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뗏목지기는 조직원이었네
김형수
양자강 물가에 뗏목지기 있었네
물 속에 노니는 고기처럼 한가하게
산맥을 빠져나온 구름처럼 유유하게
장기도 두고 낚시질도 하고
혁명의 세월에 한가하게 사는 꼴이
청년들 눈에 차암, 안돼 보였네
홍군에 참가하여
전장터에 한 목숨 내맡기고 싶었던
젊은 뗏목지기 견디기 힘들었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 6년, 7년이 지나도
아무런 전투에도 불려가지 않았네
머리에 하나 둘 흰머리가 나도록
무기력과 낮잠과 권태와 싸웠네
이마에 깊은 주름살이 서도록
초조감과 조급성과 세월과 싸웠네
아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네
그를 배치한 조건을 빼놓고는
백군에게 쫓겨 파국을 앞두게 된
홍군이 어느날 그곳을 지났네
뗏목지기 나서 뗏목을 준비했네
5년이 넘게 10년이 넘게
흰머리가 나도록 준비한 뗏목지기
뗏목 풀어 한꺼번에 대군을 살렸네
무기력과 낮잠과 권태와 싸운 끝에
초조감과 조급성과 세월과 싸운 끝에
대륙의 역사를 10년쯤 앞당겨 놓은
조직의 역사를 10년쯤 늘려놓은
뗏목지기 인생을 아는 사람 없었네
그의 청춘을 관리한 조직을 빼놓고는
시집 『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푸른숲,1991)
이 이야기를 몇 년 전,
서수제일교회(이창구목사님) 행사 때 설교자에게서 들었는데요.
정말 묵직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이 뗏목지기 같은, 하나님의 조직원입니다”
이러셨습니다.
2.
이 뗏목지기보다 더한 ‘조직원’도 있지요.
영화 <하얀 전쟁>에서 본 것인데요.
“죽음의 계곡에 투입된 그의 소대는 어둠과 함께 새까맣게 몰려오는 베트콩과 죽음의 결전이 치열하게 벌이게 되었고, 임무는 성공했지만, 투입된 47명의 소대원 중 살아남은 소대원은 7명뿐이었다”
여기까지는 리뷰가 되어있는데
그 다음의 반전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이 틀 때 지휘관 장군이 헬기를 타고 처참한 전투지를 내려와서, 패잔병과 다름없는 생존 병사들에게 ‘임무 성공’을 격려합니다. 그제서야 임무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주는데요, 글쎄, 그 성공한 임무는 베트콩 부대를 이 계곡에 잡아두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대가 그 미끼였던 것이지요. 일종의 ‘소모품’이 된 것입니다.
양자강 뗏목지기는 그나마 직접적인 보람이 있었군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모품처럼 살아가신 분들도 계시지요.
3.
가끔 “하나님의 소모품”도 불사한다는 각오는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쉽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빌 2:17, 딤후 4:6의 “전제”를 이런 의미로 볼 수 있겠군요.