 평화사상은 그의 삶 속에서 전기와 후기의 단절이 아니라, 일치 속의 다양한 모습의 결단이었습니다.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하는 본 회퍼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극명히 잘 표현되었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바퀴아래 깔린 희생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바퀴자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본 회퍼는 당시 미친 운전사인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는 폭정에 저항할 의무를 말하고 있는데 본 회퍼는 이것을 실천한 것입니다.

2) 본 회퍼와 한반도 평화통일; 한국과 본 회퍼, 한국교회와 본 회퍼는 어떤 관계입니까? 본 회퍼의 저서와 그에 관한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본 회퍼의 평화사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통일신학은 평화신학에 근거해야 합니다. 통일은 평화적 방법으로 하는 평화통일이 되어야 하고 통일은 평화를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한 민족의 염원이요 이뤄야 할 역사적 과제입니다. 아니 역사와 시대적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자들(Peacemakers)이 되라고 하십니다(5:9).

평화통일을 위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먼저 교회는 평화 통일을 위해 분단으로 인한 분단 체제 속에서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대결해 왔던 잘못을 반성하여야 합니다. 역사적 잘 못을 바르게 인식하고 참회하여야 합니다. 남북한은 화해하고 협력하며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신뢰구축을 통하여 통일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는 말씀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통일의 목표는 정의로운 평화공동체이므로 남한 사회가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자체부터 민주화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통일 되었을 때를 위한 선교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독일교회가 독일 통일에 큰 기여를 하였듯이 한국교회도 한반도 통일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서독 교회들은 화해를 위한 노력과 통일을 위한 운동을 하였습니다.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와 동 베르린의 겟세마네교회가 민주화와 변혁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독교회는 동독교회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였습니다. .서독 교회는 분단된 사회와 국가를 연결하여 주는 교량역할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분단된 한반도의 남과 북을 화해시키는 교량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민족적 과제이며 미완의 해방을 완성시키는 일인 평화통일을 위한 일에 민족적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6. 마감하면서

에스겔 골짜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평화통일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혜와 생명의 영이요, 정의와 심판의 영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은 이제 만민에게 주어져야 할 영입니다. 이 성령은 능력과 해방의 영으로 구박이 있는 곳에 풀어주는 영이요, 불의가 성행한 곳에서 정의를 실현시키는 영이요, 거짓이 있는 곳에서 사랑과 용서의 꽃을 피우는 영이요, 어둠과 실의에 주저앉아 있는 자에게 희망과 창조적 능력을 부여하는 영입니다. 분단으로 남과 북의 소통이 끊어진 한반도 우리민족이 진정으로 형제자매로서 하나가 되는 평화통일도 성령의 역사로 이룩하십니다. 강대국에 의존하여 실상 남북 동족끼리는 원수가 되어가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하나 됨의 민족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평화통일 문제, 복지나라 건설, 자연생태계 회복, 이주자들(떠돌이) 문제, 양성평등의 문제, 장애인 문제 등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지혜와 능력, 이모든 과제를 위한 선교비전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 성령을 받은 자는 채임 질 줄 아는 자요, 정직하고 성실한 자요, 불의와 거짓과 세상적인 모든 것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인입니다. 그는 창조적 능력을 이어받은 만물과 역사와 운명의 주인입니다. 그는 창조의 수고를 할 줄 알며 안식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자유인, 곧 그리스도의 현존을 사는 자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은혜가 충만하고 초대교회와 같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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